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52
1922년 8월 19일
예수님의 내적 고통과 수난 고통의 관계및 차이
1 평소와 같이 있노라니,
다정하신 예수님께서 나로 하여금
각 사람을 위해 겪으신 당신의 고통들과 죽음들 일부를 겪게 하셨다.
그 일부를 통해
예수님의 고통이 얼마나 극심하고 치명적인 것이었는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그때 그분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2 "딸아,
나의 고통은 인간 본성의 이해력을 뛰어넘는 것이었다.
이 내적 고통에 비하면 내 수난의 고통은
내적 고통의 그림자 내지 비유에 지나지 않았다.
3 내 내적 고통은 전능하신 하느님께서 내게 주신 것이어서
힘줄 한가닥도 그분의 타격을 비켜갈 수 없는 것이었지만,
내 수난의 고통은 전능하지도 전지하지도 않는 인간이 끼친 고통이어서
그들이 원한 대로 내 힘줄 하나하나까지 사무칠 수 없는 것이었다.
4 내 내적 고통은 내 인성 안에 육화되었다.
그러므로
내 인성 자체가 못과 가시와 채찍과 상처로, 순교적 고통으로 변화되었다.
너무나 잔혹한 고통이어서
이것이 내게 계속적인 죽음들을 주면서 나와 갈라 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내 생명이 되었다.
5 반면에 내 수난 고통은 외적으로 주어진 것이었다.
가시며 못이 내부로 파고들었지만
결국은 뽑혀 나갈 수도 있는 것이어서,
그 아픔이 제거될 수 있으리라는 생각만 해도 위안이 되는 것이었다.
6 하지만 내적 고통은 바로 나 자신의 살이 되어 있었으므로,
뽑혀 나간다거나 가시와 못이 꿰찌르는 격통이 제거될 수 있으리라는
희망마저 없는 것이었다.
7 내 내적 고통은 그토록 크고 종류도 가지가지였기 때문에,
정작 수난 고통은
이 내적 고통에 주어지는 위안이요 입맞춤이었다고 할 수 있을 정도였다.
이 두 가지 고통이 한데 뭉쳐,
영혼들을 구원하려는 내 크고 넘치는 사랑의 최종 증거가 되었던 것이다.
8 내 외적 고통은
따라서
내적 고통의 바다 속으로 들어오도록 모든 사람을 부르는 목소리였다.
그들로 하여금 그들의 구원을 위해
내가 얼마나 비싼 대가를 치렀는지를 깨닫게 하기 위함이었다.
9 그러므로 너도 네가 받게 된 내적 고통의 일부를 통하여
어느덧 고통의 지속적인 강도를 깨닫게 되었다.
용기를 내어라,
너를 이리로 몰아대고 있는 것은 사랑이니 말이다."
'수난의시간들17' 카테고리의 다른 글
{19권 28,1-12}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 소리들과 같은 수의 죽음을 통감하신 예수님 (0) | 2016.10.15 |
---|---|
{4권 181장} "자, 이 사람이다!" (Ecce homo!) (0) | 2016.10.15 |
{11권 90장} 가시들보다 더 심하게 그분의 머리를 찔러댄 것은 피조물의 모든 사악한 생각들이요, 그 죄들이었다 (1) | 2016.10.15 |
{5권 20장} 가시관의 의미 (1) | 2016.10.15 |
☆「수난의 시간들」제17시간 (오전 9시- 10시) 가시관을 쓰신 예수님 "자, 이 사람이오." 사형 선고를 받으시다. (0) | 2016.10.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