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맡긴영혼은 ■

신앙인의 승용차 운전은 거룩해야 합니다.|

은가루리나 2016. 12. 4. 12:49


2011.05.19. 14:54


< 신앙인의 운전은 거룩해야 합니다 > 

 

제가 자동차 운전을 시작한지도 어언 29년이 흘렀습니다.

그때에는 서울 교외를 조금만 벗어나도 승용차가 아주 한산한 시대였습니다.

교외의 음식점에 승용차를 몰고 가면 그래도 눈 대접을 받던 시대였습니다.

 

이제는 강아지만 빼놓고 너도 나도 다 운전하는 시대에 접어들었습니다.

대중화된 운전 문화가 우리의 일상생활에 많은 편리를 가져다 준 반면,

대중화된 운전 문화가 또한 우리의 소중한 것들을 앗아가고 있습니다.

 

몇 년 전, 교황청 이주 사목평의회에서는

"길에 대한 사목적 배려를 위한 지침"에 운전자 십계명을 발표했었습니다.

 

그 문헌에 나온 통계에 따르면 20세기에 길에서 사고로 희생된 사망자가

3500만 명이고 부상자는 무려 15억 명에 이른다고 합니다.

그리고 지난 2000년 한 해에만 교통사고로 인한 사망자가

130만 명이었다고 하니 정말 엄청난 숫자입니다.

 

저의 경우 30년 가까운 세월을 운전해 오면서 과거에 제가 낸 교통사고는

접촉사고 1번, 인사사고 2번, 개인적 과실사고 2번, 음주 면허취소 1번

그리고 작은 접촉사고 1번, 과속, 주차 위반 등등 임을 고백합니다.

 

그중에서 운전 초보시절에 내었던 인사사고는 두 번 다 저의 과실은 없었지만

두 번 다 장난치며 길을 가던 어린이가 제 차로 뛰어들어

그들을 다치게 한 사고였습니다.

 

그 인사사고 두 건 중, 한 번은 찰과상 정도였으나

다른 한 번은 초등학교 4학년 여자 어린이의 다리가 골절되는 사고였기에

마음이 무척 아팠었습니다.

 

그리고 저의 과실에 의한 교통사고로 두 번 죽다가 살아난 경험 등등,,,,

 

또 그리고 군종신부 시절 길들여진 음주로 인한

17년 전의 운전 면허취소는 으~~~ 밝히기에도 정말 창피합니다.

 

또한, 군종신부 시절 강원도 산 길에서 길들여진 저의 과속운전은

마치 카레이서와도 대적할만 했던 것 같았습니다.

 

과거에 저의 운전은 거룩하지 못했었습니다.

신앙인다운 운전이 아니었습니다.

세속적인 운전이었습니다.

 

이제는 계속되는 노력으로 운전 모습이 많이 달라지게 되었습니다.

승용차 안을 화살기도와 성가로 채우고 강의 말씀으로 채우니

운전 모습이 점점 거룩해져 갑니다.  

 

신앙인은 언제나 모습이 한결같게 거룩해야 합니다.

누가 볼 때나 안 볼 때나 늘 어디서나 한결같아야 합니다.

그러나, 거룩한 성직자도 수도자도 운전대를 잡으면 태도가 돌변합니다.

조용하고 수줍어 하던 자매님들도 운전대를 잡으면 갑자기 용감하고 대범해집니다.

마치 탱크병이 탱크를 몰듯 운전합니다.

 

우리나라의 잘못된 교통문화에 길들여진 탓이 매우 큼을 인정하면서도

강아지 빼놓고 다 운전하는 시대에 들어서서 이제 우리는 달라져야 합니다.

거룩한 모습의 운전을 하여야 합니다.

신앙인부터 달라져야 합니다.

 

우리 본당 주변에서의 운전은 정말 조심스런 운전이 되어야 합니다.

이 골목 저 골목에서 어린이와 자전거와 오토바이들이 튀어 나옵니다.

길 양편의 주차로 인하여 수시로 양보 운전이 필요합니다.

 

뒤에서 무엇이 쫒아오는 듯한 조급한 운전은 우리의 삶에 불안을 안겨줍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하느님께 내맡긴 듯한 느긎한 운전은 우리의 삶에 평화를 안겨줍니다.

거룩한 운전은 우리를 거룩하신 하느님께로 이끌어 줍니다.

 

신앙인의 운전은 참으로 거룩해야 합니다.

 

 

< 운전자의 십계명 >

 

1. 살인하지 말라.

2. 도로가 사람들 간 친교의 수단이어야지 죽음의 해를 끼치는 수단이어서는 안 된다.

3. 공손하고 올바르고 분별있는 행동은 뜻밖의 사고를 처리하는데 도움이 된다.

4. 곤경에 처한 이웃, 특히 사고 희생자들을 자비로이 대하고 도와주라.

5. 차가 힘과 지배의 표현이 되도록 해서도, 죄짓는 기회가 되도록 해서도 안 된다.

6. 젊은 이든 그렇지 않든 간에 운전할 적합한 여건이 아닐 경우에는

   운전하지 말도록 타일러라.

7. 사고 피해자의 가족을 지원하라.

8. 사고 피해자와 피해자가 적절한 때에 자리를 함께 하도록 해 용서로써

    자유로와지는 체험을 할 수 있도록 하라.

9. 도로에서는 더 약한 편을 보호하라.

10. 다른 사람들에 대한 책임감을 느껴라. 

 

 

(문정동 본당 띠누리 잡지의 원고입니다.)





moowee 13.02.06. 09:51


기계인 승용차 중심의 운전이 아니라 하느님의 것인 <人間中心>의 운전,

사람을 먼저 배려하는 운전을 해야 합니다, 그것이 <신앙인의 거룩한 운전>입니다.




이해욱프란치스코 15.11.14. 14:37  


★인간중심, 인간존중★ 의 운전을 위하여 한 가지 조언해드릴 것이 있습니다.


작은 길에서 큰 도로로 진입할 때

그 길 人道에는 사람이나 자전거나 오토바이가 지나가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제가 동승했던 승용차의 운전자(신자)들은 대부분 인도 앞의 길을 조금더 터주지 않고

무조건 자동차 대가리?를 들이밀어 넣어 인도를 꽉 막아버립니다.


그러면 길을 지나가려던 사람들이 승용차 앞이나 뒤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것도 그냥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인상을 찌푸리고 째려보며 지나갑니다.

아마도 입을 내뱉지는 않았지만 - 내뱉으면 싸우게 되니까 - 속으로 욕을 하고 지나갈 것입니다.



나도 모르게 욕을 먹고 그 욕이 쌓이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리고 남의 기분을 상하게 하고 남이 나쁜 마음으로 욕을 하게 한 죄를 범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것 또한 죄게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신앙인으로서 더 나아가 하느님께 내맡긴 영혼으로서 타인(사람)에 대한 배려가 없는 사람은

영적으로 미성숙한 영혼이기 전에 미성숙한 인간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한 번 생겨난 것은 절대로 사라지지 않는다>고 말씀드린 그대로

사람들의 욕과 증오의 마음이 쌓이면 그게 어디로 날라가겠습니까?



하내영들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첫째도 겸손이요, 둘째도 겸손이요, 셋째도 겸손이듯이

신앙인으로서, 아니 인간으로서 가장 중요한 것은 첫째도 예의요, 둘째도 예의요, 셋째도 예의입니다.

아주~~~ 기본적인 예의가 없는 하내영은 거룩한 내맡김의 영성에 먹칠을 하는

아니, 하느님의 거룩하신 이름에 먹칠을 하는 격이 되는 것입니다.



인간 기본예의 없는 사람이 맨날 입으로는

"하늘에 게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를 외워도

별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작품인 사람 앞에 기계(차) 대가리를 크게 내밀지 맙시다!


작은 도로에서 큰 도로로 들어서기 전에는먼저 좌우를 살펴본 다음 사람이 지나가면
차 대가리를 사람들이 지나 갈 수 있도록 살짝만 내밉니다.

큰 도로를 살펴보다가 인도를 지나가는 사람들이 없고 
큰 도로의 차들이 지나가지 않을 때에 큰 도로로 진입을 하시기 바랍니다.

주님, 당신께 맡겨진 당신의 하내영들을 당신께 맡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