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섭내

《제4장 -02 내어맡김의 상태에 이르고자 한다면, 모든 피조물에서 이탈해야 한다.》

은가루리나 2016. 2. 1. 11:27


제 4 장


하느님의 뜻을 완전히 따르는 것이 영성의 본질이다




 02 


내어맡김의 상태에 이르고자 한다면, 모든 피조물에서 이탈해야 한다.





  순수한 사랑에 관한 가르침은 

인간의 사고나 정신력으로 습득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도우심으로만 얻을 수 있습니다. 

하느님은 우리에게 이성으로써 뿐 아니라  괴로움과 장애를 통해서도 가르쳐주십니다. 

우리가 가르침을 통해 배우는 것은  하느님만이 선하신 분임을 맛들이는 실천적 지식입니다. 


이것을 배우고자 한다면, 

우리는 우리가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는 일체의 것으로부터  마음을 비워야 합니다. 

우리가 모든 것에서 철저하게 벗어나 비어 있는 상태가 되기 위해서는 

현세적으로 부자유스러움을 견디어 내어야만 합니다. 

우리는 시련과 굴욕을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체험하고 난 뒤에야

비로소 순수한 사랑을 몸에 지닐 수 있습니다.


창조된 것이 이미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고 

하느님만이 우리에게 모든 것이 되는 단계에까지 가야만 합니다


그곳까지 인도하시려고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개인적인 애착심을 파괴시킵니다. 

그러한 애착심들이 어떠하든지 간에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무엇인가 특별한 신심과 신심의 대상에 사로잡히게 되면 

이러저러한 독자적인 길로 완덕에 이르려 생각하고 

이 사람 저 사람의 안내를 받아 그곳에 오르려 합니다. 

그렇지만 무엇인가에 애착심을 느끼기 시작할 때, 

하느님께서는 개입하시어  그러한 계획을 뒤엎으시고  

평화 대신 혼돈과 근심과 어리석음을 체험토록 안배하십니다.

자신의 기호에 따라 

"나는 이 길을 가야 해, 이 사람과 상담해야지, 나는 이렇게 행동해야 돼" 하고 말하자마자 

하느님께서는 그와 반대되는 일을 진행시키고  우리가 택해 놓은 것을 무력하게 만드십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모든 것이 기대에 어긋나  피조물의 허무함을 맛보고 

하느님께 도움을 구하며  하느님만으로 만족하게 됩니다.




  엄위하시지만 사랑이 충만한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을 

우리가 파악하고  거기에 열심히 협력하기만 한다면,  

우리는 참으로 복된 사람이 됩니다. 

이러한 영혼은 지나가 버리고 마는 모든 것을 넘어서

변함없고 무한하신 하느님 품에서 휴식을 취합니다. 

그 대신  피조물을 신뢰하고 그 안에 빠져 들어가는 것 같은 일은  더 이상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원하실 때 피조물들을 사용하십니다. 

그때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자신의 모든 원의를 벗어나  

자기 식으로 선택하고 취하는 것에서 이탈하고 있음을 바라보십니다. 


이것은 우리가 완전한 무관심 속에 죽어 묻힌 상태입니다. 

이때 하느님은 당신의 주권을 남김없이  영혼의 그윽한 깊은 곳에 나타내 보여주십니다.

그리고 그분은 

피조물의 모든 구별과 차이점을 없애버리는 섬멸의 그림자를 모든 피조물 위에 흩으십니다. 

그리하여 이들 피조물은 무엇인가를 할 수 있는 힘을 전적으로 상실하고 

자신의 모든 활동력을 잃게 되어, 

우리는 그것들에 대해 아무런 애착심도 갖지 않게 됩니다.

이는 하느님의 위대하심만이 모든 능력을 사로잡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하느님 안에서 살게 되면 

우리는 다른 모든 것에 대해 죽어 있고  다른 것도 우리에 대해 그렇게 소멸하게 됩니다. 

모든 것에 생명을 주시고, 

피조물과의 관계에서  영혼을 구하며  또 영혼을 위해 피조물을 살리는 일은 

모든 생명의 주인인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그 다음 하느님의 뜻을 통해 

우리 마음은 피조물에게 향하고  우리 영혼은 그들을 맞아들여 이용할 수 있게 됩니다.


하느님의 뜻 없이는 

피조물이 영혼에게 영향을 끼칠 수 없고  영혼도 피조물을 붙잡으려 하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하느님이 뜻을 통해 보여주신 한계에 머무르는 모든 피조물은 

영혼에게 있어서  끊임없이 하느님 자신이고 동시에 모든 것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매순간 우리 마음은 하느님 안에서 평화 속에 머물며 

전창조(全創造)에 완전히 내맡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매순간은 모든 것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하십내 4-2.avi






  순수한 사랑에 관한 가르침은 

인간의 사고나 정신력으로 습득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도우심으로만 얻을 수 있습니다. 

하느님은 우리에게 이성으로써 뿐 아니라  괴로움과 장애를 통해서도 가르쳐주십니다. 

우리가 가르침을 통해 배우는 것은  하느님만이 선하신 분임을 맛들이는 실천적 지식입니다. 

이것을 배우고자 한다면, 

우리는 우리가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는 일체의 것으로부터  마음을 비워야 합니다. 

우리가 모든 것에서 철저하게 벗어나 비어 있는 상태가 되기 위해서는 

현세적으로 부자유스러움을 견디어 내어야만 합니다. 

우리는 시련과 굴욕을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체험하고 난 뒤에야

비로소 순수한 사랑을 몸에 지닐 수 있습니다.

창조된 것이 이미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고 

하느님만이 우리에게 모든 것이 되는 단계에까지 가야만 합니다. 

그곳까지 인도하시려고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개인적인 애착심을 파괴시킵니다. 

그러한 애착심들이 어떠하든지 간에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무엇인가 특별한 신심과 신심의 대상에 사로잡히게 되면 

이러저러한 독자적인 길로 완덕에 이르려 생각하고 

이 사람 저 사람의 안내를 받아 그곳에 오르려 합니다. 

그렇지만 무엇인가에 애착심을 느끼기 시작할 때, 

하느님께서는 개입하시어  그러한 계획을 뒤엎으시고  

평화 대신 혼돈과 근심과 어리석음을 체험토록 안배하십니다.

자신의 기호에 따라 

"나는 이 길을 가야 해, 이 사람과 상담해야지, 나는 이렇게 행동해야 돼" 하고 말하자마자 

하느님께서는 그와 반대되는 일을 진행시키고  우리가 택해 놓은 것을 무력하게 만드십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모든 것이 기대에 어긋나  피조물의 허무함을 맛보고 

하느님께 도움을 구하며  하느님만으로 만족하게 됩니다.




  엄위하시지만 사랑이 충만한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을 

우리가 파악하고  거기에 열심히 협력하기만 한다면,  

우리는 참으로 복된 사람이 됩니다. 

이러한 영혼은 

지나가 버리고 마는 모든 것을 넘어서

변함없고 무한하신 하느님 품에서 휴식을 취합니다. 

그 대신  피조물을 신뢰하고 그 안에 빠져 들어가는 것 같은 일은  더 이상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원하실 때 피조물들을 사용하십니다. 

그때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자신의 모든 원의를 벗어나  

자기 식으로 선택하고 취하는 것에서 이탈하고 있음을 바라보십니다. 

이것은 우리가 완전한 무관심 속에 죽어 묻힌 상태입니다. 

이때 하느님은 당신의 주권을 남김없이  영혼의 그윽한 깊은 곳에 나타내 보여주십니다.


그리고 ,,,,,,, 

그분은 ,,,,,,,

피조물의 모든 구별과 차이점을 없애버리는 ,,,,,,, 

섬멸의 그림자를 ,,,,,,, 

모든 피조물 위에 흩으십니다. 

그리하여 이들 피조물은 무엇인가를 할 수 있는 힘을 전적으로 상실하고 

자신의 모든 활동력을 잃게 되어, 

우리는 그것들에 대해 아무런 애착심도 갖지 않게 됩니다.

이는 하느님의 위대하심만이 모든 능력을 사로잡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하느님 안에서 살게 되면 

우리는 다른 모든 것에 대해 죽어 있고  다른 것도 우리에 대해 그렇게 소멸하게 됩니다. 

모든 것에 생명을 주시고, 

피조물과의 관계에서  영혼을 구하며  또 영혼을 위해 피조물을 살리는 일은 

모든 생명의 주인인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그 다음 하느님의 뜻을 통해 

우리 마음은 피조물에게 향하고  우리 영혼은 그들을 맞아들여 이용할 수 있게 됩니다.

하느님의 뜻 없이는 

피조물이 영혼에게 영향을 끼칠 수 없고  

영혼도 피조물을 붙잡으려 하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 

하느님이 뜻을 통해 보여주신 한계에 머무르는 모든 피조물은 

영혼에게 있어서  끊임없이 하느님 자신이고 동시에 모든 것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매순간 우리 마음은 

하느님 안에서 평화 속에 머물며 

전창조(全創造)에 완전히 내맡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매순간은 모든 것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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