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섭리에내맡김

제4장 -03 내맡김의 적극적 실행

은가루리나 2017. 2. 9. 22:40

 

 

 

 

 

제 4 장
하느님의 뜻을 완전히 따르는 것이 영성의 본질이다

 03 
내맡김의 적극적 실행



하느님께서 자아포기의 상태로 부른 영혼들은
능동적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수동적이라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은 적극적인 면이 완전히 사라졌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습니다.

자아포기의 상태란 바로
일상적인 위탁의 덕이 보다 균형 있고 완전하게 실천되어 강화되었음을
말해줍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의무가 실행되어야 합니다.

첫째는 하느님의 뜻을 능동적으로 실천에 옮기는 것이고,
둘째는 하느님의 뜻으로 우리에게 주어지는 모든 것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이미 언급한 바 있듯이 
내맡김의 상태란 하느님의 뜻대로 쓰시도록
하느님께 우리의 전 존재를 모두 내맡겨 드리는 것입니다.


이제 그분은 우리에게 두 가지 방법을 사용하시는데,

그것은
우리에게 어떤 일을 행하시게끔 하는 경우와
우리 안에서 당신 자신이 일하시는 경우입니다.

첫 번째 방법은
우리가 하느님의 분명하고 명백한 명령에 기쁘게 순종하는 것이고,
두 번째 방법은
우리 영혼 안에서 그분이 행하시는 일에 온전히 유순하게 따르는 것입니다.


자기위탁, 내맡김이라는 것은 이 두 가지를 모두 포함하는 것으로,
그것은
여러 가지의 유형무형한 것이 순간순간 빚어지는 대로
하느님의 섭리를 거기서 바라보고 그것을 따르는 것 외에 
다른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있어서는 어떤 모양의 내맡김이 좋을까 라든지
아니면 매순간 어떠해야 하는지를 아는 것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제일 중요한것은 조건 없이 우리 자신을 내맡기는 일뿐입니다.



그러므로 명령을 받고 해야 되는 의무가 있고
아주 소극적이면서 내맡긴 채로 두는 의무가 있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 형태의 의무는 하느님의 영을 통해 권고되어지는 의무인데,
그분의 영은 당신께 충실한 영혼에게 특별히 몸소 일하시어
어떤 일에 주의를 기울이도록 해 주십니다.


이런 종류의 의무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일하시는 은총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감수성을 가지고
단순함과 고요한 내적인 세계로 향하는 영혼이 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영혼은 인도하시는 데로 가야만 하고,
은총에 자발적으로 따라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은 우리가 이런 상태에 있을 때,
우리가 무엇을 받아들이고 거절해야 할 것인지를
우리에게 말해 줄 지도자를 보내 주실 것입니다.


이 의무는 특정한 규칙이나 규범에 묶여 있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성인들의 생애에서 볼 수 있는
특수하고도 두드러진 것이 설명될 수 있는 것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성인들의 구송기도, 내적인 열망, 엄격함으로 빛나는 그들의 생애,
이웃에게 보여 준 그들의 따스함과 아낌없는 희생은
성령이 영혼 안에서 일하시는 결과이므로,

우리는 그러한 은총을 간직하기를 원해서도 안 되고
또 자신의 덕행 안에서는 특기할 만한 것이 없다는 것에 대해
한탄해서도 안 됩니다.

그러한 것들은
하느님의 뜻이 거기에 있기 때문에 참으로 가치 있는 것입니다.

이 점을 마음에 잘 새겨 두지 않고 자애심에 이끌려 간다면,
우리는 스스로 환상에 사로 잡히는 자들이 될 것입니다.



자신의 눈에나 타인의 눈에 띄지 않는
조그마한 숨은 존재로 밖에 보이지 않는 영혼도
하느님이 그 영혼에게 뜻하시고 원의하고 계심을 알아야 합니다.

하느님은 그들에게 눈에 띄는 덕을 주시기는커녕
그들에게 아무것도 허용치 않으시며,
도리어 사람들이 깨닫지 못하는 어둠 속에 그들을 머물게 하십니다.

만일 이런 영혼이 다른 길을 걸으려 한다면 그르치게 되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올바른 가르침을 받는다면,
자신의 길에 충실해야만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어
자신의 비참함 안에서 평화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들의 길과 또 외견상 그들보다 은혜를 받은 영혼의 길 간에
차이점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단지
하느님의 뜻에 얼마만큼 사랑과 위탁의 마음을 가지고 따르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그들이 외적인 활동에서 적극적으로 보이는 사람들보다 우수하다면,
그들의 성덕은 분명 더 훌륭할 것입니다.

이는 영혼들이 제각기 신분상 해야 할 의무와
자신에게 연루된 하느님의 섭리에 만족해야만 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하느님은 이것을 누구에게나 똑같이 요구하고 계신다는 것이 확실합니다.

영혼에게 하느님이 말씀해 주시고 무엇인가를 느끼게 해 주시는 것은
온전히 하느님만 해주실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람이 영적인 기쁨을 제 마음대로 이루어보려고 한다든지
체험해 보려고 해서는 안 되며,
이런 것들을 강화시켜 나가려 노력해서도 안 됩니다.

인간 쪽에서의 이런 노력은
성령의 작용하심에 직접적으로 반대되고 또 모순되는 것이 됩니다.



정배의 목소리는 신부(영혼)를 잠에서 깨웁니다.
신부는 단지 성령의 권고대로만 나아갈 것입니다.

만일 영혼이 자기 멋대로 행동한다면
성취할 수 있는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을 것입니다.

그토록 감탄할만한 성인들의 행위에 비해
우리가 그러한 경향도, 은혜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안다면,

"하느님께서는
이러한 것들을 성인들에게 원하셨지, 나한테는 원치 않으셨다."고
철저하게 말해두어야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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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의 시련; 내적 굴욕 하느님이 이 상태로 높이시려는 영혼은, 다른 사람들로부터도 경멸을 받지만 자기자신 스스로도더한층 초라하고 비참하게 느껴집니다. 자신이 느끼는 고통과 이루어 내는 모든 것이 쓸모 없는것으로서 빈약하고 보잘것없는 것으로 느껴집니다. 그들의 행위에는 빛나는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는 평범 그 자체입니다. 마음속으로는 당혹감으로고민하고 밖에서는 반대에 부딪치고 계획이 잘못되어 가는 것을 경험합니다. 몸도 병약하고사람들의 칭찬의 대상이 되는 성인들의 고행, 성스러운 가난함을 실행하는 것도 불가능하고,모든 것을 (관심과 위로) 필요로 하는 형편입니다. 장대한 계획을 세우는 일, 엄격하게 자신을 다스리는 것도(大斎、英: Great Lent)대대적으로다른 사람에게 자선을 하는 것도 불가능하고 불타는듯한 열정으로 세계적 규모의 대업에 앞장서서몸을 던지는 것도 불가능 합니다. 신앙과 사랑에 의해서 단순하게 내적으로는 하느님과 일치하고 있는 그들이지만, 외적인 감각으로보여지는 것은 모든 것이 어수선하고 질서가 없는 가운데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처럼 보여집니다.거기에다 성인으로 불리어지고 있는 사람들과 비교해보면 더욱더 자기자신이 비참하다고 느껴지게됩니다. 그러한 영웅적인 사람들은 법칙이나 법식에 딱 알맞는 성격의 소유자로, 그들이 하는 일이루는 일은 모두 살아있는 합리성 그 자체입니다. 그러한 성인들과 비교하여 자신을 되돌아보면서 탄식만 할 뿐입니다. 자기자신을 참아내는 것이힘들어 집니다. 마음속으로 한숨과 탄식들이 계속 이어지면서 날카로운 아픔과 고뇌로 나타납니다.예수그리스도는 주님이시면서 사람 이였다는 것을 생각합시다. 예수님은 사람으로서는 죽음을당하셨지만 하느님으로서는 영광으로 가득 차 계셨습니다. 이러한 영혼도 주님의 영광과는 거리가 먼 것 같은, 외면상으로 그들을 보면은 무엇이라고 말할 수없는 비참함과 아픔으로 인하여, 마치 주님이 헛되이 돌아가신 것 같은 모습으로 비추어집니다.사람들의 눈에도 마치 헤로데와 그 궁정의 사람들 앞에 서있는 예수님과 같은 모습으로 보여집니다. 이 불쌍한 영혼들은 영혼, 육체 모두 쓰디쓴 음식으로 길러집니다. 입에 맞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그들이 원하고 있었던 것은 이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동경하고 있었던 성덕으로의 길은전부 다 막혀 있습니다. 이 고통의 빵, 재로 만들어진 빵을 먹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거기에다가 영,육적으로 끊임없이 자신을 억제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성덕에 대한 어떤 理想像이 계속해서 자신을 고통스럽게 하는 원인이 되고있습니다. 의지는 그 理想像을 자신의 것으로 하려고 하고 있습니다만, 충족되어지지 못합니다.도대체 이러한 것에 의미가 있는 것일까요. 그것은 영혼의 가장 깊은 곳에 있는 영적인 것에 관해서도 내면으로 죽어야만 하기 때문입니다.또한 자신과 관계 하고 있는 모든 것 어떤 것 에서도 기쁨과 만족을 찾지 않게 되며 유일한피난처인 하느님의 뜻의 길, 오로지 그 길에서만 진정한 하느님과 함께하는 기쁨을 찾아내는것입니다. 영혼이 오로지 하느님만으로 만족하도록 하기 위하여 영혼에게 이 길을 걷게 하십니다.이로서 내맡김을 실천하는 영혼에게는 다른 사람들과 다른 곳이 있다는 것을 쉽게 알 수가있을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장래계획을 세우고. 걱정거리, 업무에 전전긍긍하고 이것저것논쟁해가면서, 조직이 새운 계획을 구상하는 등과 같은 일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내맡김을 실천하고 있는 영혼은 이런 일은 불가능합니다. 그렇다고 이러한 영혼이 자유롭게행동하고 살아갈 것 같지만 그렇지도 않습니다. 내맡긴다고 하는 것에 의해서 그것을 할 수없기 때문입니다. 내맡기려고 노력하는 영혼은 자기자신과 관련된 모든 권리를 하느님께 전부다 내맡기고 완전한 하느님의 사람이 되어 있습니다. 말하는 것과 행동하는 것, 생각하는 것, 살아가는 것, 시간의 사용방법, 그 외의 모든 자신과 관련하고 있는 모든 것들에 대해서는 하느님의 뜻을 기준으로 하여 살아가고 있습니다.완전한 하느님의 사람이 되어있습니다. 오로지 하나의 희망만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그 희망은 당신 자신을 바치신 예수님만을 바라보는 것, 그리고 주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주의를 기울이고 그것을 알았을 때는 바로 실행으로 옮기려고 하는 것입니다. 주인이 내리시는 명령을 따르려고 항상 주인의 곁을 떠나려 하지 않는 종의 태도야말로 바로내맡김의 자세를 가장 적절하게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 하인은 자신을 위해서라는 마음은 없습니다.언제라도 주인의 일을 하기 위하여 자신의 것은 내버려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영혼은 자신의 무능함을 마음에 두지 않습니다. 전능하신 하느님의 손길에 모든 것을내맡기고 있으면 많은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가장 볼품없는 도구도 하느님의 손길에자신을 완전히 내맡기면 위대하고 훌륭한 일을 이루어 낼 수 있습니다. 우리들의 생활이 외면상으로 볼 때에는 자신의 눈에도 또 다른 사람들의 눈에도 비참한 것으로보여지더라도 고통스러워 하지 마십시요. 오히려 사람의 눈으로 볼 수 없는 곳에 감추어진 유일한보물인 하느님을 느끼십시요.이 연약함, 고통, 걱정거리, 충분하지 못한 음식, 휴식을 취할 수 없는것, 실패, 멸시, 불안, 그리고 확실성이 없는 두려움 등 모든 것을 하느님 안에서 최고의 행복을 찾기위하여 이용합시다. 하느님은 이러한 비참함을 통해서 당신 자신을 우리들의 유일한 보물로서모든 것을 내어 주십니다. 하느님은 우리가 빈약하며 또 다른 사람들에게 칭송 받는 눈부신 지성이 갖추어져 있지 않는 것을원하시고 계십니다. 오로지 하느님만이 마음의 양식이 되는 것을 원하시고 계십니다.하느님 안에서만 우리들은 기쁨을 찾아야만 합니다. 우리들은 너무 연약하기 때문입니다.만약, 우리들이 실천하는 엄격함과, 열의, 자신이 행하는 자선, 그들이 인내하는 성스러운 빈약함등이 빛이 되어서 우리들 안에서 빛나기 시작하면, 그곳에서 어느 정도의 기쁨은 느낄 수 있겠지요. 그러나 우리들이 걸어나가는 길이 불유쾌한 것만 눈에 보인다면 그 삶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그 때 오로지 하느님만이 聖性의 모든 것이 되고 의지의 모든 것이 됩니다. 사람들은 우리들을업신여김으로 인하여, 우리들에게 자신의 보물을 여유롭게 즐길 수 있는 여유를 가지게 하여 줍니다.어찌되었던, 하느님은 우리들 가운데에 계시면서 우리들을 성화시키는 원천이 되시기를 원하고계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주적인 노력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은 놀라울 정도로 빈약하고, 대체적으로 성덕과는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보여집니다. 수동적인 마음가짐을 통하여 얻어지는 것 이외의 것은 하느님의눈에 훌륭하게 보여지지 않습니다. 자신의 성화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맙시다. 모든 것을 남김없이 전부 다 하느님께 내맡깁시다.하느님께서 모든 것을 이끌어 주십니다. 그것은 하느님의 섭리인 특별한 배려와 방법으로 이루어집니다. 많은 경우 하느님의 섭리는 우리들이 알지 못할 때, 게다가 가장 의기소침해 있는 그 일을통해서 우리들이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고 있을 때, 그때에 역사하여 주십니다. 대단한 일을 하려고 생각하지 말고, 눈에 뛰지 않는 의무를 적극적으로 충실하게 다하면서 안심하고자신의 길을 걸어나갑시다. 하느님은 우리들의 노력에 따라서 하느님 자신을 내어 주시는 분이아닙니다. 하느님께서 주시는 은총에 따라서 성인도 되고, 은총의 聖者, 특별한 섭리를 만들어내는聖者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어디까지 높여질 수 있는지는 하느님만이 알고 계십니다.모든 것을 하느님께 내맡기고 내버려 둡시다. 잘못된 상상에 사로잡혀 허무한 성덕의 理想像을자기 스스로가 만들어 내는 것을 그만 하세요. 끊임없이 하느님을 사랑하면서 하느님께서 알려주신길을 단순하게 걸어가는 것만으로 만족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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