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상의 책_맡김

맡김

은가루리나 2020. 3. 10. 23:41


ㅇ6-142 하느님이 뜻 안으로 들어가는 첫걸음은 맡김이다



2 "딸아, 내 뜻에 자기를 맡기는 영혼은,

마치 좋은 음식을 가까이서 보며 식욕을 느끼고,

입맛이 당기는 바람에 그 음식을 맛있게 먹기 시작하여

자기의 살과 피로 변화되게 하는 사람과 같다.

그가 그 좋은 음식을 보지 않았다면

식욕을 느끼지 못했을 것이고 맛도 볼 수 없었을 것이니,

줄곧 배가 빈 상태로 있었을 것이다.


3.그러한 것이 영혼에게는 맡김이다.

내 뜻에 맡김을 통하여 신적인 빛을 보게 되고,

이 빛이 하느님을 보지 못하게 가로막는 것을 죄다 흩어 없앤다.

그래서 하느님을 뵙게 되면 그분을 향유하고 싶어지고,

하느님을 향유하게 되면

그때에는 하느님을 먹고 있는 느낌이 된다.

그렇게 하느님이 완전히 그 자신으로 변하는 느낌이 되는 것이다.


4 그런즉 첫걸음은 맡김이고,

두 번째 걸음은 모든 것 속에서 하느님의 뜻을 이루고자 하는 열망이고,

세 번째 걸음은 하느님의 뜻을 일용할 양식으로 삼는 것이고,

네 번째 걸음은 하느님의 뜻을 소화하여 자기 것이 되게 하는 것 이다.

그러나 첫걸음을 내딛지 않는다면, 

그 영혼은 하느님이 빈 상태로 있게 될 것이다.




ㅇ16-37 맡김은 거룩하신 뜻과 함께 날기 위한 날개를 이룬다.



2 "딸아, 내 뜻은 만물의 생명이며 활동이다.

한데 너는 알고 있느냐?

누가 내 뜻의 활동에 따라 내 영원한 의지 안을 날아다니는지. 

곧 내 뜻이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지 간에 

영원의 영역 안에서  이 뜻이 행하는 대로 행하며 돌아다니는지를?

그것은 내 거룩한 뜻 안에 자신을 완전히 맡긴 사람이다.

맡김은 내 뜻과 함께 날기 위한 날개다.

이 맡김을 그치면 못 날게 되고 날개는 망가진다.


3 내 뜻에서 나오지 않은 활동이란 없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내 뜻의 움직임과 생명을 느끼지만,

그럼에도 그들은 제자리에 그대로 머물러 있다.

오직 나에 대한 맡김의 날개를 가진 사람만이 

내 뜻이 가는 길과 같은 길을 따라가면서 

하늘과 땅에 있는 만물 위를 감돌며  영원의 영역 속으로 들어가고,

하느님 성삼위의 한가운데를 돌아다니며 성삼위의 지밀(至密)한 곳 안에도 들어가 

그분들의 신비와 지복을 알게 된다.


4 그러니,

주된 바퀴가 중심에 있고 다른 작은 바퀴들이 이 바퀴 둘레에 고정되어 있는

엔진에 일어나는 것과 같은 현상이 일어난다.

중심 바퀴가 돌아가기 시작하면  작은 바퀴들이 전부 움직이지만,

아 바퀴들은  닿는 일이 결코 없고, 

중심 바퀴가 행하는 것과   지니고 있는 좋은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아는 것도 없다.


5 그러나 고정되어 있지 않은 또 하나의 작은 바퀴가 있다.

이 바퀴는 어떤 장치에 의해 끊임없이 다른 작은 바퀴들을 가로질러

그 하나 하나의 주위를 돌아다니고,

중심 바퀴가 움직일 때마다 함께 움직이며

다시 작은 바퀴들 사이를 돌아다니기 시작한다.

이 순회하는 작은 바퀴는

중심 바퀴 안에 무엇이 있는지를 알고 있고,  중심 바퀴가 지닌 좋은 것에 동참한다.


6 그 중심 바퀴는 바로 나의 뜻이다.

고정되어 있는 작은 바퀴들은 자신을 그 자신에게 맡기고 사는 영혼들이니,

이 점이 선을 행하지 못하도록 그들을 고정시키는 것이다.

순회하는 작은 바퀴는 내 뜻 안에서 사는 영혼이고,

그렇게 움직이게 하는 장치는 나에 대한 전적인 맡김이다.

그러므로 나에 대한 맡김이 없을 때마다  영원한 영역 안의 순례를 못하게 된다.

영원한 순례를 못하게 된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 지를 네가 안다면!" 




ㅇ17-6 창조주의 거룩함의 표징과 모습을 지닌 성덕.

  

   

12 창조주는 변화를 겪지 않는다. 

불변적인 존재다. 

변화를 겪는 자는 하늘이 아니라 땅에 속한 존재다. 

변화하는 것은 인간의 뜻이지 하느님의 뜻이 아니다. 

선을 중단하는 것은 피조물이지 창조주가 아니다. 

그러니 이런 것은 모두 내 뜻 안에서 사는 성덕에 맞갖지 않다. 

이 성덕은 창조주의 거룩함의 표징과 모습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13 그러니 주의를 기울여라. 

네가 모든 권리를 지고한 뜻에 맡기면, 

내가 내 뜻 안에서 사는 성덕을 네 안에서 계속 길러 주겠다.




20-25 하느님께서 피조물에게 주신 최초의 유산.



2 "딸아, 네가 지극히 높으신 의지 안에 너를 맡기면 맡길수록 

이 의지의 길에서 그만큼 더 진보하고, 더 많은 지식을 얻으며,

하느님의 뜻 안에 있는 재산을 그만큼 더 많이 소유하게 된다.

하느님의 뜻 안에는 알아야 할 것과 취해야 할 것이 언제나 있는 까닭이다.




ㅇ6-71 진정한 증여는 인간 자신의 의지를 끊임없이 희생으로 바치는 것이다



2 "딸아, 

영혼이 자신의 의지를 내게 준 다음에는 원하는 대로 행동할 자유가 없다.

그렇게 한다면 실제로 내게 준 것이 아니지 않겠느냐?

진정한 증여는 자기의 의지를 이미 증여한 분께 그 이후에도

끊임없이 다시 희생으로 바치는 것이다.

ㅇ이는 하느님께 줄곧 주의를 집중하고 있음을 증명하는 일종의 순교이다.


3 어떤 고통이든지 다 받겠다고 자기를 봉헌한 사람이 

오늘은 그렇게 자기를 내어 주고 내일은 슬며시 도로 가져간다면,

그런 사람에 대해서 너는 어떻게 말하겠느냐?

증거 내지는 순교에 대한 진정한 마음가짐이 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어느 날인가는 결국 자기의 신앙을 부정할 것이라고 말하지 않겠느냐?

이와 같이 어떤 날은 자기의 의지를 나에게 주고 

다른 날은 도로 가져감으로써 

내가 원하는 대로 다루지 못하게 하는 영혼에게 나는 이렇게 말한다.


5 그러니 너는 유의하여라.

내가 가장 좋아하는 방식으로 너를 다룰 수 있도록 완전한 자유를 내게 다오."





0 6-29 하느님의 뜻에 완전히 맡기는 행위 하나만으로도

영혼이 모든 불완전에서 깨끗해지기에 넉넉하다


1 "복되신 예수님께서 내 영혼 안에 오시면 어떻게 말씀하실까?

"이 영혼은 너무 더럽고, 악하고, 차갑고, 지긋지긋하다!" 하시지 않을까?

그래서 그분은 이 추한 인간과 닿아 있지 않으시려고 되도록 빨리 성체가 녹게 하실 것이다.

하지만 내가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 저는 이리도 악한 인간이지만,

그럴수록 주님께서 참을성 있게 오셔 주셔야 합니다.

아무래도 제게는 당신께서 반드시 계셔 주셔야 합니다.

당신 없이는 도저히 살 수 없으니까요."


3. "딸아, 그 때문에 너무 괴로워하지 말아라,

아주 간단한 약이 있다.

곧, 내 뜻에 완전히 맡기는 행위는 그러한 행위 하나만으로도 

네가 지금 말하는 그 모든 추함에서 깨끗해지기에 넉넉하다.

그러면 나는 네 생각과는 반대로,

'정말 아름답구나, 너는!

네 안에 있는 내 사랑의 불이, 내 향내가 느껴진다.

너를 내 영원한 거처로 삼고 싶다.' 하고 말할 것이다."

그리고 그분은 모습을 감추셨다.





6-27 진정한 맡김은 아무것도 따지지 않고 말없이 하느님 섭리의 안배를 받드는 것이다


4 "상상적인 것이 아닌 진정한 맡김은 아무리 사소한 것도 이리저리 따지지않고,

그저 말없이 하느님 섭리의 안배를 받드는 것이다."





{1-23,3 "딸아, 너는 오로지 나에게만 신뢰를 두어야 한다. 

전적인 신뢰와 맡김 속에서 평온히 있어라. 

나에 대한 신뢰와 맡김은 영혼을 빛나게 하고 다른 모든 격정들을 바로잡아 준다. 

그러면 나는 내가 나누어 준 빛살에 이끌려 그 영혼을 차지하고, 

그에게 나 자신의 형상을 부여한다. 

나 자신의 생명으로 살아가게 하려는 것이다."} 2015/5/17






{11-67,16 "딸아, 근심하지 마라. 

그저 나의 뜻 안에 너 자신을 맡기고 머물러 있는 것에나 마음을 써라. 

그러면 내가 너를 위하여 모든 일을 다하겠다.


17 나의 뜻 안에 있는 단 한 순간이, 

네가 평생토록 할 수 있는 모든 선행보다 더 값진 것이니 말이다."







영혼이 예수님께 자기를 맡기면 예수님도 자신을 영혼에게 맡겨 당신으로 영혼을 가득 채우신다.♧


{12-53,4 아, 딸아, 내 안에 맡기는 것 - 완전한 맡김의 정신이 참으로 필요하다!

영혼이 내 안에 자기를 맡기면 나도 나를 그 안에 맡겨 나 자신으로 그를 가득 채우고, 

그가 나를 위해서 해야 할 모든 것을 내가 몸소 행한다. 


5. 그러나 영혼이 자기를 맡기지 않으면 

그가 행하는 모든 것이 그 자신 안에 붙어 있을 뿐 내 안에는 있지 않다. 

그러면 나는 그 피조물의 일을 온통 불완전하고 비천한 것들로 가득 차 있음을 느낀다. 

그런 것이 내 마음에 들 턱이 없다.}






{12-146,2 "딸아, 보아라, 내가 너를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나는 네 심장을 은총과 젖으로 채워 주고 싶었다.

그러니 네가 행하고 말하는 모든 것이 다만 내가 채워 준 은총의 분출이 될 것이다.


3 너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너의 의지를 내 뜻의 처분에 맡기기만 하면 내가 무엇이든지 다 하겠다.

너는 다만 내 말의 소리, 내 뜻의 전달자, 

인간적인 방식의 덕행들을 몰아 없애는 자, 

영원하고 무한 무변한 중점에 근거를 둔 신적 덕행을 다시 일으키는 자가 될 것이다."

그분께서는 이 말씀을 마치고 사라지셨다.






{12-110,3 "내 안에 자기를 내맡기는 것은, 

두 갈래의 여울이 서로 안에 세차게 흘러들어 물이 한데 섞이면서 

여울 바닥이 마를 정도로 드높이 치솟는 물결을 이루어 

하늘에 닿는 것에 비할 수 있다.

 

4 거센 파도 소리와 졸졸 흐르는 냇물 소리가 

얼마나 듣기 좋은 화음을 이루는지 

하늘은 이 물결에 닿은 자신을 영예로이 여기며 새로운 아름다움으로 빛난다. 

그리고 성인들은 이구동성으로 탄복하며 외친다. 

'이 듣기 좋은 소리와 황홀한 화음은 하느님 안에 자기를 내맡긴 영혼이다. 

얼마나 아름다운지! 얼마나 아름다운지!' "

 

5 또 어느 날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무엇이 두려우냐? 

너 자신을 내맡기면 

네가 마치 원 안에 있는 것처럼 나에게 둘러싸여 있을 것이다. 

그러니 원수나 궂은 일이나 위험이 닥칠 때 

그런 것이 상대해야 하는 것은 네가 아니고 나다. 

내가 너를 책임지고 있는 것이다.

 

6 진정한 맡김은 영혼에게 안식이 되고 내게는 일이 된다. 

영혼이 안식을 누리지 못하고 들떠 있다면 

그것은 내 안에 자기를 내맡기지 않고 있음을 뜻한다. 

불안은 그러니까 당연한 고통이다. 

자기 마음대로 살기를 원하는 사람은 내게 크게 잘못할뿐더러 

자기에게도 큰 손해를 입히기 때문이다."






{3-60,2 "내 딸아, 

영혼이 지복 속으로 들어가기 위해서 이 세상에서 지닐 수 있는 통행증에는 

세 가지 도장이 찍혀 있어야 하는데, 

그것은 맡김과 겸손과 순명이다. 

영혼이 내 뜻에 자기를 완전히 맡기는 것은 밀초와 같아서 

그와 나의 뜻을 녹여 하나로 결합시킨다. 

그것은 다디단 설탕과 꿀맛이다. 

그러나 내 뜻에 반항할 때마다 밀초가 갈라져서 

`설탕은 쓴맛을 내고 꿀은 독약으로 바뀐다.

 

3 그런데, 다만 맡기는 것만으로는 넉넉하지 않다. 

영혼 자신에게 가장 좋고  내게 영광을 돌리는 데도 가장 좋은 방법은 

항상 나의 뜻을 행하는 것이라는 사실 - 이 사실에 대한 확신도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겸손의 날인이 꼭 필요한데, 

그것은 이 지식을 얻게 하는 것이 바로 겸손인 까닭이다.

 

4 하지만, 

이 두 가지 덕행을 고상하게 하고 강화시키며 항구하게 하고 

나뉠 수 없도록 한데 묶어 영광의 관을 씌워 주는 것은 무엇이겠느냐? 

다름아닌 순명이다! 

오, 그렇다. 

순명은 제멋대로인 교만과 물질적인 모든 것을 완전히 쳐부수고 

일체를 영적으로 변화시키면서 

스스로 그 모든 것을 에워싸는 영예로운 관이 된다.

 

5 따라서, 순명이 없으면 맡김과 겸손이 불안정하지만, 

순명이 있으면 맡김과 겸손도 확고한 안정을 유지하게 된다. 

영혼이 영적인 행복의 나라로 건너가기 위한 통행증을 유효한 것이 되게 하려면, 

그리고 이 세상에서도 그것을 누리려면, 

반드시 순명의 날인이 필요한 것은 그 때문이다.

 

6 이 세 가지 도장이 찍혀 있지 않은 통행증은 유효하지 않기에 

행복의 나라에 입장하는 것이 금지된다. 

영혼은 따라서 불안과 공포와 위험의 나라에 머물러 있을 수밖에 없어진다. 

그리하여 수치스럽게도 영혼 자신의 자아를 신으로 섬기게 되니, 

교만과 반항이 이 자아의 비위를 맞추게 되는 것이다."





8-1,3 "딸아, 가장 아름답고 내 마음에 드는 행위는 내 뜻 안에 자신을 내맡기는 행위이다.

그것도 자신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오로지 하느님의 뜻만을 기억할 정도로 맡기는 행위 말이다.

자신에 죄에 대한 통회도 훌륭하고 기특한 행위이긴 하지만 

그것이 그 자신의 존재(에 대한 기억을) 없애지는 못한다.


4 반면에, 나의 뜻 안에 자신을 온전히 내맡기는 행위는 

그 자신의 존재를 없애고 신적 존재를 되찾게 한다.

그러므로 그 영혼은 자신을 내게 맡기는 행위에 의하여 

내가 피조물에게 요구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주면서

내게서 나갔던 것을 나 자신 안에서 되찾게 하는 셈이기에

내게 그만큼 더 큰 영예를 안겨 주는 것이다.


5 그리고 그로서는 영혼이 되찾아야 할 유일한 실재를,

다시 말해서 하느님을 되찾게 되고,

하느님을 되찾음으로써 하느님께서 소유하고 모든 것을 되찾게 한다.


6 하지만,

영혼이 완전히 하느님의 뜻 안에 머물러 있을 때에만 

비로소 하느님을 되찾게 된다.

나의 뜻 밖에 나가 버리면 

그 자신의 존재와 타락한 본성의 모든 악을 되찾을 따름이다."




{2-73,2 "나를 사랑하는 것과 내 안에 너 자신을 내맡기는 것에 대하여 생각하여라. 

이와 같이 하는 것이 내 마음에 드는 음식을 마련하는 길이다. 그것도 

네가 하는 것처럼 할 수 있을 때에 이따금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계속하는 것이다. 너 자신을 내 안에 내맡기고 나를 사랑함으로써 너의 뜻이 

네 하느님을 위한 음식이 된다면, 그것이 너의 가장 큰 행복이 되지 않겠느냐?"}





{7-333 영혼이 내가 그에게 주는 작은 선물들을,

곧 십자가들을,

아를 자기 배필로 받아들인다는 서약으로 받아 들인다면

혼인이 성립되는 것이다.

그러면 내가 그에게 지참금을 선물로 준다.

그런데 작은 선물들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다시 말해서 내 뜻에 그 자신을 맡기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성립되지 않으니 

내가 지참금을 주고 싶어도 줄 수가 없어진다.

혼인이 성립되려면 

쌍방 간의 뜻이 맞아야 하는데

영혼이 내 선물들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혼인을 수락할 의사가 없음을 뜻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