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강론

지혜 교만 진리 신앙의해, 연중 제22주일(2013, 09, 01) ▣ 주일강론

은가루리나 2020. 1. 5. 22:45




신앙의해, 연중 제22주일(2013, 09, 01) ▣ 주일강론

moowee 등급변경▼ 조회 248 추천 2 2013.08.30. 21:44


<신앙의해, 연중 제22주일> 2013, 09, 01


우리들의 입에서 적어도 몇 번쯤은 오르내렸던 말 중에,
"에~~~ 말도 안 돼!"라는 말이 있다.

그 "말도 안 되는 말" 중에는 정말로 "말이 안 되는 말"도 있고,
정말로 "말이 되는 말"도 있다.

그러나, 정말 중요한 것은
<진리>는 말이 안 되어도, 또 말이 되어도 전~혀 상관 없는 것이다.

진리란 <지식>을 넘어서는 것이기 때문이다.
진리란 <불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 지식의 한도 내에서는 "말도 안 되는 말"이 "말이 되는 말"이 되기도 하며,
때로는 "말이 되는 말" 이 "말이 안 되는 말"이 되기도 한다.

인간의 지식은 아니, <인간은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과거에 "지구가 둥글다"는 말은 "말도 안 되는 말"이었다.
그러나 언제부턴간 "말이 되는 말"이 되어버렸다.
그 말이 <진리>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간의 지식이 <얼마나 진리에 근접한 지식인가>에 따라
그 말의 진위가 가려질 수 있는 것이다.

진리에는 <인간의 욕심>이 뒤섞일 수 없다.
욕심이 섞이면 진리가 아니다, 그야말로 <거짓>이다!

말도 안 되는 말 중의 하나가 "성경 말씀" 이기도 하다.
성경 말씀은 예로부터 많은 사람들에게 "말도 안 되는 말"로 받아들여졌다, 지금도!
하느님을 믿고 뜨겁게 싸랑한다는 사람들에게서조차 말이다!


특히, 예수님의 말씀 중에는 "말도 안 되는 말씀"이 많다.
세상의 지식과 너무 반대되는 말씀들이기 때문이다.

"자신을 높이려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이 높아질 수 있는 것이지,
왜, 일부러 자신을 낮추려 하는 사람이 어떻게 높아질 수 있는가?"

"비싼 잔치상을 차려놓으면 돈 많은 사람들과 높은 고관대작들을 불러야지
왜 씰데 없이 가난뱅이, 빙신, 쪼다들을 불러대?"


예수님 당시에 하느님에 대해 연구하고 하느님 말씀을 가르치는
율법교사들과 바리사이들에게는 예수님의 말씀이 "말도 안 되는 말"뿐이었다.

그들은 많은 "지식"은 갖고 있었지만 지혜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느님의 지혜>가!


그들은 욕심으로 그득~차 있던 사람들이었다, 세상적인 욕심으로!
욕심이 그득차 있어 지혜가 비집고 들어설 틈조차 없었기 때문이다.


인간의 욕심은 지혜를 가리고 지혜를 막는다,

오늘 제1독서의 말씀대로
"악의 잡초"인 욕심 때문에, 인간의 욕심의 근본 뿌리인 <교만>때문에 말이다!


교만은 하느님으로부터 오는 지혜의 빛을 막아주는 썬글라스이다.
교만한 사람들은 반드시 그 썬글라스를 착용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바오로처럼 눈이 멀게 된다.

눈이 멀게 되면 귀도 멀게 된다.
오늘 제1독서의 말씀처럼 "주의 깊은 귀"도 닫히게 된다.
눈만이 아니라 귀까지 닫힌 교만을 넘어선 "거만한 자에게는 약이 없다" 했다.

아무리 주일미사에 빠지지 않고 성당에서 욜~씸히 활똥해도
하느님께서는 그들의 행위로 영광을 받으실 수 없다,

아니, 아니 받으신다, 거절하신다,
이것이 저의 오늘 제1독서의 "성경주해"이다.


교만한 사람들의 눈에는 "하느님의 도성이니, 천상 예루살렘이니,
무수한 천사들의 축제집회니, 하늘에 등록된 맏아들들의 모임이니" 하는 말씀은,

아무리 <진리의 증언>을 그들의 눈에 들이 대고, <주님께 모든 것을 맡긴다>를
귀에 갖다 대도, 눈에 들어올 수 없고, 귀로 들을 수도 없다.

이것이 오늘 제2독서에 대한 저의 성경주해이다.


모든 것을 낮추어 이 세상에 오신
<겸손의 원조>이신 예수님을 정말 진실로~ 사랑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말이나 생각으로만 사랑한다고 착각했기 때문이다.


<겉으로 위장한 겸손>은, 아니 깊이 숨어 있는 교만까지 그리 오래가지 못한다.

지혜의 아침이 열려 대낮이 가까울 수록
겸손의 겉옷을 걸친 교만의 진면목이 드러난다.


대낮의 뜨거운 지혜의 빛에 우리는 살아남아야 한다, <겸손만이 살길이다!>
대낮의 뜨거운 열기에도 우리의 부족함과 죄악마저 걱정할 것 없다.
그 열기가 그 모든 것을 태워 없애주니 말이다.

이것이 오늘 제2독서와 복음 말씀에 대한 저의 성경주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