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화 데레사

하느님섭리에내맡김《서론》⑸ p.24-27

은가루리나 2020. 3. 6. 21:54



하느님섭리에내맡김《서론》★하느님섭리에내맡김(韓)



 p.24-27


 레사는 1873년에 세상에 태어났다. 

그러니까 코사드의 책은 1861년에 이미 발행되었고 

많은 편집들이 뒤따랐다. 


내가 지금 쓰는 것은 순전히 추측이지만 사실일 수도 있다.

성녀 데레사의 가족은 신심이 깊었고 많은 영적 독서를 하였다.

혹시 코사드의 책은 그 책들 중의 하나는 아니었을까?


그러나 성녀 데레사의 아버지 마르탱(Martin)씨가 리지외의 가정집, 

뷔소네에 있는 2층 서재에서 그것을 사려 깊게 살펴보지 않았다손 치더라도 

그 가르침은 거룩하게 되기를 갈망하던 

가톨릭 신자들의 온몸을 적셔 주고 말끔하게 해 주었음이 확실하다.


코사드에 관한 탁월한 현대적 권위자로서

예수회의 올프-갈리아(Olphe-Galliard)신부는 코사드가 

지난 세기 말의 신학자들 -그들 역시 저술가였다- 에게 끼친 지대한 공로를 

아주 또렷하게 밝혀 준 바 있다.


그래서 성녀는 강화(講話)에서 또 고해 신부들을 통해  

자아포기에 대해 들었으리란 편이 훨씬 더 가합하다고 말해야 옳다.



성녀가 14살이 되었을 때, 

자신의 영적 지도자가 된 예수회의 알미르 피숑(Almire Pichon)과 

10년 동안 긴밀한 연락을 취했음도 기억해야 한다.


그 신부는 이전에 여러해 동안 마르탱 가족의 친구였고 고해 신부였다. 

그 후 그는 캐나다로 떠나갔지만, 

성녀 데레는 편지로 계속 그와 연락을 취했다.


성녀는 돌아가시기 한 달 전 피숑 신부에게  보낸 마지막 편지에서 

"저의 온 영혼이 이 속에 있습니다" 라고 말하였다.


그러나 피숑 신부는 성녀의 모든 편지를 없애버렸으니 

좀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나는 이 점을 겸허하게 표현한다. 

그러나 나는 이 예수회 신부가 코사드에 관해 무지하지 않았고,  

이 18세기 사제에 대한 그의 지식이 성녀 데레사를 통해 길러졌다는 것도 

상상해 본다.


이제 우리는 추측과 상상을 끝내고 분명한 것을 살펴 보도록 하자.  (p.25"




녀 데레사가 늘 주장하기를, 

문제가 되는 것은 우리 행위의 탁월성이나 위대함이 아니라고 하였다.


우리가 행하는 보잘것없고 가장 하찮은 일이 

하느님의 뜻에 순종하고 그분의 사랑을 위해 행해지는 경우라면  

그것이 최고로 중요하다.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은 우리의 마음에 작용하는사랑에 따라 

그분이 판단하신다.


우리 모두가 그러한 행위들을 실천할 수 있음을 성녀는 선언하고 있는데, 

냐하면 우리 모두가 그러한 사랑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찍이 200여 년 전에 코사드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최고의 성성에 이르기 위해서는  

보잘것없는 것으로 여겨지는 모든 것들이 

자신들을 거룩하게 할 수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 여러분은 삶을 눈여겨 보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은 

삶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보잘것없는 행위들로 채워져 있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도 하느님은 그런 것들에 대해 만족해하고 계십니다.


왜냐하면 행위가 되어져야할 때 한다는 것은 

우리가 완덕을 추구하는데 연출해야 할 우리의 몫이기 때문입니다."



성녀 데레사에게 되돌아가 보자. 

성녀는 한 조수녀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자매님의 생활은 겸손하고 숨겨진 생활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눈앞에서는 아무것도 미소하지 않음을 기억하세요. 

자매님은 사랑으로 처리하고 있는 모든 것을 행하도록 하십시오."


병상에서, 성녀는 사람들에게서  이 세상을 하직한 다음  

성녀에게 맡겨진 모든 영혼들에게 무엇을 가르치겠느냐는 질문을 받고 

즉시 이르길 

"신뢰와 완전한 위탁의 길인, 

영적 어린이의 길에 그들이 나서도록 권고할 것입니다" 라고 하였다.


또한 성녀의 자서전 안에 언니 마리아에게 보내는 글, 마지막 장에서 

"예수님께서 자기를 믿으셨던 비밀들"을 말하겠다고 하였는데  

그 말을 이러하다. 


"예수님은 결코 드러나시지도 않고 

당신의 목소리를 나로 하여금 듣게 하지도 않으십니다. 

그분은 은밀히 저를 가르치시지만 

당신 사랑의 신적 용광로에로 이끄는 유일한 통로를 

저에게 보여 주셨습니다. 


것은 

아버지의 품 안에 두려움 없이 잠든 아기처럼 

완전한 위탁과도 같습니다.

... 예수님은 위대한 행동들을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그분이 원하시는 모든 것은 자기를 온전히 내맡김이며 

사드림니다.

... 오! 예수님, 당신의 측량할 수 없는 자애에 대해 

모든 '작은' 영혼들에게 말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저보다 더 연약한 영혼을 만나신다고 하고 

그 영혼이 당신의 무한한 인자를 굳게 믿어 

그 자신을 온통 내맡긴다고 한다면, 

당신은 그에게 더 큰 은혜를 즐겨 넘쳐흐르도록 내려 주실 것 같이 

생각됩니다."  (p.26).




우리는 코사드가

"현 순간의 성사(the sacrament of the present moment)" 라고 일컫는 것에 대해 

주장하는 바를 고찰해 보고 있노라면, 

성녀 데레사가 남긴 다음의 말씀을 생각하게 된다.


"만약 제 매순간 단순하게 살지 않는다면,  

저로서는 인내심을 갖기가 불가능할 것입니다.


저는 

현재만을 바라볼 수 있고 

과거를 잊으며 미래에 대해 생각하지 않으려 

무척 조심합니다.


우리는 실망하고 또 실망감을 느끼는데, 

이유는 과거와 미래를 곰곰이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가슴에 기대어 조용히 쉬지 않고 

안달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것만큼 바보스러운 짓은 없습니다."




성녀 데레사의 "작은 길(Little Way)의 전 목적은 

남녀 할 것 없이 모든 이를 설득하는 것이었다.


즉 그것은 

만인이 하느님 뜻에 조금도 남김없이 내맡김으로써 

룩하게 되는 것이고,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사랑 외에" 아무것도 원치 않으신다는 것이다. 


성녀는 성녀 체실리아를 두고 자기가 좋아하는 성녀라고 말했다.  


"저를 특별히 기쁘게 한 것은  

성녀가 하느님께 자신을 내맡긴 것이었고, 

그분 대한 끊임없는 신뢰심이었습니다."


위탁과 신뢰,

이것은 성녀 데레사의 가르침에 열쇠가 되는 두 개의 단어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