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owee 등급변경▼ 조회 5767 추천 0 2010.09.07. 11:55
2010.09.07. 11:55
하느님께 자신의 모든 것을 내맡겨 드리면,
정말로 하느님의 뜻대로 거룩하게 이 세상을 살아나갈 수 있게 된다.
저는 거룩히 살지 못하던 신부였다.
하느님의 뜻을 찾기보다 제 뜻을 찾고 제 뜻대로 살아오던 신부였다.
그러나 지금은 하느님의 크신 은혜로
하루하루를 하느님 뜻대로 거룩하게 살아가고 있다.
저의 노력으로 제가 지금 그렇게 거룩하고 기쁘게 살아가고 있는 것이 아니다.
하느님께서 그렇게 살도록 저를 이끌어 주고 계시기 때문이다.
누구나 하느님께 내맡기면 다 그렇게 살아갈 수 있게 된다.
그것은 내가 하느님께 내맡겼다는 것, 그 이유 하나밖에 없다.
"내맡기기까지"는 반드시 내가 혼자서 해야 한다.
하느님 뜻대로 살아갈 아주 굳은 결심은 남이 대신 해 줄 수 없다.
자신의 굳은 의지(뜻)로 그 굳은 의지(결심)를 하느님께 내맡겨 드려야 한다.
그러나, 나의 역할은 거기까지이다.
내맡긴 뒤에는 하느님께서 나의 모든 것을 직접 다 해주신다.
그래서,
하느님께 자신의 모든 것을 내맡긴 사람들의 삶의 모습이 달라지기 시작한다.
첫째로,
하느님께 내맡긴 사람들은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걱정이 사라지게 된다.
어떤 고통이나 두려움 더나아가 죽음에 대한 두려움까지도 없어지게 된다.
저는 과거에 교통사고를 두 번이나 크게 경험해 보았고,
그리고 어려서부터도
죽음에 대해 묵상하고 사는 것이 신앙인의 자세라고 들어왔기에,
장거리 여행이나 장거리 운전을 나가게 될 때에는,
"내가 지금 이 비행기가 폭파되어 죽게 된다면 - - -?
"다른 차가 와서 충돌해 사고가 나서 죽게 된다면 - - -?" 하고
"죽음"에 대한 생각과 그에 대한 두려움이 늘 저를 떠나지 않았었다.
그러나 제 자신을 완전히 하느님께 내맡겨 드린 후에는
그런 죽음에 대한 생각이나 두려움이 전혀 사라져 버리게 되었다.
나의 모든 것, 나의 부족함, 나의 죄스러움까지도
송두리째 다 하느님께 내맡겨
그야말로 나의 모든 것이 다 완전히 하느님의 것이 되어버렸는데
그 무엇을 걱정하랴!
비행기가 폭파되고 교통사고로 내 몸이 조각이 난다 하여도
나의 모든 것의 주인이신 전능하신 하느님 아바지께서
어련히 다 알아서 해 주시겠는가?
내맡긴 모든 사람들에게 있어서의 "불행"이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것이다.
내맡긴 사람들에게 일어나는 그 모든 일은 불행도 행복도 기쁨도 슬픔도
심지어는 죄까지도
모두 다 하느님이 허락하신 하느님의 뜻에 의한 결과이기에
다른 사람들이 불행이라 여기는 불행까지도 불행이 될 수 없는 것이다.
오히려, 불행이나 고통 속에는 하느님의 더 크신 "善"이 숨어 있는 것이다.
어떤 무엇도 죽음에서도 고통에서도 전혀 두려움이 없어지게 되는 것이다.
둘째로,
하느님께 자신의 모든 것을 내맡기게 되면,
다가오지도 않은 자신의 내일이나 미래에 대해
미리 계획을 세우지 않게 된다.
자신의 모든 것이 하느님의 것이 되어 자기가 다 없어(無)졌는데,
없어진 사람이 어떻게 계획을 세우겠는가?
내일의 계획을 세워서도 안 된다.
자꾸 자기 머리로 계획을 세우려는 사람은 100% 다 내맡기지 못한 사람이다.
내일의 계획을 내가 세우지 않을 때,
그때 비로소 하느님이 계획을 세워주시게 된다.
내일에 대한 계획뿐만 아니라 내일에 대한 생각을 해서도 안 된다,
할 필요가 없다.
"그러므로 내일을 걱정하지 마라, 내일 걱정은 내일이 할 것이다."<마태6,34>
라고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셨지 않았는가?
내맡긴 이후에 우리가 할 일은 우리의 생각과 경험과 지식을
자꾸 우리의 머리 속에서 없애버리는 연습을 해야 한다,
"무뇌인간"이 되어야 한다.
우리가 우리의 머리 속에서 자꾸 우리의 생각과 경험과 지식을
없애버리면 버릴 수록,
하느님이 우리에게 당신의 지혜를 널어 주시고 계획을 세워 주신다.
우리의 머리 속에서 생각(지식,경험)을 없애버리면
그것이 바로 "無念無想"이다.
무념무상은 道 닦는 사람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하느님께 내맡긴 사람은 누구나 무념무상을 할 수 있다.(방법은 나중에!)
무념무상이란 "하얀백지 상태"인데,
하느님께서는 그 백지에
당신의 지혜와 계획을 아주 너무 기가막히게 세워주시는 것이다.
하느님이 우리의 영을 열어 세워주시는 지혜와 계획을
한 번, 두 번 체험하게 되면
그분의 지혜와 계획이 얼마나 뛰어나고 놀라운 것인지를 알게 되어,
그때부터는 본격적으로 생각을 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그분의 지혜와 계획에 비해
우리의 지혜와 지식과 경험이 얼마나 보잘 것 없고 초라하고 비천한 것인가를
이미 경험하였기 때문이다.
제가 내맡긴 이후에 계속하는 일이라곤
저에게 남아 있는 저의 지식과 경험을
저의 머릿속에서 지속적으로 빼내버리는 일뿐이다.
그것을 빼낼 수록
하느님의 뜻이 제 안에서 당신 마음껏 활동하실 수 있으시기 때문이다.
저의 지식과 경험과 생각을 빼내버리게 되면,
처음에는 하느님께서 우리의 "느낌(feel)"을 통하여 당신의 계획을 알려 주신다.
하느님께서 주시는 느낌을 자꾸 소중히 받아들이게 되면,
나중에는 "靈感(inspriration)"을 통하여 알려 주신다.
오상의 비오신부님이 하신 말씀대로
"누군가가 알려 주시지 않으면 내가 그런 말을 어떻게 하겠는가?"
하느님께서 영감을 주시는 것이다.
영감은 내맡긴 이들의 "하느님과의 대화법"이다.
하느님이 영감을 주시면
내맡긴 이는 그 영감에 따라 하느님이 이끄시는 대로 그냥 하면 된다,
아니 살아가면 되는 것이다.
세번째로, 하느님께 자신의 모든 것을 내맡기면,
하느님께서 당신에 대한 앎, 당신에 대한 지식을
그 사람에 필요한 정도에 따라
당신의 방식대로
처음부터 "하나하나 차례차례", "나날이 조금씩조금씩",
"때로는 엄청(왕창) 많이" 깨우쳐 주신다.
하느님이 깨우쳐 주시는 그 지혜에 놀라
우리는 그저 경탄의 경탄만을 되풀이할 뿐이다.
하느님께 내맡긴 사람들은 "영적스승"을 찾아 헤매일 필요가 전혀 없다.
그래서
이 유명강사 저 유명강사, 이 강의 저 강의를 쫓아다닐 필요가 없어진다.
예수님께서 직접 내맡긴 이의 "스승"이 되어 주시기 때문이다.
다만, "보조교사(영적지도 신부)"와 "고해신부"가 필요할 뿐이다.
보조교사와 고해신부가 내맡긴 사제이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하느님께서 내맡긴 이들을 당신의 도구로 쓰시기 위해,
그 사람의 영을 날로 날로 크게 열어 주시어
당신의 지혜로 완전하게 무장시켜 주신다.
그리고,
아주 "놀라운 통찰력"을 선물로 주시어 모든 것을 분별할 능력을 주신다.
하느님의 성령께서 그렇게 해 주시는 것이다.
<1요한2,27>에
"그리스도께서 부어주신 성령은 여러분께 모든 것을 가르쳐 주십니다."
라는 말씀 그대로 당신의 모든 것을 다 알려 주시는 것이다.
"하느님에 대한 앎"을 알게 해 주시는 그 신비로움에 그저 놀라워하며,
정말 보잘 것없고 비천한 자신에게 베풀어 주시는 신비에
"눈물의 감사의 감사기도"만을 올려 드릴 뿐이다.
하느님을 알게 하시어 하느님과 사귀는 재미가 이렇게도 재미있을 줄이야는
정말 꿈에서도 미처 몰랐었던 것이다.
과거의 저는
골프에 술에 좋아하는 사람들과 어울려 노는 것이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줄 알았는데
그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저의 영이 어두워서 그랬던 것이다.
하느님을 알고 하느님과 사귀는 재미가 얼마나 재미나는 재미인지
누구든지 하느님을 알게 되면
마약에 빠져있던 사람도, 도박에 빠져있던 사람도, 도색에 빠져있던 사람도
그 재미나던 세상의 재미를 단번에 다 놓아버리게 되는 것이다.
사실, 이 세상의 일시적이고 찰라적인 재미는 가짜재미이다.
진짜재미는 길고 영원한 것이다.
이 세상에서부터 시작하여 죽어도 끝나지 않고,
죽은 다음에도 영원히 지속되는 그런 재미야말로 진짜재미인 것이다.
여러분! 가짜재미에 절대로 속아 넘어가지 마시길 바란다!
바오로 사도께서 <필리3,7~8>에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나에게 이롭던 것을,
나는 그리스도 때문에 모두 해로운 것으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나의 주 그리스도 예수님을 아는 지고한 가치 때문에,
다른 모든 것을 해로운 것으로 여깁니다.
나는 그리스도 때문에 모든 것을 잃었지만 그것들을 쓰레기로 여깁니다.
내가 그리스도를 얻고 그분 안에 있으려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알고 하느님과 사귀는 재미는
정말로 이 세상의 최고의 "지고한 가치"이다.
네번째로, 하느님께 자신의 모든 것을 내맡기게 되면
이 세상의 모든 것,
특히 "돈이나 재물에 대한 욕심"이 없어지게 됩니다.
나의 모든 것을 하느님께 다 내어드려
나는 사라지고 이 세상의 모든 것의 주인이신 하느님을 얻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 세상의 주인이신 하느님을 얻었는데 이 세상의 그 무엇이 탐이 나겠는가?
하느님을 얻었기에 늘 "마음이 충만"하다, 뿌드읏~하다.
아마, 자신의 집이 없어 오랜 세월을 남의 집살이만 하던 사람이
처음으로 자신의 집이 생기게 되었을 때의 그 뿌듯함도 따라오지 못할 것이다.
내맡긴 사람의 영혼이 하느님으로 아주 꽉 차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100%를 다 내맡긴 사람들의 공통된 체험이 자신에게서 서서히
"청원기도 - 무엇을 어떻게 해 주십시오"가 사라져 간다는 것이다.
청원기도가 나오는 것은
하느님과 더 가까운 생활을 얻기 위한 기도일뿐이다.
그래서, 만일 내맡긴 사람이 어떤 것에 대한 필요를 느끼게 되면,
그것은
그 사람 자신이 무엇을 필요로 해서 그 필요를 느끼게 된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당신의 일을 이루시기 위해서
그 사람을 통하여 그 필요를 느끼게 하신 것이다.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성인>의 아주 유명한 말씀이 있다.
"아무것도 원하지 않고, 아무것도 구하지 않고,
아무것도 거절하지 않는다."
세상의 것을 아무것도 원하지 않고, 아무것도 구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하느님께서 주시는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
고통이든 질병이든 더나아가 죽음이든 그어떤 것도 거절하지 않는다는
말씀이다.
그런데, 하느님의 일을 한다는 사람이 "하느님의 일"을 위해
돈을 모으는 일에 혈안이 되어 돈많은 사람들을 자기의 사람들로 만들고
그 사람들을 사적으로 이용을 한다면
그것은 이미
하느님의 일이 아니라 "사람의 일"로 전락해 버리고 마는 것이다.
하느님께 내맡긴 사람이 하느님의 일을 하면
하느님이 당신의 그 일을 당신이 알아서 다 처리해 주시기에
오로지 하느님을 사랑하는 일에만 집중할 뿐이다.
하느님께 집중하면 할수록 하느님의 일이 수월해 지기만 하는 것이다.
놀라운 일이다, 아니 당연한 일이다.
그 일이 사람의 일이 아니고 하느님의 일이기에
당신이 다 해주시기 때문이다.
다섯번째로, 무엇보다도 하느님께 자신의 모든 것을 내맡기게 되면,
자연히 죄로부터 멀어지는 생활을 하게 된다,
죄로부터 멀어질 수밖에 없다.
나의 모든 것이 거룩함 자체이신 하느님의 것이 되었기에
하느님이 직접 나서셔서
내맡긴 이를 나날이 조금씩, 때로는 왕창 정화시켜 주시고
죄로부터 보호해 주시기 때문이다.
하느님께서 내맡긴 이를 서서히 당신의 거룩함 속으로 이끌어 주신다.
"하느님께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내맡겨 하느님의 뜻대로 살겠다"는
맹세 수준의 굳은 결심을 하고
그 결심을 하느님께 봉헌하는 순간,
"하느님의 씨"가 그 사람의 영혼 안에 착상되어 나날이 조금씩 자라나게 된다.
그런데 인간의 경우와는 달리
"인간의 씨"는 나날이 조금씩 9달 반을 자라날뿐인데 비해
"하느님의 씨"는 나날이 조금씩 자라다가도
하느님의 뜻에 의해 "때로는 왕창" 자라나게 되고,
시간도 "언제까지 자라나게 될지" 사람마다 다 다르며
오직 하느님만이 그 시간을 알고 계실뿐이다.
하여튼
내맡긴 영혼 안에 착상된 하느님의 씨가 그 영혼 안에서 다 자라나
그 영혼을 다 채우게 되면
그 사람은 "예수님처럼"되어 예수님을 심판주로 만나게 되며,
예수님과 만나는 그 순간이 바로 육(몸)의 죽음의 때인 것이다.
심판주 예수님께서 당신과 똑같은 모습의 작은 예수를 보시며,
"야아, 어쩜 그렇게도 나를 닮았는가!" 하시면서 그 영혼을 꽉 끌어 안아
그 영혼을 천국으로 인도하시어
당신과 함께하는 영원한 삶을 살게 하시는 것이다.
<1요한3,6>에 바오로 사도가 말씀하셨다.
"그분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아무도 죄를 짓지 않습니다.
하느님의 씨가 그 사람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라고.
과거의 저는 가끔 생각하기를
"사람이 죄를 짓지 않고 살 수밖에 없는 존재라면
오히려 이 세상에 태어나지 않은 것 자체가 행복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해보았는데,
제가 하느님의 은총으로 내맡긴 생활을 하게 되면서
저에게 이 세상의 삶을 허락하신 하느님께
정말 엄청난 눈물의 감사를 올려 드렸다.
이 세상에 태어나 부족함으로 죄를 짓더라도
하느님을 알고 그 하느님께 찬미와 영광을 올려 드릴 수 있었다면
비록 지옥에 떨어지더라도
참으로 하느님께 감사할 일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던 것이다.
(지옥에 떨어져서는 안 되지만)
하여튼 하느님께 자신의 부족함, 죄스러움까지도 완전히 100% 다 내맡기면,
하느님께서 어느 누구든지 다 이 세상에서부터
하느님 나라의 삶, 거룩한 삶, 참으로 행복한 삶을 살게 해 주신다.
-------
지금까지 바로 앞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하느님께 내맡겨 드리면
하느님께서 이끌어 주시는 다섯 가지의 삶을 살 수 있게 된다고 말씀드렸다.
하느님께 자신의 전 존재를 내맡기는 행위는
하느님을 사랑하려는 마음이 있다면,
누구나 다 하느님께서 그 길로 이끌어 주신다,
또 하느님을 진실로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하느님께 자신의 모든 것을 내맡길 수 있다.
내맡김은 하느님에 대한 사랑의 척도이다.
사랑하는 사람은 진실로 사랑하는 사람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내맡길 수 있다.
내맡기게 되어 있다, 내맡기어 서로 일치하게 된다,
그게 사랑의 속성이다.
내맡기는 행위에는 3가지의 조건이 필요한 것이다.
아무렇게나 아무에게나 자신의 모든 것을 내맡길 수 없다.
첫째로 "사랑"해야 한다.
둘째로 "믿음"이 가야 한다.
셋째로 "희망"이 있어야 한다.
여러분이 여러분의 배우자에게 자신의 일생을 내맡기실 때 그냥 내맡겼는가?
여러분의 배우자를 너무도 사랑하기에,
그리고 이 사람과 함께라면 어떤 상황 속에서도
이 세상 끝까지 서로 행복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과 함께
이 사람을 신뢰하기에
자신의 일생을 서로 내맡기시지 않았는가 말이다.
(그게 아니라 어떻게 하다보니?)
하느님에 대한 내맡김도 똑같다.
하느님을 진실로 사랑하기에,
그분의 사랑을 굳게 믿고 받아들이며,
자신의 모든 희망을 그분께 다 내걸 수가 있는 것이다.
한마디로
하느님을 향한 "향주 3덕"인 믿음,사랑, 희망이 강한 사람만이
하느님께 내맡긴 삶을 살아 갈 수 있는 것이다.
하느님께 내맡긴 삶을 사는 사람은 "자유인"의 삶을 살 수 있게 된다.
이 세상의 그 어느 무엇이 이 사람을 얽매이게 할 수 없다.
전능하신 하느님이 처음 창조하실 때의 첫인간의 그 모습이
아마 그러했을 것이다.
단순한 "내맡김"으로 "인간성을 회복"한 것이다!
자유인, 대자유인, 참자유인의 모습 말이다!
아직 완성되지 않은 참인간성을 말이다!
'하라, 하지 말고 하라!
하지 마라, 네가 하지 마라!
네 안에 계신 그분께서 하시게 하라!
살라, 삶 없이 살라!
살지 마라, 네가 살지 마라!
네 안에 계신 그분께서 사시게 하라!' 아멘!
+ 성호경,
성모송, 영광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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