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신학

힐데가르트 성녀의 치유법 "치유"-기쁨이라는 생명력

은가루리나 2016. 9. 10. 22:37


기쁨이라는 생명력

 

힐데가르트 성녀가 직관한 것 가운데 영혼의 목소리를 전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내가 머물 곳인 나의 육체여!

네 안에 머물 수 있어서 진심으로 기쁘다!"

 

영혼은 육체 안에 있는 것을 기뻐합니다.

이 기쁨은 우리의 생명력이며, 자연의 힘을 다른 형식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봄에 만물이 초록으로 물들기 시작할 때면, 

움트는 만물과 함께 우리의 영혼도 기쁨으로 뛰어오를 것입니다.

 

성녀는 우리가 그저 겉으로만 기뻐하게 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 안에 내재된 생명력을 통해 기쁨에 이르는 길을 보여 줍니다.

우리 영혼의 밑바닥에 항상 준비되어 있는 자연의 힘은 기쁨을 질적으로 충만하게 채울 것입니다.

우리가 대자연의 아름다움에서 기쁨을 느끼거나 아름다운 음악에 도취되어 기쁨을 느낀다면,

혹은 다른 사람과의 만남으로 기쁨을 느낀다면,

그것은 이미 우리 안에 있는 기쁨이 일깨워졌음을 의미합니다.

 

기쁨은 이미 우리 안에 내재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종종 그 기쁨의 원천을 까맣게 잊고 살아갑니다.

그러다가 다시금 눈을 크게 뜨고 귀를 열어 세상과 마주하게 되면,

기쁨이 우리의 의식意識에 드러납니다. 이 세상은 기쁨으로 충만해 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의 감각을 세상을 향해 최대한 열어야 합니다.

그로써 우리의 감각이 기쁨을 알아보고 자신의 것으로 삼을 수 있습니다.

 

예컨대 좋은 음식은 우리가 그것을 섭취할 때 비로서 그에 따른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유용한 생필품들도 우리의 육체와 영혼을 기쁘게 해 줄 수 있습니다.

힐데가르트 성녀에게는(거친 황야에서 자라나는)잡곡이 기쁨을 주는 생필품이었습니다.

평범한 우리는 이 같은 기쁨을 다만 우리가 좋아하는 음식을 섭취할 때 느낄 수 있습니다.

이때 스스로 절제할 수 있도록 수양된 자만이 제대로 줄길 수 있습니다.

힐데가르트 성녀가 언급했듯이 수양은 항상 기쁨을 누릴 수 있는 기술을

몸과 마음으로 습득하는 것입니다.

 

만일 케이크 한 조각을 즐길 수 있다면, 나는 그것을 먹는 순간 기쁨으로 가득 찰 것입니다.

그러나 나 자신을 제어할 수 없다면, 케이크 다서 조각을 가지고도 즐거움을 느낄 수 없고,

그저 짜증만 날 수도 있습니다.

수양은 내가 누릴 수 있는 기쁨을 잃어버리지 않게 합니다.

 

힐데가르트 성녀는 성적 결합도 인간에게 기쁨의 원천을 작용한다고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런 신체적인 접촉이 인간의 본질에 일치할 때에만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성녀는 그러므로 인간의 전인성全人性안에서, 인간의 순수하고 명료하고 총체적인 삶과

연계된 맥락에서 기쁨을 가르칩니다.

성적결합은 자연의 힘의 일부분으로 우리에게 기쁨을 주는 요소 가운데 하나입니다.

성녀는 성적 결합에 관해 이렇게 적었습니다.

"나를 지배하는 그 환희의 순간은 순결하지 못하다는 비방으로 인해 사라지는 것이 아닐뿐더러,

무절제하다는 오명으로 인해 식상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만일 인간이 식욕과 성욕을 하느님의 창조 의지에 일치시킨다면,

그것을 통해서도 항상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러한 기쁨은 과연 그를 건강하게 만들고, 그런 욕구는 결국 건강의 원천이 되는 셈입니다.

힐데가르트 성녀는 이렇게 말합니다.

"인간이 자신의 순수한 감정을 회복하면,

건강한 감정을 담아내는 인간의 육체도 자연히 회복됩니다."

 

성녀는 기쁨을 무엇보다도 두 신체 기관을 (예를 들어 심장과 간肝처럼)

연결해서 설명하길 좋아했습니다.

우리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슬픔과 체념을 정화하는 일은 우리에게 우선적인 과제입니다.

그런 다음 심장은 기쁨을 향해 열어 두어야 합니다.

그것은 심장에도 좋습니다. 또한 그래야 건강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성녀는 "심장과 함께 간도 그런 기쁨을 받아들여서 계속 그 안에 기쁨이 머무르게 해야 합니다.

마치 우리의 위장이 음식을 받아들여서 온전히 소화할 때까지 붙들고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성녀가 이때 간을 언급한 것은 흥미롭습니다.

우리는 놀라거나 무모한 행동을 할 때 '간이 콩알만 해졌다'라든가, '간이 부었다'라고 표현합니다.

이 같은 숙어는<독일어의 경우 '화가 치밀어 오르다'는 뜻으로 '간에 이(벌레)가 뛰어다니다는 표현을 씁니다>

간이 우리의 중요한 감정과 연계되어 있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화 혹은 분노가 간에 영향을 줌으로써 결국 우리가 쉽사리 병들게 되는 것도

그만큼 서로 연관성이 깊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만일 기쁨이 피상적인 데 그치지 않고 심장과 간에까지 파고들 정도로 강하게 작용한다면,

분명 건강에 도움을 줄 것이고 우리는 건강한 삶을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그 때문에 우리는 기쁨을 향해 우리 자신을 활짝 열어,

그때마다 우리의 영혼과 심장과 온몸에 기쁨의 기운이 들어와 머물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