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몸을 당신께 바치오니
세상 자체가 우리의 끝간 데는 아니다.
지금 보는 것은 갓 시작이다.
그것을 발전시키고, 훗날에도 세상을 볼 것이다.
세상이 우리의 끝간 데라면 세상이야말로 불가해한 것이요, 철천지 원수가 아닐 수 없다.
세상이 우리의 종착역이요, 고달픈 인생살이가 이승에서 끝장난다면
세상을 머리에 떠올리고 만들고 움직이시는 그분도
범죄자들의 명단에 주저없이 올려야 마땅할 것이다.
거리의 자동차 사고,
한 사나이에게서 생계를 유지하고 삶을 이루어갈 재간과 기술을 일순에 빼앗아버리고,
아름다운 처녀의 얼굴을 흉측하게 뭉개버리는 사고가 생긴다고 이상할 게 무엇인가?
정신병원에 가보라. 거기서 형편없이 일그러지고 비틀린 군상들을 보노라면
방금 말한 자동차 사고는 아무 것도 아님을 알 것이다.
군사 독재정권이 산에서 잡아온 반란군을 며칠 밤을 새워가며 고문한다해서
스캔들이 될 것까지는 없지 않은가?
몇 달 걸려 혹은 몇 년 결려 암으로 서서히 죽어가는 사람들에게
대자연은 얼마나 잔학한 고문을 하고 있는지 아는가?
그것은 왜 마음에 걸리지 않는가?
그러니...세상이 우리의 끝간 데요,
우리의 가공할 인생살이가 전부라면
이 세상과 인생살이를 정당화해줄 이치는 아무 데도 없는 것이다.
나는 바라지도 않았으면서 역사의 이 소용돌이속에 내던져졌고,
시편 작가의 말마따나 "고생과 슬픔에 젖은" 인생을 살아야 하는 그 동기를
내게 설명해줄 논리는 없는 것이다.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이 지독히 미완성 상태이고
불가해하며 잠정적이고, 괴롬에 차 있고 멋대로 돌아가고 있다.
따라서 이 세상이 전체의 일부요, 연연히 이어나갈 시간의 한 토막이며,
'눈에 보이지 않는 저 세상' 이 출현키 위해
바야흐로 태동하는 시초에 불과하다고 생각지 않는 한,
우리는 하느님을 재판정에 몰아세우고 기탄없이 고발할 수밖에 없다.
그 어른께서 이러저러한 악행을 저질렀다고,
지진이 일어날 만큼 땅을 허술하게 만들었고,
하늘이 가난한 어부들의 오막살이를 날려보낼 만큼
미쳐 날뛰게 놓아 두었다고 고발하는 것이다.
현실, 우리 인간의 눈에 비쳐 보이는 현실 앞에 서면,
양자택일의 길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이 세상이 미치광이 아비가 낳은 퇴화된 자식이거니 하여 세상을 저주하거나,
아니면 하나의 신비이거니 하여 세상을 받아들이거나 둘 중 하나다.
내 안에 거처하시는 하느님의 영(靈)은
세상을 하나의 신비로 여기고 받아들이라고 일러주신다.
끊임없는 음성으로 그 말을 반복하고 증언한다.
그리고 나는 내 형제들에게 그 말을 되들려주고 증언하는 것이다.
"그렇다. 하느님은 우주의 주님이시다" 라고 증언하는 것이다.
바다에 파도가 미친 듯이 까불어도 그 어른은 여전히 주님이시다.
내가 괴롬을 당하고 눈물을 삼켜야 해도 그 어른이 주님이신 것은 사실이다.
태풍에 우리 집이 무너져도 그 어른이 주님이신 것은 어쩌지 못한다.
내게 죽음의 시간이 닥쳐도 그 어른이 주님이심은 부인하지 못 한다.
죽음의 순간은 비로소 나에게 사물을 이해하도록 설명해준다.
사람의 아들인 내게는 죽음의 순간이 도대체 알지 못할 수수께끼지만,
하느님의 아들인 내게는 그 순간이 하나의 빛이 될 것이다.
인생의 사리를 깨달은 인간이 거기 죽어간다.
전우주의 중력을 받고 있는 원자처럼, 사랑의 무한하리만큼 높은 온도에 가열된 원자처럼,
하느님의 영원 속으로 폭발해 들어가는 존재가 거기 죽어간다.
죽음은 부활의 문이다.
죽음은 충만한 생명으로 들어가는 입구이다.
죽음은 반드시 밝혀져야 할 가장 커다란 비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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