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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헌자들을 위한 지침서 ③ 거룩한 내맡김의 봉헌식 (ceremony)의 의미

은가루리나 2019. 6. 16. 18:26



반드시 式(ceremony)을 올려야 합니다.   내맡김 영성


moowee 등급변경▼ 조회 1709 추천 1 2010.12.18. 10:19



우리 생활 속에는 많은 "식(式, ceremony)"이 존재합니다.


"식"은 격식, 의례, 의식, 형식 등을 말하는데 

우리가 세상에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얼마나 많은 "식"을 치르고 또 참여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백일, 돌, 생일, 입학식, 졸업식, 약혼식, 결혼식, 장례식, 

여러 기념식, 등등 - - -



구약의 제사도 하나의 "식"이고, 

유월절, 오순절, 초막절들도 "식"입니다.

우리 교회의 세례식을 비롯한 7성사와 준성사들도 "식"입니다.


신학생 때도 "수단"을 입는 "착복식"이 있는데 요즘도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이날은 아주 죽어나는 날입니다.


수단을 입은 사람을 때리면 죄가 되고

또 어렵게 입은 수단을 절대 벗지 말라는 뜻으로 

수단을 입기 전에 많은 선배들로부터 

대걸레 방망이로 엄청나게 엉덩이를 두들겨 맞습니다.



사랑하고 아끼는 후배는 더 세게 두들겨 주어야 한다고 하면서 맞는 매에

정말 곤욕을 치뤄야 하는데 

이 의식을 소위 "성타식(聖打式)"이라고 합니다.


신약성경에 기록은 없지만 

예수님이 제자를 뽑으신 다음에

제자들과 함께 어떤 의식을 치루셨을 것이 분명합니다.

제자들과 헤어질 때 최후의 만찬을 치루셨듯이 말입니다.



어떠한 의식은 그 일의 의미가 클수록 성대하게 치뤄집니다.


오직 믿음만으로, 성경만으로, 은총 만으로를 외치며

모든 형식을 배제하던 개신교에서도 

요즘은 외적인 형식을 하나하나 다시 들여오고 있는 듯 합니다.


과거에는 1년에 부활절이나 추수감사절에만 거행하던 성찬식도

요즘 대형교회의 주일예배를 보면 매 주일 빠뜨리지 않습니다.


그리고, 

교회력을 무시하거나 강조하지 않던 분위기에서

점점 교회력을 따라가려고 하는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또, 목사님들의 예배 복장도 점점 가톨릭을 닮아갑니다. 



어떤 의식이 너무 복잡하고 화려하고 더 나아가 짐이 되어서도 안 되겠지만,

어떤 의미 있는 일에 있어서 "의식"은 필요한 것입니다.



하느님을 자신의 주인으로 인정해 드리고 

자신의 소중한 모든 것을 하느님께 내맡겨 드리는 

"내맡김의 봉헌"에 있어서도 반드시 "식"이 필요합니다.


어떤 열심한 신앙인의 삶의 모습이 "내맡김의 삶"의 모습이라 하더라도

그 사람이 어떤 의식을 통한 "하느님과의 서약" 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한결같은 삶"을 살아가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닐 것이 

분명합니다


만일, 외적인 의식을 통한 "서약" 없이도 

혼자만의 굳은 결의로 

많은 이들이 늘 변함없이 한결같은 신앙생활을 해나갈 수 있었다면

오늘날처럼 그렇게 수많은 수도공동체가 생겨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내맡김의 삶(영성)을 살아가려는 우리 하덧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어떤 "규약"에 얽혀 있는 "공동체"가 아닙니다.


단지, "하느님을 더욱더 사랑"하기 위하여 

"내맡김의 영성"을 함께 공유하며 

저마다의 분야에서

오로지 "하느님의 뜻대로" 살아가려 노력하는 평범한 신앙인일 뿐입니다.


하느님을 더욱더 사랑하기 위해서 "무형의 성전(카페)"에서 서로 만나고,

하느님에 대한 서로의 체험을 나누며, 

말씀으로 서로를 격려하고 이끌어 주며,

영적성장을 위하여 1년에 한두 번 기도모임을 가질 뿐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내맡김의 삶(영성)"을 살아가려 개인 나름대로 열심히 노력을 한다 해도 

"내맡김의 봉헌식"을 올린 분과 그렇지 않은 분과의 차이는 

분명할 것입니다.





moowee 12.10.06. 20:21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자기의 "꼴(모양, 형식, 방식)" 이 있습니다.


하느님의 아들 예수님께서도 인간의 꼴을 갖추고 

이 세상에 오시어 당신의 방식대로 사셨고,

당신의 방식대로 죽으셨고 당신의 방식대로 부활하심으로 

인간을 구원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병자를 고쳐주실 때에도 당신 나름대로의 형식을 취하셨습니다.


소경을 고쳐주실 때에도 말씀 한마디로 그냥 고쳐주셔도 되었는데 

진흙에 침을 개어 눈에 붙여주시며(형식) 고쳐주셨습니다.



당신이 설립하신 교회를 통하여 

인간을 구원하는 방식(형식)으로 "7성사" 를 세워주셨는데,

그 형식은 정말 중요한 형식입니다.


가시적인 인간은 눈에 드러나는 모든 형식으로 통하여 자신의 뜻을 알립니다.


조상에 대한 감사의 표현도 형식을 통하여,

부모나 웃 어른에 대한 인사도 형식을 통하여,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세례도, 사제가 되는 서품도, 부부가 되는 혼인도

모두모두 "형식" 을 통하여 이루어 집니다.


형식을 통하지 않고서 이 세상에 이루어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을 것입니다.


조직 폭력배조차 "형식" 을 거쳐 조직원으로 받아들여지는데

하물며 

"하느님께 자신의 모든 것을 내맡겨 하느님을 소유하려는 내맡김의 봉헌서약" 에는

두 말할 필요가 어디 있겠습니다.




사랑하는 하덧사 여러분!


< 가시적인 인간은 눈에 드러나는 모든 형식으로 통하여 자신의 뜻을 알립니다.>

망설이지 마시고 어서어서 여러분의 뜻을 세상에 알리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굳은 뜻은 다름이 아니라 

악마마귀사탄에게 

< 나는 이제 하느님의 밥이니, 하느님의 밥을 건드리지 말라!> 는 경고입니다.



사랑하는 하덧사 여러분!


지금 여러분의 누구의 밥입니까?

하느님의 밥 아니면 악마사탄마귀의 밥?


절대로 둘 중의 하나이며 

< 중간은 없다 >고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잊지 맙시다!





moowee 13.11.23. 10:18



♡ 반쪽(하느님만의)사랑 ♥ 으로 올려졌던 式(ceremony)도,,,,

< 반드시 다시 올려야 합니다. > 갱신식을 해야 합니다.


계약이란,

일방적인 것이 아니라 양방(쌍방)간의 약속이기 때문입니다.


眞意 없는 계약은 거짓 계약이며,

거짓 계약은 계약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거룩한 내맡김의 봉헌서약은 사람과 맺는 계약이 아니라,

하느님(神)과의 계약임을 절대로 잊어서는 아니 되는 것입니다.


인간과 맺은 계약을 헌신짝 버리듯 하는 행위는 非人間的 行爲이며,

그에 대한 책임과 결과는 반드시 계약 위반자의 몫이 될 것입니다.



하물며 神과 人間과의 계약의 관계에 있어서는 과연 어떠하겠습니까?


1%가 모자라는 봉헌자는,

봉헌 갱신미사의 기회가 주어지면 

모자랐던 그 1%의 결심을 재봉헌하시기 바랍니다.



굳은 결심(100%)의 봉헌(내맡김)에는 무한한 힘이 작용합니다.



<분명히 마음을 먹는 순간, 그때부터 하늘도 움직인다 > 


-괴테의 詩(내맡김의 힘 중에서)-



그래서, <내맡김의 봉헌서약 > 이 매우, 아니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왜, 사제들이 수도자들이 미사를 통해 하느님께 서약을 하는지 되새겨 봅시다.]





moowee 17.02.10. 09:57 



하느님께 맡기지 않고서 

하느님 가까이에 나아가려는 것은 모래성 쌓기와 전~혀 다를 바 없습니다, 

정말입니다.


그리고 반드시 

봉헌식을 통해서 하느님께 <봉헌>해야 합니다, 자기 뜻을!


결혼식 없는 결혼이 비정상적이듯

봉헌식 없는 봉헌은 비정상입니다.


왜 사제서품식을 합니까?

왜 종신서원식을 합니까?


우리가 봉헌식을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우리가 너무나 부족한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부족함 없이 잘 나고 능력있는 사람은 봉헌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선 잘난 사람들에겐 당신의 뜻을 드러내지 않으십니다.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루카 10, 21)



<마르 7>

33 예수님께서는 그를 군중에게서 따로 데리고 나가셔서, 

당신 손가락을 그의 두 귀에 넣으셨다가 침을 발라 그의 혀에 손을 대셨다. 


34 그러고 나서 하늘을 우러러 한숨을 내쉬신 다음, 

그에게 “에파타!” 곧 “열려라!” 하고 말씀하셨다. 


35 그러자 곧바로 그의 귀가 열리고 묶인 혀가 풀려서 말을 제대로 하게 되었다.



귀먹고 말 더듬는 영혼들이,

영적인 귀가 열리고 영적인 입을 열게 해 주는 예식이 바로 <봉헌식>입니다.



예수님께서 귀먹고 말 더듬는 이를 고쳐 주실 때 

분명 <한 마디 말씀>으로 그를 고쳐 주실수 있으심에도 

굳이 그를 군중으로부터 따로 데리고 가셔서 (봉헌식 장소)


당신 손가락을 그의 두 귀에 넣으셨다가 침을 발라 

그의 혀에 손을 대시는 행위를 하신 것도,

분명 하나의 <치유예식>으로 사람들에게 보여주시기 위함이었을 것입니다.



聖事(성사)가 뭡니까?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은총을 눈에 드러내 보여주시는 상징입니다.


여러분이 세례 때 왜 이마에 물을 적시고 기름을 발랐습니까?

그러한 예식을 통하여 하느님의 자녀로 인정 받기 위함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이곳에 머무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 봉헌 없이 이곳에 머무는 것 >은 그리 큰 의미가 없습니다.



한 번 잘~~~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