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화 데레사

연옥에 대한 소화 데레사의 가르침②

은가루리나 2020. 3. 6. 22:15






연옥에 대한 소화 데레사의 당돌한 가르침(Connie Rossini)



당시 성녀 데레사의 연옥에 대한 가르침은 당돌하게 들렸으리라.
그래서 그녀와 함께 갈멜 수녀원에 살던 수녀들은
이 논란의 가르침은 추측일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데레사 성녀 (혹은 나) 의 가르침은 영적인 게으름에도 불구하고
천국으로 곧바로 갈 수 있는 것으로 해석하라는 것이 아니다.


그녀의 가름침을 읽을때는 다음의 것들을 명심하여야 한다.

1. 성녀 데레사는 교회의 박사 이다.
교회에는 35명의 박사가 있으며 현재까지는 그중 네명이 여자다.

교회에서 박사를 선택할 때에는
그녀의 가르침에 오류가 전혀 없다는 의미가 아니며,
세대를 불문하고 크리스챤 영성을 돕기 위해 특별히 교회에 의해 추천된다.

성녀 데레사는 

영적인 어린아이가 되는 작아짐의 길의 박사이며
연옥의 가르침은 그녀의 작아짐의 길의 일부이다.


2. 성녀 데레사는 철저한 정통파 였다.
즉 그녀의 연옥에 대한 가르침이 

절대로 교회의 가르침에 위배되지 않음을 말한다.


3. 추측은 죄이다.
만일 진정한 회개 없이도 하느님께서 

우리의 대죄를 용서해 주시리라는 추측으로 고백성사를 본다면,
그 추측은 대죄이다.




연옥은 피할 수 있는 것일까?


그렇다면 성녀 데레사는 연옥에 대해 무엇을 말하려 했을까?

그녀가 수련자들을 지도하고 있을때,지도하고 있는 수련자에게
연옥은 피할 수 있다고 가르치기 시작했다.
그 얼마나 당돌한 행동이었을까?

당시 수련자중 어느 한 사람도 특별히 거룩하지 않았다.
모두가 보통 가톨릭 여성으로써 천성적인 약점들을 조금씩 가지고 있었다.
모두 자신들의 죄의 무게를 상쇄시킬 만할장점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중 몇몇은 성격적 결함을 가지고 있기도 했다.

그럼에도
성녀 데레사는 그들이 죽어서 천국에 곧바로 갈 수 있다고 가르쳤다.

어떻게?
단순하게 모든 것을 하느님께 신뢰하는것이다




쟌세니즘의 처방


성녀 데레사가 성장한 프랑스는 당시 쟌세니즘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있었다.
당시 가톨릭 신자들이 믿고 있는 하느님은 혹독하였다.

신자들은 거룩해지려면
자신의 의무를 다할 뿐만 아니라 훌륭한 일을 함으로써
영적인 공적을 쌓아야 한다고 믿었다.
공적을 충분히 쌓아야만이 연옥을 피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성녀 데레사가 어린 시절,
언니 마리가 학교에서 줄과 희생 구슬을 가져온적이 있었다.
마리는 매일 잘한 일 만큼의 숫자대로 구술을 세곤 하였다.

엄마,제리 마틴은 그 하나를 세린에게 주었고
그녀도 자신이 잘한일만큼 구슬을 세었다.
당시 학교에 들어 가기 전이었던 데레사도 그 중 하나를 가지고 싶어 했다.


성녀 데레사가 점점 자라면서 양심과 싸우기 시작했고
자신이 특별히 강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실제로 ,
그녀는 심리적으로 매우 민감했고, 엄마의 죽음으로 인해 미성숙했다.
그러니 어떻게 그녀가 충분한 공적을 쌓을 수 있었겠는가?


그녀는 이 문제에 대해 몇년 동안 깊이 생각하였고,
주님께서 성서를 통해 그녀에게 답을 보여 주셨다.

빨리 거룩하게 되어 곧바로 천국에 갈 수 있는방법은
아기가 그의 아버지에게 자신을 온전히 맡기듯이
자신을 온전히 하느님께 의탁하는 것, 그것이었다.


작아짐으로 부터 영적 아기가 되는 방법이 탄생한 것이다.


데레사는 더이상 스스로 공덕을 쌓으려 하지 않았다.
여전히 공덕을 쌓는 작은 행위들을 계속 하기는 하였지만,
그것들을 모두 남을 위해 봉헌하였다.
그녀의 계획은 심판날에 자신에게는 공덕을 남기지 않는 것이었다.




빈손의 힘


성녀 데레사 생의 거의 마지막에 이른 어느날
그녀의 언니 폴리나 (예수의 아그네스 원장)가
심판의 날 하느님께 드릴 공덕이 하나도 없다고 탄식하였다.

성녀 데레사는 자신이 “같은 상황에 있지만” 당황하지 않는다.
하느님께 드릴것이 아무것도 없지만
하느님께서 모든 것을 채워 주실것이기 때문이었다.

'작은 이들에게 있어서, 심판은 매우 부드러울 것입니다.
마지막 날에 주님께서
이 땅에의 온유하고 겸손한 이들을 구원하기 위해 일어나실 것입니다.
그것은 심판이 아니라 구원입니다.' (마지막 대화 67)


우리가 우리의 장점을 계산하기를 멈출 때,
우리는 온전히 하느님께 의탁하는 것을 배운다.
아기는 스스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부모에게 모든 것을 의지한다.

이것이 성녀 데레사의 영성이다.

그녀가 모든 것을 던져 버리자 하느님을 신뢰할 수 있었고,
하느님이 그녀의 모든 것이 되었다.

그녀는 하느님의 사랑으로 인해 영적으로 가난하였다.

영적으로 소유함이 없었으므로 인해
먹을것과 입을 것을 주어야만 하는 아기를 가진 엄마가
아기에게 혹독하게 대할 때보다도
하느님께서는 덜 가혹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것이 추측이었을까?


수도원의 부원장 이었던 페브로니 수녀가
수련자들에 대한 데레사의 가르침을 문제시 하였다.
어떻게 평범한 보통 크리스챤이 곧바로 천국을 가는가?

성녀 데레사는 대답하였다.

수녀님, 당신이 만일 하느님의 심판을 바라신다면,
하느님의 심판이 있을 겁니다.
영혼은 정확히 자신이 찾는 것만큼 하느님으로부터 받습니다.
(NPPA 천사회 마리 수녀, 필자의 번역)


페브로니 수녀가 전염병으로 죽은 후,
성녀 데레사는 연옥에서 고통받고 있는 수녀를 꿈에서 보았다.
그 수녀는 정말 자신이 예상한 심판을 받은 것이었다.

우리가 어떻게 추측을 버리고 참된 신뢰를 갖을 수 있을까?
끊임없이 우리의 죄와 애착을 끊으려 노력함에 의해서이다.


성녀 데레사는 결코
수련원들에게 영적으로 게을러도 된다고 말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그녀는 우리의 죄된 습관과 약함이 너무도 깊이 자리 잡고 있으므로
하느님만이 그것으로 부터 자유롭게 하실수 있음을 알았던 것이다 .

그리고 그녀 자신이 그러한 기적을 체험하였다.
그녀가 14살이 되기 바로 전, 크리스마스 이브에 하느님께서
그녀가 십년 넘게 가지고 있던 정신적인 약함을 없애주신 것이다.

성녀 데레사는
하느님께서는 그러한 기적을
당신께 온전히 의탁하는 사람들에게 베푸심을 믿었다.

우리는 우리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거듭되는 죄로 인해
더이상 앞으로 나갈 수 없을 것 같은 절망감을 갖지 않아도 된다.

그것을 하느님의 시간에 맡길 수 있다.
어쩌면 그것이 이 지상의 삶의 마지막 순간일 수 도 있겠지만,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짐을 벗겨 주실 것이다.

우리가 스스로 할 수 없는 것들을
그분께서는 기꺼이 우리를 위해 해 주실 것이다.

그러나 오직 그분을 신뢰할 경우이다.



작은 꽃, 성녀 데레사, 우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Connie Rossini
Contemplative Homeschool 에서 (역: wisd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