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몸을 당신께 바치오니
"하느님은 나의 아버지시다."
이 짤막한 구절은 인간이 바라는 가장 중대한 예언이며,
인생의 신비에 던져지는 모든 물음의 답변이다.
지구라는 이 조그마한 혹성에 등장한 생명의 신비에 대한 답변이다.
이 예언은 온 우주 위를 맴돌고, 모든 물음에 답변을 주며, 온갖 갈증을 풀어주며,
모든 소망을 채우고, 인간의 온갖 기다림을 정당화시키고, 모호한 세계를 똑똑히 밝혀 보인다.
인간이 무엇인지 가르친다.
이 예언을 믿는 자 광명 중에 있고, 믿지 않는 자 어둠 속에 있다.
이 예언에 희망을 거는 자 기쁨 중에 있고, 희망을 두지 않는 자 근심 속에 있다.
이 예언을 사랑하는 자 생명 중에 있고, 사랑치 않는 자 죽음의 그늘에 묻혀 있다.
인간의 생명이 하느님의 영원한 생명에 흘러들어가지 못할진대
이승의 인간 생명이 무슨 의미를지닐 수 있으랴?
인간의 운명이 허무로 돌아가는 것일진대 만물의 영장이라는 칭호는 무슨 소용이 있으랴?
생명의 논리가 죽음으로 결론지어진다면?
빛의 기쁨이 영원한 어둠의 장벽 속으로 갇힌다면?
'사랑'의 불꽃이 영겁의 빙판 속에 사그라진다면?
과연 그렇게 될 수 있을까?
아니다!
가난한 인생의 마음이 늘 꿈꾸는 바가 있다.
“하느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삼으시기로 미리 정하신 것입니다“(에페1,5)
라는 분명한 말씀대로,
하느님이 아버지이심을 알리는 예언에는 우리를 살리는 힘이 있고, 기다리게 하는 용기가 깃들어 있다.
하늘 아래 모든 인생이,
시간을 타고 오는 모든 인생이...
그렇다. 인간은 지상에 출현하면서부터 이미 자녀가 되기로 '부름 받은' 몸이었다.
자기 내심으로부터 그 부르심을 느껴 왔으며, 그것을 망각하는 일이 별로 없었다.
인간은 "타고난 그리스도인"이라고 한 테르툴리아노의 말은 일리가 있다.
그리스도의 메시지를 받아들이게, 그 내용을 알아듣게 생겨난 인간이다.
그리스도의 메시지란 요컨대
“하느님은 나의 아버지시다. 사람아, 하느님은 그대의 아버지시다.“ 라는 것이었다.
예수께서는'위에서 오신 분, 다 아시는 분'의 권위를 갖고 증언하셨다.
아버지의 사랑에서 온 지존한 칙서를 반포하시고,
세세에 하느님의 감추어진 신비를 밝혀 보이셨으나 그것은 이미 통용되던 진리였다.
그 지존의 칙서가 인간의 마음에 이미 새겨져 있었고,
영원의 신비가 인간의 본심에 깃들어 있었다.
나는 가난한 사람들과 꼴찌 인간들의 소망에 담겨진 정연한 논리 속에서 그것을 해득하였다.
나는 갠지스 강가에서 인도인들이 보이는 침묵의 명상과 그 인내를 보고서 그것을 감지하였다.
저 사하라의 사막인의 눈에서, 피조물의 그토록 가냘픈 내일에도
"인카발라" (하느님의 뜻이라면) 라는 한마디에 희망은 거는 신뢰 가득한 눈빛에서
나는 그것을 읽었다.
이처럼 인간은 비록 희미하게나마 자신의 운명을 직관해왔다.
그 직관에서 살아갈 용기와 끈기있게 기다릴 힘을 얻어냈던 것이다.
하느님이 나의 아버지시라면 살 만한 가치가 있는 까닭이다.
나를 마중나오실 분이 그 어른이시라면 기다릴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 볼 만한 까닭이다.
그렇다. 하느님이 나의 아버지이실진대 나는 마음을 편히 갖고, 평안히 살 수 있다.
살든 죽든, 이승이든 영원이든 속 편하다. 나의 안도감은 얼마나 든든한 것인가!
“2천 년대에 가면 세계 인구가 70억을 돌파할 텐데 누가 우리를 먹여 살릴 것인가?”라고 공포에
질려 한탄한다는 것은 하느님께 대한 불경이다.
나의 공포에 비겨 그 어른의 곡식 창고와 그 어른의 흉금은 너무도 넓고 너무도 자상하다.
하느님이 나의 아버지이실진대
“왜? 왜? 왜?”라고 지겹도록 되내이지 않겠다.
현실감을 갖고 신뢰에 잠겨 “님은 아신다... 님은 아신다... 님은 아신다...”고 말씀드리겠다.
하느님이 나의 아버지이실진대
추수가 푸짐하다해서, 종자가 좋고 거름이 좋았다고만 돌리지 않겠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소서" 라고 기도를 가르쳐주신 그 어른의 덕으로 돌리겠다.
그래서 일기가 불순하고 난리가 나도 평화롭고 용감하게 버티겠다.
하느님이 나의 아버지이실진대
하루의 사건들을 우연에 돌리지 않고,
애오라지 그 어른의 사랑의 손길이려니 하겠다.
하느님이 나의 아버지이실진대
자연의 재난이 닥친다고 돌연 "믿지 않는 사람"으로 둔갑하지 않겠다.
그 어른 사랑과 그 역경을 결부시켜 보려 애쓰거나,
나를 괴롭히는 고통과 하느님의 존재를 연결시키지 않겠다.
하느님은 하느님이시다. 우주의 주님이시다.
지진이 나고 강들이 범람해도 그 어른이 삼라만상의 주님이심은 여전하다.
추위로 내 손발이 얼고, 자동차 사고로 한평생 자리에 눕는 신세가 된다 해도
그 어른은 여전히 아버지이시다.
하느님이시고 아버지시라는 그 말은 당신 아들인 나에게는 이런 뜻을 갖는다.
그 모든 역경에도 불구하고
그 어른은 우리가 악이라 일컫는 그것을 선으로 바꾸실 힘이 있고,
우리에게 신비롭고 이해되지 않던 사건들을
당신 자녀들의 선익으로 바꾸실 능력이 있으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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