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한위탁

58 pp.305-313 제 3편 제 5장 명성의 선익에 있어서의 위탁 제3절 선인으로부터의 박해

은가루리나 2019. 3. 1. 01:30


옴니아  등급변경▼  조회 114  추천 0  2013.01.2221:44



제3편 위탁의 대상



제1장 위탁의 일반적 대상


제2장 현세적 사물에 있어서의 위탁 일반


제3장 외부적 선과 악, 행과 불행에 있어서의 위탁

 제1절 순경과 역경

 제2절 공적 및 사적 재화

 제3절 부귀와 빈천 ①

 제4절 장소와 환경 


제4장 육체 및 정신의 각가지 자연적 선에 있어서의 위탁

 제1절 건강과 질병 

 제2절 질병의 지연과 그 결과 

 제3절 삶과 죽음 

 제4절 자연적 은혜의 분배에 관한 불평등에 대하여

 제5절 직무

 제6절 휴식과 평온


제5장 명성의 선익에 있어서의 위탁

 제1절 호평

 제2절 굴욕

 제3절 선인으로부터의 박해


제6장 본질적인 영적선익에 있어서의 위탁

 제1절 영광의 생명

 제2절 은총의 생명

 제3절 선덕의 실천

 제4절 죄를 피하는 일

 제5절 계명, 서원, 회칙 등의 준수


제7장 심령생활의 일반적 길의 각가지 상태에 있어서의 위탁

어떤 종류의 영적원조의 상실


제8장 7장의 계속 - 실패와 과실

 제1절 분발심에 의한 사업에 있어서의 실패

 제2절 자기 성화에 있어서의 실패

 제3절 남의 영혼의 성화에 있어서의 실패

 제4절 우리 자신의 죄과


제9장 8장의 계속 - 내적시련의 일반


제10장 9장의 계속 - 유혹


제11장 10장의 계속 - 위안과 건조


제12장 11장의 계속 - 암흑, 무감각, 기타

 제1절 정신의 암흑

 제2절 마음의 무감각, 혐오감, 기타

 제3절 의지의 무력

 제4절 영적빈곤


제13장 12장의 계속 - 평화, 불안, 소심

 제1절 평화

 제2절 각가지 공포

 제3절 거룩하고 정의이신 천주께 대한 경의

 제4절 양심상의 小心


제14장 13장의 계속

 제1절 일반적 길인가, 신비적 길인가

 제2절 신비적 관상의 갖가지 상태

 제3절 관상의 진보와 덕의 진보

 제4절 신비적 길에 있어 "천주께서 하시는 대로 맡긴다는 것"


제15장 기억해야 할 두가지 실례





p.305


제 3 편 위탁(委託)의 대상(對象) 


제 5 장 명성(名聲)의 선익(善益)에 있어서의 위탁(委託) 



제 3 절 선인(善人)으로부터의 박해




박해는, 악인, 선인 어느편에서도 생길 수 있다.


악인에게 모욕을 당하고 책망을 들으며, 무함을 받는 것은 

용기 있는 사람에게 있어서는 오히려 유쾌하다.


그러나 선인이나 벗이나 친척들에게 

책망을 받고, 비난을 당하며, 나쁘게 취급되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것이다.


꿀벌에게 찔린 상처는 뱀에게 물린 상처보다도 아픈 것처럼,

선인으로부터 받는 재난, 또는 그들에게서 받는 비난, 공격은,

다른 것보다도 훨씬 견디기 어려운 것이다」(「 입문 」2편 3장 ) 라고 

성 「프란치스꼬. 살레시오」는 말하고 있다.




「알깐따라」의 성「베드루」

성녀 대 「데레사」에 대해서도 가장 깊은 동정을 느끼고,

그에게 이 귀양살이의 땅에 있어서의 최대의 고뇌의 하나는,

그가 감수한 것, 즉 선인으로부터의 반대라고 말하였다. 

(동 성녀 「자서전 」30)


p.306


이와 같이 

선인으로부터의 박해가 우리의 마음에 가장 깊은 상처를 입히는 것은

이러한 사람들의 존경과 애정이 우리에게 있어,

매우 귀중한 것이기 때문일까.


또한 선인은 우리를 시정하는 것을 양심상의 의무로 간주하여,

그것을 더 한층 가차없이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 일까.


여하튼,

이러한 쓰라린 각가지 시련의 원인과 그 사정이 어떻든,

그런 것을 성화하는데 도움이 되는 여러가지 고찰을 다음에 든다.




성「알퐁소.리고리오」는 말한다.


「모든 성인은 이 박해 안에서 지냈다.


성『바실리오』는 교황 성『다마소』앞에 이단자로서 고발되고,

성『시릴로』는 40인의 주교회의에 있어, 이단자로 선고되어,

불명예스럽게도 그 직위가 박탈당하였고,

성 『아타나시오』는 마술사라는 혐의로,

금구 성『요왕』은 품행이 좋지 못하다는 죄목으로 고발되었다.


더구나 성『로무알도』를 보라.

그는 이미 백세를 넘고 있었는데,

하마트면 화형(火形)에 처해질 정도의 무서운 범죄의 혐의로,

고소되었다.


성『프란치스꼬. 살레시오』도 3년 동안,

세속의 한 여성과 죄악을 범하는 교제를 계속하고 있었다고 간주되었는데,

천주께서는 그를 이 무함으로부터 씻어주시기까지,

그는 근 3년 동안 이것을 감내하였다.


성녀『리드비나』에게 어느 날 천한 여자가 그의 방에 침입하여

극히 야비한 폭언을 퍼부었다.」(「 예수.그리스도의 참된 정배」13장 )




성「분도」가 수하 수도자에게 독살을 당할 번한 것,

또는「시또」의 최초의 성인들이

「모렘」과 당시의 다른 곳의 수도자에게서도

얼마나 혹심한 괴로움을 받았는지는 주지의 사실이다.


존자 「요안.바리에르」와 「랑세」대원장에게 있어서는

혁신적 수도회를 창립하려 했을 적에도 마찬가지 었다.


p.307


「아씨지」의 성「프란치스꼬」는,

자기 형제들의 반대 때문에 회장직을 사양하였다.


총대리인 「엘리아」형제는 많은 수도자의 면전에서,

성인은 수도회의 파멸이라고까지 호소함을 감히 두려워하지 않았다.

이 같은 「엘리아는 「빠두아」의 성안또니오」도 투옥시켰다.


「로욜라」의 성「이냐시오」는

「로마」교황청의 명에 의해서 감금되었다.


십자가의 성「요왕은「갈멜」회를 개혁한 후에,

개혁파의 사제들에 의해서 어두운 감옥에 유폐되었다.

성인은 거기서 미사를 봉헌할 수 없었고,

몇달이라는 오랜 동안에 

매우 가혹한 감식(減食)과 수치스러운 징벌과 가장 고통스러운 견책을 

견디지 않으면 안되었다.



같은 이유로,

그리고 천주께서 그를 이끄신 길 때문에

성녀 대「데레사」는 가장 혹심한 학대에 부딪치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 반향은 자서전 안에 나타나 있다.

성녀의 고해신부인「발타살. 알바레스」도 역시,

그 신비적 관상 때문에 일종의 박해를 감내하여야 했다.



그밖에 같은 보기는 거의 매거할 수 없을 정도지만

끝으로 성 「알퐁소」의 보기로 마치겠다.


성인은 

신학자로서는 엄격파의 사람들로부터,

「속죄회」의 창립자로서는 왕당파의 사람들로 부터,

그리고 위에 말한 것과 같이,

마지막에는 자기 아들인 두 수도자로부터 라는 것처럼,

오랜 세월 동안, 가차없이 박해를 계속적으로 받았다.

(베드로「 동 성인전」6편 8장 )



「바로니우스」는 

어떻게 교황「네오」9세가 

성「베드루.다미아노」에 대한 무고(誣告)를 신용했는지 말하고 나서,

이 박학한 추기경은 이렇게 덧붙이고 있다.


「내가 이 사실을 여기에 말하는 것은,

독설(毒舌)의 희생이 되는 사람들을 위로하기 위하고,

너무나 사람을 믿기 쉬운 이를 더욱 현명하게 하며,

지나치게 경솔히 무함에,

특히 오랜 세월을 유덕하게 살아온 호평이 있는 사람들에 대한 훼방에

귀를 귀울이지 않도록 가르치기 위해서다.」

(슈람 「신비학」173절, 뿔랑「묵상의 은총」242 )


p.308


이러한 각가지 박해는,

성질의 상이(相異)에 의해서 표면상 설명된다.


「그리스도와 『 벨리알』, 어찌 의합되겠느냐.」(코린토후 6.15)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벨리아르와 화합하실 수 있겠습니까? 

신자와 불신자가 어떻게 한몫을 나눌 수 있겠습니까?>


악인이 선덕과 화합(和合)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


왜냐 하면,

아무리 겸손하게 조심성 있게 행동한다고는 하지만,

선덕은 결국 악인을 책망하고 저지(沮止)하며,

개심에로 이끌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선인도 자기 정욕을 아직도 충분히 제어하지 못한 동안은

(아마 많은 사람이 그럴 것이다) ,

언젠가 정욕에 소경이 되어, 그것에 이끌리고 

평화와 애덕을 멸망시키는 일이 있다.



예컨대, 성「알퐁소」의 박해의 주모자였던

「바오로」의 「프란치스꼬」신부도, 결코 나쁜 수도자는 아니고,

도리어 찬양해야 할 탁월한 과거를 가진 사람이었다.


아마, 사람들이 그가 훗날에,

보다 높은 목적에 알맞는 열심으로,

편견적인 독이 있는 중상적(中傷的)인 통고(通告)를 하여,

자기 수도회의 저명하고 거룩한  창립자를 실각(失脚)시킬 것이라고

그에게 예고했었다면, 분명히 놀랐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실제 그대로 하였는데,

그것은 자신의 야심과 충분히 싸우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마 그때까지 그것을 느끼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결국, 가장 위대한 성인들도,

혹 오해에서든지, 혹 의무에 관한 견해의 차이에서든지,

서로 고통을 당한다는 것은 있을 수 있다.

인간 사이에는 견해와 기분의 차이는 언제까지나 남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시련의 신비의 근본을 찾기에는

주께까지 거슬러 올라야 하고 

섭리의 정하심에 관해서 깊이 통찰해야 한다.




예수께서는 우리에게 교훈하시어, 그 내림하심은 

평화를 가져오기 위함이 아니고, 칼을 가져오기 위하심이라는 것,


또한 인간의 원수는 곧 그 집 사람이라는 것, 

세상은 당신을 박해하고「베엘제부」라고까지 불렀다는 것,

제자가 스승보다 낫지 못하다는 것,

세상은 우리를 미워하고,

거리에서 거리에로 박해를 계속하며 공회로 넘긴다는 것,


우리의 생명을 빼앗는 이가 

천주께 제사를 드리는 줄로 생각할 때가 오리라는 것을 알리셨다.

(마태오10.16이하, 요왕 16.2)


<"박해를 각오하여라." (마태10.16이하)

"사람들이 너희를 회당에서 내쫓을 것이다. 

게다가 너희를 죽이는 자마다 하느님께 봉사한다고 생각할 때가 온다." (요왕 16.2)>



p.309


또한 성「바오로」는 스승의 말씀을 뒷받침하여,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 신심 있는 생활을 하고자 하는 이는

다 박해를 감수인내할 것이라」(티모테오후 3.12 )고 가르치고 있다.



그러나 주께서는 스스로

「정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 자는 진복자로다, 

천국의 저들의 것임이요.

사람이 나때문에 너희에게 악담하고 너희를 핍박하고,

모든 악한 것으로 너희를 거슬러 비방하면 너희가 진복자 되리니,

즐거워하며 춤추라.


너희 상급이 하늘에서 크리라.

대개 너희보다 먼저 있던 선지자들을 이와 같이 핍박하였나니라.」

(마태오5.10-12)고 말씀하셨다.


<행복하여라,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사람들이 나 때문에 너희를 모욕하고 박해하며, 

너희를 거슬러 거짓으로 온갖 사악한 말을 하면, 너희는 행복하다!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 

사실 너희에 앞서 예언자들도 그렇게 박해를 받았다.”>


그러나 

섭리가 정화(淨化)에 유효한 이런 시련의 방법을 취하시는 목적은 

어디에 있겠는가.


그것은 섭리가,

그 모든 성업(聖業)에 십자가의 인(印)을 새기고,

우리를 세상의 존경과 애착에서 떼어 놓으며,

인내, 완전한 위탁, 오직 천주께 대한 사랑을 양성하여

그 가장 사랑하는 벗이신 우리의 성덕을 완성하시려는 뜻 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악인에게 모욕을 받으시고 수치를 당하셨으며,

죄의 제물이 되시고,

더우기 동시에 모욕의 한 복판에 있어 양선하시고 겸손하셨던 예수,  

모든 불의(不義)와 불신(不信)에도 불구하고,

성혈을 마지막 한 방울까지 흘리실 정도로

사랑과 헌신(獻身)을 드러내신 예수님이야말로

우리에게 길을 가르키시는 스승이시며,

성신께서 이에 우리를 적합시키려는 모범이시다.


천주의 섭리는,

모욕 천대를 받으시고, 학대를 당하신 예수의 모습에 

우리를 닮게 하시려고,

악인도 선인도 연장으로 사용하신다.


그러나,

성신께서는 동시에 마음이 양선하시고 겸손하신 예수,

온화함과 영웅적인 사랑에 충만하신 예수를 닮게 하시기 위하여

우리에게 은총을 주시고, 우리 안에 활동하신다.


박해를 받으신 예수의 발자취를 과감하게 밟는다는 것은,

바로 완덕에의 길의 첫 걸음이다.


불평하고 탄식하며 싫어하면서도 억지로 따른다면,

이것이야말로 불안과 평범에의 길을 가련하게도 기어가는 일이다.




더우기 성「알퐁소」는 말하고 있다.


「모든 박해를 잘 감수 인내하는 보답으로서

천주 자신께서 우리 일을 배려하신다는 것을 확신하자.


바라실 때에,

천주께서 우리를 끌어 올리시는 것은 온전히 자유시다.


그러나,

비록 이 세상에 있어 불명예라는 무거운 짐 밑에서 살아가지 않으면 

안된다 하드라도,

내세의 생명에 있어,

우리는 인내의 보수로서 그만큼 탁월한 영예에 충만될 것이다.」

(「 예수.그리스도의 참된 정배」13. 2의 9)



p.310


그러므로,

우리는 사람들과 그 불의(不義)로 보이는 모든 점을 잊도록 힘쓰자.

쓰라린 감정과 원한을 마음에서 멀리 떠나 보내자.


영구히 박해를 받으시는 분,

우리의 모범이시고, 지극히 사랑하올 분이신 예수 위에 

끊임없이 시선을 향하게 하여,

주와 같이,

우리의 아버지도 되시는 그 성부의 모든 의지를 흠숭하자.


그리고 천주께서 우리에게 보내시는 시련과,

그것에서 이미 생겨난 취소할 수 없는 결과를 사랑으로써 포옹하고 

이것에 의해서 될 수 있는 한 영적 이익을 끌어내기 위하여

양선하신 예수의 심정을 온전히 자기 것으로 하여,

무슨 일에도 

주께서 우리의 처지에 있어 하시리라는 것과 마찬가지로 

행동하도록 힘쓰자.


그러나 미래의 일에 관해서는 천주의 뜻일 경우,

또한 천주의 영광, 사람들의 영혼의 선익,

또는 그 밖의 올바른 이유가 그것을 요구하고,

혹 허락하는 경우에는, 위험을 미연에 방지하고,

그 결과를 피하는데는 

자신의 힘에 의한 모든 일을 하여도 하등 지장이 없는 것이다.


p.311


복자「헨리꼬.수소」는 오랜 동안 이 고뇌의 길을 걸었다.

그가 하늘로부터 받은 가르침을 여기 들어둔다. 

하나의 내적인 소리가 그에게 말했다.

「네 방의 창문을 열어, 밖을 바라보고 깨달아라」고.


그는 창문을 열고 바라보았다. 

그러자 한 마리의 개가 깔개를 물고는

복도의 복판에서 뛰어다니는 것이 눈에 띄었다.

개는 그것과 장난치면서, 

내던지기도 하고, 짓밟기도 하며 물어뜯어 구멍을 냈다. 


그 때 내적 소리는 복자에게 말했다.

「너도 저 깔개와 같이, 형제들의 입으로써 던져지고, 찢길 것이다.」


그는  곰곰히 생각하였다.

「다른 방법이 없으므로 굳게 인종(忍從)하자. 

저 깔개가 말없이 학대를 받는대로 맡기고 있는 것을 보고,

너도 그와 같이 하여라.」


그는 내려가서 깔개를 거두어 오랜 동안

이것을 귀중한 보물로서 소중히 간직하였다.


인내가 찢어질 것 같은 유혹을 느끼면,

그는 그것을 꺼내서 그 안에 자신의 모습을 보고,

굳게 침묵할 수 있었다.


자기를 압박하는 사람들을 경멸하여 얼굴을 돌릴 적에는

그는 마음 안에서 가책을 받았다.


그리고 내적 소리는 마음 속에서 이렇게 속삭였다.

「그대의 주인 나는, 침을 뱉는 이에게 얼굴을 돌리지 않았다.」라고.


그 때,

그는 깊이 뉘우쳐 새로이 자신으로 돌아가는 것이 었다. 

내적 소리는 아직도 말을 계속하였다.


「사람이 말과 행위로써 그대를 학대할 때,

천주께서는 그대가 그것을 굳게 인내하여 견디기를 바라신다. 


천주께서는 또한 그대가 온전히 자신에게 죽고,


날마다 식사를 하기에 앞서,

반대자의 곁으로 가서,

양선하고 겸손한 말과 행위로써 될 수 있는 한

그 마음의 분노를 가라앉히시기를 바라신다.


그대는 결코 그들이 문자 그대로의『유다스』라고 믿어서는 안된다.

도리어 

그대의 영혼의 이익을 위하여 시험하시는 협력자라고 생각하여야 한다.

(복자 헨리꼬.수소「 모범」22,31,40)


p.312


성「알퐁소」

불의(不義)한 고소에 의해서 교황의 징벌을 받고,

자기가 창립한 수도회에서 결정적으로 배척됐을 때,

조금도 그것을 탄식하지 않고,

항변(抗辯)하지도 않았으며,

오직 다음과 같은 영웅적인 복종의 말을 했을 뿐이다.


「나는 6개월 동안 이렇게 기도하였읍니다. 

주여, 당신이 바라시는 것은 나도 또한 이것을 바라나이다.」라고.


그리고 그는 마음에 찢어질 정도의 비통함을 간직하면서도,

인종(忍從)하고, 그것을 천주의 뜻으로 간주하였으며,

죽을 때까지 추방자(追妨者)로서 살기를 수락하였다.


자기 박해자에게 원한을 품기는 고사하고, 다음과 같이 써 보냈다.


「그대가 교황 성하의 총애를 받으신다는 소식 기뻐합니다. 

주께 감사할 수 있도록 경사(慶事)는 그때마다 알려 주시기 바랍니다.


그대 위에 천주의 사랑이 더욱 풍부하시기를,

그대의 수도원이 그 수가 날로 증가하여,

그대와 그대의 사명 위에 축복 있으시기를 기도합니다」라고.



이 시련 가운데 있어서도 다른 모든 역경에서와 마찬가지로,

그는 우선 그 수도회로 하여금 기도를 바치게 하였으며,

천주의 도우심을 얻기 위하여 각자가 그 열심을 새롭게 하고,

분발할 것을 권장해 마지 않았다.


그리고 한 걸음마다 현덕(賢德)의 권유에 따라 나아가면서

미리 천주의 임의의지에 복종하려는 각오로써 내디딘 것이었다.

(베르트 「 동 성인전」6편 11장 )




가장 혹심한 박해 중에 있어,

십자가의 성「요왕」은, 모든 치욕을 환영하고 감수하였다.


그것은 

자신이 더욱 가혹한 취급에 알맞는 자라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에게는 아직 모욕이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되었다. 

날마다 피를 흘리기까지의 편태의 시각이 다가오는 것을 매우 열망하였다.

그것은 그러한 수치와 고통을 천주를 위하여 인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은 그처럼 결점이 많은 자, 

그처럼 죄가 많은 사람이라고 믿고 있었기 때문에

이러한 징계에도 학대에도 아무런 불만을 품지 않고,

그것을 불의(不義)와 학대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 무렵 그의 내적 고통은 보다 격심했음에도 불구하고,

천주와의 친밀한 교제 안에,

또한 훗날 해명한 저 감탄스러운 송가(頌歌)를 지으면서

자신을 위로하고 있었다. (「 전기」26, 27장 )  p.3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