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섭리에내맡김

성경제2장 -04 하느님은 역사 속의 위인들과 성경 안에서 그러셨던 것처럼 신비롭고 진실하게 그리고 찬양받으실만한 방법으로 아주 평범한 사건을 통

은가루리나 2016. 8. 11. 18:14

 

 

《하섭내 제2장 거룩함이 끊임없이 샘솟아나는 원천인 현순간을 감싸안음에 대하여

-04 하느님은 역사 속의 위인들과 성경 안에서 그러셨던 것처럼
신비롭고 진실하게 그리고 찬양받으실만한 방법으로
아주 평범한 사건을 통해 우리에게 당신 자신을 드러내신다.》

 

 

제 2 장

거룩함이 끊임없이 샘솟아나는 원천인 현순간을 감싸안음에 대하여

04

하느님은 역사 속의 위인들과 성경 안에서 그러셨던 것처럼
신비롭고 진실하게 그리고 찬양받으실만한 방법으로
아주 평범한 사건을 통해 우리에게 당신 자신을 드러내신다.



하느님에 관해 기록된 말씀은 신비들로 가득합니다.
그리고 이 세상 사건들 안에 표현된 그분 말씀 역시 그렇습니다.

이 두 가지 책은 참으로 봉인된 것이며,
이 두 권의 책과 관련하여
"글자는 사람을 죽인다"(2고린 3, 6)라는 말씀을 들을 수 있습니다.
("문자는 사람을 죽이고 성령은 사람을 살립니다.")


하느님은 믿음의 중심이고 믿음은 그림자들의 소용돌이입니다.
이 그림자들이 나타나 하느님의 모든 작용하심을 가리웁니다.

말하자면 그분의 모든 말씀과 행위는
구름에 가려진 태양으로부터 비춰 나오는 흐릿한 햇살에 불과합니다.

육안으로 우리는 자연의 태양과 빛을 바라볼 수 있지만
하느님을 바라보고 그분의 업적을 알아내고자 하는 영혼의 눈은
닫혀 있습니다.

거기에는 빛 대신 어둠이 있어
안다는 것은 무지함이며,
우리가 바라보기는 하지만 그것에 대해 이해하지는 못합니다.


성경은 훨씬 더 신비로우신 하느님에 관해 쓰여진 말씀이며
또 역사적 사건들은 숨겨지고 알려지지 않은
하느님과 관련된 이해하기 힘든 말씀입니다.

이것들은
어둠과 그림자라는 태양에서 떨어져 나온 불투명한 물방울입니다.
모든 물방울과 실개천들은 그 근원의 발자취를 전해줍니다.

천사들과 아담의 타락, 성조시대의 홍수 사건에서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인간들의 사악한 마음과 우상 숭배는
성경 안에서 참으로 가장 신비스런 기사에 속하는 것으로
창조사와 홍수로부터 지금까지 세상을 보존해 준 이야기를
성조들은 알고 있었으므로
그들의 자손들에게 들려주었습니다.


늘 지배적이고 광폭한 죄악으로 온 세상이 거의 믿음을 잃어버렸을지라도
거기에는 메시아가 오실 때까지
우상 숭배와는 거리가 먼 몇몇 사람들과
줄곧 학대와 박해를 받던 소수의 믿는 이들의 무리가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께 베푼 대접을 눈여겨보십시오.
그리고 묵시록에 나오는 재앙을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그러한 것들은 하느님의 말씀입니다.
그것은 그분이 계시하신 것입니다.
이런 무시무시한 신비의 결과는 세상 끝 날까지 계속될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말씀은 우리에게
하느님의 지혜와 권능과 선하심에 대해 가르치는 생명의 말씀입니다.

이러한 신적 속성(屬性)들은
역사의 모든 사건들을 통해 드러나고 있습니다.
만물은 이런 진리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그것을 두 눈으로 바라볼 수 없기 때문에
신앙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왜 하느님은 이슬람교도들과 이단자들이 커나가는 것을 보고
그대로 방치하셨을까요?

그들은 하느님의 무한한 완전성(完全性)을 선포합니다.

이러한 선포는
파라오와 그의 모범을 따랐던 모든 불신앙인들의 유일한 목표입니다.

우리는
이런 역사적 사실들과 인물들을 상례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이런 일들 속에서 하느님의 신비를 알아채려 한다면,
두 눈을 감고 이성적으로 합리화하려는 것을 멈추어야 합니다.



주님은 일반적으로
역사의 큰 사건들을 통해 모든 사람들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모든 개혁은
당신의 신비로운 행위를 묻는 사람들과
마음 안에 강풍과 폭풍을 일으키는 당신 섭리의 파도에 불과합니다.

주님은 매순간 사람들 가운데서 일어나는 사건을 통해
각 사람들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이 모든 사건들 속에서 사람들은
하느님의 목소리를 듣고 그분 말씀의 신비로운 모호함을 존경하기 보다는,
이것들 안에서
물질적인 사건들이나 기회의 결과 내지는 순전히 인간적 움직임들만을
바라봅니다.

그래서 그들은 만사에 흠을 잡으며
하느님 말씀의 계속적인 표현을 변화시키려 하고
절대적인 자유를 스스로 부여하여 모든 점에서 극단적으로 처신하며
그것이 성경 안에서 하나의 쉼표와 관계를 맺고 있는 경우
가공할 만한 위반 행위라고 여깁니다.


"이는 주님의 말씀이다" 라고 말하는 그들은
"성경에 쓰여져 있는 모든 것이 진실" 이라고 확신합니다.

성경에 이해가 짧을수록
그들은 그것을 공경하고 하느님 지혜의 심오함을 경배합니다.
이것은 대단히 옳고 또 합당한 행위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이 종이에다 잉크로 쓴 말씀이 아니라
우리가 매순간 고통을 받으면서 행하고 있는 것을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
무슨 이유로 우리는 그분께 똑같은 관심을 드러내지 못하는 것일까요?

왜 우리는 이 모든 것에서
그분의 진리와 선성(善性)을 받들어 모시지 못하는 것일까요?


우리는 그 어떤 것에 대해서도 흡족해 하지 못하고
모든 것을 비판적으로 바라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신앙으로써만 가늠할 수 있는 것을
감각과 이성에 의지하여 판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신앙의 눈으로 성경에 쓰여진 하느님의 말씀을 읽으면서도
말씀이 그분의 활동으로 우리에게 다가올 때는
신앙이 아닌 다른 눈으로 그것을 읽는 잘못을 저지르고 있습니다.

다른 눈을 가지고 그것을 읽게 된다면 그것은 크게 잘못된 것입니다.





moowee 13.04.26. 01:29


"그 가운데에는 더러 알아듣기 어려운 것들이 있는데,
무식하고 믿음이 확고하지 못한 자들은 다른 성경구절들을 곡해하듯이
그것들도 곡해하여 스스로 멸망을 불러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이 사실을 알고 있으니,
무법한 자들의 오류에 휩쓸려 확신을 잃는 일이 없도록 주의하십시오.

그리고 우리 주님이시며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받은 은총과
그분에 대한 앎을 더욱 키워 나아가십시오(2베드3,16-18)."


"내가 그대들에게 쓸 말은 많지만 종이와 먹으로는 쓰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보다는 내가 그대들에게 가서 얼굴을 마주하고 말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의 기쁨이 충만해질 것입니다(2요한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