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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더 데레사 수녀 '영적고뇌'의 진실

은가루리나 2016. 9. 13. 21:49



영혼의 어두운 밤 (the dark night of the soul)을 지나는 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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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7/14    

정창문 

경성대학교 영문학과(B.A)

장로회신학대학신대원(M.Div)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Th.M)

Columbia Theological Seminary(D.Min)수료

현재 프린스톤 연합교회 담임목사


'TIME'지(2007년 9월 2일자)는 1950년 인도Calcutta에서 사랑의 선교회를 설립하여 45년간 사랑의 선교회를 통해 빈민과 병자, 고아, 그리고 죽어가는 이들을 위해 섬겼던 로마 카톡릭 수녀인 마더 테레사가 고해성사를 주관한 신부들이나 선임 성직자들과 나눈 편지내용들을 기초로 쓴 책을 소개하였다. 

테레사의 편지들은 그녀의 생애 가운데 50여 년 동안 어디에서도 하나님의 존재를 느끼지 못하였으며 '건조함', '어둠,' '외로움' 그리고 '고통' 등을 고백하였다. 1997년 명예로운 노벨상을 받았지만, 수상 3개월 전 그녀는 영적 친구인 허피트신부에게 보낸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고백을 했다.

"예수님은 당신을 특별히 사랑하셨습니다. 그러나 나에게는 침묵과 공허함이 너무 커서 보려고 해도 보지 못하고, 들으려고 해도 들리지 않으며 (기도 할 때) 혀를 놀려도 말이 나오지 않습니다." 세상에 위대한 업적을 남긴 인물로 존경을 받은 그녀이지만 영혼의 메마름과 공허함으로 고통받는 연약한 인간이었다. 그러나 마더 테레사가 경험한 영혼의 어두운 밤은 하나님을 갈망하는 모든 자들이 공통적으로 경험하는 영적인 과정이기도 하다. 혼란스럽고 이해할 수 없는 모호함 속에서 홀로 버려지는 과정을 통해 하나님을 더욱 갈망하고 그를 사랑하는 길로 인도한다. 영혼의 어두운 밤은 어떤 언어나 하나님의 이미지와 개념을 초월하는 하나님의 경험이다. 문제는 부정적인 방식으로 하나님을 경험한다는 점이다. 자신의 집착과 인간의 덕의 완전함으로 하나님을 인식하려는 모든 노력이 무력화되어 버린다.


토마스 머튼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기독교의 관상 (contemplative)명상 기도는…... 개념을 넘어선 무언의 어두움과 경험의 부정성적 빛(apophatic light)을 뚫고 가는 것이다. 여기서는 부재하는 하나님, 모든 인간 존재에 대해서 실제하지 않는 분으로서의 하나님과 친밀해 지는 것이다." 하나님이 부재하는 것 같은 상황 속에서 하나님을 경험하는 과정이 영혼의 어두운 밤이기도 하다. 우리는 영혼의 어두운 밤을 이해하기 위해 먼저 이 문제를 가지고 씨름하며 영적인 여정을 지나왔던 아빌라의 테레사와 십자가의 요한을 통해서 어떻게 이 영적 여정을 지나갈 수 있는 지를 나누기를 원한다.


1. 아빌라의 테레사 (본명: Teresa de Cepeda y Ahumada)


테레사는 1515년 3월 28일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50마일 떨어진 중앙 산악지대에 위치한 아빌라(Avila)에서 유대교에서 개종한 귀족 집안의 딸로 태어났다. 그녀는 19살이 되던 해 수녀가 되기로 결심하고 1535년 11월 2일 아빌라의 강생 카르멜(Carmelite) 수녀원에 입회하였다. 결정적인 환시를 체험한 뒤 테레사는 1560년 초창기의 엄격한 수도 생활의 규율로 돌아갈 것을 주장하여 그녀가 속한 카르멜 수녀회의 개혁을 단행하여 맨발의 카르멜 여자 수도원을 세울 계획을 하였다. 1562년 2월 7일 로마 교황청에 새 수도원 창립을 위한 청원을 하였다. 

같은 해 8월 24일 테레사는 개혁 카르멜의 첫 수도원인 아빌라의 성 요셉 수녀원을 설립하고 13명의 수녀들과 함께 그곳으로 옮겨갔다. 또한 1567년 11월 28일에는 십자가의 요한과 함께 두루엘로에 남자 가르멜 수도원을 창립하였다. 그녀의 생애 속에서 영적인 여정 중 영혼의 어두운 밤을 경험하는 때가 있었다. 그녀는 거의 2년 동안 기도를 중단한 적이 있었다(그녀는 그와 같은 실수를 저지르지 않도록 다른 사람들에게 반복해서 충고하였다). 영적 지도자는 그녀에게 다시 기도하기를 격려했으나 테레사는 기도 생활에 대한 의심에 사로 잡혀 있었다. 오랫동안 고뇌를 겪으면서 테레사는 자신에게 일어난 일에 대해 혼란스러워하였다. 이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일 수도 있고 마귀로 부터 온 것일 수도 있다고 믿었다. 모든 것이 불분명(obscure)하다고 생각했다. 진짜 밤의 어두움처럼 테레사는 명확하게 볼 수 없었다. 그럼으로 인해서 그녀는 주위에 있는 다른 사람들의 의견에 매우 집착하였다. 그러나 그녀가 이 집착으로부터 자유하고 난 후에야 기도에서 그 자신의 내면의 진정성을 신뢰할 수 있게 되었다. 그녀의 책 에서 어떻게 그녀의 싸움이 끝나게 되었는 지를 설명한다. 테레사는 그녀의 영적 안내자들(spiritual directors)이나 그녀 자신의 판단에 순종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순종하였다고 한다. 그녀는 기도를 통제하려는 노력을 그만두고 대신에 하나님의 손에 기도를 맡겼다. 그녀가 경험한 것에서 영혼의 어두운 밤의 특징들을 볼 수가 있는데, 불분명함과 집착이 지나가고 하나님이 주시는 명확함과 사랑의 자유와 깊어지는 믿음이 나타나는 것이 영혼의 어두운 밤의 한결같은 특징이다.


2. 십자가의 요한 (본명 John de Yepes y alvarez)


십자가의 요한은 1542년에 스페인 폰티벨로스(Fontiveros) 라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는 테레사와는 달리 극도로 가난한 그의 가족은 생계를 위해 여러 곳을 전전하였다. 요한은 청소년기에 병원일을 했는데 거기서 어떤 카르멜(Carmeite) 신부와 친분을 갖게 되었다. 그는 요한의 정결한 마음과 부드러운 정신에 깊은 인상을 받고서 Salamonica 대학에서 신학공부를 할 수 있도록 후원을 하였다. 그는 카멜르 규율에 참여하도록 요청받고 영적인 길로 이끌 것으로 생각하고 열심으로 따랐다. 그러나 수도생활에서 실망하였다. 그가 갈망하는 기도생활의 순수성은 제도화된 교회의 예식과 도그마(dogma)를 맹목적으로 고수하는 것으로 인해 방해받는다고 생각했다. 규율에서 탈퇴하여 방해받지 않는 곳으로 은둔하여 깊은 기도생활에 전념하기를 갈망하였다. 그 때에 십자가의 요한이 아빌라의 테레사와 만나게 되었다. 52세 수녀 테레사는 25세 신부 요한에게서 명확한 비전으로 성스러움을 다루는 깊은 자질을 발견하였다. 거룩한 영감을 상실하고 제도화된 갈르멜회를 다시 개혁하려는 그녀는 요한과 뜻을 같이 하였다. 요한과 테레사는 함께 상호보완해 주는 역할을 했다. 테레사는 요한이 가진 신학적인 지적 훈련이 부족하다고 느끼고 이런 면에서 도움을 원했고 반면에 요한은 영적인 경험이 풍부한 테레사의 직접적인 영적 경험을 존중하였다. 그녀는 요한에게 영적인 삶의 이미지와 비전을 풍부하게 제공하는 영적인 어머니와 같은 역할을 했다. 1599년에 그의 나이 35세에 기존 교회의 전통을 고수하는 수사들에 의해 톨레도(Toledo)로 끌려가 심문과 고문을 당했다. 그는 갇힌 곳에서 추위와 더위와 굶주림으로 고통을 당했으나 처음에는 하나님과의 고요한 내적 연결 속에서 위로를 얻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하나님의 임재는 사라지기 시작했고, 요한은 사랑하는 하나님이 자신을 버린 것이 아닌지 당황스러워했다. 그는 깊은 절망 속에서 하나님을 향한 열정적인 사랑의 시를 작성했다. 9개월 후에 그는 어둔 밤에 그곳을 빠져 나왔으며 가르멜 수도원의 개혁을 위해서 계속적으로 헌신하였다.


3. 테레사와 요한의 신학적 입장


성 어거스틴(St. Augustinus)과 같이 아빌라의 테레사와 십자가의 요한의 신학적 입장은 인간은 하나님과 연합 가운데 태어났고 삶을 통해서 하나님 안에서 존재하고 살고 움직이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라고 한다. 하나님과의 연합이 없이는 우리는 존재할 수 없는 점에서 이것은 본질적인 부분이다. 이 연합은 매우 깊고 완전하다. 하나님을 찾는 것은 자기 지식을 포함해야 하고 자기 지식은 또한 하나님을 찾는 지식을 포함한다. 테레사가 기도할 때 들은 하나님의 음성은, "내 안에서 너 자신을 찾으라, 그리고 너 자신 안에서 나를 찾으라." 요한은 "우리가 말하는 이 연합에 대한 이해는 하나님이 각 사람의 영혼 안에 현존하시며 세상에서 가장 큰 죄인 안에도 현존하시는 것을 안다. 하나님과의 이같은 연합은 모든 시대 속에서 항상 존재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과의 연합을 인식하는 데 실패한다. 그것은 우리 자신이 운명의 주인이라는 환상을 내려 놓지 못하기 때문이고, 끊임없이 하나님을 우리 자신으로부터 분리된 대상으로 만드는 이분법적 사고방식 때문이다. 인간의 정신이 하나님의 진리를 이해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에 관해 내리는 결론은 항상 불완전하다. 테레사와 요한은 영적인 삶이 하나님에게 가까이 가도록 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고 한다. 대신에 의식적인 여행이 있을 뿐이다. 하나님과의 연합은 얻어내거나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갈망하는 하나님의 은혜에 의해서 발견할 수 있는 어떤 것이다. 이 연합을 깨닫는데는 사랑이 필요하다. 요한은 "영혼이 사랑을 통해서 하나님과의 완전한 연합에 도달한다"고 한다. 그는 영혼이 하나님의 깊은 중심으로 끌린다고 한다. 하나님과 영혼을 서로 끌리게 하는 힘은 사랑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중심에서 하나님과의 친밀한 연합이 있다면 영혼의 갈망은 하나님의 갈망이다. 하나님을 위한 영혼의 사랑은 영혼을 위한 하나님의 사랑이다. 

모든 인간 존재는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지음을 받았으며 하나님을 갈망하는 존재가 되게 하셨다면 왜 우리는 하나님과 분리되었다고 느끼고 자신을 파괴하는 행동을 하는 지에 대한 물음이 일어난다. 요한과 테레사는 두 가지 근본적인 이유를 말한다. 첫째는 우리는 진리에 대해 잠들어 있어서 우리가 누구인지 무엇을 위해서 존재하는 지 잘 깨닫지 못한다는 것이다. 둘째는 우리는 우리의 사랑을 잘못된 곳에 두고 있다고 한다. 하나님보다는 다른 것에 집착한다. 우리는 우리 감각과 개념을 통해서 하나님을 만날 수 없기 때문에 느낄 수 있고 붙잡을 수 있는 대상에게 끌려 들어간다.

우리의 삶은 선택을 반복함으로 형성된 습관을 따라서 생활한다. 형성된 습관은 건강하고 자연스런 과정이기는 하지만 또 다른 면에서는 우리에게 선택할 여지를 주지 않는다. 습관이 충동으로 바뀌고 그 충동은 어떤 형태로 나타나든지 항상 우리의 자유를 빼앗아 가기 때문에 우리 영혼에게는 선하지 못하다. 그 대상을 사랑하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그것을 잃어버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으로 선택하게 만든다. 이 충동은 영성적 용어로 '집착(attachment)' 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집착은 사랑과 다른 어떤 대상에게 정신의 에너지를 묶어 두는 것이다. 일상적인 생활과, 관계와,, 소유와 종교적 신념과, 자신과, 하나님에 대해 집착하게 만든다. 행동을 미리 결정하는 집착에 사로잡혀있기 때문에 각 상황들을 새롭게 받아들이고 생각하지 않는다. 영적인 의미에서 우리의 집착과 중독의 대상은 우상이 되어 버린 것이다. 우리가 원하든 원치 않든 우리의 시간과 에너지와 관심을 쏟아 붓게 만든다.





4. 영혼의 어두운 밤(the dark night of the soul)이란


오늘날 우리들은 어두움이라는 말을 사용할 때, 어둠의 세력, 어두운 면이라는 말과 같이 사악한 어떤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테레사와 요한은 스페인어로 어두움 oscura라는 단어를 사용할 때는 불분명한(obscure)라는 의미로 사용하였다. 어두운 밤에 사물을 보기 어려운 것처럼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깊은 관계는 우리의 의식으로는 파악할 수 없다는 뜻이다. 요한은 영혼의 어두운 밤은 행복, 인도, 절대적 은혜의 충만함이라고 한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집착과 우상들로부터 자유하게 하실 뿐만 아니라 참된 본성의 깨닫음으로 인도하신다. 어두운 밤은 우리가 마음의 열망과 사랑의 자유를 발견하는 수단라는 말이다.





5. 영혼의 어두운 밤의 특징들


영혼의 어두운 밤은 신뢰의 자유, 하나님을 향한 개방성, 충동적 삶으로부터 전환하는 과정이다. 이 시기는 옛 생활 방식에 대한 공허감, 메마름, 위로의 부재와 기도의 에너지가 고갈되는 것을 경험한다. 요한은 기도에서 어두운 밤의 혼란을 통과하는 사람들을 도우기 위해 어두운 밤을 분별하는 세 가지 원인을 설명한다. 

첫째, 기도와 삶의 메마름과 무능함이다. 기도에서 위로가 사라지고 생활의 만족이 사라진다. 요한에 따르면, "영혼은 하나님의 일이나 창조된 사물에서 어떤 만족도 발견하지 못한다"고 한다. 그들은 계속적인 위로의 결핍을 경험하면서 더 새롭게 노력하고 더 많은 에너지를 투자하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다. 어두운 밤을 지날 때는 옛방식은 공허할 뿐만 아니라 소용이 없다. 

둘째, 옛 방식에 대한 열망의 결핍이다. 옛 방식의 기도와 삶을 복원하려고 애를 쓰지만 이러한 노력이 거듭 실패할수록 자신의 시도가 의무와 습관에서 나온 것이지 진정한 열망에서 나온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된다. 그것을 깨달을 때 그들은 옛 방식으로 되돌아 가기를 원치 않는다. 요한은 말하기를, "이것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외면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그 영혼은 고통스런 관심을 가지고 하나님께 돌아간다"고 한다.


셋째, 하나님을 사랑하는 단순한 열망이다. 요한은 어두운 밤의 가장 확실한 싸인은 단지 "내적인 평화와 고요함 안식 가운데 하나님에 대한 사랑스런 집으로 남아있기를 열망한다"는 것이다. 자신의 상황이 무엇인지 잘 알지 못하지만 그저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있는 모습이다.




6. 밤의 영(the spirits of the night)


요한은 어두운 밤의 시에서 세 영이 밤 시간 동안 방문할 것이라고 말했다. 

첫째는 사간의 영(the spirit of fornication) 이다. 요한에 따르면, 이 영은 사상력에 호소하는 "강력하고 가증한 유혹으로 영혼을 뒤흔든다"고 한다. 이전에 만족을 주던 수단이 메마르게 될 때, 그것을 대체할 다른 것을 추구하게 한다. 

두번째 신성모독의 영(the spirit of the blasphemy)이다. 이 영은 하나님께 대하여 분노하는 충동이다.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기를 간구했지만 하나님께서 나타나지 않는다고 느낄 때 이것은 하나님에 대한 개념과 이미지가 사라지는 것이다. 우상에 대한 우리의 집착을 제거하고 생각과 감정으로 파악할 수 없는 참 하나님을 깨닫게 하려는 것이다. "사랑하는 이여 나를 슬픔 가운데 남겨 두고 어디에 숨으셨나요? 당신은 나에게 상처를 입히고 수사슴처럼 달아났군요. 내가 당신을 부르러 나갔으나 당신은 이미 가버렸어요."(the spiritual canticle에서 요한이 쓴 시). 이 시는 그의 삶에서 깊은 사랑하는 자에게 버림받은 고통의 감정을 전달하고 있다. 

셋째, 혼란의 영('Spiritus vertiginis') 이다. 요한은 하나님께서 혼란의 영을 보내신다는 이사야서의 이야기에서 이 용어를 취하였다(이사야19:14). 요한은 "이 영은 감각을 어둡게 하고 수천 가지의 가책과 당혹스러움으로 그 사람을 채운다. 그들은 어떤 것도 만족할 수 없다는 것으로 인해 당황하게 된다. 이것은 가장 심각한 자극 중의 하나이고 밤의 공포이다" 라고 한다. 혼란을 일으키는 영은 포기하게 만든다. 포기할 때 사람의 기능(지각지능)은 비어지고, 예민해 지고,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의존하는 것이 깊어진다. 요한은 하나님이 이 혐오스런 영을 보내신 것은 영혼을 넘어지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지혜와의 연합'을 위해 준비하도록 도우기 위함이다고 한다.


세 영의 방문으로 얻게 되는 결과가 있다. 우리는 계속 궁극적인 만족을 찾으려고 애쓰지만 잘못된 곳에서 찾는다. 하나님의 좋은 것을 우상으로 만들어 몰두한다. 우리 우상을 깨뜨리는 때가 되어야 우리가 찾았던 선물에 대해 무각감하였다는 것을 발견한다. 요한과 테레사는 치료하는 과정으로써의 어두운 밤은 정화purgation시키는 과정이라 본다. 어두운 밤의 많은 면들이 아픔과 고통을 느끼게 하지만, 이것은 순수함의 회복, 깊은 평화와 정교한 기쁨의 탄생, 마지막으로 하나님과 다른 이들과 세계를 향한 사랑의 충만함을 위해 디자인된 것이다. 


7. 맺는 말


영혼의 어두운 밤은 영적 메마름과 공허와 하나님의 부재라는 부정적인 경험을 통해서 우리 안에 있는 집착과 중독이라는 우상을 제거하는 영적 회복의 과정이다.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성장할 때 어둠 속에서 우상은 깨어져 버린다. 이러한 전환 과정 속에서 어두운 밤은 진정한 영혼의 자유를 주는 영적인 여정인 것이다. 어두운 밤을 지날지라도 하나님의 변함없는 사랑을 정화된 마음으로 깨닫는 자는 하나님을 향한 사랑의 열망으로 노래하리라.





 “만일 제가 성녀가 된다면 분명 ‘어둠’의 성녀일 것입니다. 

  언제나 어둠에 빛을 밝히러 세상에 내려가 있을 테니 천국에는 없을 것입니다.” 

  -마더 데레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