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위신부님의 "無"에 대한 댓글 모음 ▣ 보조교사방
또 하나의 "더함"은 가치의 하락이 아님을 한 수 배워 봅니다.
"내맡김"은 또 하나의 "얻음" 입니다.
잃었던(無) 나(我)를 되찾음 입니다.
無我가 나(我)무(無) 되어 무럭무럭 자라나
부디, 새로이 태어 나시길
끝내 주네요.
저보다 한 수 위
나(我)무(無)의 끝은
나(我)를 "내맡김"이죠.
그러면, 나(我)가 없어지고 하느님의 사랑을 받는 예쁜 나(娥)가 됩니다.
女 + 娥 = 여성 = 딸 = 하느님의 딸 = 예쁜 딸이 됩니다.
주님의 산에 이미, 주님께서 다 마련해 놓으셨죠.
이제 나(我)무(無)가 娥가 되면,
다른 사람들이 이 我가 저 娥가 아이가
아이다, 저 娥가 이 娥다
라고들 떠들어 댈 것입니다.
그 예쁜 웃음의 예쁜 娥가 될 것입니다.
moowee 10.10.07. 08:24
사실, 내맡김의 삶은 "無爲"를 배우는 것외에 다른 것이 아닙니다
내가 생각을 하지 말고,
내가 계획을 세우지 말고,
나의 경험을 끌어 대지 말며,
그럼으로써 하느님께서 나의 모든 것을 하시게 하는 삶입니다.
한마디로 "하느님 중심적인 삶"을 사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내 안에 당신의 나라를 건설하시도록
나를 내어 드리는 삶입니다.
그것은 "無爲"로서만 가능한 것입니다.
내가 "無爲"할 때, 하느님께서 "行"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無爲行"입니다.
"겸손한 사람"만이 무위행합니다.
늘 겸손해야 합니다.
겸손한 사람만이 "순명"할 줄 압니다.
순명은 천금보다 더 귀합니다.
순명은 "완전한(100%) 내맡김"만으로 가능함다
"나(我)"는 "아무것도 아님(無)"을 아는 것이 "내 자신을 아는 앎",
"진실한 앎"입니다.
진실한 앎은 지혜입니다, 지식이 아니라~
인간의 지식으로 생겨난 것이 영적인 "암(癌)"이 됩니다.
진실한 앎을 아는 사람(無我)은
인간의 그 잘난 지식을 버리고 지혜를 찾습니다.
지혜의 근원이신 하느님 앞의 지식(인간의)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하느님이 없으면~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진실한 사랑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지혜로운 사람(我가 無가 된),
나무는 걸어다닐 수있을 뿐만 아니라, 날아 다닐 수도 있습니다.
우리 모두 "나(我)무(無)"가 됩시다!
내 뜻이 없어지는 것!
그것은 내가 없어지는 것이고,
내가 없어지기 위한 가장 탁월한 방법이 "내맡김"입니다.
내가 없어진 "나무"가 되기 위하여
9월12일, 선조들처럼으로 많이 많이 걸어 오시기 바랍니다.
"무소유"는 내가 하는 것이요, "내맡김"도 내가 하는 것입니다.
무소유로 "無"가 되고, 내맡김으로 "有"가 되리라.
有는 기쁘고
겁습니다.
하느님 있는 죽음은 "소유"입니다
우리 신앙인들에겐 "무소유"가 어울리지 않죠.
무소유로 내가 無가 되어 우주와 하나된다지만,
우리는 "내맡김"으로 하느님을 "소유"하게 됩니다.
우리는 소유해야 합니다, 하느님을!
하느님없는 "무소유"는 "虛無"일 뿐입니다.
"나(我)"를 완전히 다 하느님께 내맡겨 드리면,
"내(我)"가 없어지고(無我) 나는 하느님의 것이 됩니다.
또한, "하느님의 모든 것(有)"이 내(我) 것이 됩니다.
無我는 곧 "하느님 안에 있는 我(有我)"요 有我는 곧 진짜의 나(我),
우리는 하느님으로부터 왔고 하느님의 것이기에
하느님 안에 있을 때에만 존재(有)할 수 있습니다.
有我란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나(我)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내맡김"은 본래의 나(我)를 찾는 원초적인 작업입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노자의 "無爲自然" 에서 빼낸 단어로서
내가 하지 않고
바오로 사도의 갈라티아 2장 20절,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삶"
"하라, 하지 말고 하라!
하지 말라, 네가 하지 마라!
네 안에 계신 그분께서 하시게 하라!
살라, 삶 없이 살라!
살지 마라, 네가 살지 마라!
네 안에 계신 그부께서 사시게 하라!"<無爲>
아니, < 하느님을 진실로 사랑하는 사람 > 만이 내맡길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 자신의 모든 것을,
하느님이 우리에게 당신을 사랑할 수 있는 <
그때야 비로서 우리가 < 하느님을 진실로 사랑할 수 있게 되는 것 > 입니다.
내맡김의 영성에 있어서 저
저는 이 말을 아시는 분이 계시면
정말 개인적으로 조용히 대화를 나누어보고 싶습니다,
과거에 저도 다른 사람들 못지 않게 <계획적>인 사람이었습니다.
그렇지 않겠습니까? 제가 사목하던 자리가 자리니 만큼 말입니다.
이제(내맡김 이후)는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지리산에 뼈를 묻을 줄 알고 있던 제가 문정동 본당으로 간 까닭은?
문정동에서 1년밖에 안 된 제가 일본으로 오게 된 까닭은?
제가 계획을 세워서 그렇게 된 것이 절대 아닙니다.
모든 것을 주님께서 이끌어 주시는 것입니다.
<無계획이 最善의 上계획>입니다.
가장 높은 곳에 계신 하느님이 모든 계획을 친히 세워 주시고,
세워 주신 계획도 제가 진행해 나가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아드님>께서는 작아지셔도 되지만,,,,,,,,,,,,,,,,,,,,,,,,,,,,,,
<우리 인간>은,,,,,,,,,,,,,,,,,,,,,,,,,,,,,,,,,,,
작아질 것도 없는,,,,,,,,,,,,,,,,,,,,,,,,,,,,,,,,,,,
너무 비천한 존재이기에,,,,,,,,,,,,,,,,,,,,,,,,,,,,,,,,,,,,
<존재하지 않아야> 비로소 존재할 수 있는 존재입니다.
즉, 100% 완죤
無가 되는 지름길이 바로
거룩한 내맡김으로 無가 되었을 때
그때 비로서 하느님(有)이 우리(無)를 차지하시게 되며,
하느님이 온전히 우리를 차지하시어
우리가 하느님의 소유가 될 수 있는 것이며,
우리가 하느님의 소유가 될 때,
우리가 비로서 그분을 소유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하느님이 당신 자신을 우리에게 온전히 다 내어주시기 때문입니다.
이해욱프란치스코 17.01.19. 19:45
제일 중요한 것이
<아무 생각 없>는 것이죠.
<無念>이 끊임없는 화살기도의 결과니까요.
그래야 아버지께서 생각, <참생각>을 내려주시니까요.
그러나 그 상태가 계속 이어지면 저와 같은 경험을 하게 될 것입니다.
하기야,
제가 끊임없이 화살기도를 하기 시작한 것이 10년이 넘었으니까요.
화살기도는 부족한 우리를
변화된 삶, 성화된 모습의 신앙인으로 바꾸어 줍니다.
송파 끊임없는기도모임
Re:Re:<강동 끊기모> /
말하는 대로 된다 / 이름대로 된다?
moowee 18.10.25 21:32
< 도덕경 3장 >
爲無爲 則無不治
위무위 즉무불치
무위로 행하면, 다스리지 못할 것이 없다.
이곳거룩한 무형의 성전 마리아처럼에서 <能久 9년> 동안,
거룩한 내맡김 영성을 전해왔습니다,
라는 닉네임으로~
돌아오는 12월 9일이면
정말 <딱 9년>이 되는 날입니다.
그동안 moowee(無爲)라는 이름을
사용하게 이끌어주신 아버지께 진심감사 올려드리며,
이제 앞으로 더욱 제 자신이 무위(無爲)하지 않고
제 안에 계신 아버지께서
참으로 부족한 저를 통해 더욱 行하시도록,
저의 닉네임을 변경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아버지께서 이끌어주신 새 닉네임으로
☞ 위무위(爲無爲) ☜ 를 사용하겠습니다!
사제 서품 성구(1982, 2, 25)
' 주님께 아룁니다.
“당신은 저의 주님.
저의 행복 당신밖에 없습니다.”(시편 16, 2)
'글 모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봉헌자들을 위한 지침서 ③ 거룩한 내맡김의 봉헌식 (ceremony)의 의미 (0) | 2019.06.16 |
---|---|
봉헌자들을 위한 지침서 ② 내맡김의 봉헌서약이란? (1) | 2019.06.16 |
봉헌자들을 위한 지침서 ① 거내영 봉헌의의미-聖事의 인효성(人效性) (0) | 2019.06.16 |
우울에 대한 글 모음 (0) | 2019.05.28 |
애착과 집착에 대한 글 모음 (0) | 2019.05.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