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한위탁

60 pp.318-322 제 3편 제 6장 본질적인 영적선익에 있어서의 위탁 제2절 은총의 생명

은가루리나 2019. 3. 15. 10:36


옴니아 등급변경▼ 조회 93 추천 0 2013.02.05. 21:57



제3편 위탁의 대상



제1장 위탁의 일반적 대상


제2장 현세적 사물에 있어서의 위탁 일반


제3장 외부적 선과 악, 행과 불행에 있어서의 위탁

 제1절 순경과 역경

 제2절 공적 및 사적 재화

 제3절 부귀와 빈천 ①

 제4절 장소와 환경 


제4장 육체 및 정신의 각가지 자연적 선에 있어서의 위탁

 제1절 건강과 질병 

 제2절 질병의 지연과 그 결과 

 제3절 삶과 죽음 

 제4절 자연적 은혜의 분배에 관한 불평등에 대하여

 제5절 직무

 제6절 휴식과 평온


제5장 명성의 선익에 있어서의 위탁

 제1절 호평

 제2절 굴욕

 제3절 선인으로부터의 박해


제6장 본질적인 영적선익에 있어서의 위탁

 제1절 영광의 생명

 제2절 은총의 생명

 제3절 선덕의 실천

 제4절 죄를 피하는 일

 제5절 계명, 서원, 회칙 등의 준수


제7장 심령생활의 일반적 길의 각가지 상태에 있어서의 위탁

어떤 종류의 영적원조의 상실


제8장 7장의 계속 - 실패와 과실

 제1절 분발심에 의한 사업에 있어서의 실패

 제2절 자기 성화에 있어서의 실패

 제3절 남의 영혼의 성화에 있어서의 실패

 제4절 우리 자신의 죄과


제9장 8장의 계속 - 내적시련의 일반


제10장 9장의 계속 - 유혹


제11장 10장의 계속 - 위안과 건조


제12장 11장의 계속 - 암흑, 무감각, 기타

 제1절 정신의 암흑

 제2절 마음의 무감각, 혐오감, 기타

 제3절 의지의 무력

 제4절 영적빈곤


제13장 12장의 계속 - 평화, 불안, 소심

 제1절 평화

 제2절 각가지 공포

 제3절 거룩하고 정의이신 천주께 대한 경의

 제4절 양심상의 小心


제14장 13장의 계속

 제1절 일반적 길인가, 신비적 길인가

 제2절 신비적 관상의 갖가지 상태

 제3절 관상의 진보와 덕의 진보

 제4절 신비적 길에 있어 "천주께서 하시는 대로 맡긴다는 것"


제15장 기억해야 할 두가지 실례





p.318


제 3 편 위탁(委託)의 대상(對象) 


제 6 장 본질적(本質的)인 영적선익(靈的善益)에 있어서의 위탁(委託)



제 2 절 은총의 생명



은총의 생명은,

그것에서 영광의 생명이 피어 나오는 씨앗이다.


하나는 시련 안에서의 싸움의 생활이며,

다른 또 하나는 지복(至福) 안에 있어서의 승리의 생활이다.


그러나, 그 근본에 있어,

그것은 지상(地上)에서 시작되어, 천국에서 완성되는 바 같은 

유일한 초자연적, 신적 생명(神的生命) 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그리고 은총의 생명은 영광의 생명에 불가결한 조건이며

그 정도를 결정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양자를 마찬가지로 바라야 한다.



천주께서는 무엇보다도 첫째로,

우리가 양자를 인생(人生)의 최고의 목적으로 추구(追求)할 것을 바라신다.


천주께서는 우리를 그것에 도달시키는 것만을 배려하시고,

악마는 그것을 잃게 하도록 노력한다.



자기 인생의 목적의 의의를 충분히 이해한 사람들은, 

이 세상의 노고와 유위변전(有爲變轉)과의 복판에 있어,

그렇게도 귀중한, 그렇게도 다투어지는 은총의 생명을 유지하고,

또한 그것을 완전히 발전시키려는 것 이외에는 목적을 가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 생명의 근본에 관해서는 거룩한 위탁을 행할 여지가 없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생명을 얻고, 또한 더 풍성히 얻기를」(요왕10.10) 위함은,

명백히 표시된 천주의 의지이기 때문이다.


p.319


그러나,

위탁은 은총의 정도에 따라서

선덕 및 영원한 영광의 정도에 관해서 행하여질 여지가 있다.


실제「뜨리덴띠노」공의회에 의하면,


각자의 준비와 협력과 그리고 천주 성신께서 원하시는 대로

나누시는 각자의 분량대로 의화를 받는다.」( 제 6회의록 7장) 


따라서,

은총과 선덕과 영광과는

원하시는 대로 나누어 주시는 천주와, 

거기에 자신을 준비하고 응하는 사람과의 양자에게 

동시에 의한 것이다.




이런 모든 것이 각자의 관용함에 의한 것인만큼,

우리는 기도하고, 보다 더욱 기도하며, 보다 훌륭히 기도하고 

용기와 견인(堅忍)으로써 천주의 활동에 응하며,

섭리에 의해서 예정된 덕과 영광의 정도 이하에 머물지 않도록,

어떤 노력도 아껴서는 안된다.


우리가 현재보다 더 한층 성인이 아닌 것은 무엇 때문인가.


우리가 영적 생명(靈的生命)의 풍성한 열매를 맺는 일 없이

겨우 그 생명을 잇고 있는 것은 누구의 잘못인가.


은총이 관대한 영혼 안에 풍부히 흘러 들어가는 수도원에 있어,

우리는 그것을 흡족하게 받는다.



그래서,

우리가 만일 기도에 의해서 보다 잘 그것을 받을 수 있는 길을 알고,

불충실함으로써 그것에 거스르는 일이 없다면,

더욱 풍부한 은혜를 받고, 보다 풍성한 열매를 맺으리라.


은총이 우리에게 부족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은총에 응하는 것만 부족한 것이다.


우리가 태만한 구실로,

천주를 책망하는 일은 결코 있어서는 안되겠다.




성「 프란치스꼬. 살레시오」의 다음과 같은 반성은,

우리에게도 얼마나 적절한 것인가.


우리 영혼이 가장 사랑하는 예수께서 우리 마음을 방문하실 때,

거기에서 발견하시는 것은

욕망과 애착과 하찮은 고집으로 충만돼 있는 것이다.


그것은 주께서 찾으시는 것이 아니다.


그이는 마음의 주인, 지배자가 되기 위하여,

그것이 비어 있기 바라신다.


과연, 우리는 대죄나 모든 좋지 못한 애정을 마음에서 쫓아냈다.


그러나 마음의 구석구석에는 주의 손을 결박하여,

주께서 우리에게 주시려는 각가지 은총의 방해가 되는

허다한 것이 가득차 있다. 


그러므로 우선 우리는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다하고

다음에 천주의 섭리에 자신을 맡겨 드리자.(「 대화편」18장 )


p.320


천주는 어디까지나 그 은혜의 주시다.


천주께서는 그 정하신 목적에 도달하기 위하여

필요한 은총을 누구에게도 거절하시는 적은 없으시다.


그러나 어떤 이에게는 보다 많이 어떤 이에게는 보다 적게 주신다. 


그리고 가장 흔히 바라실 때,

또한 바라시는 대로 아낌 없이 넘칠 정도로 풍부하게 그 손을 펴신다.



예컨대,

주께서는 참된 효애의 마음에서 

그 어머니에게 당신의 양선하심에서의 축복을 미리 마련하시어,

모든 죄의 물듦에서 면케 하시고,」


당신의 유일한 비둘기, 비할 데 없이 완전한 분」

되게 하실 만큼 거룩하게 하셨다.



천주의 섭리는, 

세자 성「요안」을 확실히,

또한 아마도 

예언자「예레미아」와 성「요셉」을 모친의 태중에서 이미 포착하여,

그 때부터 이후 영원히 당신 사랑 안에 확고하게 머물게 하셨다.

성교회의 기둥으로 간택된 사도들은 성신강림 날에 견고케 되었다.


허다한 성인 가운데 아마 똑 같은 이는 두 사람도 없으리라. 

왜냐 하면 성교회는 주교인 성 증거자의 축일의 전례 안에서,

저와 같이 지극히 높으신 이의 법을 지킨 자를 얻어보지 못하였도다」

라고 외우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은총의 차이는 신자 안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그래서 구령의 방법이 이교도(異敎徒)사이에 있어서보다도

신자 안에 보다 크고, 또한 유력하다는 것,

또한  그리스도신자의 나라에 있어서도

어떤 국민과 어떤 고장에는 더욱 유력한 영혼의 목자가 있고,

그리고 환경이 보다 유리하다는 것을 누가 모르겠는가.」


은총의 비는 세속보다도 수도원을,

그리고 갑보다도 을의 수도원을 더 풍성케 한다.

(「신애론」2편 6,7장)


p.321


그러나 최고의 예지신 분이,

어째서 각별히 어떤 이에게는 다른 이보다도 어느 은총을 주시고, 

또는 이 곳에는 저 곳보다도 풍부히 은총을 내리시는가를

샅샅이 알려고 한다는 것은 조심하여야 한다.


아니『테오띰』이여,

결코 그러한 호기심에 사로잡혀서는 안된다. 


왜냐 하면,

구령에 필요한 것을, 

누구나가 모두 충분히 그리고 풍부히 가지고 있으므로,

천주께서 갑보다도 을에게 보다 큰 은혜를 주신다 해도,

누가 이에 관해서 불평할 이유가 있겠는가.


그러므로, 

왜 성『바오로』는 성『베드루』의, 

또한 성『베드루』는 성『바오로』가 입은 은총을 받지 않았을까.


어째서 성『안또니오』는 성『아타나시오』가 아니고, 

성『아타나시오』는 성『예레니모』가 아니었느냐고 알려 하는 것은 

습강스러운 생각이다.


성교회는 가지가지 무수한 다른 꽃으로 꾸며진 꽃밭이다.

거기에는 커다란 것, 작은 것, 빛깔이나 향기가 다른 것,

요컨대, 각기의 완전성을 지닌 것이 있어야 한다.


각 종류의 꽃은 각자의 가치, 아름다움, 광택을 갖추고 있다. 

그리고 그 모두가 그 틀리는 곳을 조화하여,

훌륭하게 어울리는 완전한 아름다움을 조성하고 있다.



또한 우리는 천주의 의지 그 자체 이외에,

그 의지의 다른 보다 좋은 이유를 찾아내려고 결코 시도해서는 안된다.


실로, 천주의 의지는 그 자체가 절대로 옳은 것,

모든 원리 중에서 근본적인 원리이며,

모든 선의 최고기준(最高基準), 모든 공정성(公正性)의 법칙이기 때문이다.」

(「 신애론」2편 7장 )


p.322


따라서 거룩한 위탁을 훌륭히 실행하는 영혼은

지상에 있어 도달해야 할 성덕의 정도,

거기에 이 세상에 있어 수반될 수 있는 은총의 이상한 선물 및

천국에 있어 씌어질 영관의 정도에 대한 결정을 

천주께 맡겨 드린다.



비록 주께서 그 벗의 어떤 이를,

짧은 시간 동안에 가장 높은 완덕에 끌어올리시드라도,

또한 이에 

특수한 은총, 감탄할 만한 광명(光明), 커다란 신심(信心)의 생각 등을 

베풀어 주시드라도,

그런 영혼은 결코 그것에 질투의 눈초리로 바라보지는 않는다.


아니, 오히려, 

천주와 이러한 영혼을 위하여, 진심으로 그것을 기뻐한다.


올바르지 않는 비애, 사려가 없는 소망에 번민하기는 고사하고,

그 영혼은 항상 거룩한 위탁 안에 의젓하게 서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영혼이 절실히 바라는 영광의 분량은,

바로 천주께서 자신을 위하여 예정하신 영광의 분량인 것이다.


그러나 

용기와 견인(堅忍)으로써 자기 자신이 해야할 모든 것을 완수하고

그 모든 소망의 목표에 다른 것이 아닌

이 성덕의 정도 이하에 머물러 있지 않도록 노력한다.

(드. 고사드「 위탁」부록 3,  샹.쥬르「 예수. 그리스도의 인시과 사랑」3편 8, 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