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신학

고행 금욕에 대하여

은가루리나 2016. 9. 12. 01:20


moowee 11.11.30. 12:41



이 준주성범은 참으로 훌륭한 영신서적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과거 스토아 신학의 영향으로 

육체를 멸시하는 금욕주의가 많이 스며 있는 것이 흠이 아닌가~~


그리고, 

하느님께 모든 것을 내맡김하여 하느님의 은총이 크게 작용하시게 하는 측면보다

인간 스스로의 의지와 노력과 인내와 고행으로 덕을 닦아 성덕에 이르는 측면을

많이 강조하고 있는듯 느껴집니다.


내맡긴 영혼들은 이를 잘 분별하여 읽으시면 좋겠습니다. ^ ^




moowee 12.06.07. 14:16 



우리 교회 안에는 아직도 고행을 통하여 덕을 쌓아야 한다는 

"고행주의" 사고가 잔재하고 있습니다.


고행주위는 아마 역사적으로 

얀세니즘의 영향과 불교 내지는 힌두교적인 수덕 방법의 영향이 컸을 겁니다.


저도 어린 시절, 소신학생 때는 훌륭한 신학생은 고행을 즐기고,

고행은 하느님께 나아가는 지름길이라 여기기도 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어느 정도의 고행은 영적 생활에 큰 성장을 주는 것은 사실이지만,

고행 내지는 금욕주의는 

특별한 소명을 받은 소수의사람들에게만 해당되는 일일 것입니다.


"그는 우리의 병고를 메고 갔으며 우리의 고통을 짊어졌다."(이사53,4)




moowee 12.06.07. 14:24



"그가 찔린 것은 우리의 악행 때문이고 그가 으스러진 것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다.

우리의 평화를 위하여 그가 징벌을 받았고 그의 상처로 우리가 나았다."(이사53,5)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시어 우리를 고통과 죄악에서 해방시켜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당신만 믿고 뜨겁게 사랑하면서,

기쁘고 즐겁고 행복하게 이 세상을 살아가기를 바라십니다.


그런 삶을 살아가기 위한 가장 탁월한 방법이 

자신의 모든 것을 하느님께 위탁하고 사는 것입니다.


하느님께 모든 걸 위탁하기만 하면, "불행 끝 행복 시작" 입니다.




moowee 14.02.27. 15:07 



인간의 性(sex)은 절대 惡의 근원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분명 男性으로 태어나셨고  그래서 남성을 지니고 있었고,

성모님은 분명 女性이셨기에  여성을 지니고 계셨고 

두 분 다 태어나신 그 조건에 따라서 살아가셨던 분들이십니다.


우리의 어린시절 잘못된 교육으로 

<거룩함>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 신앙인이 많은 것 또한 사실입니다.

거룩한 성인, 성녀라고  화장실에도 안가고 이슬만 먹고 사신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그분들도 우리들처럼  인간으로서 <性慾>도 지니신 분이셨습니다. 


인간의 성욕은  하느님의 창조사업의 가장 중요한 도구입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실지 모르겠습니다만,




moowee 14.02.27. 15:17



moowee 제 생각에는 <예수님이 완전한 한 인간, 남성으로 이 세상에 오셨다면>

분명, 예수님도 우리처럼 <성적인 욕구>를 느끼셨을 겁니다.


거룩한 수도복을 입고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끊고 봉쇄수도원에서 살아가시는

수녀님, 수사님들이라고 

<성적인 욕구>까지 완전히 다 반납하고 살아가신다고 생각하십니까?

거룩한 수도자들이 거룩한 수도복을 걸치면 

그분들의 性이 저절로 하늘로 사라집니까? 


제가 어떤 그 자매님께 드린 말씀은 대충 다음과 같았을 겁니다.

(너무 오래된 일이라)

자매님! 모든 남성들이 다 고추가 있듯 예수님도 마찬가지셨고,

<고추를 생각하는 것을 너무 죄악시하지 말라>고 말입니다.




moowee 14.02.27. 15:32 



<마태5,28>

"음욕을 품고 여자를 바라보는 자는 누구나 이미 마음으로 그 여자와 간음한 것이다."

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듯이 

"음탕한 욕심" 없는 생각은  저는 죄라고 생각지 않습니다.


오히려 <인간의 性>은 <하느님의 거룩한 선물이요, 거룩함의 도구>입니다.

우리 신앙인은 성을 잘못 사용하는 것을 죄악시 해야지

인간의 성 그 자체를 죄악시 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우리에게 각자의 성을 주신 하느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려야 할 것이며,

무엇보다 하느님이 맺어주신 모든 부부는 성실한 부부관계를 통해,

부부애를 완성해 나가는데 최선을 다해야 하겠습니다.


가끔 보면 <부부관계가 없는 것>을 자랑거리로 생각하는 분들이 계시는데

그것은 크게 잘못된 생각입니다, 안 그렇습니까?




이해욱프란치스코 16.01.07. 09:18  



사랑하는 식구 여러분!

이 기회에 여러분께 말씀드립니다.


여러분 중에 이미 너무나 잘 경험한 분도 계시겠지만,

우리가 육체를 지니고 살아가는 동안에  

육체적인 여러 질병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서 심리적이고 정신적인 질병도 겪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 사실은 누구나 자연스레 인정하고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유독 성적인 문제는 터부시? 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우리 한국 문화 자체가 오랜 세월 유교문화에 젖어왔기 때문이 아닐까요? 


제가 답을 해 드리기가 어려운 문제도 있겠지만

혹시, 성적인 면에서 상담을 원하는 분이 계시다면 

저에게 쪽지나 메일 주시기 바랍니다.




moowee 16.09.05. 16:16 



jubilare" 를 라틴어 사전에서 찾아보면, 

"소리쳐 부르다, 노래하다, 환희에 넘쳐 외치다, 환호하다, 

★기뻐 날뛰다.★"라고 적혀 있다.


★기뻐 날뛰는 것★ 이 바로 < 춤 >입니다.

靈肉이 하나되어 추는 춤입니다.



<자, 그렇다면 우리가 하느님께 어떻게 찬양드려야 되느냐!

하느님께 어떻게 경배드려야 되느냐!


춤입니다. 춤을 춰야 돼요. 춤을 춰야 돼!


그 순간 벽아웃에서 선수들이 뛰어나와가지고 어떻게 했어요? 

펄쩍펄쩍 끌어안고 춤췄죠?

그 펄쩍펄쩍 뛰는게 바로 춤이예요. 춤추는 거. 너무 좋을 때 춤을 추는거예요.


★인간은 너무 행복할 때 춤을 추게 되어 있어요.★


하느님을 믿고 하느님을 느낄 때 인간은 극도로 행복합니다.

그때 춤을 추는거예요. > Fr. 황창연



★ 남녀가 서로를 믿고 사랑을 느낄 때 인간은 극도로 행복합니다.

그때 춤을 추는거예요.★ Fr. 까칠 무위




그때 靈肉으로 함께 추는 춤이 무엇인지 아십니꺄?

부끄 부끄 부끄러워 말 못하겠심더~~~




5. 영성의 대가들(아우구스티노2) ★영 성


우리의 영원한 귀감, 영성의 대가들 (5) 아우구스티노 (하)


3-5 수덕 : 엄격한 금욕주의


아우구스티노는 근본적으로 엄격주의를 견지했다는 점에서 

예나 지금이나 비판을 받는다. 


그는 당시의 사회가 도덕적으로 퇴폐해 있었고 

또한 자신이 젊은 시절에 향락적 생활에 너무 깊이 빠져들어 있었음을 

절감했기에, 

개종을 하면서 그러한 악습으로부터 해방되고 유혹에 대항하기 위하여 

성스러운 열정을 가지고 엄격한 금욕자세를 취하고자 했다는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그의 개종이 마니교를 포기함으로써 이루어졌을지라도 

그의 영성에 마니교적 색조가 나타난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실체 대립의 이원론이 그것이다. 

바로 거기에 전부가 아니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영성이 나온다. 


예를 들면 

신의 이끌림에 굴복하든지 아니면 그것을 몰아내든지 하는 것이다. 

한편 수도생활에 대한 관념은 그러한 영성에 더욱 자극을 주었다. 

단호한 희생만이 그리스도를 따르려는 자유를 다시 찾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는 것이다.  


또한 개

종의 과정에서 만났고 도움을 받은 신 플라톤 사상이 그 안에 스며들어 

영성적인 발견과 이해를 통한 감각적인 것의 포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그에게 확신시켜 주었다


그의 금욕주의는 

애덕의 발전과 사목적 관심에 의해 어느 정도 조절되기도 했으나 

신비적 영감에 의하여 여전히 자극을 받았다.


아우구스티노는 개종하면서 금욕적인 생활 외에 

다른 어떤 형태의 삶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정도였다.  


그러나 그때까지 금욕을 실천한 어떠한 형태의 생활도 

(따라서 기존의 수도생활의 형태고) 따르려하지 않았다. 


결국엔 그가 새로운 형채로 변형시킨 것이기는 하지만, 

수도생활이란 형태를 통해서 그것을 수행하게 된다.


박재만 신부(대전 대흥동 본당 주임)




이해욱프란치스코  16.01.07. 09:38  



우리 교회에 팽배해 있던 금욕주의를 잘 나타내 주는 사건이

교부 오리게네스의 자기 거세 사건입니다.

그가 성인반열에 오르지 못한 이유도 바로 그 이유였고요.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태생인 오리게네스는 신학자이다.

철학과 문학적 소양도 쌓았던 오리게네스는 동지의 교리학교 일을 맡는다.

청빈하고 금욕적으로 생활하면서 

그리스도의 말을 따라 자기 스스로 거세하기도했다.


팔레스타인에서 설교하다 교회규율 위반으로 이집트로 가서 집필에 전념한다.

그 후에 팔레스타인 사제에 임명되지만 

교회관할상 문제로 교리학교에서 쫓겨난다.


[출처] 오리게네스|작성자 탐험가>




힐데가르트



힐데가르트는 '몸과 영혼이 하나'라는 신념을 더 굳혔다. 


후에 자신의 비전에서 힐데가르트는 

'하느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에 영혼만이 아니라 몸도 창조하신 것이므로 

몸도 하느님의 선물이며 

영혼의 적이 아니라 오히려 영혼이 살찌도록 돕는 것'이라고 하며, 


그러므로 몸은 잘 돌보는 것도 하느님께서 주신 덕인데 

지나치게 몸을 학대하는 극단적인 금욕은 

오히려 창조주가 주신 덕을 유지하는 힘, 겸손과 사랑을 잃게 하고 

평화로운 모습보다 분노에 싸인 모습을 보이게 한다' 고 밝힌다. 


12세기에 공공연히 널리 만연하던 

극단적인 금욕과 육체를 죄의 근원이라고 보는 태도를 

힐데가르트는 거슬러 균형을 잡으려고 하였다.






힐데가르트의 생애 -2.영성 



3. 몸의 영성:




인간이 되신 하느님, 하느님의 육화가 

육체에 대한 힐데가르트의 사상을 결정적으로 규정한다. 


토마스 아퀴나스와 달리 

힐데가르트는 하느님의 육화를 인간 원죄의 결과로 보지 않고 

영원으로부터 결정된 것이라고 본다.



'이미 영원으로부터 

그는 자신이 두르리라 생각한 살(육체)을 주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는 이를 뜨겁게 사랑하였다.'(LDO 183)


인간이 되신 분이 자신의 육체를 그렇게 사랑하였듯이 

인간의 영혼 또한 자신의 육체를 그렇게 사랑하며 그린다. 


창조의 세계 모든 것에 하느님의 숨결이 닿아 있어 하느님의 모습을 비추어 주듯이 

육체는 영혼을 비추어 준다.


'그러므로 

창조는 지혜(곧 하느님)의 겉옷이고 ... 육체는 ... 영혼의 겉옷이다.'(LDO 278)



중세에 빈번히 인용되던 성 아오스딩의 위계적인 이분법. 

곧 '육체-지상(현세)적인 원리'와 '영적-천상의 원리'를 구분하고 

후자를 우위에 두면서 현대엔 입증할 수 없는 근거로 

이를 성에까지 적용해서 남성을 여성의 우위에 두었던 내용:


'태초에 하느님의 뜻이 모든 피조물을 지배하시고 

영적인 창조물을 육적인 창조물보다, 

이성적인 것을 비이성적인 것보다, 천상의 것을 지상의 것보다, 

남성을 여성보다, 

부유한 이들을 필요한 이들보다 우위에 두셨다'



힐데가르트도 이 흐름에 따라 영혼을 우위에 두기는 하였지만 

힐데가르트에게선 몸과 영혼이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영혼은 수분이 온 나무에 젖어 흐르듯이 온 몸에 젖어 흐른다. 

수액(樹液)이 나무를 푸르게 하고 꽃피우게 하고 열매맺게 하듯이...'(Sci. 133)



'영혼은 육체를 생기있게 하지만 육체는 영혼을 생기있게 하므로 

영혼이 작용하기 위해서는 또한 육체를 필요로 한다. ... 

전반적으로 영혼은 자신과 함께 일하는 육체를 사랑하여 품어 안는다'(LDO 168)



그리고 

힐데가르트는 최후의 심판 때에 육신이 부활한다는 것에서도 

육신의 귀함을 인정하는 표현을 본다. 


영혼이 육신을 그리워한다는 표현으로. 

'영혼이 자기가 사랑했던 옷, 육신의 옷을 벗기웠기 때문이다' 


이 결합에 상응해서 질서 지워진 생활의 지침하에서도 육신이 멍에를 지지 않는다. 


영혼과 조화있는 관계이다.


'영혼과 육신이 진정 서로 일치하여 지내면 

그들은 단결된 기쁨 안에서 최고의 삯을 받는다.'(LDO 80) 




영혼과 육신이 하나라는 힐데가르트의 강조는 

실제로 자신이 이전에 겪은 심리적 신체질환에서 새겨져서 

더 나아가 근대적인 그리스도교의 틀 안에서 

육체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도록 하는 연결점으로서 기여한다.


인간의 육체에는 성(性)도 포함된다. 

생식행위를 통해 원죄가 이어진다는 아우구스티노의 가르침이 

힐데가르트에게 부담이 되었지만 


힐데가르트에게선 

하느님께서 이성의 숨을 불어넣으셨다는 생기를 불어넣으셨다는 것이 

몸 전체에도 관련이 된다. 


성기에서도 이성의 선물이 꽃핌으로써 인간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게 된다. 

그러므로 인간은 성행위에서 기쁨도 느낄 수 있다.'(LDO 63) 


전체 우주는 생명을 주는 '녹색 생명력'으로 맥이 뛴다. 

힐데가르트는 이로부터 유추해서 '생식행위에 있어서의 녹색 생명력' 또한 알았다.



인간의 고유한 특성과 소명은 몸에서 읽을 수 있다. 


그래서 여러 가지 면에서 포괄적인 인간의 위대함을 인지하기 위해서는 

몸을 잘 관찰하여야 한다.




리처드 로어의 `급진 은총`



[신성한 결혼]



우리는 개인에게 세례를 주듯이 결혼에도 세례를 주어야 한다. 

그렇게 하여 기꺼이 상대를 섬기고 


자기 목숨을 내어주고 십자가를 지겠다고 다짐해야 한다. 



하느님은 부부가 함께 사는 삶 속에서 당신을 알게 해주시겠다고, 

혼배성사를 통해, 약속하신다. 


다른 어떤 종교가 이처럼 담대한 말을 하는지 나는 모르겠다. 

그것은 매우 육체적이고 토속적이며 감성적인 말이다. 



교회가 혼인을 성사(sacrament)로 삼은 데 대하여 

나는 하느님께 감사드린다. 


한 남자와 한 여자의 관계는, 

진실로 굴복하는 삶 안에서, 그리스도와의 만남이다. 


그것이 결혼의 영적 바탕이다. 



당신들은 그리스도를 만나려고 멀리 수도원에 가지 않아도 된다. 

금욕생활을 할 것도 없다. 


그리스도는 우리가 서로 주고받는 구체적 사랑 안에서 

우리를 만나주신다.


그러나 우리는 하느님의 방식으로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당신들이 서로 만나는 순간, 

벌거숭이 몸과 벌거숭이 마음으로 서로를 나누는 순간이, 

하느님 앞에 벌거숭이로 서는 순간, 

그분께 기도드리고 그분이 주시는 자유를 맛보는 순간이어야 한다



서로 친밀하게 만나는 

그 순간에 당신들은 위대한 신비 속으로, 

당신들을 위해 존재하는 하느님이 당신들에게 바라시는 것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from The Spiritual Family and the Natural Family) 







{천상의 책 4권133장} 영광을 낳는 금욕


무화 등급변경▼ 조회 100 추천 0 2018.07.04. 22:33




{4-133,2 "금욕은 영광을 낳는다. 


모든 기쁨의 샘을 찾아내기를 원하는 사람은

하느님을 기쁘게 해 드리지 못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멀리한다."}





[moowee 18.07.06. 00:28  



<다음사전>

금욕[禁慾] ; 육체 및 정신의 욕구나 욕망을 억누르거나 참음.



금욕?

欲求(욕구) : 무엇을 얻고자 하거나 무슨 일을 하고자 하는 바람(다음사전)



왜 欲求(욕구) 를 금(禁)해야 하나요?


욕구는 누구의 욕구입니까?

누구로부터 나왔습니까?



욕구는 나로부터 나온 

나의 <바람>, 나의 <원의>, 나의 <뜻>, 곧 <내 뜻>이 아닐까요?





왜?

나의 욕구, 내 뜻을 禁(금)해야 할까요?

무조건 내 뜻, 내 욕구를 금(禁)해야 하나요?


하느님께서는 < 무조건 > 내 뜻, 내 욕구를 억누르거나 참기를 바라시나요?

그것이 < 하느님의 뜻 >이고 

하느님이 나(人間)에게 주신 < 자유 의지 = 내 뜻 >인가요?




아닙니다, 아니에요.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뜻, 곧 <하느님의 뜻>은,

무조건 우리(人間)의 뜻, 내 뜻(나의 욕구)을 억누르거나 참기를 바라시지 않습니다!


나의 욕구(내 뜻)이 더욱 거룩히 사용되기를 원하시며,

그렇게 사용되도록 이끌어 주시는 것이 곧 <하느님의 뜻>입니다.




그렇다면 왜?

< "금욕은 영광을 낳는다. >고 하셨습니까?



저는 예수님이 말씀하신 < 금욕(禁慾) >은 

★ 하느님의 뜻을 벗어나는 욕구 ★ 그것들을 행하지 말라(禁)는 것이라 믿습니다!


<인간의 생각>에 스스로 아무리 거룩한 행위라 여겨도,

<하느님의 생각>과 다른 행위는 행하지 않는 것(금욕禁欲)이 곧,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낼 수 있다는 말씀으로 알아듣기 때문입니다!





moowee 18.07.05. 01:14 


무화 



알았어요, 사랑하는 무화!


저는 무화가 올린 이 글의 제목이

★ {천상의 책 4권133장} 영광을 낳는 금욕 ★ 이었고,


혹시 부부생활을 포기한 <금욕생활>을 통하여,

하느님께만 매력 있는 여인이 되려 하시는 줄 알고 질문을 드렸던 겁니다.



모르시는 분들이 계셔서 말씀드리자면,

과거에 제가 그래도 10년 이상 <M.E 지도신부>했었잖아요? !




그러나 제 질문의 더 깊은 뜻은 ★ 禁慾(금욕) ★

특히 하느님께 내맡긴 영혼들, 하내영에게 있어서 뿐만 아니라,

<신앙인에 있어서 금욕(禁慾)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말씀드리려 했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