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상의 책 12권

{천상의 책 12권18,18-52 (Ⅲ)} 둘째, '하느님의 뜻 안에 사는 것'에 대하여

은가루리나 2016. 4. 5. 18:31





12-18



1917년 8월 14일



예수님 생애의 중심이었던 아버지의 뜻,

'하느님의 뜻에 맡기고 사는 것' 과 '하느님의 뜻 안에서 사는 것' 의 차이.




* 둘째, '하느님의 뜻 안에서 사는 것' 에 대하여



18 이에 대해서는 예수님의 손이 직접 써 주시면 좋겠다. 

아, 오직 그분만이 

하느님의 뜻 안에서 사는 것의 모든 아름다움과 좋음과 거룩함을 말씀하실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그럴 능력이 없다. 

머릿속에 개념은 많은데  표현해 낼 수 있는 말이 없는 것이다.

- 예수님, 저의 이 글에 부디 당신 자신을 쏟아 부어 주십시오. 

그러면 제가 할 수 있는 대로 적어 보겠습니다.




19 하느님의 뜻 안에서 산다는 것은 

사람이 하느님의 뜻과 불가분적 관계를 맺고  아무것도 혼자서 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하느님의 의지 앞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능을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20 그런 사람은 앞서의 아들과는 달리 

자기 혼자서는 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지시해 달라고 청하지 않을 뿐더러  지시를 받지도 않는다. 

그저 "아버지께서 제가 이를 행하를 원하다면  함께 하십시다. 

제가 가기를 원하다면  아버지도 같이 가십시다." 한다.


21 그러므로 그는 아버지가 행하는 모든 것을 행한다. 

아버지가 생각하고 있으면  아버지의 생각을 자기 생각으로 삼을 뿐 

거기에다 하나의 생각도 보태지 않는다.


22 아버지가 보고, 말하고, 일하고, 걷고, 고난을 받으며 사랑하고 있으면, 

아버지가 보는 것을 보고, 아버지의 말을 되풀이하고, 

아버지의 손으로 일하고, 아버지의 발로 걷고, 

아버지의 고난과 같은 고난을 받으며  아버지의 사랑으로 사랑한다.


23 그는 아버지의 밖이 아니라  아버지 안에 살고 있기 때문에 

아버지의 반영이며  아버지의 완전한 판라고 할 수 있는데, 

이는 다만 아버지의 뜻을 따르기만 하는 아들에게는 적용되지 않는 점이다.



24 아버지의 뜻 안에서 살고 있는 아들의 경우, 

아버지와 함께 있지 않는 아들을 보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마찬가지로  그와 함께 있지 않는 아버지를 볼 수도 없다. 

이 아들은 외적으로만이 아니고  내적으로도 아버지와 함께 있다. 

그의 내면 전체가  마치 아버지의 내면과 섞여 짜인 것처럼 되기에, 

아버지 안에, 곧 하느님 안에  완전히 녹아든 상태가 되는 것이다.


25 오, 하느님의 뜻 안을 날아다니는 아들의  날래고도 고상한 비상이여! 

하느님의 뜻은 무한하여  순간마다 모든 사람 내부를 순환하며 

만물에 질서와 생명을 부여하신다. 

영혼도 그 무한성 안을 돌아다니며  모든 사람에게로 날아가  도움과 사랑을 주는데, 

예수님께서 친히 모든 사람을 도우며 사랑하시는 것과  같은 식으로 하는 것이다. 

이것 역시, 다만 하느님의 뜻을 따르기만 하는 사람은 할 수 없는 일이다.



26 그러므로  

하느님의 뜻 안에서 사는 사람은  단독적인 행위란 있을 수 없는 것으로 여긴다. 

비록 거룩한 일이라고 하더라도  인간적인 무엇이 섞인 일에 대해서는 역겨움을 느낀다.


27 왜냐하면 하느님의 뜻 안에서는 모든 행위가, 극히 사소한 행위까지, 

전혀 다른 양상을 띠기 때문이다. 

즉, 고상함과  광와  신적 거룩함 및  신적 능력과 아름다움을 입고, 수히 불어나며, 

한 순간에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행위가 되는 것이다.


28 그러나 모든 일을  하고난 뒤 영혼은 이렇게 말한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고  예수님께서 다 하셨습니다. 

나의 만족은 다만, 

하잘것없는 이 인간에게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뜻 안에 있는 영광을 주시어 

당신께서 행하신 바를 하게 하신 데에 있을 뿐입니다."


29 따라서 일을 잘 했건 서툴게 했건, 또는 많이 했건 적게 했건, 

원수가 그를 괴롭힐 수 없다. 

예수님께서 다 하셨고  그는 예수님과 함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는 더할 수 없이 평화로은 사람이다. 

아무런 불안도 겪지 않는다. 

아무 애착하지 않지만  모든 사람을 사랑한다. 

신적인 사랑으로 사랑한다.


30 그런 이는 예수님의 삶을 재현하는 사람이요, 

그분 음성의 발성 기이며, 그분 심장의 고동이고, 그분 은총의 바다라고 할 수 있다.


31 나는 오직 여기에만 진정한 성덕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모든 것은  성덕의 환영, 망령 내지 유령일 것이다.



* * *


32 하느님의 뜻 안에서는  덕행들이 신적 질서 속에 자리를 잡는다

반면에  그것이 이 뜻을 벗어나 인간적 질서 속에 있게 되면 

자만과 허영과 격정의 지배를 받게 된다.


33 오, 얼마나 많은 선행이, 

잦은 성사 참여들이 하느님 대전에  개할 만한 보속거리가 되는지!

그것은 행위들에  하느님의 의지가 비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무런 결실도 내지 못하는 것이다.



34 하늘의 뜻은  모든 사람이 진정한 성덕을 알게 되는 것이다. 

이를 알게 되면,  오, 다른 모든 것은 사라질 정도가 될 것이다!


35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잘못된 성덕의 길을 걷고 있다. 

경건한 신 실천에 성덕이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은데 

이들을 움직이는 사람들은 불행하다. 

너무나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36 만일 그들의 의지예수님과 하나 되어  그분 안에서 변화되지 않는다면 

이 변화에 이르는 과정이야말로 끊임없는 기도이기에 

그들의 성덕은 그 모든 독실한 실천에도 불구하고  잘못된 것이다. 

이는  그런 영혼들이 그렇게 경건한 신행위를 하다가도 

얼마나 쉽사리 결점이나 오락에 빠지고

불일치의 씨앗을 뿌리는 등의 짓거리를 는지를 보면 알 수 있는 점이다. 

이런 부류의 성덕은, 그러니 얼마나 수치스러운 성덕인가!


37 또 어떤 이들은 

성당에 가는 것, 모든 전례에 참여하는 것에 성덕이 있다고 생하는데, 

그들의 의지예수님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다. 

이는 이 영혼들이 스스로의 본분에 얼마나 등한한지를 보면  알 수 있는 점이다. 

가는 걸음을 막는 무엇이 있으면  벌컥 화를 내고,

그들의 성이 허공 속으로 사라진 듯 울부짖으니, 

그 불평과 불순종으로 가족들의 상가 되기 쉽상이다. 

이 얼마나 맹랑한 성덕인가!


38 또 다른 이들은 

자주 고해성사를 받고 꼼꼼하게 영적지도를 받으며 

모든 것에 대해서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것에 성덕이 있다고 생각다. 

그러나 

그들의 의지예수님의 의지와 일치지 않는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 가책도 느끼지 않는다. 

그들을 반하는 사람들이 되레 불행하다(고 여길 따름이다)! 

이런 영혼들은 부푼 풍선과 같아서  작은 구멍만 있어도 바람이 빠진다. 

즉, 그들의 성덕이란 것이  연기처럼 공중으로 흩어져 오르다가 땅에 떨어진다.



39 이 가련한 풍선

언제나 할 말이 고  너무나 쉽사리 슬픔에 잠기며  줄곧 의혹 속에 산다. 

그러니 아주 작은 일에서도 

지도와 조언을 아끼지 않고  평화와 위로를 줄 사람을 가지게 되기를 바란다. 

그렇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전보다도 더 심란한 상태가 되고 만다. 

이 얼마나 딱한 가짜 성덕인가!


40 나는 저 가짜 성덕들을 두고  예수님과 함께 울기 위서  그분의 눈물이 되고 싶다. 

진짜 성덕은  하느님의 뜻을 행하며 하느님의 의지 안에서 사는 데에 있다는 것을 

모든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함이다.


* * *



41 이 성덕은 워낙 깊은 데에 뿌리를  박고 있어서  뒤흔들릴 위험이 없다. 

왜냐하면 하늘과 땅을 가득 채우며  도처에 버팀목이 있는 성덕이기 때문이다.


42 이런 영혼은 확고부동하기에  변덕을 부리거나 고의적인 결함에 떨어지지 않는다. 

자기본분에 세심히 주의를 기울이고, 

지극히 헌신적이며, 

모든 사람과 사물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 있으므로

영적 지도란 것에도 집착하지 않는다. 

뿌리가 깊기 때문에  아주 높이 자라나서  꽃과 열매가 하늘에 만발할 정도이다.


43그리고. 하느님 안에 깊이 숨어 있어서 

세상 사람들은 이 영혼을 거의  혹은 전연 알아 보지 못한다. 

하느님의 뜻이 자신 내부에 그를 흡수하고 계시기에 

오직 예수님만이 

이 부드러운 피조물의 주인이요  생명이며  성덕의 형이 되실 뿐이다.


44 그는 아무것도 자기 것으로 소유하지 않고  모든 것을 예수님과 공유한다. 

그의 정열은 곧 하느님의 뜻이다. 

그의 특성도 예수님의 뜻이니, '피앗' 이 필생의 지 모이다.



* * * 


45 반면에, 

저 하잘것없는 고무풍선과도 같은 가짜 성덕은 끊임없이 변화를 탄다. 

그 풍선들이 부풀대로 부풀어  

많은 사람들이, 심지어 그들의 영적 지도자들까지도  사뭇 탄복할 정도로  

상당히 높은 공중을 날아다니는 듯 하지만, 

머지않아 이 사람들은 환멸을 느끼게 된다.


46 하나의 수모,  

자기 아닌  다른 이에 대한 영적 지도자의 한 호의만으로도 

이 풍선들의 바람이 빠지게 하기에  충분한 것이다. 

그들이  그것을 도둑맞은 무엇으로 보기 때문이니, 

그만큼 스스로를  그지없이 궁핍한 인간으로 여기는 것이다.


47 그러니 그토록 어리석은 것을 두고 찜찜해하다 보면  결국 불순종에 떨어지게 된다.

질투가 이 풍선들을 갉아먹는 좀이다. 

이것이 그들 행하는 선을 태워 없애면서  계속 공기를 소모하기에 

풍선이 쭈그러들어 땅에 떨어진다. 

떨어져서  더러운 흙투성이가 된다.


48 이때 이 풍선들의 성덕이란 것이 정체를 드러낸다. 

그 안에서 무엇을 볼 수 있겠는가?

의 외관 아래 숨은  자애심과 원한과 격정이다. 

그러니 그들은 악마의 노리개가 된 자들이라고 일컬어질 근거를 주는 셈이다. 

그들의 성덕이라는 것 중에서 

외관상 덕행로 포장된 숱한 결점들을 빼고 나면  남는 것이 하나도 없으니 말이다.



49 하지만 이에 대해서 누가 다 말할 수 있겠는가? 

홀로 예수님만이 이 거짓 성덕의 더없이 나쁜 폐단을 알고 계시고,

거짓 신심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건전한 기초가 없어서 아무런 열매를 맺지못하는, 

이른바 독실한 삶이란 것의 악폐도 알고 계신다.

이 가짜 성덕들은 열매를 맺지 못하는 포도나무 - 모의 영적 포도나무들이어서 

사랑하올 예수님으로 하여금 얼마나 주 물을 흘리시게 하는지 모른다.


50 그런 이들은 사회의 반감을 사고, 지도자와 가족의 골칫거리가 된다. 

모든 사람에게 해로운, 유독한 공기를 가져오는 자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 * * 



51 그러니 하느님의 뜻 안에서 사는 영혼들의 성덕과는 얼마나 다른지! 

이 영혼들은 예수님의 환한 미소이다. 

모든 이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고  심지어는 지도자들에게서도 떨어져 있는 그들에게는

오직 예수님만이 전부이기에  

아무도 그들 때문에 속을 태우지 않는다. 

그들이 소유하고 있는 공기는  누구에게나 은혜로운 방향(芳香)을 풍기고, 

그들이 곧 모든 이의 질서와 조화가 된다.


52 이 영혼들 세심하게 지켜주시는 예수님이 

바로 그들이 행하는 모든 것의 행위자요, 목격자이시다. 

그들에게는 

그분의 조정과 지배를 받지 않는 심장 박동이나 호흡, 또는 생각이란  단 한 가지도 없다.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뜻 안에 어찌나 깊이 빨아들이시는지 

자기가 아직 이 유배의 땅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조차  

거의 기억하지 못할 정도가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