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섭내

《제4장 -03 내맡김의 적극적 실행》

은가루리나 2016. 2. 3. 14:06


제 4 장


하느님의 뜻을 완전히 따르는 것이 영성의 본질이다




 03 


내맡김의 적극적 실행





  하느님께서 자아포기의 상태로 부른 영혼들은 

능동적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수동적이라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은 적극적인 면이 완전히 사라졌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습니다.

자아포기의 상태란

바로 일상적인 위탁의 덕이 보다 균형 있고 완전하게 실천되어 강화되었음을 말해줍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의무가 실행되어야 합니다.

첫째는 하느님의 뜻을 능동적으로 실천에 옮기는 것이고,

둘째는 하느님의 뜻으로 우리에게 주어지는 모든 것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이미 언급한 바 있듯이 내맡김의 상태란

하느님의 뜻대로 쓰시도록 하느님께 우리의 전 존재를 모두 내맡겨 드리는 것입니다.


이제 그분은 우리에게 두 가지 방법을 사용하시는데,

그것은 

리에게 어떤 일을 행하시게끔 하는 경우와  

우리 안에서 당신 자신이 일하시는 경우입니다.

첫 번째 방법은 우리가 하느님의 분명하고 명백한 명령에 기쁘게 순종하는 것이고,

두 번째 방법은 우리 영혼 안에서 그분이 행하시는 일에 온전히 유순하게 따르는 것입니다.


자기위탁, 내맡김이라는 것은 이 두 가지를 모두 포함하는 것으로,

그것은 

여러 가지의 유형무형한 것이 순간순간 빚어지는 대로 

하느님의 섭리를 거기서 바라보고  그것을 따르는 것 외에 다른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있어서는 어떤 모양의 내맡김이 좋을까 라든지 

아니면 매순간 어떠해야 하는지를 아는 것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제일 중요한것은  조건 없이 우리 자신을 내맡기는 일뿐입니다.



  그러므로 명령을 받고 해야 되는 의무가 있고

아주 소극적이면서 내맡긴 채로 두는 의무가 있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 형태의 의무는  하느님의 영을 통해 권고되어지는 의무인데,

그분의 영은 당신께 충실한 영혼에게 특별히 몸소 일하시어 

어떤 일에 주의를 기울이도록 해 주십니다.


이런 종류의 의무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일하시는 은총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감수성을 가지고 

단순함과 고요한 내적인 세계로 향하는 영혼이 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영혼은 

인도하시는 데로 가야만 하고, 은총에 자발적으로 따라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은 우리가 이런 상태에 있을 때,

우리가 무엇을 받아들이고 거절해야 할 것인지를  우리에게 말해 줄 지도자를 

보내 주실 것입니다.  


이 의무는 특정한 규칙이나 규범에 묶여 있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성인들의 생애에서 볼 수 있는 

특수하고도 두드러진 것이 설명될 수 있는 것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성인들의 구송기도, 내적인 열망, 엄격함으로 빛나는 그들의 생애,

이웃에게 보여 준 그들의 따스함과 아낌없는 희생은

성령이 영혼 안에서 일하시는 결과이므로,

우리는 그러한 은총을 간직하기를 원해서도 안 되고

또 자신의 덕행 안에서는 특기할 만한 것이 없다는 것에 대해 한탄해서도 안 됩니다.


그러한 것들은

하느님의 뜻이 거기에 있기 때문에 참으로 가치 있는 것입니다.

이 점을 마음에 잘 새겨 두지 않고 자애심에 이끌려 간다면,

우리는 스스로 환상에 사로 잡히는 자들이 될 것입니다.



  자신의 눈에나 타인의 눈에 띄지 않는 조그마한 숨은 존재로 밖에 보이지 않는 영혼도

하느님이 그 영혼에게 뜻하시고 원의하고 계심을 알아야 합니다.

하느님은 그들에게 눈에 띄는 덕을 주시기는커녕 

그들에게 아무것도 허용치 않으시며,

도리어 사람들이 깨닫지 못하는 어둠 속에 그들을 머물게 하십니다.

만일 이런 영혼이 다른 길을 걸으려 한다면 그르치게 되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올바른 가르침을 받는다면,

자신의 길에 충실해야만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어

자신의 비참함 안에서 평화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들의 길과 또 외견상 그들보다 은혜를 받은 영혼의 길 간에 차이점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단지 

하느님의 뜻에 얼마만큼 사랑과 위탁의 마음을 가지고 따르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그들이 외적인 활동에서 적극적으로 보이는 사람들보다 우수하다면,

그들의 성덕은 분명 더 훌륭할 것입니다.

이는 영혼들이 제각기 신분상 해야 할 의무와  자신에게 연루된 하느님의 섭리에  

만족해야만 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하느님은 이것을 누구에게나 똑같이 요구하고 계신다는 것이 확실합니다.

영혼에게 하느님이 말씀해 주시고 무엇인가를 느끼게 해 주시는 것은

온전히 하느님만 해주실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람이 영적인 기쁨을 

제 마음대로 이루어보려고 한다든지  체험해 보려고 해서는 안 되며, 

이런 것들을 강화시켜 나가려 노력해서도 안 됩니다.

인간 쪽에서의 이런 노력은 

성령의 작용하심에 직접적으로 반대되고 또 모순되는 것이 됩니다.




  정배의 목소리는 신부(영혼)를 잠에서 깨웁니다.

신부는 단지 성령의 권고대로만 나아갈 것입니다.

만일 영혼이 자기 멋대로 행동한다면 성취할 수 있는 것이라고 아무것도 없을 것입니다.

그토록 감탄할만한 성인들의 행위에 비해 

우리가 그러한 경향도, 은혜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안다면,

"하느님께서는 이러한 것들을 성인들에게 원하셨지, 나한테는 원치 않으셨다." 

철저하게 말해두어야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