거룩한위탁

49 pp.242-247 제 3편 제 4장 육체 및 정신의 각가지 자연적 선에 있어서의 위탁 제1절 건강과 질병②

은가루리나 2018. 11. 23. 22:02




옴니아 등급변경▼ 조회 152 추천 0 2012.11.01. 06:29



제3편 위탁의 대상


제4장 육체 및 정신의 각가지 자연적 선에 있어서의 위탁

 제1절 건강과 질병 

 제2절 질병의 지연과 그 결과 

 제3절 삶과 죽음

 제4절 자연적 은혜의 분배에 관한 불평등에 대하여

 제5절 직무

 제6절 휴식과 평온




p.242


제 3 편 위탁(委託)의 대상(對象) 


제 4 장 육체(肉體) 및 정신(精神)의 

각가지 자연적 선(自然的 善)에 있어서의 위탁(委託) 


제 1 절  건 강(健康)과  질 병(疾病) 




성「알퐁소」는 말한다.


「나는 그대의 고뇌가 혹심할 적에는

그것을 드러내는 것을 책망하지 않는다.


그러나 사소한 고통에 탄식하고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그대의 둘레에 모여와,

함께 탄식하는 것을 바란다면,

그것은 약한 소행이라고 책망하지 않을 수 없으리라.


우리가 병으로 몹시 고통을 당할 때,

그것에서 구원되도록 주께 기도하는 것은 결코 죄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완쾌를 기도하기 바란다면,

적어도 인종(忍從)의 정신으로써

육체의 건강이 영혼의 구제에 적합하다는 조건 밑에 

그것을 행하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기도는 타당하지도 않으며,

효과를 거두지도 못할 것이다.


실제 주께서는 인종(忍從)의 정신이 수반되지 않는 기도는

결코 들어 주시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예수.그리스도의 참된 정배」13장 2절의 1, 「적합」5절3 )


p.243


「아뷜라」의 성녀 대 「데레사」는 말한다. 


「사소한 고통에 끊임없이 불평을 터뜨리는 것은

나에게는 매우 불완전한 일처럼 생각된다.

 

나는 여기서 

혹심한 열병과 같은 커다란 고통에 관해서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 것을 항상 인내와 평온함으로써 견딘다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그러나 내가 말하고 있는 것은

남에게도 폐를 끼치지 않고 참을 수 있는 정도의 사실 그대로에 관해서다. 


혹심한 고통은 그것 전체가 충분히 고통을 호소하는 것이며,

결코 오래 숨겨둘 수 없다.


여하튼, 참으로 질병에 걸렸을 적에는, 

그것을 알리고,

또한 필요한 간호를 받는 것을 감수하여야 한다.」(「완덕의 길」11장)



요컨대,

성교회의 박사나 성인들은

모두 온당한 탄식과 복종이 수반하는 기도를 허용하고 있다.

다만 그것이 지나쳐 복종이 결여될 때에만 비난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성「프란치스꼬 . 살레지오」와 같이,

「천주의뜻이 조금이라도 많이 나타나는 곳에 향하는」(「대화편」21)편을 택하고,

그리고 성「알퐁소」와 함께

「주여, 나는 병이 낫는 것도 길게 끄는 것도 바라지 않으오며,

오직 당신이 바라시는 것을 바라나이다.(「적합」5절3 )라고 기도한다.



성「프란치스꼬 . 살레지오」


그 수녀들에게 성의(聖意)라면이란 조건 밑에,

낫게 하실 수 있는 주께 질병의 쾌유를 기도할 것을 허용하고 있지만,

자신은 자기 병이 낫기를 기도한 적은 결코 없었다.


그는 육체에 있어 고통을 당하는 것은

자신에게 있어 다시 없는 커다란 은총이라고 말하였다.


그것은 자진해서 지나치게 고행을 하지 않고

병고(病苦)에 의해서 부득이 고행을 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대화편」21)


또한 「성무일과」안에「릴리스」의 성「가밀로」는,

다섯가지의 장기간에 걸친 고통스러운 병에 괴롭혀져,

그러한 것을, 「주의 다섯가지 자비」라고 불렀다는 것을 읽게 된다.


그 때문에 그는 그러한 병고에서 구원되기를 원한 적은 결코 없었다.



p.244


여기서 나는,

천주의 의지에 복종하면서,

병의 쾌유 또는 병고의 경감(輕減)을 기도하는 사람을 결코 비난할 생각은 없다.


주께서는 당신 둘레에 모여드는 병자들을 칭찬하셨고,

또한 오늘에도 「루루드」에 군집하는 병자에게 가끔 기적으로써 보답하신다.


거기에는 확실히 천주에게 있어서는 영광,

신자 대중에 있어서는 감격 깊은 신앙과 신뢰와의 훌륭한 현시(顯示)가 있다.


그러나 이것과는 달리,

병의 쾌유를 기도하지 않는 병자도 있다.


그러한 병자가 자신을 이탈하여 

천주의 의지에만 애착하고,

천주께서 바라시는 모든 것을 미리 받아들이려는 결심의 완전함은,

하늘의 성부께 충성과 신뢰를 드러내는 것만으로 만족하면,

천주 자신이 결정을 보류하신 것에는

천주께 그 결정에 대한 배려를 맡기고

그리고 그 결정이 어떤 것이라 하드라도 관대한 마음으로 그것을 안으며,

자신의 의무를 거룩하게 수행함으로 만족할 정도이다.


그러한 마음의 관대한 병자는 전자와 마찬가지로,

또는 그 이상 훨씬 자신의 신앙과 신뢰,

사랑과 충성과 겸손한 자아포기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러나 사람은 각각 바라는 쪽을 택하고

자기가 좋아하는 것에 따른다는 것은 자유이다.


나로서는 성「프란치스꼬 . 살레지오」와 성「알퐁소」의 의견이

가장 뜻에 맞는다고 생각한다.




「즈네브」의 거룩한 주교는 말한다.


「병고에 시달릴 적에는 

천주의 성의에 맞갖은 모든 수단을 강구하여 이를 물리치도록 노력하자.


장상의 밑에 있는 수도자는

주어지는 간호를 단순하게 순명하는 마음으로 받아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지극히 높으신 천주를 시험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또한, 가능한 수단을 강구한 후에는,

완전한 인종(忍從)으로써 천주께서 바라시는 결과를 기다려야 한다.


만일 천주의 뜻에 의해서 약이 병을 이긴다면

마땅히 겸손한 마음으로 감사를 바치자.

이에 반하여,

만일 병이 의약을 이기는것이 천주의 성의라면,

마찬가지로 인내하여 천주를 찬미하라.


병으로 신음하는 것 뿐 아니라,

또한 병의 종류, 그 장소, 주위의 사람들, 불편 등을 

아무런 선택도 거부하지 않고,

그리고 병이 아무리 추악하고 부끄럽게 여겨지드라도

천주의 뜻대로 그것을 수락하여야 한다.


실제, 치욕이 따르지 않는 병고는 

흔히 사람을 겸손하게 하는 대신, 도리어 오만에로 이끈다.


그러나 명예가 수반되지 않는 병에 걸렸을 때,

또는 불명예와 천대와 굴욕,

그 자체가 우리의 불행의 원인일 적에는,

인내, 겸손, 근신 또는 마음의 유화를 실행하는 기회가 얼마나 있을 것인가!」

(「입문」3편 3장, 「대화편」2, 21)



p.245


영해 예수의 성녀「데레사」는,

「고통을 호소하기에 앞서 먼저 힘있는 한, 인내해야 한다.」라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었다.

성녀는 어지러움과 심한 두통에도 불구하고,

얼마나 자주 야과경(夜課經)에 참여하였던가.


그는 항상 이렇게 속삭이고 있었다.

「나는 아직 걸을 수 있읍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임무를 수행하여야 합니다.」

이와 같은 커다란 기력이 있었기에

그는 순진하게 영웅적 행위를 한 것이다. ( 자서전 12장 참조)


우리의 관례서(慣例書)에 따라서 우리는 병을 장상에게 알리며,

그리고 무사려한 행동을 피하여아 한다. (관례서 472)


그러나,

우리는 성녀「데레사」의 갸륵하고 관대한 정신에 힘을 얻어 

병 중에 있어서도,

오직 선의(善意)만을 요구하는 임무에는 충실히,

그리고 건강을 요하는 임무는

이것을 가능한 범위에서 수행하기를 계속하자.


또한 우리 병고를 성화하기 위해서는,

성「 프란치꼬 . 살레지오」의 다음과 같은 현명한 의견에 따르기로 하자.



p.246


「주께서 그대를 위하여 쓴 잔을 맛보신 것을 상기하여 순종하라.

천주의 사랑을 위하여 의약과 영양분을 취하며,

또한 그 밖의 치료를 하라.

주를 섬기기 위하여 회복을 원하라.

그러나 성의에 복종하기 위해서는 병약(病弱)을 싫어하지 말라.


만일 성의시라면,

천주를 찬미하고 천국의 기쁨을 맛보기 위하여 죽음을 각오하라.


모욕 받으시고,

조롱함을 받으셨으며,

버림을 당하시고 알몸으로 되시며,

온갖 권태와 비통과 노고와의 중압(重壓)하에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그리스도를 정신의 눈으로써 자주 우러러 보며,

그대의 모든 고통은 

그 성질에 있어서도, 분량에 있어서도 

주의 수난과는 비교가 안된다는 것을 상기하여,

그대가 주를 위하여 겪는 어떤 고통도,

주께서 그대를 위하여 겪으신 고난에 비한다면 보잘 것 없는 것임을 생각하라. 」

(「입문」3편, 3장)




성녀「마리아.막달레나.뽀스뗄」은 실제 그렇게 하였다.

떠나기 어려운 반려와도 같이 30년이 넘도록

그를 짓굿게 붙어다녔던 천식(喘息)을 그는 벗으로 삼고,

또한 은인으로 환대하였다.


때때로 그는 창백해지고, 호흡에 곤란을 느끼며,

지금이라도 질식하는 것만 같았다.


그럴 때에 그는 이렇게 말하였다.

「주여, 감사하나이다.

주의 거룩하신 뜻이 이루어지시기를 ! 

주여, 더욱, 더욱 고통을 !」


어느 날,

곁에 있는 이가 그의 모양을 측은히 생각하였을 때,

그는 「아무 일도 아닙니다.

주께서 우리를 위하여 이보다도 훨씬 혹독한 고통을 감수하셨읍니다.」

라고 말하며, 

마치 십 오륙세의 소녀처럼

「언제나 그대를 볼 수 있으랴. 아, 아름다운 하늘의 조국이여 !」라고 

읊으기 시작하였다. ( 동 성녀전 31, 32) 


p.2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