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난의시간들 소개의 말

「수난의 시간들」소개의 말 ② (18-33) 성 안니발레가 제3판과 4판에 붙인 머리말 ⑴

은가루리나 2017. 1. 20. 00:10


소개의 말



18 다음은 성 안니발레가 

이 『수난의 시간들』제3판과 제4판에 붙인 "머리말" 에서 뽑은 내용이다.



19 "이 작은 책은 안니발레 마리아 디 프란차 신부인 저의 이름으로 출판되었으나

저는 저자가 아닙니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오로지 사랑하올 우리 구세주 예수님의 형언한 수 없는 고통 및 

그분의 지극히 순결하고 거룩하신 어머니 마리아의 고통과 긴밀히 결합하여 살고 있는 

어떤 사람에게 

제가 이 글을 쓸 것을 꽤나 끈질기게 종용한 끝에 받아 낸 작품입니다.


20 여성인 그 저자가 이 일련의 묵상을 시작한 것은 어느 날의 체험 이후부터였습니다.

당시 열세 살의 소녀였던 저자는 자신의 조그만 방에서 

폭동이라도 일어난 듯한 사납고 시끄러운 소리를 들었습니다.

21 길에서 난폭한 군중이 난동을 부리며 내려오고 있는 것 같았던 것입니다.

그 소음을 듣고 그녀는 발코니로 달려 나갔고, 거기에서 뜻밖의 한 광경을 목격했습니다.


22 군복을 입은 한 무리의 사나운 군사들이 창검으로 무장한 채 

술기운과 분노가 겹친 험악한 몸짓으로 고래고래 고함을 질러대며 

한 사람을 끌고 가는 중이었는데,

들고 있던 창으로 그 사람을 쿡쿡 찔러대기도 하는 것이었습니다.

허리를 구부리고 비틀비틀 끌려가는 그 사람에게서는 

핏방울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23 오, 얼마나 끔직한 광경이었는지!

워낙 관상적인 영혼의 소유자인 소녀는 두려움과 충격으로 몸을 떨었습니다.

그녀는 

저토록 심하게 얻어맞고 악랄하기 짝이 없는 학대를 받으며 끌려가는 사람이 

대체 누구인지 알아내려고 마음을 졸이며 살펴보았습니다.

24 그런데 그 무서운 행렬이 그녀의 발코니 아래에 다가왔을 무렵,

바로 그 사람이 

고통에 지친 머리를 들고 애처로운 표정으로 소녀를 올려다보면서

호소하는 듯한 낮고 굵은 음성으로 

"영혼아, 나를 도와다오!" 하고 외쳤던 것입니다.


25 오, 세상에! 

그 순간 이 영혼은 그분을 보았습니다.....

그분을 감지했습니다.....

그분을 알아보았습니다.....

바로 예수님이셨습니다!

가시관을 쓰시고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거룩하신 구원자셨습니다.

그분을 그들이 그리도 난폭하게 칼바리아로 끌고 가는 중이었습니다.

26 이 고통스러운 '십자가의 길' 광경이 그녀의 영안과 육안 앞에 재현되고 있었습니다,

이천 년 전의 그 사건이 하느님의 전능으로 고스란히 현실화되었고,

예수님께서 그녀를 보시며 "영혼아, 나를 도와다오!" 하고 외치셨던 것입니다.

27 열세 살 된 소녀는 그 순간 거의 실신할 정도로 괴로웠습니다

그 참혹한 광경을 차마 더 이상 볼 수 없어져 물러섰고,

쏟아지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한 채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28 하지만 우리의 구원을 위해 그 지경이 되신 지고한 선이신 분에 대한 

사랑과 연민의 정이 울컥 북받치는 바람에

발코니로 도로 달려 나와서 떨리는 눈길로 다시 그 길 근처를 둘러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때에는 모든 것이 사라졌습니다!

군중도 그 어지럽던 소동도 예수님도 이미 보이지 않앗습니다.


29 모든 것이, 성체 외의 모든 것이 사라졌습니다.

여기에서 제가 성체라고 하는 것은,

우리에 대한 사랑으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려고 고난을 받으시며 끌려가신

예수님의 그 분명한 모습을 뜻합니다.

30 그녀에게 또 한 가지 남은 것은, 

"영혼아, 나를 도와다오!" 하신 그분의 음성이었습니다.

이 음성이 그녀의 내면에서 아직 강하게 메아리치고 있었던 것입니다.

홀로 숨은 듯이 살고 있는 이 영혼의 영적 젊음이 한창 꽃을 피우기 시작한 것은 

그때부터였습니다.


31 고난 받으시는 예수님에 대한 사랑에 사로잡힌 나머지

밤낮으로 그분 생각을 그칠 수가 없었으니,

다정하신 우리 구세주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을 더없이 깊은 사랑으로 관상하면서

고통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32 이 환시를 보고 그 애처로운 호소 

-  "영혼아, 나를 도와다오!" - 를 들은 지 오랜 세월이 흐른 후에도

이 책의 저자는 그때 시작한 예수님의 수난 묵상을 그친 적이 없었던 것입니다.


33 여기에서 저자의 이름이나 그녀가 고독하게 살고 있는 고을의 이름을 밝히는 것은 

적절하지 못한 일일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이 머리말에서, 또 이 작은 책에 포함된 묵상들 전체에 걸쳐서 

저자를 단지 '영혼'이라고 칭하거나 

그 이름을 대신할 수 있는 형용사, 술어, 별칭들을 사용하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