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섭리에내맡김

제4장 -05 우리가 하느님과 일치하려 한다면 현 순간의 의무에만 마음을 쏟아야 한다.

은가루리나 2017. 2. 23. 18:27



《하섭내 제4장 하느님의 뜻을 완전히 따르는 것이 영성의 본질이다

- 05 우리가 하느님과 일치하려 한다면, 은총의 모든 작용에 주의를 기울이되 
현 순간의 의무에만 마음을 쏟아야 한다.》



제 4 장


하느님의 뜻을 완전히 따르는 것이 영성의 본질이다




 05 


우리가 하느님과 일치하려 한다면, 은총의 모든 작용에 주의를 기울이되 

현 순간의 의무에만 마음을 쏟아야 한다.





   우리는 하느님의 뜻과 일치함으로써 주님을 소유하고 누릴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 기쁨을 다른 어떤 방법으로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리 스스로 기만당하게 됩니다.


하느님의 뜻에 일치한다는 것은 유일한 수단인데, 

이것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어떤 특별한 방법이 있는 게 아니고, 

그분께서 원하시는 방법들로만 그것을 확실하게 성취할 수 있을 뿐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다양한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그분의 뜻과 우리의 뜻 간에 일치를 안배해 주십니다.


하느님의 뜻이 우리를 위해 선정해 주시는 것이야말로  

언제나 가장 좋은 것입니다.


그것이 어떤것이든 간에 

우리는 그것을 아주 중요시하고 높이 평가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하느님께서 내정해 주신 것으로 

한 사람 한 사람의 영혼에게 

당신 자신과 일치에 이르는 가장 적당한 길을 택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영혼이 하는 일은 다른 길을 찾지 않고 

주님이 택해 주신 것을 자신의 것으로 간직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이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 주신 하느님의 다른 뜻도  

높이 평가하고 사랑해야 합니다..


예컨대 하느님이 나로 하여금 

구송기도를 하고 

영적으로 변화되는 신심을 즐기도록 마련한  침묵과 어두운 밤을 

선택해 주실 때, 

나는 여전히 그러한 것들도 존경하고 사랑할 것입니다.



나는 그것이 정적주의자들처럼 

참된 종교생은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느님의 법으로 성화되고, 

그분께서 우리에게 정해주신 것은 모두가 좋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하느님의 뜻에 어떤 한계를 두려 하지 않습니다.


주님이 나에게 어떠한 모양으로 당신 뜻을 나타내주셔도 

나는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것입니다.


또 다른 사람들에게는 주님이 다른 어떤 양식으로 역사하신다 해도 

나는 그것을 기꺼이 인정할 것입니다.


그 하시는 일이 아무리 역설적인 것처럼 보일지라도 

우리가 완덕으로 나아가는 길은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길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개별 영혼들 안에는 우리 각자에게 필요한 어떤 차이들과 변화가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단순성을 지니고 있다면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자, 똑같은 목표를 향해 가는 사람들이여,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당신의 뜻을 너무나도 다양하게 드러내 보이시는 하느님께

우리가 순종하는 데에 일치하며  

각자 자신의 길을 꾸준히 걸어가도록 합시다."



이 점을 마음에 두고 

성인전을 읽고 영적 독서를 해야 합니다.


이러한 독서를 통해 자기의 길을 변경한다든지 

거기서 떠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왜냐하면 영적 독서, 영적 대화라도 님의 뜻이 없으면  

결코 해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뜻에 따라 지금 당장 무언가를 해야 한다면 그것을 계속해야지 

그만두어서는 안 됩니다.


비록 무엇을 읽든지, 어떤 대화를 하든지 간에

우리는 그 안에서 하느님께서 뜻하시는 바를 얻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하느님의 원하심이 지금 독서하는 것도 아니고 

또 영적 대화를 하는 것도 아닌데 그것을 행하고 있다면

불안과 혼란의 동요를 일으키고 말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의 뜻이 없는 곳에는 질서가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왜 지금해야만 하는 일과 완전히 연관성이 없는 문제에 대해 

고통스러워하고 근심하고 있는 것일까요?

하느님이 우리에게 모든 것의 모든 것이 되시는 때는 언제일까요?


전적으로 하느님을 위해 살도록 합시다.




하섭내4장5번 G과일치를이루려변현순간의의무에만.avi





2-2-5,하느님과의 일치를 원하고 있는 영혼에게 주어지는 모든 은총과 그리고 지금 



5, 하느님과의 일치를 원하고 있는 영혼에게 주어지는 모든 은총과, 그리고 지금

이 시간이라는 순간 속에서 활동하고 계시는 은총에만 마음을 집중시켜야만 한다.


하느님의 뜻에 일치하게 되면 

하느님이 내려 주시는 기쁨을 맛보게 되고 주님을 소유하게 됩니다.

하느님이 허락하시는 이 기쁨을 다른 방법으로서 찾으려 하여도 

찾아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의 뜻이라고 하는 것은 어디에서도 응용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이 방법 저 방법이라고 정해진 것이 아니고

모든 방법, 어떠한 방법이라도 그 하나하나를 성화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뜻은 모든 방법과 형태로 우리들 영혼과의 일치를 계획하고 계십니다. 

하느님이 우리들을 위하여 선택하여 주시는 것은 언제나 가장 좋은 것 입니다. 

그것이 어떠한 것이던지 소중히 하고 높게 평가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하느님께서 선택하시고 결정하신 것으로 보아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한 사람 한 사람의 영혼에게 당

신 자신과의 일치에 이르는 가장 좋은 길을 선택하여 주셨습니다. 

영혼이 해야만 하는 것은 다른 길을 자신 스스로 찾으려 하지 말고 

주님께서 선택하여 주신 그 길을 자신의 것으로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주님께서 다른 사람들에게 나타내신 또 다른 뜻도 

높이 평가하고 소중하게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주님의 뜻이 구송기도, 설레임, 어떤 신앙의 오묘한 뜻의 깨달음을 

나의 몫으로 결정하실 때, 

같은 하느님의 뜻이 다른 사람을 위해서는 

단순한 신앙의 근원이 되는 침묵과 이탈을 선택을 하실 때에도 

그러한 것들까지도 높이 평가하고 사랑해야 합니다.


그리고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고, 

그러한 것들을 통해서 주님과 일치해야 합니다. 

나는 정관주의자와 같이 모든 적극적인 일들을 받아들이지 않고 

종교생활과 모든 자주행위의 부정과 여러 가지의 계획과 시도를 

무시하는 하는 것을 보고 있을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완덕 이라는 것은 하느님의 뜻을 행하는 것으로 

하느님이 영혼을 위하여 선택하여 주시는 것은 모두 좋은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나는 하느님의 뜻에 어떤 한계를 두거나, 

하느님이 하시는 일에 이것저것 주문을 하지는 않습니다.


주님께서 어떠한 방법으로 그 뜻을 나타내시든지, 나는 그 방법을 그대로 받아 들입니다.

또한 다른 사람들에게 주님이 어떠한 방식으로 일치하시더라도 

그 모든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단순한 영혼에게는 언제나 어느 곳에서나 통하는 하나의 길밖에는 없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그것은 영혼 한 사람 한 사람마다 다른 것이며 독자적인 것입니다. 

그것은 교회의 신비적인 모습에서 다종다양하게 색채를 띄우고 있습니다.


모든 단순한 영혼은 서로에게 주어진 길을 인정하고 존중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자아, 똑같은 목적으로 향하는 사람들이여! 모두 자신의 길을 걸어갑시다.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의 길은 모두 다르지만 

그러나 하느님 뜻을 나타내려고 한다는 점에서는 모두 같습니다.]


이것을 마음에 새기고 성인의 전기를 읽고 영적 독서를 해야만 합니다. 

이러한 독서를 통해서 자신의 길을 바꾼다던가 거기에서 벗어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됩니다. 

그러므로 영적 독서나 영적 대화도 주님의 뜻에 따라서 행해야만 합니다. 

하느님의 뜻에 의해서 지금 무엇인가를 해야만 한다면

그것을 중지하지 않고 계속 해나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읽고 있는 책이 직접 가리키는 것에 의해서

지금 자신이 하고 있는 것을 계속 해나가도록 하는 것도 있고, 

또한 그 반대로 그 책이 다른 것을 가리키어도 하던 것을 계속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이 원하시는 것이 지금 독서를 하는 것도 아니고 영적 대화를 하는 것도 아닌데

그것을 계속한다면 

불안과 정신적 혼란, 동요를 일으킵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의 뜻이 없는 곳에 질서가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지금 해야 하는 일들과 전혀 관계가 없는 고통이나 걱정으로

언제까지 우리들은 자신의 영혼에게 무거운 짐을 지우려 하고 있습니까.


어떠한 일에 대해서도 하느님이 우리들에게 모든 것의 모든 것이 되는 때는 언제쯤 입니까.

피조물을 있는 그대로 받아 들입시다. 

그러나 그것에 묶이어 발목을 붑잡히지는 맙시다. 

모든 피조물을 뛰어넘어 하느님 뜻 안에서만 살아가도록 앞으로 나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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