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권 15장 1923년 3월 12일
예수님 부재의 고통을 번번히 겪는 이유와 의미
15-15,3 "이 고통은 너만 홀로 겪는 것이 아니다.
내 사랑하올 엄마도, 나도 겪었다.
오, 그것은 너의 고통보다 훨씬 더 혹독한 것이었다.
4 하느님과 불가분의 관계 속에 있는 내가.
마치 신성이 나를 떠나 버린 것처럼,
신음하는 내 인성 안에 얼마나 자주 홀로 남아 있었던지!
그것은 속죄와 고통에 자리를 내 주기 위함이었는데,
이런 것들은 신성과 접촉할 수 없는 성질의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오, 나 역시 하느님 부재의 고통을 그토록 사무치게 절감했었다!
그러나 그것은 꼭 필요한 일이었다.
5 너는 이것을 알아야 한다.
하느님께서는 창조 사업을 하시면서,
각 피조물이 현세에서뿐만 아니라
천상 본향에서도 받게 될 모든 영광과 모든 선과 행복도 함께 내셨다.
그런데 어떤 영혼들에게 주려고 예정되어 있었던 몫은,
받을 사람이 하나도 없어서 전부 보류되어 있었다.
그들이 멸망했기 때문이다.
6 나는 모든 것을 완성하고 모든 것을 내 안에 흡수해야 했으므로,
바로 그 멸망한 영혼들이 지옥에서 겪는 고통을 겪기로 자원하였다.
오, 이것이 내게 얼마나 엄청난 희생을 요구하던지!
지옥의 실고(失苦)와 무자비한 죽음의 고통을 치러야 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꼭 필요한 일이었다.
7 내가 모든 것을, 즉,
창조 사업을 통해 우리에게서 나온 모든 것과 모든 영광, 모든 선과 행복을
나 자신 안에 흡수해야 했던 까닭은,
이들을 받아들여
누리기를 원하는 모든 이들 안에 다시 넣어 주기 위해서였다.
내가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을 어떻게 줄 수 있었겠느냐?
그러므로
나는 모든 고통과 내 신성의 부재까지도 흡수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8 이제, 창조 사업 전반의 이 모든 선을 내 안에 흡수하여
모든 세대들 위에 흘러내리게 하는 우두머리가 된 나는,
고통이며 활동에 있어서 나를 닮은 영혼들을 찾고 있다.
그들로 하여금
내 인성이 담고 있는 이 큰 영광과 영예를 나누어가지게 하기 위함이다.
9 그런데 모든 영혼들이 그것을 받아 누리기를 원하는 것도 아니고,
그들 자신과 현세적인 것을 비우기를 원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기에 나는 먼저 나 자신을 알릴 영혼들을 찾고 있다.
그런 다음 내 모습을 그들에게서 감추려는 것이다.
그들의 이 빈자리에, 나에 대해 알게 된 이 앎의 공간에,
내 부재의 고통을 양성하기 위함이다.
영혼은 이 부재의 고통을 겪으면서 내 인성의 이 영광을,
남들이 거부하는 영광을 자신 안에 흡수하게 되기 때문이다.
10 만일 내가 거의 언제나 너와 함께 있지 않았다면,
너는 나를 알지도 사랑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내 부재의 이 고통을 느낄 수 없을 것이며,
따라서 이것이 네 안에 양성될 수 없었을 것이다.
곧 이 고통의 씨앗과 양분이 네 안에 없었을 것이다.
11 오, 얼마나 많은 영혼들이 나 없이 있는지,
그리하여 죽은 상태로 살아 있는지!
그들은 어떤 작은 쾌락을 잃거나 하찮은 무엇이 없으면 비통해하지만,
내가 없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런 고통을 느끼지 않으며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12 그런즉 이 고통이 너에게는 위로가 될 것이다.
왜냐하면 이것이 내가 너에게 오고 있다는 것과 네가 나를 알고 있다는 것,
그리고 남들이 거부하는
영광과 선과 행복을 네 안에 넣어 주기를 네 예수가 바라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는 학실한 표가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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