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섭리에내맡김

제4장 -02 내어맡김의 상태에 이르고자 한다면, 모든 피조물에서 이탈해야 한다.

은가루리나 2017. 2. 2. 16:38


《하섭내 제4장 하느님의 뜻을 완전히 따르는 것이 영성의 본질이다

- 02 내어맡김의 상태에 이르고자 한다면, 모든 피조물에서 이탈해야 한다.》




제 4 장


하느님의 뜻을 완전히 따르는 것이 영성의 본질이다




 02 


내어맡김의 상태에 이르고자 한다면, 모든 피조물에서 이탈해야 한다.





   순수한 사랑에 관한 가르침은 

인간의 사고나 정신력으로 습득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도우심으로만 얻을 수 있습니다.


하느님은 우리에게 이성으로써 뿐 아니라  

괴로움과 장애를 통해서도 가르쳐주십니다.


우리가 가르침을 통해 배우는 것은  

하느님만이 선하신 분임을 맛들이는 실천적 지식입니다.



이것을 배우고자 한다면, 

우리는  

우리가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는 일체의 것으로부터 마음을 비워야 합니다.


우리가 모든 것에서 철저하게 벗어나 비어 있는 상태가 되기 위해서는 

현세적으로 부자유스러움을 견디어 내어야만 합니다.


우리는 시련과 굴욕을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체험하고 난 뒤에야

비로소 순수한 사랑을 몸에 지닐 수 있습니다.



창조된 것이 이미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고 

하느님만이 우리에게 모든 것이 되는 단계에까지 가야만 합니다.


그곳까지 인도하시려고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개인적인 애착심을 파괴시킵니다.


그러한 애착심들이 어떠하든지 간에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무엇인가 특별한 신심과 신심의 대상에 사로잡히게 되면 

이러저러한 독자적인 길로 완덕에 이르려 생각하고 

이 사람 저 사람의 안내를 받아 그곳에 오르려 합니다. 


그렇지만 무엇인가에 애착심을 느끼기 시작할 때, 

하느님께서는 개입하시그러한 계획을 뒤엎으시고  

평화 대신 혼돈과 근심과 어리석음을 체험토록 안배하십니다.


자신의 기호에 따라 

"나는 이 길을 가야 해, 이 사람과 상담해야지, 나는 이렇게 행동해야 돼" 

하고 말하자마자 

하느님께서는 그와 반대되는 일을 진행시키고  

우리가 택해 놓은 것을 무력하게 만드십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모든 것이 기대에 어긋나 

피조물의 허무함을 맛보고 

하느님께 도움을 구하며 하느님만으로 만족하게 됩니다.




   엄위하시지만 사랑이 충만한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을 우리가 파악하고  

거기에 열심히 협력하기만 한다면,  

우리는 참으로 복된 사람이 됩니다.


이러한 영혼은 지나가 버리고 마는 모든 것을 넘어서

변함없고 무한하신 하느님 품에서 휴식을 취합니다.


그 대신 피조물을 신뢰하고 그 안에 빠져 들어가는 것 같은 일은  

더 이상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원하실 때 피조물들을 사용하십니다. 

그때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자신의 모든 원의를 벗어나  

자기 식으로 선택하고 취하는 것에서 이탈하고 있음을 바라보십니다. 


이것은 우리가 완전한 무관심 속에 죽어 묻힌 상태입니다.


이때 하느님은 

당신의 주권을 남김없이 영혼의 그윽한 깊은 곳에 나타내 보여주십니다.


그리고 그분은 

피조물의 모든 구별과 차이점을 없애버리는 섬멸의 그림자를  

모든 피조물 위에 흩으십니다.


그리하여 이들 피조물은 무엇인가를 할 수 있는 힘을 전적으로 상실하고 

자신의 모든 활동력을 잃게 되어, 

우리는 그것들에 대해 아무런 애착심도 갖지 않게 됩니다.


이는 하느님의 위대하심만이 모든 능력을 사로잡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하느님 안에서 살게 되면 

우리는 다른 모든 것에 대해 죽어 있고  

다른 것도 우리에 대해 그렇게 소멸하게 됩니다.



모든 것에 생명을 주시고, 

피조물과의 관계에서 영혼을 구하며 또 영혼을 위해 피조물을 살리는 일은 

모든 생명의 주인인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그 다음 하느님의 뜻을 통해 

우리 마음은 피조물에게 향하고  

우리 영혼은 그들을 맞아들여 이용할 수 있게 됩니다.



하느님의 뜻 없이는 

피조물이 영혼에게 영향을 끼칠 수 없고  

영혼도 피조물을 붙잡으려 하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하느님이 뜻을 통해 보여주신 한계에 머무르는 모든 피조물은 

영혼에게 있어서  

끊임없이 하느님 자신이고 동시에 모든 것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매순간 우리 마음은 하느님 안에서 평화 속에 머물며 

전창조(全創造)에 완전히 내맡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매순간은 모든 것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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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2, 내맡김의 상태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모든 피조물에서 이탈하지 않으면 안 된다.



2, 내맡김의 상태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모든 피조물에서 이탈하지 않으면 안 된다.


내맡김의 상태에 한번 도달하게 되면 이제는 오로지 감미로움을 느낄 뿐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상태에까지 이르기 까지는 수없이 많은 고통을 넘어야만 합니다. 

순수한 사랑에 대해서의 깨달음은 인간의 정신력 만으로서 얻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이끌어 주실 때에만 가능합니다.


마음의 교육을 하느님은 개념에 의해서가 아니고 고통과 장애를 통해서 가르쳐 주십니다. 

그것은 하느님은 유일하시고 선하신 분이심을 깨닫게 하기 위한 실천적 지식입니다.

이 가르침을 배우기 위해서는 모든 세속적 이익에서부터 이탈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게다가 완전한 이탈을 하기 위하여서는 

세속적 이익이나 불편한 것들을 참아내어야만 합니다.

끊임없는 시련, 모든 사물에 대해서의 자기 억제, 이탈을 몇 번이나 반복하면서 

처음으로 순수한 사랑을 몸에 지니게 되는 것입니다.


창조된 것은 더 이상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되고 

하느님만이 모든 것의 모든 것이라고 하는 단계에까지 영혼은 이르지 않으면 안됩니다. 

거기까지 이끌어주시려고 

하느님은 영혼이 가지고 있는 자기 멋대로인 모든 애착심을 버릴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십니다.


그래서 영혼은 어떤 특별한 신심에 대한 이상이나, 어떤 신심의 대상에 사로잡힌다던가,

또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자신 스스로의 방법으로 완덕에 이르려고 하는 생각을 가지게 된다던가

또는 이 사람 저 사람 누군가에 의지해서 그곳에 도달하려고 한다던가, 

말하자면 다른 어떤 것에 애착을 가지기 시작했을 그 때, 

하느님은 그러한 계획들을 전부 바꾸어 버리시고 찾고 있는 것 대신으로 

혼란, 불안, 허망함, 어리석음만을 맛보도록 계획 하십니다.



자신의 취향에 따라서 

”자 이제부터 이 길을 가자“ 라던가 ”저 사람에게 상담해야지“라던가

”이 방법으로 해야지“ 이라는 생각을 가지지만

하느님은 바로 그 반대방향으로 모든 것을 섭리하십니다. 

그래서 영혼은 자신이 선택한 것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러한 영혼은 모든 기대가 무너져서 허무함만을 맛보게 되므로, 

하느님의 도우심을 청하게 되고

하느님의 뜻만을 쫓아서 살아가는 삶이 됩니다.


엄하시지만 한없으신 하느님의 사랑을 알게 되고 그 사랑에 충실하게 따르는 영혼은 

복된 영혼입니다. 

이러한 영혼은 스쳐 지나가는 모든 것에서 헤쳐 나와 

변함없으시고 무한한 하느님 안에서 평안함을 찾아냅니다. 

피조물을 사랑하고 신뢰하는 그러한 어리석음에 이제 더 이상 빠져들지 않습니다.


그러한 행동을 하는 것은, 

주어진 의무에 의해서나, 하느님의 뜻이 영혼에게 그러한 것을 하도록 이끄시거나 

또한 하느님께서 확실하게 그러한 것을 원하고 계신다고 하는 이유가 있을 때 뿐입니다. 

제물이 많거나 적거나 그러한 것을 훨씬 뛰어넘어서 

영혼은 자신의 영원한 행복 그 자체이신 하느님과 일치 하면서 

하느님으로 가득 차서 살아가게 됩니다.


그때, 하느님은 영혼이 영혼 자신의 뜻에 이끌리고 영혼 스스로 행동하고, 

영혼 자신이 결정하는 모든 것으로부터 이탈 되어 진 영혼을 바라보게 되십니다. 

그것은 자신이라고 하는 뜻은 죽어 없어지고, 

모든 일에 있어서 바로 하느님을 따를 수 있는 마음의 자세가 되어있는 

말하자면, 육체는 죽어서 땅에 묻혀진 상태와 같은 것입니다.


그때에 하느님은 당신의 신성을 남김없이 영혼의 깊은 내면에서 깨닫도록 이끌어 주십니다.

만들어진 것은 남김없이 모든 구별이나 차이점을 전부 거두시고 

무의미하게 만들어 버리십니다.

그래서 피조물은 자신의 힘을 잃고 

자기 스스로가 무언인가를 하려고 하는 능력을 상실 하게 됩니다.


하느님의 거룩하심만이 영혼의 모든 능력을 사로잡아 버리십니다. 

이렇게 해서 오로지 하느님만으로 살아가는 영혼의 마음은 

세상의 것은 다 죽어 없어져 버렸습니다.

다른 모든 것도, 마음속에서는 죽어버린 것과 마찬가지 입니다.


피조물의 관계에서 영혼을 구하시고 살아가게 하시고 

또한 영혼을 위하여 피조물을 살아가게 하는

것은, 살아계신 모든 생명의 주인이신 하느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모든 것이 생겨나게 하는 것도 하느님의 뜻에 의하여서 입니다. 

하느님의 뜻에 의해서 

마음에게 필요한 것인지 아닌지의 정도에 따라서 피조물에게 주어 집니다. 

마찬가지로 피조물도 하느님의 뜻에 의하여 영혼 앞에 놓여지게 되고 

영혼에 의해서 이용 되어집니다.


하느님의 계획이 없이는 피조물이 영혼에게 아무런 영향도 주지 못하고, 

영혼도 피조물을 취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하느님의 거룩하신 뜻에 의해서 보여지는 한계에 머무르는 모든 피조물은 

영혼에게 있어서 끊임없이 하느님 자신이시고 동시에 모든 것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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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섭내 제 4 장 하느님의 뜻을 완전히 따르는 것이 영성의 본질이다

-2. 내맡김의 상태에 이르고자 한다면, 모든 피조물에서 이탈해야 한다.》


창조된 것이 이미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고 

하느님만이 우리에게 모든 것이 되는 단계에까지 가야 한다.


이러한 영혼은 지나가 버리고 마는 모든 것을 넘어서서

변함없고 무한하신 하느님 안에 휴식을 얻으며,

피조물에 신뢰하며  그 안에 빠져들어가는 것 같은 일을   더 이상 하지 않는다.


그러나 ★하느님이 원하실 때는 피조물들을 사용하신다.

그때 하느님은 우리가 자신의 모든 원의를 벗어나서 

자기 식으로 선택하고 취하는 것에서  이탈하고 있음을 바라 보신다.★



[moowee 17.04.18. 15:18



<그때 하느님은

우리가 *자신의 모든 원의를 벗어나서*

* 자기 식으로 선택하고 취하는 것에서 이탈 * 하고 있음을 바라 보신다.>



하느님께 자신의 모~~~든 것을 100% 다 내맡긴 영혼은
정말 이 세상의 그 어떤 것에도 마음을 두고 있지 않기에,
* 자기 식으로 선택하고 취하는 것에서 이탈 * 하게 되는 것은 참으로 지극히 당연한 일이 아닐까요?

왜냐하면 이유는 단 하나!
★ 하느님께 100% 다 내맡겼기 때문입니다. ★

따라서,
하느님께 자신의 모든 것을 100% 다 내맡긴 영혼에게서 이루어지는 모든 <취사선택>은
100% 내맡긴 참으로 부족한 한 인간이 취사선택한다 하여도 


그것은 그가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계신 하느님이 취사선택하시는 것이 아닐까요?

왜냐하면 그가
★ 하느님께 자신의 모~~~든 것을 100% 다 내맡겼기 때문입니다. ★


그가 100% 내맡겼나 99%만 내맡겼나 하는 것은,
아브라함처럼 자신의 모~~~든 것과 똑같은 가장 소중한 이사악을 바칠 수 있나 없나에 달려 있습니다.

<이사악>은 다른 말로
<100%>라는 말과 같은 말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모든 것을 100% 다 완죤~~~히 다 내맡긴 영혼의 <취사선택>은 곧,
하느님께서 해 주시는 것으로 믿으면 틀림이 없을 것입니다.



취사선택 取捨選擇
여럿 가운데서 쓸 것은 골라 쓰고 버릴 것은 버림 (다음사전)



<피조물에 신뢰하며 그 안에 빠져들어가는 것 같은 일을 더 이상 하지 않는다.
그러나 ★ 하느님이 원하실 때는 피조물들을 사용하신다. ★>




하느님께 자신의 모든 것을 100% 다 내맡긴 영혼은
이 세상 그 어떤 것에도 마음이 두지 않게 됩니다, 정말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정말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모든 것을 맡고 계신 하느님이
★ 그 사람 안에 당신의 피조물을 사용하게 하실 마음을 일으켜 주신다면,★
기꺼이 그리고 ' 기쁘고 즐겁게(마태 5, 12)' 그 피조물을 사용해야 합니다.


그때 피조물의 취사선택도 그가 하는 것이 아니라고 믿으면 틀림이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 그가 하느님께 자신의 모든 것을 100% 다 내맡겼기 때문입니다.★



취사선택 取捨選擇
여럿 가운데서 쓸 것은 골라 쓰고 버릴 것은 버림 (다음사전)




하라 하지말고 하라!
하지말라 네가 하지 말라!
네 안에 계신 그분께서 하시게 하라!



"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입니다."(갈라 2,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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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wee   17.04.19. 06:46 

무소



근디~~~

사랑하는 무소!
거기에는 잊어서는 안 될 중요한 것이 하나 있어요.

하느님께서 자신의 모든 것을 100% 내맡긴 영혼들 안에서 당신 친히 취사선택해 주시지만,
그 <100% 내맡긴 영혼 각자에게 가장 알맞는 것>을 취사선택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100% 내맡긴 영혼에게 유치원 수준의 것이 필요하면 유치원생에게 맞는 것으로,
100% 내맡긴 영혼에게 대학생 수준의 것이 필요하면 대학생에게 맞는 것으로 말입니다.


그래서
100% 내맡긴 영혼 모두에겐 다 알맞는 것이 됩니다, 100% 내맡긴 영혼의 <취사선택>이.


또 그것을 분별해 주는 이가 바로 < 영적지도자 > 입니다.



"그물이 가득 차자
사람들이 그것을 물가로 끌어 올려놓고 앉아서,
좋은 것들은 그릇에 담고 나쁜 것들은 밖으로 던져 버렸다." (마태 13, 48)





<moowee 11.01.04. 00:02 



전에 우리 성전에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 적는 다는 자매님이 계셨는데,
★ 제가 볼 때, 유치원 수준의 글이었습니다.★
제가 그렇게 말씀드렸죠.

왜냐하면 저의 낮은 영적수준에도 "루이사 피카레타"의 받아쓰기가 최고의 수준으로 느껴졌으니까요.
제가 그것을 이야기해 드린 후 얼마 후 이 카페를 떠나가셨습니다.
제가 유치해서이겠죠.

그런데, 그분은 "루이사 피카레타"를 너무 잘 아는 분이셨습니다.
왜일까는 저도 모립니다. >














하섭내4장2번 피조물에서이탈.m4a.av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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