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맡긴영혼은 ■

거룩한 내맡김의 영성체험 나눔

은가루리나 2016. 10. 28. 00:49

 

 

■ 내맡긴영혼은 ■
거룩한 내맡김의 영성체험 나눔

moowee 2011.09.16. 07:44


'거룩한 내맡김의 영성체험 나눔', 그것이 소위 '강의'입니다.
앞으로 이곳에서는 그것을 줄여서 '체험 나눔'이라고 부르겠습니다.

개신교에서는 '하느님 체험 나눔'을 소위 '간증'이라고도 합니다.
하느님을 체험한 사람이 "나는 이렇게 하느님을 체험하였다." 라고
사람들 앞에서 그 체험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하느님 체험은 사람마다 참으로 다양합니다.
어떤 이는 성령의 은사를 통해서, 어떤 이는 고통을 통해서,
어떤 이는 질병을 통해서, 어떤 이는 어떤 사건을 통해서 등등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말하는 하느님 체험이란
'거룩한 내맡김의 영성(삶)'을 통해서 하느님을 체험하는 것을 말합니다.

한마디로,
'전능하시고 자비하시고 거룩하신 하느님이
자신의 모든 것의 주인이시기에
자신의 모든 것을 그분께 내맡겨 드리고
그분의 뜻대로 사는 삶'을 통하여
하느님을 체험하는 것을 말합니다.

'거룩한 내맡김의 삶(영성)'을 통한 하느님 체험은
간증과는 큰차이가 있습니다.


'간증'은
어떤 이가 하느님을 체험한 후 자신이 체험한 그 체험으로
자신 스스로가 열심히 신앙생활해 나가려 노력하는 것인데 비하여,

'거룩한 내맡김의 영성에 의한 하느님 체험'은
자신 스스로의 노력에 의하여 열심히 신앙생활해 나가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하느님의 이끄심(인도)'에 의하여 신앙생활을 해 나가는 것을 말합니다.


한마디로,

간증은
'내가 하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며,

거룩한 내맡김의 영성체험은
'하느님이 해 주시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다시 풀어서 말하면,

간증은
"나는 이러 저러한 체험으로 하느님을 만나게 되었었는데
그래서 지금은 내가 이러 저러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고
이야기 하는 것이고,

거룩한 내맡김의 영성체험은
"나는 맹세와 같은 굳은 결심으로
나의 모든 것을 하느님께 완죤히 다 내맡겨 드렸더니
지금은 내가 하느님의 이끄심에 따라
이러 저러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간증을 했던 사람 중에는
다시 과거의 삶으로 돌아간 사람이 있을 수 있겠으나,

거룩한(100%) 내맡김의 영성을 통한 하느님 체험을 했던 사람들 중에는
과거의 삶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이 무엇보다 큰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만일,
거룩한 내맡김의 영성을 통하여 하느님을 체험한 사람이
과거의 삶으로 다시 돌아갔다면
그것은 그 사람이 자신의 모든 것을
완죤히 100% 다 하느님께 내맡겨 드리지 못했기 때문이지
다른 이유는 절대 있을 수 없습니다.


이론적으로도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하느님께 완죤히 100% 다 내맡겨 드려
나의 모든 것이 부족함과 죄스러움마저 다 하느님의 것이 되었는데

그리하여 전능하신 하느님이 나의 모든 삶을 다 이끌어 주시는데
내가 어떻게 다시 과거의 삶으로 돌아갈 수가 있겠는가 말입니다.

저도 분명,
거룩한 내맡김의 영성체험에 있어서 여러분보다는 조금 빠르지만
이제 겨우 몇 년밖에 되지 않은 초보자입니다.

그래서 저에게도 아직 정화되어야 할 부분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하느님께 완죤히 내맡겨 드렸다 해서
하루 아침 한순간에
그 사람의 모든 것이 완죤히 다 거룩해 질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솔직히 고백드리자면,
지금까지의 저의 삶을 통해 보더라도 영성적인 면에서
제가 계속 성장하고 있음을 체험하고 있습니다.

과거보다 저는 많이 거룩해졌습니다.
저는 그분의 이끄심에 그저 이끌려 드릴뿐인데 정말 놀랍습니다.

그야말로 당장에는 잘은 모르지만
'하나하나, 나날이 조금씩' 이끌어 주십니다.

처음의 '때로는 왕창'외에
지금까지 다시 '때로는 왕창'은 없었습니다.

분명한 것은,
얼마 지나고 나서 돌아보면 하느님이 저를 통하여
당신의 뜻을 계속 펼쳐 나가시고 계심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그동안 이곳에서 '강의'라고 말하는 것이
바로 제가 체험한 '거룩한 내맡김의 영성체험'외에
다른 것이 아닙니다.

제가 그동안 강의했던 모든 것은 저의 영성체험이며
그 영성체험을 이곳에서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 있는 것입니다.

앞으로는 강의를 '체험 나눔'이라고 부르게 될 것입니다.


지난 번의 연피정에서
두 원장님이 거룩한 내맡김의 영성체험을 발표하셨고,
우리는 그 체험 발표를 통하여 크나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피정 참석자의 '인사 소개'에 있어서도 간단한 체험을 발표하실 때마다
우리는 서로 거룩한 내맡김의 영성체험을 함께 나눌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삶에 있어서의 '체험(體驗)'은 매우 중요합니다.

"젊어서 고생은 돈주고도 못산다."라는 격언이
바로 체험의 중요성을 말해 줍니다.

무슨 일이든지
실지로 몸으로 경험하지 못하면 오래가지 못하는 법입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느님을 체험해야 합니다.

하느님을 체험하지 못한 사람의 말과 글은 단 번에 알아볼 수 있습니다.
하느님을 체험하지 못한 사람은 '자기의 이야기'를 하지 못합니다.


자신이 직접 하느님을 체험하지 못했기 때문에
'남(타인)의 이야기'를
예를 들고 끌어와서 말하고 글을 쓸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이 하느님 체험 없는 사람들의 큰 한계이며 그러하기에
그러한 사람의 말이나 글은 '감동'이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박학다식의 소유자라 하여도 마찬가지입니다.

"박식한 무지, 지식의 허영'이라는 안토니오 성인의 말씀을
다시 한 번 깊이 새겨보게 됩니다.

하느님께서 여러분들을 통하여 새로 마련해 주신
'거룩한 내맡김의 집'에서는

처음엔 한 달에 한 번 정도
'시편낭독에 의한 묵상과 성가를 곁들인 체험 나눔 기도회'를
정기적으로 갖을 예정이며

체험 나눔의 발표자는 저와 여러분이 되셔야 합니다.


그렇다고 벌써부터 겁을 집어먹지 않으셔도 좋을 것입니다.

거룩한 내맡김의 영성은 '자기(인간)'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이 해 주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이 이끌어 주시지 않고 또 입을 열어 주시지 않으면
저도 여러분도 아무도 이 영성을 전할 수 없습니다.

이 거룩한 내맡김의 영성은
제가 이 영성을 보호하는 보호자가 아니라
하느님이 직접 보호해 주시는 보호자이심을 저는 굳게 믿습니다.

하느님은 이 거룩한 영성의 전파를 위하여 정말 놀라웁게
당신이 직접 '아님말구'를 해 주십니다.

아님말구는 절대로 제가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께서는 저에게
'어떤 느낌'이나 '어떤 일(사건)'을 통하여 저를 이끌어 주시고
저는 그 느낌이나 사건을 통하여 충실히 이끌려드릴 뿐입니다.

저는 저의 모든 것을 하느님께 내맡겨 드린 이후,
저는 어떤 사람이나 어떤 일에서만이 아니라
저와 관계되어 있던 모든 사람들과 모든 일에 있어서
지금까지 줄곧 한결같이 그렇게 해오고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지금까지 왜 아님말구가 나오게 되었는가는
수년간의 저의 지리산의 삶을 통하여
여러분께 확실하게 증명해 보여 드릴 수 있습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이러한 말씀을 자신있게 드리는 것은
사실이 그러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세상에서의 인간적인 인기도 칭찬도 전혀 바라지 않습니다.
누가 저의 부족함을 탓해도 저는 어쩔 수 없습니다.


제가 하느님께 저를 내맡겨 드린 후
하느님께서 저를 지금 이 상태까지만 이끌어 주셨는데
제가 더 이상 어쩌겠습니까?

거룩한 내맡김의 영성은 자기 스스로 부족함을 벗어나려
애를 쓰고 발버둥치는 것마저도 거부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 아직 저를 부족함 상태에 머물게 하시는 것은
어쩌면
아직 많이 부족하고 정화되지 못한 저의 못된 성격을 통하여
저에게 맡겨진 영혼들을 채찍질하고 교육시키고 선별하라는 뜻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까지 저의 경험으로 보면 하느님은 절대로,
'자기(인간) 스스로' 하려는 지헤롭고 슬기롭다는 사람을
거룩한 내맡김의 영성의 전도사로 사용하지 않으십니다.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거룩한 내맡김의 영성'을 통한 당신의 도구로 쓰시기를 원하실 때는
언제든
'fiat mihi(제게 이루어지소서)'하고 기쁘게 이끌려 드리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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