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난의시간들 소개의 말

「수난의 시간들」을 실행하는 방법들 p.27-29 [18권 9장}

은가루리나 2017. 1. 25. 01:17


『수난의 시간들』을 실행하는 방법들   p.27-29



5  이 수난의 '시간'을 "실행"한다는 것은,

해당 내용을 주의 깊게 읽고, 묵상하고, 관상하고, 

자기 자신의 생명으로 삼는 것이다.....


  그러니 오랜 세기 전  아주 먼 곳에서 일어난 어떤 일을 기억하듯,

단지 예수님의 고난을 기억하며 동정심을 표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6  오히려 무엇보다도 먼저,

모든 것이 존재하며 현행 중인 하느님의 뜻 안으로 들어가서,

바로 이 순간에 행해지는 우리 주님의 내적 행위와 고난에 참여하는 것이다.


  이는 

그분의 생명을 우리 안에 재현하며 그분을 닮아 가는 일에 성장하려는 것이고,

또한 모든 사람 위에 

그분 수난의 무한한 가치와 공로와 효과를 쏟아 부어 주려는 것이다.



7  예수님께서는 (그 두 가지 태도 사이의) 매우 중대한 차이점에 대하여 

친히 이렇게 설명해 주셨다.




18-9,2 "딸아, 나의 수난에 대해 생각하면서 

고통 중에 있는 나를 측은히 여기는 것은 매우 내 마음에 드는 일이다. 


나 혼자 고통을 겪지 않고, 

피조물이 - 내 고통의 원인이며 내가 그토록 사랑하는 피조물이 

나와 함께 있음을 느끼기 때문이다. .


게다가 그와 함께 있음을 느끼기에,

고통이 내게 더욱 감미로운 것이 되기도 한다.



3 홀로 외롭게 고통을 겪는 것은 얼마나 가혹한 일인지! 

홀로 고립되어 있는 나 자신을 보면, 

내 고통을 맡길 사람도, 이 고통이 지닌 열매를 줄 사람도 없어서, 

고통과 사랑의 바다에 빠져 죽어가는 것 같다. 


그러므로 나는 내 사랑이 이를 더 이상 견딜 수 없어질 때 너에게 온다. 

네 안에서 고통을 겪는 것이다. 


네가 나와 함께 내 수난 고통을 현행적인 것으로 겪으면서 

내가 내 인성으로 행하고 겪었던 모든 것을 반복하게 하려는 것이다.




4 나의 수난을 현행적으로 반복하는 것은 

다만 내 고통을 생각하며 나를 측은히 여기는 것과는 그 성질이 다르다. 


먼젓번 것은 

내 고통을 거듭 겪고자 나를 대신하는 내 생명의 행위이기에, 

내가 신적 생명의 효과와 가치를 돌려받는 느낌이 든다. 


반면에 

내 고통을 생각하며 나를 측은히 여기는 것은 

나로 하여금 피조물과 함께 있음을 느끼게 하는 것에 불과하다.



5 한데, 너는 아느냐? 

내가 어떤 사람 안에서 내 수난 고통을 현행적으로 반복할 수 있는지를? 


바로 내 뜻을 생명의 중심으로 가지고 있는 사람 안에서다.






10 우리는수난의 시간들이 다만 하나의 읽을거리나 신심 서적이 아니라,

생명을, 그것도 예수님의 내적 생명을 형성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날이 갈수록,

예수님께서 참으로 우리 안에서, 우리의 생명이 아니라 

당신 자신의 신적인 생명을 살고 계신다는 것을 더욱 더 실감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