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섭리에내맡김

제2장 -06 날마다 드러나는 하느님의 일은 예수 그리스도가 유대인들에게 취급받는 식으로 그렇게 많은 그리스도 신자들에 의해 자주 다루어지고 있다

은가루리나 2016. 9. 1. 22:24




[《하섭내 제2장 거룩함이 끊임없이 샘솟아나는 원천인 현순간을 감싸안음에 대하여

-06 날마다 드러나는 하느님의 일은 
예수 그리스도가 유대인들에게 취급받는 식으로 
그렇게 많은 그리스도 신자들에 의해 자주 다루어지고 있다.》



제 2 장


거룩함이 끊임없이 샘솟아나는 원천인 현순간을 감싸안음에 대하여



 06 


날마다 드러나는 하느님의 일은 

예수 그리스도가 유대인들에게 취급받는 식으로 

그렇게 많은 그리스도 신자들에 의해 자주 다루어지고 있다.





   이 세상에는 불신앙이 대단합니다. 

왜냐하면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하느님에 대해 무가치하다고 말하며, 

가장 무능한 사람에게도 감히 하지 못할 방법으로 

하느님의 활동을 계속해서 비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참으로 하고 싶은 것은 그러한 일을 제지하는 것이기에, 

이것은 우리의 유한한 이성이 적합하다고 여기는 

규칙과 범위를 따르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달라지려고 하면서도 불평과 푸념밖에 늘어놓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유대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대접한 방법을 보고 놀라워합니다.


오! 내가 하느님의 사랑과 찬송하올 그분의 뜻 

그리고 오류를 범치 않는 그분의 행위들을 생각할 때, 

나는 그분이 그런 식으로 대접받았다는 것에 대해 믿을 수가 없습니다.


하느님의 뜻이 어찌 비합리적일 수 있단 말입니까? 

그분의 뜻이 어떻게 틀릴 수 있단 말입니까? 

그렇지만 우리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내가 관여할 게 조금 있다. 

내가 필요로 하는 것이 있단 말이야.

그런데 나는 내가 원하는 것을 빼앗기고 있어. 

나의 이웃은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을 방해하고 있단 말야.

그러니 이것은 부당하지 않은가? 

더욱이 내가 건강해야 할 때에 나는 병이 들고 마니."




   하느님의 뜻은 우리가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이고, 

그대에게 주어지지 않는 것은 그대에게 아무런 소용이 없음을  

이 책을 쓰는 저자는 일러두고자 합니다. 


나의 동료들이시여, 여러분에게 부족한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좌절, 격변, 쓸데없는 마음의 동요 

그리고 성가신 일들이라고 일컫는 체험들이 무엇인지를 안다면 

아마도 그대들은 대단히 부끄러워할 것입니다.


이런 것들에 대해 여러분이 하고 있는 불평은 

- 비록 그대에게는 해당되지 않을지라도- 단지 원망에 불과합니다.


하느님의 뜻에 의하지 않고서는 그 어떤 것도 그대에게 일어날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분의 사랑하는 자녀들은 그것을 원망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것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당신이 지상에 살아 계실 때, 

어떤 유대인들은 당신을 마귀 들린자로, 

또 어떤 사람은 당신을 착한 사마리아 사람으로 여겼습니다(요한 8,48). 


이제 오늘의 우리는 찬송하올 당신의 뜻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합니까?


세기들을 뒤로 멀리하면서 살아 계시는 주님, 

모든 찬미와 영예를 항상 받으셔야 마땅할 주님을 두고 

우리는 도대체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요?


세상 창조 때부터 지금까지, 아니 세상 끝 날에 이르기까지 

하느님의 거룩한 이름이 그 모든 찬미를 받으시기에 합당치 않은 때가 

단 한 순간이라도 있겠습니까?


모든 시대의 매순간에 걸쳐 일어나는 모든 사건을 통해 찬양받는 것은 

당신의 이름입니다. 


그 이름은 모든 것을 거룩하게 합니다.


당신의 뜻이 우리를 해치리라고 우리가 감히 상상이나 할 수 있겠습니까? 

저는 당신의 이름을 두려워해야 합니까? 

아니면 당신의 이름을 피해 도망쳐야 합니까?


제가 제 위에 있는 당신의 활동을 두려워하고 있다면 

이것보다 더 나은 것을 어디서 찾아볼 수 있겠습니까?


결국 그것은 하느님의 뜻이 일하시는 것입니다.




   삶의 매순간마다 마음 깊숙한 곳에서 말씀하시는 하느님께 

우리는 어떻게 귀를 기울여야 하겠습니까? 


우리는 제각기 정상적인 감각과 적절한 지혜를 갖추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두 가지로 

하느님 말씀의 진리와 선을 제대로 알아들을 수 없단 말입니까? 

그것들은 너무나 미약하기에  하느님의 진리와 마주할 수 없단 말입니까?


그렇다면 인간 이성이 하느님의 신비에 의해 한계점에 다다른다는 것을 

우리는 그저 놀라워하고 말아야합니까? 



하느님이 말씀하실 때, 그분은 신비로운 말씀들을 사용하십니다.


그런데 이 말씀들은 우리가 이성적 인간이라는 그 모든 것을 

일격에 죽음으로 이끄시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의 모든 신비들은  

우리의 신체 감각과 지성을 파괴시키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신비들은 마음에 생기를 불어넣지만, 

그 나머지는 어리둥절케 합니다.



이와같이 하느님은 단번에 죽음을 가져오고 생명을 주시기도 하지만, 

죽음의 고통이 예리하면 예리할수록 

그만큼 더 강렬하게 생명은 영혼 안에 흘러 들어갑니다.


비가 어두우면 어두울수록 신비의 빛을 더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만큼 단순한 영혼은 

전혀 드러나지 않는 분처럼 보이는 하느님을 발견하게 됩니다. 


만일 우리가 신앙의 삶을 영위하고자 한다면 

우리의 감각과 대항하여 끊임없이 싸워야 합니다.






하섭내 2장6번 하느님의활동은지금도여전히비난받고있다.m4a.av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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