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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홍식의 산상수훈 강의 2부

은가루리나 2017. 2. 19. 08:54


예, 그 다음에 제가 악을 악으로 갚지마라 라고 한 단락이 있습니다. 여기도 한번 보시죠. 이게 유명한 얘기죠. 그대들은 눈에는 눈으로, 이에는 이로 갚아야 한다 라고 들었을 것이다. 이게 기원이 오래된 얘기죠! 함무라비 법전 아시죠! 그래서 탈리온이라고, 동해보복(同害報復)이라고 합니다.


당한만큼 똑같은 해(害)로, 똑같은 해를 줘서 보복한다. 이 동해보복을요 지금 누구죠, 누가 눈을 상하게 하면 그 가해자도 잡아다가 그 눈을 상하게 하고, 원래 이게 그 동해보복의 법칙인데 지금 보면 아우 좀  잔인하거 아닌가 하는데요, 이런 법이 제정되는 또 상황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어떤 상황에서 제정되었을까. 당한거의 몇배를 갚아요 원래, 제발 당한것 만큼만 갚아라 라는 겁니다 이게, 이해되시죠! 제~발 당한만큼만 갚아라!

 

누가 와서 상해를 끼치면 가서 죽여버려요! 성경에도 이런 내용들이 나옵니다 실제로! 제발 당한만큼만,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왜이렇게 잔인해요 이러지 마시고 이게 지금두요 모든 처벌의 근간입니다. 이해되세요? 그러니까 지금 똑같이 눈을 그렇게 상하게는 안하지만 어떻게 보십니까. 그 사람이 상처입은 만큼 처벌을 가하죠, 그 형기도 그렇게 정하죠, 그러니까 기본적으로 법은요 동해보복에서 시작해서 시작되요, 그걸 가지고 얼만큼 더 세련되게 풀어나가느냐죠! 그래서 동해보복을 가지고 그 모든 법의 근간이라고 보시면 되요. 그러니까 예수님두요 이 원칙 자체는 반대하시지 않는 겁니다. 율법에 지금 반대하시지 않았어요.


이 원칙은 존중하는데 사람들이 또 이제 그 당시에는요 이걸 가지고 또 잔인하게 구는거죠, 어떤 그 가해자에 대한 어떤 인간적인 배려가 없이, 그래 너 잘 걸렸어 하고 단순하게 복수를 또 하고 복수가 복수를 낳고 하니까 그러지 말자는 겁니다. 이 동해보복의 원칙도 원래는요 공정한 처벌을 하자는거 아닙니까? 양심의 정의감에서 나온거예요, 공정한 처벌을 하자, 더도 덜도말고 그 사람이 저지른만큼 갚아주자, 처벌하자, 이런 어떤 양심에서 나온 얘긴데 양심에 이게  적용이 안되면 또 법이 살벌해져요.


그러니까 사랑을 강조한 겁니다. 이런 처벌을 하더라도 그 안에는 범인에 대한 사랑까지도 있어야 된다. 사랑이 깔려야 된다. 그래서 뭐라고 합니까! 나는 진실로 그대들에게 이르노니 악인에게 대적하지 마라. 악인에게 같이 악인처럼 굴지마라는 겁니다. 누군가 그대들 오른뺨을 치거든 다른 뺨마저 대주고, 누가 그대들을 재판에 걸어서 속옷을 가져가고자 하면 겉옷까지 내주고 누군가 그대들에게 5리를 같이 가자고 하면 10리도 가줘라. 그대들에게 구하는 자에게는 주고, 꾸고자 하는 자에게는 거절하지 마라.


자, 갑자기 되게 무리한 요구를 예수님이 하셨죠?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될까요? 여러분도 양심이 있으시니까 지금 판단해 보세요, 여러분 양심이 이걸 듣고 뭐라고 합니까! 좀 과하죠, 가해자에게 이렇게까지 해 줄 게 있나요? 그럼 이 말이 왜 나왔을까요? 너무 잔인한 처벌을 하는 사람들한테 한 말입니다.


범인을 한번,가해자도 인간적으로 사랑해주지 못하고 처벌을 하면, 그건 하나님의 처벌이 아니라는 얘기를 하는겁니다. 하나님의 진노는 왜 공정할까요? 하나님은요 어떤 자녀도 사랑하지 않음이 없어요, 사랑해서 매를 때리는 그 공정한 처벌이라야 옳은데 너, 잘 걸렸다 하고 그냥 처벌하는 그런 잔인한 처벌에는요 사랑이 깃들여 있지를 않아요. 그 율법자체가 틀린건 아니지만 그 안에 사랑이 들어있지 않으면요 그건 문제를 일으킵니다. 또다른 사회문제를. 그러니까 그 범인마저도 당신한테 피해를 주는 사람마저도 이 정도로 한번 사랑할 수 있겠느냐 라고 되게 센 걸 거신 거예요.


5리 가자는데 10리 가줄 수 있겠느냐, 그렇게 사랑할 수 있겠느냐, 그러면 이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지만 어디선 가능합니까? 성령에선 가능해요, 여러분이 자아를 놓으면요 그사람도 결국  나랑 둘이 아니라는걸 압니다. 그런 사랑에서 공정한 처벌이 나올 수 있다는 얘기를 한 거지, 이 얘기를 듣고 그래 눈에는 눈, 이에는 이를 폐지한다거나 범인한테 더 잘해주고 있어요! 가해자야, 넌 나한테 이쪽 때리면 나 이쪽 대줄께, 이건 또 다른 문제를 낳습니다. 이해되세요?


사회정의가 땅에 떨어져버린다. 만약에 여러분이 그렇게 하시면요 또 다른 피해자들을 계속 만들어냅니다. 어? 이것들 봐라. 뺨을 때렸는데 이쪽 뺨을 대네, 저쪽가서 또 때리고, 또 때리고, 지금 이 얘긴 뭐냐하면요 내가 상대방이 악하게 나오더라도 나도 악으로 굴지 말고, 그 사람에 대한 진정한 사랑의 마음에서 하나님의 진노, 성령의 진노를 가지고 그 사람을 바로잡아 주는것 까지도 다 포함해서 이 온전한 율법이 완성이 됩니다. 오해의 여지가 있어서 제가 드리는 말씀이예요.


티벳에서요 중국이 티벳을 쳤는데, 제가 이런 말씀 많이 드립니다. 티벳을 용서한다라고 한다면요 그 중국은요 이것들봐라! 먹어도 아주 호구입니다. 그러면~! 아세요? 이렇게 하시면요 호구가 되요,그래서 또 다른 선량한 피해자를 낳아요, 그래? 그럼 여기도 먹어보자, 만주도 먹어보자, 어디도 먹어보자, 먹으면요 다 우리가 잘못이요, 내 탓입니다. 사랑합니다. 하면 저쪽가서 또 먹어보죠.


혹시 이렇게 사회현상을 이렇게 만들고 계시다면 정의가 땅바닥에 떨어지게 만드는 거구요, 예수님이 원하는게 아닙니다. 지금, 예수님의 전체맥락에서 보세요, 예수님은 바리새이들한테 이 독사의 자식들아 라고 한 사람입니다. 사랑해서 화를 내는거 이것도 아셔야 되요. 이 구절은요 너무나 사랑이 없기 때문에 처벌에만, 복수에만 뭐 하나 걸리면 잡아다가 돌 때려 죽이고 하죠, 성경에 나오지 않나요, 이 여자 간음했습니다. 죽입시다. 돌로!


죄없는 자가 때려라 하니까 다 사라졌죠. 이것도 당시 그 자체가 공정한 처벌이냐가 중요한게 아니예요, 그 당시 함부로 막 사람을 죽여요, 그 사람도 너랑 똑같은 식구라고 생각해봐라. 이걸 말해주기 위해서 이걸 한 겁니다. 왜냐하면요, 왜 제가 이 말씀을 드리냐하면요 어떤분들이 독실한 크리스챤들이 얘기를 하시는게 있어요, 우리는 악한테 저항하지 않습니다. 이건 예수님의 가르침이고 악에 저항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성령의 힘입니다. 어떻게 인간이 악한테 저항하지 않겠습니까? 우리는 성령의 힘으로 악한테 저항하지 않습니다. 이건 뭔가 잘못된 말입니다. 예수님은 온 몸을 던져서 악한테 저항했는데, 뭔가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제가 이걸 봤기 땜에 그래요. 이렇게 주장하시는 분들을 봤기 때문에 오해하지 마시라는 겁니다. 제가 써 놨습니다. 이건 제 생각입니다. 제가 제 양심이 말하는 바를 적어본 겁니다. 처벌의 목적은요 단순한 복수나 예방이 아니구요 자, 복수하자고 처벌하자 그러면 인간의 욕심이 자극됩니다. 예방하자고 처벌하자, 사람이 물건입니까? 범죄 예방하자고 사람 죽이자는게 , 사람을 도구화하는거 아닙니까! 즉 이 얘기는 뭐냐하면요 그럼 처벌하지 말자는게 아니라 처벌이 도대체 뭡니까? 법에서도 지금 법학에서요 복수냐, 예방이냐 말이 많아요.


제가 제 양심에 기초한 답을 한번 써 본겁니다. 제가 생각하는 처벌은요, 범죄에 상응하는 일종의 동해보복의 원리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 공정한 처벌입니다. 단, 눈을 상하게 했으니 눈을 상하게 해버리자 가 아니라, 그에 상응하는 처벌을 해줘야죠. 그러니까 피해정도를 정확히 알아야 거기에 맞는 처벌을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 처벌을 가해자한테 가해서 가해자의 마비된 양심을 회복시킬 수 있어야 됩니다. 양심이 깔리지 않는 처벌은요 올바른 효과를 못냅니다. 양심을 회복시키는겁니다.  너도 한번 당해봐라가 아니라 너도 겪으면서 상대방의 아픔을 생각해봐라가 되어야 되구요, 그럼으로 인해서 피해자 및 그 관계자, 우리까지도 관계자예요, 잘못된 그 흉악한 살인얘기를 들은 모든 사람들의 마음은요 양심이 다 들끓게 되있습니다. 우리 안에도 성령이 있기 때문에 이 안에서도 분노를 하게 되있어요. 이거 다 진정시킬 수 있게 하기 위해서 처벌하는 겁니다.


피해자의 가족, 가까이는, 멀리는 그 소식을 범죄를 접한 국민들의 마음까지도요, 그 양심까지 풀어주기 위해서 그 처벌이 이루어져야 됩니다. 만약에 이런 처벌이 이루어지게 되면요 정의가 그 사회에 구현되게 되고, 사회 전체의 양심이 건강해 집니다. 만약에 이런 처벌을 소홀히 하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국민전체의 양심이 썩게 됩니다. 죄를 저질러도 처벌을 받지않네 라는 얘기만 들어도 여러분의 양심은 안좋아지고, 이 사회에 대해서 낙망하게 되어있고, 이 사회 정의구현이라는 거는요 이거는 영원한거다 생각하시고 다 포기하게 됩니다. 자포자기에 빠지면요 범죄는 더 치성해질 겁니다. 이해되시죠! 그러니까 복수나 예방을 위해서 처벌하는게 아니구요 공정한 정의를 구현하기 위해서 처벌하는거고, 그렇게 처벌이 공정하게 이루어지면요 어떻게 될까요?


범죄가 예방이 되는겁니다. 이해 되십니까! 사회정의가 계속 구현되는 사회에서는 범죄를 저지르기가 힘들어져요. 단순한 범죄예방으로 복수하는게 아니라는 겁니다. 제 양심으로 제가 왜 처벌이 필요한가를 고민해 본 결과는 이런 얘기가, 제가 법학을 전공한 게 아니기 때문에 더 좋은 의견도 많으실 겁니다. 제 양심에 비추어서 그냥 드린 말씀입니다. 참고하시라고요!


이걸 떼놓고 만약에 이 구절을 단순하게 풀면요 그래, 원수를 사랑하자 해가지고 원수한테 더 잘해주고 있는 이상한 기형적인 현상입니다. 이해되시죠! 성령의 마음으로 사랑하는거랑 방금 원수한테 더 잘해주자는요 자기 마음 좀 풀자고 아니면 어떤 전체, 사회전체 정의를 깨버릴 수가 있습니다. 그건 또 다른 욕심이예요. 가해자한테 더 잘해줘서 내 마음이 위안을 얻겠다라는 또 다른 욕심입니다. 그 욕심이요 사회전체 정의를 망가뜨릴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말씀은 꼭 드리고 싶었거든요. 한번 생각해 보시고요, 예수님 본인은 어떠셨는지 볼까요!


대제사장한테 끌려갔을 때 예수님이요, 나는 세상 사람들한테 드러내 놓고 이야기했다. 나는 언제나 유대인들이 모이는 회당에서 성전에서 가르쳤고, 은밀한 얘기는 없었다. 왜 나한테 묻느냐?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들은 이들에게 물어봐라  했더니 뭐라고 했습니까? 성전 경비병 하나가 예수님 뺨을 딱 쳤어요! 네가 대제사장한테 그따위로 대답하느냐 라고 뺨을 쳤어요. 예수님이 뭐라고 했습니까? 오른뺨을 대셨나요? 내가 잘못 이야기 했으면 증거를 대라. 옳게 얘기했는데 왜 나를 치느냐? 


이해되십니까? 예수님이 이상한 분이네 하지 마시구요 예수님은요 양심에 따라 움직이고 있는 겁니다. 계속해서. 이때는 이때예요, 하느님의 진노를 표현할 때는 독하게도 얘기하시고, 왜 쳤느냐 까지 따지시는 분인데, 아까 그 구절만 읽고, 이 쪽 뺨을 대면 악인이라고 난 이 쪽 뺨을 가만히 대고 있겠습니다. 이게 성령의 뜻입니다 하면 그건 아니예요! 그건 욕심이예요.


에고의 뜻이지 하느님의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은요 모든 인간을 보편적으로 사랑하라고 한거고, 사랑해서 우리가 매를 때려야 할 때도 있고, 사랑해서 처벌을 해야 될 때도 있는겁니다. 그게 사회 전체를 건강하게 하기 때문에. 예수님이 왜 오셔서 이런 얘기를 하시나요? 사회전체를 다시 건강하게 살릴려구요, 살릴려고 수술을 하는겁니다. 근데 수술자체를 아이구 어떻게 사람 살을 째~, 사람 죽이는게 됩니다. 이거 꼭 같이 얘기하십시오. 이거 이해하십시오.


로마서에 뭐라고 되어 있냐하면 바오로는 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마십시오. 이 문제를 푼겁니다. 악을 악으로 갚지 마십시오. 그럼 어떡하란 얘깁니까? 모든 사람에게 선한 일을 도모하십시오. 선을 하세요, 여러분요, 아무리 악인이 여러분한테 덤벼두요 여러분은 양심으로 나가셔야 되요, 양심에는 그 힘이 다 있어요! 양심은요 상대방을 사랑도 하고 상대방한테 심판도 할 수 있습니다. 양심으로 할 때만 공정하게 할 수 있습니다. 욕심으로, 사심으로 하지 마란 얘기지, 이게 무기력하게 당하라는 얘기가 아닙니다.


역량대로, 여러분 오버하지 마시고 역량대로 모든 사람과 평화롭게 지내시면서 선을 행하십시오. 사랑하는이여, 스스로 원수를 갚지 마시고, 이 때 이미 그럼 국법이 있고 나라에서 다 처벌을 하쟎아요, 나라에 맡기십시오 입니다. 개인적으로 복수를 많이 했다는 얘기예요 이때는! 그러지 마십시오. 이 얘길 듣고는 우리도 그럼 국민한테 처벌하면 안된다는 겁니다. 원수를 갚지 마시고 하나님한테 맡기십시오. 하나님의 진노에, 공정한 정의에 맡기십시오. 이게 뭔 얘기냐하면 국법에다 맡기라는 얘깁니다. 국가에서 알아서 정의롭게 처리해주니까 여러분까지 나서서 개인적으로 복수하지 마십시오.


성경에서도 복수는 내가 할일이니 내가 갚으리라 하셨습니다. 오히려요 여러분은요 원수가 굶주리면 먹을 것을 주고, 목말라하거든 마실걸 주십시오. 그렇게 하는 것은 그대가 숯불을 그의 머리위에 놓는 셈입니다. 오히려 그 사람들을 괴롭히는 일입니다. 어떻게 괴롭히냐하면요,  양심을 자극시켜줘요. 상대방 양심을 계속 자극시켜서 상대방이 죄책감을 느끼게 만들어서 스스로 마비된 양심을 풀게 도와주는거, 이게 악에 굴복하지 않고 악을 이기는 방법입니다. 선으로~


상대방을요 양심을 회복시키지 못하는 단순한 용서는요, 상대방을 더 죄인으로 만드는 겁니다. 악에 악을 더해 주는게 되요. 한번 잘못을 저질렀는데 아무도 뭐라고 안해요. 그럼 또해요, 사람은! 지금 뭡니까, 선으로 대한다는거는요 그 사람이 양심을 회복할 수 있게, 내가 최선의 노력을 다한다는 겁니다. 이해되시죠? 그때 처벌이 필요하면 처벌도 해야되요, 단 국법이 그걸 할거라니까 너 개인적으로는요 이 성령의 뜻대로 그 사람을 대하라는 말입니다. 그 사람을 한편으로 사랑해 주고, 한편으로 자극시켜서 양심을  회복시킬 수 있지 않으면 온전한 교화가 안되겠죠! 이런 어떤 큰 그림에서 이해를 하시기 바랍니다.


로마서에서 바로 뭐라고 합니까? 관리들이 그대의 이익을 위하여 일하는 하느님의 일꾼입니다. 관리들은요 하나님의 자녀인 당신들을 돕는 사람들입니다. 그대들이 악을 행할 때만 두려워하십시오. 그들이 공연히 칼을 차고 다니는게 아닙니다. 그들은 악을 저지르는자에게 하나님의 진노를 집행하는 하나님의 일꾼입니다. 국법은요 항상 공정한 처벌을 해줘야 되요. 나라가 이런 처벌을 안해주니까 국민들이 개인적으로 복수를 꿈꾸게 되는 거고 전체적으로 다같이 사회가 문제가 되는 겁니다.


나라도 책임이 있죠, 나라는요 국민들이 사사로운 복수를 꿈꾸지 않게 그런 영화들 많죠, 사사로이 복수하는, 뭘까요! 국법이 하나님의 진노가 온전하게 집행이 되고 있지 않아서입니다. 두가지가 다 필요해요. 우리는 사랑과 정의의 마음! 양심으로 가해자를 대해야 되고, 나라는요 공정한 처벌을 해줘야 되요. 이 두개가 다 그림이 그려져야만 정의사회가 구현됩니다.  이 구절을 읽고 저는 단편적으로 이해하실까봐 꼭 넣습니다. 로마서 이 구절을요!


그들이 악을 저지른 자에게 하나님의 진노를 집행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진노때문만이 아니라 양심때문에도 복종해야 됩니다. 양심 얘기를 합니다. 바울이! 양심때문이라도 반드시 이런 복종하라.

이런 하늘의 명령에 복종을 해야됩니다. 그래서 로마서에 또 하나님은 각자가 행실한 대로 갚으십니다. 인내하고 선을 행하십시오. 그래서 영광과 존귀와 불멸을 추구한 이에게는 반드시 영생을 주시고 하나님은,  이기심에 사로잡혀 진리를 거스리고 불의를 따르는 자에게는 진노와 격분을 내리십니다.


즉 우리가 성령의 사람이라면 양심의 사람이라면 불의를 보면 바로 잡을 수 있어야 됩니다. 아시겠습니까? 하나님의 진노와 격분이 여러분의 온 몸을 휘감을 겁니다. 그 때 그걸 무시하지 마시고 사랑과 정의에 기반된 올바른 처신을 해가지고 이 가해자를 바로잡을 수 있어야 됩니다.


이게 보장되지 않는 단순한 용서라는건요 악을 더 부추길 뿐이라는것도 꼭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원수를 사랑하라. 이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하십시오. 그대들은 네 이웃을 사랑하라. 네 원수를 미워하라 라고 들었다. 이 말도 틀린말은 아니라는 겁니다. 원수를 미워하되 그쵸, 그 사람 자체까지 다 미워해 버리면 증오만 남게 되쟎아요. 그런데 하나님 마음으로 미워한다는 건 뭘까요? 하나님 마음에선 모두가 한 자녀예요. 악인마저도, 잘되라고 미워하는 겁니다. 그 마음으로 미워하실 수가 없다면 이거는 잘못된 거라는 겁니다. 그래서 사랑하라는 말을 계속 해주는 겁니다.


이해되시죠, 이제 무슨 말이 나올지...나는그대들에게 말한다. 원수를 사랑하라. 만약 박해하는 자가있다면 그들을 위해 기도하라. 그들이 바로잡아 양심을 회복할 수 있도록 기도하라는 겁니다. 결국 우리 모두가 양심회복 되어야 끝나는 겁니다. 내가 마음에 안드는 사람이 있다고 해서 내가 그 사람한테 저주해서 끝나는게 아니구요 그냥 보기싫다, 죽어버려라. 이땅에서 사라져라 이렇게 할 일이 아니고 원수를 그 양심을 회복시킬 수 있는 어떤 방안을 마련해봐야죠 우리가. 역량껏요.


우리가 전지전능한 신이 아닙니다. 역량껏 최대한 노력을 해봐야죠. 그래야 그대들이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자녀가 될 수 있다. 그분께서는 악한 이에게나 선한 이에게나 당신의 해가 떠오르게 하신다. 그리고 정의로운 이에게나 불의한 이에게나 비를 내려주신다. 예, 똑같이 대우해주신다. 이거는 사랑의 측면이구요 여기서 하나 빠뜨릴까봐 제가 썼습니다. 하나님은 또 정의로운 진노를 집행하시는 분입니다. 사랑 얘기할 때 정의가 좀 빠져요. 그렇다고 해서 정의를 무시하시지 마라는 겁니다.


만약 그대들이 자신을 사랑하는 이들만 사랑한다면 무슨 상을 받겠나. 그런일은요 세리들도 하구요, 자신의 형제들에게만 인사한다면요 남보다 나을게 뭡니까. 다른 이방인들도 다 그건 한다. 예, 온전한 아버지의 자녀라면요 원수도 인간적으로 사랑할 수 있어야 됩니다.


하늘에 계신 그대들의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완전한 사람이 되라. 여러분은요 성령의 사람이 되야 됩니다. 그러면요 사랑과 정의를 통해서 올바른 정의를 집행하고, 올바른 사랑을 실행합니다.

이 말씀을 듣고, 그래 나도 한 번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보자 하고 억지로 그 가해자한테 사랑하고 억지로 그 뭔가 베풀려고 하면요 이건 에고가 하는 일이기 때문에 성령하고 어긋나게 되어 있습니다.


심사가 더 괴로우실거예요. 용서했다고 했는데 더 괴로운 일이 생긴다면요 그거는요 내안에 있는 성령이 화를 내는 겁니다. 악하고 타협하지 마라. 하는 부분도 있다는 겁니다.


보십시오, 사랑은 뭡니까, 악인도 똑같은 사람으로 사랑하라. 정의는요? 팔 짤를거 빨리 짤라버리고 네 팔도 빨리 짤라버려라. 이해되십니까? 하나님의 두 측면이예요. 죄를 짓지 말아라. 죄인도 사랑하라. 이 두가지를 여러분 마음안에서는 합쳐서 보셔야 되요. 지금 사랑얘기 할 때는 사랑만 강조되고, 정의 얘기할 땐 정의만 강조되는데 이 두 얘기를 같이 보셔야지, 어느 한쪽만 읽으시고 무조건 사랑하래 라고 하셔도 안되구요 무조건 내 팔도 짤라내야된대, 바로바로 악인은 제거하자. 이것도 좀 이상하죠!


두개가 하나가 되야 온전해 집니다. 노자도 뭐라고 하나요, 크거나 작거나 많거나 적거나 원한은

덕(德)으로 갚아라. 이게 무조건 잘해주라는게 아니예요, 이걸 읽으신분은 알거예요. 덕(德)은요 자 보십시오. 덕은 한자로 이쪽은요 행할 행자입니다. 이쪽은요 곧을직자에 고자입니다. 직심(直心)을 행하라입니다. 양심대로 실천하는게 덕이예요.


양심그대로, 양심이 뭡니까. 사랑과 정의요. 남을 사랑하고 남이 잘못됐을 때는 바로 잡아 주는 사랑과 정의를 매일 매일 실천하는게 덕입니다. 덕으로 원한을 갚으라고 했지, 이 말을 잘못 읽구요 원한은 덕으로 갚으라. 그래? 원수한테 더 잘해주라는 얘긴가? 원수한테 더 잘해주고 있으면 이게 양심에 뭔가 찝찝하실겁니다. 이건 아닌데 싶으실겁니다.


그래서 이 구절을요, 이 노자의 이 구절을 누가 공자한테 물어요. 원한은 덕으로 갚으라는데요? 맞나요? 아니다. 공자가 아니다 그럽니다. 그 사람은요 원한, 원수를, 덕이라는게 원수한테 더 잘해주라는 건가요, 공자한테!


아니다. 원한은 직(直)으로 갚아라. 정직함으로 갚아라 그럽니다. 노자랑 같은 얘길 한거예요. 정직함, 이 양심 그대로 갚으라는 얘기예요. 그래서 잘못했으면 공정한 처벌을 해주는게 그때는 사랑이예요. 잘못한 사람한테는 한쪽으로 인간적으로 그 사람이 아픔을 이해해주면서 한편으로는 공정한 처벌을 해주는게 사랑입니다.


공정한 처벌만 해도 부족해요. 그 사람에 대한 사랑이 없으면. 사랑만 해도 부족해요, 공정한 처벌이 없으면! 방종으로 커요. 처벌이 없으면!  뭐죠, 사랑만 있으면 방종이 되고, 처벌만 있으면 살벌해져요. 이 균형이 놀라운겁니다.


여러분 안엔 양심이 다 있어요. 여러분이 불쌍한 사람 보면 한없이 사랑하게 되고, 잘못된 걸 보면 한없이 분노하게 되어있어요. 국민들이 시위하고 할 때 전세계적으로 시위할때요 어떤 이익, 어떤 국민들 잘살게 하라고 시위할 때요 그 사람들의 마음을 가지고 뭐 전세계에서 조사를 해보니까요 학자들이요 돈 땜에, 이익땜에 하는게 아녜요. 이 분노땜에 하는거예요. 공분!


정의가 바로잡혔으면 하는 마음에서 시위를 하지, 내 돈 써서라도 하겠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내가 손해를 보더라도 나는 정의가 구현되는걸 보고싶다는 마음때문에 국민들이 시위를 하더랍니다. 학자들이 조사를 해보니까. 이해되십니까? 뭣때문에 시위한 겁니까? 양심때문에 한거예요! 욕심때문에 했으면 돈 주면 가야되쟎아요 그쵸? 근데 돈이 문제가 아니라는거죠! 내가 돈내는 한이 있도라도 나는 정의가 구현되는걸 보고싶다라는 이야깁니다. 사회가 올바로 돌아가는걸 보고 싶어서 그 시위하고 하는 겁니다. 전세계적으로요.


그래서  이 인간의 이런 마음을 이해 못하면요 쟤들, 돈 좀 주면 해결되겠지!  이게 아닙니다. 인간에 대한 예의와 어떤 정의를 보여주지 않으면 그 한번 들끓은 국민들의 마음은요 쉽게 가라앉질 않는다는 겁니다. 양심을 알고 정치를 해야되는 이유도 이겁니다. 양심을 모르시고 접근하면 답이 안나와요. 다 내 마음 같겠지 하고 욕망에 충천한 이 소인이, 군자를 역지사지해 버리면 전혀 엉뚱한 결과가 나옵니다. 이해되시죠!

 

6장으로 들어갈께요, 올바른 자선!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정의를 행하지 마라, 이런 정의는 가짜 정의죠! 욕심에 충만한 정의, 소인배의 정의입니다. 하나님이 뭔가 영적인 포인트를 좀 주실까 해가지고 하는 정의는요 이미 욕망에서 시작한거죠! 반쪽자리거나 위선이예요! 보십시오. 예수님이 단호하게 뭐라고 하십니다.

 

그대들이 그렇게 한다면 하늘에 계신 아버지로부터 보상을 받지 못할 것이다. 영적인 포인트 안 주신다. 양심이 아닌 욕심으로 하는 정의는 위선이다 이겁니다.  그러므로 그대들이 자선, 남한테 뭔가 자선을 베풀때는 가가지고 요즘 자선한다고 인증샷 찍고 뭐 다 하쟎아요. 그 막 어디 올리고 자랑할려고 자선한 것 같이 실제로도 그러구요, 아버지한테 잘 보일려고 어떤 내가 더 세상 사람들한테 잘 보일려고 다 똑같애요! 욕심으로 하는 자선은 가짜라는 겁니다.

 

그대들이 자선을 베풀때는 위선자들이 사람들에게 칭찬받고 싶어서 회당이나 거리에서 하듯이 스스로 나팔을 불고 다니지 마라. 인증샷 찍고 그러지 마라는 겁니다. 내가 그대들에게 진실을 말하노니 그들은 이미 충분히 보상을 받았다. 칭찬 받았으면 끝났다는 겁니다. 아버지한테 더 기대하지 마라는 겁니다. 남한테 인기 좀 얻고 싶어서 자선했고, 인기 얻었으면 됐지, 아버지가 더 해줄건 없다 이겁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도 선한 일을 많이 하시구요 대가를 받지 않으셔야 되요. 그게 아버지가 그걸 채워줍니다. 그래서 예전 어른들은요 이런 얘기 제가 들었습니다. 독립운동에 아주 헌신했던 분인데요, 나라에서 그럼 포상을 못받았어요, 그래서 그분 자녀들이 어떻게든 나라에다 알려서 받을려고 하니까요 막으셨데요, 하지마라고! 이건 나 하늘나라갈 때 받을거라고! 이해되세요?

 

나라에서 상을 받아버리면 예수님 뜻을, 그분이 기독교인이 아니더라도 예전 어른들은 이런 마인드가 있었어요! 내가 대가 받고 한 건 덕이 아니라고 기본 마인드예요, 예전 어른들은!  내가 남을 고쳐줬는데 돈을 충분히 받았으면 보상을 받아버렸쟎아요, 이런 분들은 영적 제테크를 알아요 예전분들은! 일부러 무료치료를 한참 하시는 겁니다. 왜냐? 대가를 안받아야 그걸 하늘이 주니까! 이해되세요!

 

이런 영적 제테크에 밝으신 분들은 영성이 높으신거예요. 물질만 밝으신 분들은 이 말이 이해가 안되요~거 미친거아냐! 뭐 그분은 살만한가부지 하고 이렇게 생각하시면요 참 소견이 짧은거, 영성이 떨어지는 겁니다. 영성이 높으신 분들은 더 멀리봐요! 내가 양심적으로 살으라는게 하나님의 명령이면 내가 양심으로 살았을 때 대가가 없을리가 없쟎아요! 근데 꼭 대가 보고 한 건 아니지만 대가가 있다는 것돠 알아요. 그래서 어떤 의료를 하시더라도 또 무료치료도 많이 해 주시는 겁니다.

 

내가 돈 받고 한 거는 내 덕이 아니니까요. 챙피하다는 겁니다. 그거는 내가 생계로 한거고, 또 더불어 하는거 , 더불어 하는걸 꼭 독립운동 했더라도 상 받아 버리면 그렇다고 다 깎이는건 아니겠지만

자기 마음이 나는 상 안받을란다, 인간이 주는 상 안받을란다. 이것도 재미있지 않습니까!

 

예수님이 잘 이해가 되실겁니다. 이런 관점에서 얘기하시는 거예요. 그러니까 충분히 보상받았다 당신은! 오른 손이 하는거를요 왼 손이 모르게 해야되요. 이게 이제 진짜 군자들이 하는  정말 하나님의 사도들이 하는 자선은요 오른손이 한거를 어떻게 왼 손이 모르게 합니까, 이게 무슨 말이겠어요?

자선 베풀고 빨리 잊어버리라는 겁니다. 자, 자선을 한 번 비교해 볼께요.

 

길 가다가 불쌍한 사람이 있어서, 아까 이수현 그분이 어려운 사람 보고 뛰어들었죠! 그냥 뛰어들었죠, 뭐 대가 바라고 뛰어든 거 아니죠! 양심이요 너무 자극 받아서 뛰어드신 겁니다. 정의를, 누군가 도와줘야 되지 않은가! 저 사람이 나라고 여겨져서 뛰어드신 겁니다. 그분이 자기 이런 자선이 이런 베풂이 뭐냐하면 오른손이 한 걸 왼손이 모르는 베풂입니다. 그냥 하신거예요, 욕심으로 한게 아니라! 그 말을 말합니다. 욕심으로 한 건 뭡니까? 할까 말까 주위에서 다 나를 보고 있네, 안 가기도 이상하고 계산을 한참 때리고 구하시면요 이거는요 충분히 오른손이 한 걸 왼손이 너무 잘 알고 있는 자선입니다. 하고 난 뒤에도 어쩔까요 이런 분들은! 성공했으면 또 자랑을 하고 또 자랑을 해야겠죠.근데 진짜들은 어떻습니까? 하고나서?  이름도 안 밝히고 사라진 분들도 많아요 그쵸!

 

이런분들이 무상, 불교에서는 뭐라고 합니까! 무상보시라고 합니다. 상이 없다라는게 뭐냐하면요 이 3가지가 없는 보시라고 합니다. 3가지 없는 보시가 진짜예요. 이게 한문으로 무, 없을무(無)에 형상상

(相) 어떤 형상이 없냐하면요,  보시한 사람, 보시한 자가 없구요, 보시 받은자가 없어야 되요, 이게 불교이론입니다. 보시, 어떤 행위가 없어야 되요, 여기 하나 더 붙이는데요 이제 4가지를 따지면요 그 어떤 결과물을 누리려는 결과물을 향유하려는 마음이 없어야 되요! 이게 무상보시예요.

 

내가 상대방에게 1억을 주고도 내가 줬다하는 에고가 없어야 되요, 그런 에고가 없구요 저 사람이 나한테 빚졌다 라는 에고가 없구요 베풀었다는 그 행위에 대한 내가 그걸 했지 하는 그 에고가 없구요 그 포인트! 내가 대가를 많이 받을꺼야 하나님으로부터, 이거도 없어야되요! 이게 퍼펙트한 무상보시입니다.

 

이걸 할려면요, 아까랑 똑같은 얘깁니다. 이건 불교 얘기지만 기독교로 얘기하면 뭐라고 할 수 있을까요, 그걸 어떡해 해요 사람이! 그럼 뭐라고 하실래요 ? 에고, 인간은 못하지만, 성령은 가능합니다. 성령 자리에서는요 맑고 밝고 아주 충족스러운 마음에서 저게 가능합니다. 베풀어집니다. 뭐 뒤끝도 없어요. 이미 행복하기 때문에 결핍감이 없기 때문에 그냥 아버지가 나한테 하라고 해서 했을 뿐입니다. 에고가 뭐 잘했다고요. 이렇게 하고도 자기가 잘했다고 안하기 때문에 그걸 불교에서는 회향 그럽니다. 돌려버린 거예요, 남 탓으로! 아유, 부처님이 시킨거예요. 내 안에 양심이 시킨거예요, 성령이 시킨거예요.나는 거들었을뿐 내가 뭐 한게 있다고 하고 싹 내려놓는, 오히려 이런 분들한테 하늘은요 더 포인트를 준다는 겁니다.

 

그래서 무량공덕을 짓는다는 말을 하는 겁니다. 무상보시를 하면 무량공덕을 짓는다는게, 아까 제가 무량공덕을 하는 영적 제테크의 비결 말씀드렸죠, 이렇게 무상보시를 하면 성령이 밝아지고 내가 한 행위가 더 불려지는 겁니다. 그러니까 작은거 좀 짓고 그 대가 빨리 빨리 받았으면 이건 아까 이런 분들은 뭘까요! 칭찬받을려고 선행하고 그거 받아서 다 쓰신 분들은요 포인트 쌓아놓은거 다 갖다 쓰신거예요. 따로 포인트가, 조금이라도 포인트가 쌓이면 다 써 버리시는 분이예요. 안쓰고 돌리면 몇배로 불고, 그럼으로해서 내 영은 더 밝아지고 이런 영적 제테크의 비결 꼭 알아두십시오.

 

올바른 기도는 뭘까요! 아까 이거 안했죠. 그대들의 자선을 숨겨두어라. 그거 자꾸 곱씹지 말구요 성령의 작용이다 하고 잊어버리라는 겁니다. 그러면요 은밀한 것도 다 보시는 아버지께서 반드시 갚아주신다. 몇배로 더 갚아줄 수 있다는 겁니다.

 

올바른 기도!  그대들은 기도를 할 때 위선자들처럼 하지마라. 위선자들은 기도할 때 어떤가요? 막

남들 앞에서 멋진 멘트를 날릴려고 합니다. 아버지 보라고 한 기도가 아니예요. 남들 보라고 한 기도이기 때문에 저 사람 기도 정말 잘한다라는 칭찬을 들으면서 끝나죠! 보상이 끝난거죠 사실! 기도는 원래 아버지랑 영적 교감을 할려고 한 건데 남들한테 잘 보일려고 하는 기도들을 합니다. 예수님이 정말 보기 싫었나봐요. 그런분들을. 그들은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거리에서 회당에서 기도하기를 좋아한다. 내가 그대들에게 진실을 말하노니 그들은 이미 충분히 보상을 받았다. 이해되시죠!

 

그러니 그대들은 기도할 때 방에 가서 문닫고 보이지 않는 그대들의 아버지에게 기도하라. 남들 안보이는데 가서 기도하시라는 겁니다. 보이지 않는 아버지한테 기도를 하면서 왜 남들한테 그렇게 보이냐는 겁니다. 은밀한 것도 보시는 아버지께서 다 보시고 보상해줄꺼다. 그대들이 기도할 때 이방인들처럼 중언부언하지마라. 그들은 말이 많아야 아버지가 들을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버지는요 그들처럼 하지마라. 그대들에게 필요한 것을 그분께 요청하기 전에 다 아시느니라.

 

사실은요. 아버지 한마디면 끝이에요. 아버지 라는 말도 필요 없어요. 사실은. 몰라가 사실은 기도에요. 내 모든 걸 내려놓고 아버지한테 다 맡깁니다의 실천적인 모습입니다. 

몰라가 나는 내가 누군지 모르겠다 고 아버지한테 다 맡겨버리는 그 기도가 진짜 아버지랑 하나가 되는 기도구요. 굳이 하자면 아버지 한마디입니다. 아버지 더 할 말이 없어요. 

 

아버지하고 계속 자기얘기를 하고  아버지가 뭔 말 하시는지 듣지도 않고요.  계속 아버지 저는 뭐가 필요하고요. 뭐가 필요하고. 다 이겁니다. 보십시오. 에고가 하는 기도 들어보세요. 뭐가 부족하고요. 나는 마음이 괴롭고요. 내가 더 잘되게 해주고, 우리 집이 더 잘되게 해주고, 불안해 죽겠으니까 어떻게 어떻게 해결을 해주세요. 에고가 할 수 있어요. 이 말. 힘드니까 하죠. 우리 에고도 하잖아요. 

아버지한테 왜 못합니까? 할 수 있는데요.

 

자꾸 여기에만 집착하면 영성이 높아지지를 않아요. 좀 더 깊은 기도를 해야죠. 아까 말씀 드렸죠.

충분히 보상받았다. 이런 기도를 통해서 뭔가 이루어졌다 하더라도 아버지와의 더 친밀한 교감은 안 이루어집니다. 아버지가 뭘 원하는지 끝내 몰라요. 내가 원하는 걸 사주시는 분인 거지. 아버지를 이해 하려고를 안 해요. 

더 수준 높은 기도는 예수님처럼 기도하는 겁니다. 아버지 뜻대로 하소서. 하고 맡기는 기도에요. 

하지만 또 다른 기도를 하나 제시해주죠. 이게 주기도문입니다. 이렇게 한 번 기도해봐라. 한번

보세요. 굳이 기도를 하겠다면 이렇게 해라. 아버지. 이제 그 정식으로 보여주십니다.

 하늘에 계시는 우리 아버지 그 이름 거룩하십니다. 당신의 왕국이 임하였으니!

자~ 여기서 지금 포인트입니다. 임하였다라고 했어요. 임할 것이니라고 안되어 있어요. 

자~ 기도할 때요. 아버지할 때 아버지가 지금 내 내면에서 빛이 나야 됩니다. 

안 그러면 그 다음 말은 무의미해요. 이해되세요? 아버지할 때 아버지왕국이 내 안에 임했다라는 걸 모르신다면 그 다음 기도는 아버지 혹시 계시면 들으세요. 하는 기도가 되고요. 아버지 아버지 왕국이 임하였으니 하면, 아버지 보고 얘기하는 겁니다. 이미 여기서 관상의 단계에 들어가야 되요. 예전에 어떤 서양의 여성 철학자가 한말인데요. 이걸 정확히 얘기하시더라고요.

 

자기는 주기도문을 아무리 외우려고 해도 아버지하는 순간부터 정신이 아득해져버린 데요. 

아버지랑 바로 만나버린 겁니다. 그러니까 아버지 할 때는 묵상의 단계에요. 묵상은 한 가지 생각을 하는 겁니다. 아버지를 만나려고. 아버지, 아버지 하다가 관상. 아버지랑 바로 만나버리면 말이 사라져요. 아버지, 아버지, 아~ ~하면 관상으로 들어갑니다. 이해되세요? 

 

아버지. 아버지 아버지는 묵상입니다. 계속 한 가지 생각을 염하다가 아~ ~ 하면 그 다음 말이 뚝 끊어지면 관상이에요. 아버지랑 바로 만날 때 뭐가 일어날까요? 평화. 만족. 기쁨. 세상이 주는 평안이 아니라 아버지가 주는 평안으로 그대로 들어가 버려요. 아버지하고 끝나야 되요. 그 다음 말은 사실은 필요 없어요. 굳이 하자면 이렇게 됩니다. 아버지할 때 아버지를 바로 만나셔야 됩니다. 

아버지를 만났어요.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졌듯이 아버지는 퍼팩트해요. 아버지 마음은 사랑과 정의가 가득해요. 아버지 참나 자리에선 남을 해코지하지 않고 나와 남을 둘로 보지 않습니다.그런데 땅에선 안 이루어지고 있어요. 내 에고입니다. 땅은! 내 자신에게서는 그게 이루어지지 않아요. 지금 두렵고 불안하고. 괴롭습니다. 그걸 이 과정을 쓰는 겁니다. 땅에서 어떻게 이루어질까요? 아버지 뜻이. 여러분의 에고는 뭐가 있을까요? 에고는 생각, 감정, 육체로 이루어져있습니다. 이게 땅이에요. 그리고 이런 걸 갖춘 또 다른 수많은 사람들이 만든 사회가 있고요. 이 땅이라는 거는. 왜냐?

 

이 땅은 이미 아버지 뜻이 이루어져있어요. 이해되세요? 천지만물은 아버지 뜻대로 다 만들어져 있어요. 누가 문제입니까? 여기서 땅에서 안 이루어졌다는 건 인간을 말해요. 지상에서 인간들 때문에 지금 개판이 되어 있어요. 불의가 횡횡하고 전혀 양심은 없이 살아가요. 땅에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건  여러분의 몸뚱이가 땅입니다. 지금. 여러분 생각이 아버지 뜻에 맞나요? 여러분 감정이 아버지 뜻에 맞나요? 여러분의 행위가 육신이 아버지 뜻에 합당하게 쓰이고 있나요? 그럼 뭐라고 하겠습니까? 일용할 양식을 주어서 감사합니다. 내 몸뚱이 살릴 힘을 아버지가 주셨습니다. 육체는 파워풀해야 된다는 겁니다. 육체에는 활력을 주셨습니다.그 다음 뭡니까? 단순히 육체가 아닙니다. 이 일용할 양식은 영적인 에너지까지 포함해요. 육체와 이 마음을 굴리는 힘을 아버지가 주셨습니다. 땅에서 이렇게 살아갈 힘을 주셨습니다. 

두 번째로요. 이게 지금 하늘의 뜻이 땅에서 이루어지는 과정입니다. 제가 저에게 죄를 지은 사람을 용서한 것처럼 저를 용서해주세요. 뭡니까? 기도드리기전에 이미 화해하고 왔죠. 기도 드리기 전에 꼭 먼저 풀고 풀으라고 그랬죠? 예수님이. 이미 나한테 섭섭하게 한 사람 용서했어요. 제가. 마음 풀고 기도합니다. 여러분의 감정을 늘 이렇게 관리하시라는 겁니다. 여러분한테 죄지은 사람을 용서해주세요. 그래야 하느님도 제가 지은 죄를 용서해줍니다. 마음은 감정은 이렇게 관리하시라는 겁니다.

 

그 다음에 생각은요?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오직 악에서 구원해주십시오. 생각은요. 늘 악에 휩쓸리게 하면 안 됩니다. 양심적인 거냐? 이게 아버지 뜻이냐? 내 에고의 뜻이냐를 늘 무섭게 분별해가지고 늘 양심의 맞는 걸 선택하셔야 되요. 이게 악에서 구원받는 겁니다. 그래서 전체적으로 뭐죠.

예.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절대 생각으로 죄를 짓지 마세요. 아까 속마음으로도 죄짓지 마시라고 했죠. 유혹에 빠지지 마시고. 예. 그 다음에 생각에서도 이 유혹에 빠지지 않는, 생각에서도 악을 짓지 않는 겁니다. 그래서 마지막 오직 악에서 구원해 주십시오가 뭘까요?

 

자~ 이걸 다 포함한 겁니다. 오직 악에서 구원해주십시오. 내 생각, 내 감정, 내 몸뚱이가. 아버지 뜻 그대로 쓰이는 신의 성전이 되게 하십시오. 그러면 이게 뭡니까? 지상에서 천국이 만들어진 겁니다. 

여러분 육신에서 천국을 못 만드시면 남의 것은 신경 쓰지 마세요. 나도 내 말 안 듣는데 남한테 말해봤자 다음 애깁니다. 여러분부터 여러분의 생각 감정 오감, 땅에서 천국을 이루면 여러분이 빛이 되가지고  다른 사람 하나씩 바꿀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 말씀은 일관되죠. 자~ 그러면 지상 천국이 가능해집니다. 여러분 안에서 지금 양심이 성령에서 내리는 명령이 내 육신을 통해서 전혀 표현이 안 되고 있는데, 남을 아무리 지적한들 여러분도 어쩔 수 없듯이 남도 어쩔 수가 없습니다. 그렇죠?

 

여러분이 바로 잡혀지면 남도 바로잡혀 집니다. 이걸 아셔야 됩니다. 남 신경 쓰지 마시고 여러분 관리하세요. 선거가 어쩌네. 정치판이 어떠네. 사회가 개판이네. 신경 쓰지 마시고 여러분이 바로잡히면 사회도 바로잡힙니다. 윗사람 욕하다가 윗사람 시키면 똑같아져요. 무섭죠. 그걸 보기 싫으시면 여러분부터 바로 잡혀야 됩니다. 사회 나가면 힘들어요. 그래도 여러분 그 고리를 끊으시려면 여러분이 양심적이셔야 끝나요. 군대에서 구타가 예전에 안 끊어진 게 맞고 자라서 병장이 됐는데 왜 나만 못 때립니까? 억울하잖아요. 때려요. 고리가 안 끊어져요. 나부터 그냥 끊어야 되요. 남 신경 쓰지 마시고 양심대로 사세요. 양심은 가능합니다. 성령은 그걸 가능하게 합니다.

 

 

여러분이 다른 사람의 허물을 용서하면 하늘에 계신 아버지도 그대들을 용서할 거구요.여러분이 다른 사람을 허물을 용서 안 해주면 아버지도 그대들의 허물을 용서 안 할 겁니다.이런 각오로 하십시오. 하느님의 왕국은 본래 지혜와 사랑과 권능이 충만합니다. 생각에는 지혜. 감정에는 사랑. 육체에는 권능을 주시는 분인데 이 분의 뜻이 왜 우리의 생각 감정 육체는 드러나지를 않을까요? 이 주기도문은 아버지한테 그걸 빌라는 겁니다. 아버지할 때 끝난 거에요. 여러분이 아버지 하고 아버지한테 모든 걸 맡기는 순간 생각은 지혜로워지게 되어 있습니다. 감정은 자비로워지게 되어있고, 육체는 활력이 넘치게 되어 있어요. 이래서 지상의 천국이 실현되는 원리가 이렇습니다.

 

우리의 생각감정이 육체나 악에 휘둘리면 이 세상 또한 그렇습니다.하느님의 왕국에선 이미 완벽한 일이 땅에 내려 오면은 불완전해요. 진정한 하느님의 자녀와 사도는 자신의 온몸에서 하느님의 왕국을 이루고 나아가 온 세상에 사회와 정의를 구현하여 악을 물리칠 수 있는 존재입니다. 여러분 한 분 한 분이 사도가 안 되면 불교식으로 보살이라고 하겠습니다. 유교에서는 군자라고 하겠구요. 여러분은 사도가 되어야 됩니다. 사도가 뭘까요? 하나님의 종이죠. 하나님. 성령이 시키는 사랑과 정의를 온몸으로 구현하는 분이 하나님의 사도에요. 교회 다닌다고. 나 십일조 냈다고 사도가 될까요? 인간끼리 거래한다고 그게 될까요?


하나님한테 인가를 받아야죠. 하나님이 하라는 거는 지금 양심대로 살라는 거 그거 하난데요. 으음. 이거를 교회 우리 교회 다니네. 누구 교회 다니네. 아니면 교회 다니네 마네로 구분하실 수 있을까요? 하나님이 허락하는데 왜 여러분이 된다. 안 된다 하시는 겁니까? 이단이다. 누가 이단이라고 했는데요? 인간이 하는 소리 아닙니까? 여기 성령서 나온 말입니까? 이단이 여기 에고서 나온 말입니까? 성령에서 나온 이단은 뭘까요? 양심 안 지킨 사람이 이단이에요. 에고가 말하는 이단은요? 우리 편 아닌 사람이오. 다르죠. 이런 식의 생각을 한번 해보시고 양심에 정말 당당하게 사셔야 되지 않을까요? 자신부터 남 지적하지 마시고요 자기부터 하시는 게 중요하다고 봅니다.


요한복음에 이렇게 얘기를 했습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다. 그분께 예배를 드리고 싶은 사람은 영과 진리 안에서 하라 뭘까요? 자~ 에고의 세계는 우리가 영혼 하면 혼입니다. 성령의 세계가 영이에요

혼으로 기도하지말라는 겁니다. 혼으로 하는 기도는 뭘까요? 생각으로 감정으로. 뭐라고 뭐라고 얘기하고 생각하는 겁니다. 이런 기도가 아니라 영으로 하나님 기도는요. 혼의 세계는 진리가 없죠. 

영의 세계는 본래 진리 자체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이 기도를 하시더라도 영으로 하시면 말을 멈추시는 게 진정한 기도입니다. 말을 멈추시고 아버지한테 모든 걸 맡기세요. 굳이 그걸 도와주는 말 한마디 하자면 아버지입니다.

 

지금 무지의 기도, 무지의 구름 있나요, 무지의 구름 책 좀 생각으로 하는 기도는 아버지한테 도달하는 힘이 약합니다. 자기 생각에 빠져버려요. 자기가 생각하는 아버지를 그려놓고 자기가 자기 마음에 빠져요. 혼으로 하는 에고는 그런 함정이 있습니다. 영으로 드리는 에고라야 생각을 내려놓은 기도라야 아버지랑 그대로. 아버지한테 당신이 창조하신게 저인데 저의 모든 걸 맡깁니다 하고 맡길 수 있는 기도가 돼야 되지 않을까요? 


누가복음에서 이런 말 합니다. 한번은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에게 하느님의 왕국이 언제 오느냐?

하느님의 왕국이요. 여러분의 성령입니다. 자~ 하느님의 왕국할 때, 이럴 때 왕국은 어떤 하늘나라를 의미하는 게 아니에요. 하느님의 왕국이 두 가지 성경으로 의미가 쓰여요. 양심을 따른 자들이 가는 저 아버지 나라! 여기는 천상개념이라면, 이럴 때 쓰는 하느님의 왕국은 지혜와 권능과 사랑이 충분히 구현되고 있는 우리 성령자체를 하느님의 왕국이라고 그래요. 하나님의 법이 그대로 이루어진 자리. 그러니까 여기 보십시오. 하느님의 왕국이 언제 오느냐고 물어보는 이 사람은 그 하나님의 왕국을 말하는 게 아니죠. 그 멋진 천국이 언제 이 지구에 임합니까? 그들에게 대답하시기를  하나님의 왕국은 눈에 보이는 것들로 오지 않는다. 또한, 보라 여기 있다. 저기 있다. 이렇게 말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공간에 얽매이는 자리가 아니다. 결국 사실 그 자리는 그대들 가운데 있다. 이해되세요?

 

당신들 지금 뭘로 보고 듣는데요? 하느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지 않으면 우리는 보고 듣고 살아 움직일 수가 없어요. 이게 구약부터 성경의 입장입니다. 그 자리를 바로 찾으세요. 불가에서 생각하고 보고 듣는 그 자리가 불성이다라고 말하는 거랑 똑같은 얘기입니다. 보십시오. 하느님의 왕국은 먹고 마시는 일이 아니라 성령 안에서 누리는 정의로움과 평화로움과 기쁨이다. 자, 하느님의 왕국은 어떤 특정한 영계의 나라가 아니고, 여러분이 성령 안에서 누리는 정의로움. 이기적이지 않으니까 정의롭습니다. 평화로워요. 결핍감이 없고 평화로우며 그 안에서 늘 기쁩니다. 두려움이 없습니다.

 

여러분 안에서요 평화롭고 기쁘고 정의로운 상태. 죄짓지 않은 상태가 이루어지시면 그 자리가 하느님의 왕국이고 여러분이 하느님의 왕국이 임하였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겁니다. 그런 마음을 안 두시고 이 주기도문을 아무리 입으로 외우신들 아버지와의 거리감이 좁혀지지 않을 겁니다. 이것도 아셔야 됩니다. 출애굽기예요. 모세가 여호와에 대해서 물어보니까. 하느님은 어떤 분입니까? 나는 내가 있다는 것일 따름이다.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다. 이렇게 번역하죠. 보통. 나는 내가 있다는 거다. 왜 이 말이 나올까요? 나는 나일뿐이에요. 여러분이 성령자리 만나고 싶으시면  아무개라는 이름을 내려놓고 그냥 존재해 보세요. 나는 누구다가 아니고,  나는 나다라는 거 밖에 더 말할 수 없는 상태가 성령상태입니다. 100% 나로 존재하는 상태. 그럼 나라는 말도 필요가 없죠. 나일뿐이니까!  굳이 말하자면 나는 나다라는 거지. 이런 말도 필요가 없죠. 그냥 순수한 존재자체가 하느님 자리입니다. 


사도행전에 이런 말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살면서 움직이고 존재합니다. 하나님 없이 우리는요, 자, 에고가 성령 없이 존재할까요? 존재 없이 이건 없습니다. 나라는 존재가 없는데, 존재가 없는데 누가 울고 웃고 기뻐하고 따지고 합니까? 그 모든 게 어디로 인해서 일어나나요? 존재요.여러분이요 아침에 일어나 주무실 때까지 하루 종일 웃고 떠들고 생각하고 고민하는데, 마지막 깊은 잠에 빠질 때 뭐만 남습니까? 깊은 잠 상태에선 존재만 남아요. 여러분의 그냥 존재! 그게 또 이어져서 다음날 또 일어나서 또 울고 웃고 떠들고 하고 싹 사라지고 존재만 남습니다. 그 존재가 하나님입니다.


자, 그러니까 지금 올바르게 기도하는 요령이요, 가톨릭에서 중시하는 책인데 중세영국의 신비주의자가 썼습니다. 정말 묵상 관상의 대가가 쓰신 거에요. 자기 이름도 안 밝혔어요. 무명시에요. 

이게 엄청난 고전이고, 70년대 와가지고 이 기도가 최고의 관상이라고 해가지고 구름의 기도라고

처음에 만들어서 하다가 중심을 향하는 기도라고 해서 향심기도라고 이름을 바꾸어서 합니다. 

향심기도의 바이블입니다. 향심은요 이 마음심( 心) 자가 우리 한자에서 심은 센터를 의미해요.

센터 중심. 향심. 중심을 향한 아버지를 향하는 기도입니다. 여기서 이 제목에서 말하는게 무지의 구름은 모든 생각을 무지에 빠뜨려버리면 그대로 아버지를 만난다는 겁니다.


모세가 구름 속에 들어가서 하나님을 만났거든요. 그거를 가지고 상징으로 쓴 겁니다. 무지의 구름에 들어가시면 여러분 하나님을 만납니다.무지. 어떠한 생각도 내려놓으시고 몰라로 존재하시면 아버지랑 바로 만납니다. 이해되시죠? 이 기도를 지금 제가 알기로는 향심기도에서 그대로 하시기보다. 

이 여기 중에 이 무지의 기도보다는 뒤에 굳이 해야 된다면 한 음절 정도만 써라. 아버지 라고 해라. 

그거를 지금 향심기도에 주로 쓰는 거로 알고 있어요. 아버지, 아버지하다가 아~ 하면서 들어갑니다. 근데 이 책은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무지를 제일 표방합니다. 바로 들어가는 게 최고다. 몇 구절 읽어드리려고요. 제가!

 


자, 보세요. 제가 한번 읽어드릴게요. 

그래서 나는 내가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한편으로 치워두고 내가 생각할 수 없는 그것을 내 사랑의 대상으로 선택할 것입니다. 아버지는 생각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닙니다. 그러니까 내가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한편으로 치워두겠습니다. 왜냐고요? 왜냐하면 그 분을 족히 사랑할 수는 있지만 그분을 생각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사랑으로는 그분을 붙들고 차지할 수는 있지만  생각으로는 되지 않습니다.


어떤 생각도 다 내려놓으세요. 뭐라고 되어있습니까? 심지어 하나님에 대한 일까지도 다 내려놓으라고 되어 있습니다.그러니까 하나님에 대한 생각까지도 다 내려놔야 됩니다.왜냐? 그건 내 생각이니까요. 이 책에서 뭐라고 하냐 하면 그건 당신 생각이니까. 하나님에 대한 어떠한 생각도 당신 생각이기 때문에 다 내려놓으시라. 또 보십시오. 아, 이 말도 멋집니다. 타오르는 사랑! 왜 사랑만 남겨두라고 했냐 하면 하느님을 향한 마음입니다. 하느님을 향한 마음은 남겨두되 다른 생각은 다 꺼버리라는 겁니다. 타오르는 사랑으로 단호하게 열정적으로 모든 그 생각들을 짓밟고 올라가서 그대 위에 드리워진 어둠을 꿰뚫어 보도록 노력해야 된다. 이 어둠은 무지에요. 모름, 몰라 하는 그 상태에만 머무시면 간절한 사랑이라는 날카로운 화살로 두꺼운 무지의 구름을 맞추되 결코 포기할 생각은 하지 마십시오.



또 하나 읽어드릴게요. 이 내용이 너무 다 좋은 내용들인데요. 그대의 마음이나 의지 안에서는 오직 하나님 이외에는 어떠한 것도 작용하지 못하도록 하십시오.하나님이 아닌 어떤 것에 대한 지식과 느낌 일체를 제압하고 망각의 구름, 무지의 구름 아래로  깊숙이 묻어버리십시오. 그대가 이 일에서 그대 자신 이외의 모든 것들뿐만 아니라 그대 자신과 심지어는  그대가 하느님을 위해 해낸 일까지도 모두 잊어야 한다는 사실을 명심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어떠한 일도 잊어버리셔야 되요.그대가 자신에게 그렇게 하도록 하십시오. 그대의 마음과 의지 안에 출현하는 것이 하나님이 아닌 한은

모조리 싫어하고 질색해야 합니다. 다 몰라라고 잡아떼셔야 됩니다.그렇게 하지 않으면 반드시 무엇이든가 그대와 하나님 사이에 끼어들게 될 것입니다. 



자, 제가 이거를요, 몰라를 한참 지도하다가  작년쯤에 이걸 봤어요. 이 책을 처음보고 놀랬어요. 

우리가 쓰는 기법까지 똑같은 거에요. 몰라, 괜찮아 명상이랑. 보십시오. 관상적인 완덕은 그 자체가 매우 멋지고 철저히 영적이라서 이를 제대로 이행하기만 하면 우리는 어떤 육체적 움직임이나 장소와는 정반대되는 대립개념임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뭔 얘기냐 하면요 진정한 관상은 움직이는 게 아니라  그냥 초월해 버린다는 겁니다. 이런 시공을 초월해 버린다는 겁니다. 그래서 움직임이라기보다는 왜 이 말을 하냐 하면 우리가 보통 하느님 만난다. 그러면 하늘로 한참 올라간다고 생각을 하는 거에요. 그거에 대한 비판하면서 나온 얘깁니다. 하늘로 올라가는 게 아니고, 저 하늘에 어디에 있는게 아니라는 거죠. 진짜 하느님은!


이 시공을 그냥 초월할 때 만난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움직임이라기보다는 차라리 변합니다. 그래서 관상기도는 시간과 장소와 육신에 관한 일체의 것들을 망각해야 합니다. 그것만 망각하면 그대로 만납니다. 이거는 선사로 치면 엄청난 선사가 쓴 글입니다. 선사요 선사! 자, 그래서 우리가 뭐라고 합니까? 우리 명상할 때, 몇 시입니까?  모르시죠? 여기 어딥니까?  모르시죠.몸뚱이?  모르시죠. 여러분 자신까지도 잃어버리라고 했죠. 여러분 이름? 모르시죠. 존재하시죠. 이게 나는 존재할 뿐이다. 하는 겁니다.


이 자리가 성령자리입니다. 보고 듣고 말하는 건 다 그 자리에 의존해서 일어납니다. 여러분 안에 있는 순수한 참나, 순수한 성령을 만나시면요. 아버지를 만나고, 거기서 힘이 나와서 자선도 베풀고 기도도 하고, 금식도 하고, 다 거기서 하셔야 됩니다.


자, 금식으로 갈까요! 올바른 금식은요, 똑같겠죠! 금식, 이건 음식을 좀 안먹고 절제하는건데 이걸 또 그렇게 자랑해요! 얼굴 수척하게 되가지고 남앞에서 나 금식한다 하고 욕심은 끝이 없죠! 인간적인겁니다. 우리도 다 똑같쟎아요, 그런데 성령이 드러날때만 우리가 이 마음이 가라앉고 진정이 되요, 그대들이 금식할 때 위선자들처럼 침통한 얼굴을 하지 마라, 얼마나 뵈기 싫었으면 이런 말씀을 하실까요.


그들은 금식한다는걸 남들에게 보이려고 어두운 얼굴을 하는 것이다. 내가 그대들에게 진실로 말하노니 그들은 이미 충분히 보상 받았다. 어우, 저 분 금식 정말 고생하시네, 이걸루 대가 끝났다는 겁니다. 아버지는 아주 쿨하시네, 얄짤없다라는 말을 하고싶었는데 하여튼 욕심으로 하는 금식은 올바른 금식이 아니다. 금식할 때는 얼굴을 씻고 머리에 기름을 발라라! 오히려 티 안나게 하고 다녀라 . 인간의 힘으론 안됩니다. 성령의 마음이라야 가능합니다. 억울하쟎아요! 금식하는거 좀 위로도 받고 싶고 하는건데 사람이! 그런 인간적인걸 다 부정하지 마시구요 성령의 마음일땐 이게 가능합니다. 인간적으로 억지로 하시려고 하면 병나요!


그대들이 금식하는걸 남에게 드러내지 말고 오직 아버지에게만 보여라. 은밀한 것도 보시는 아버지께서 충분히 보상해 주실 것이다. 자 결론이죠! 보물을 하늘에 쌓아라. 제발! 그대들 자신을 위해 보물을 땅에 쌓아두지 마라, 좀이나 녹이 망가뜨린다. 도둑들이 뚫고와서 훔쳐간다. 현상계에 있는 보물은요 당장 이렇게 안된다고 해도 어떤가요? 죽을때 못가져가요. 이게 한계입니다. 그러므로 그대들의 보물을 하늘에 쌓아라. 아니 보이지도 않는 하늘에다 어떻게 보물을 쌓아요? 어떻게 쌓으라는 얘깁니까? 자선을 많이 베풀어라. 올바른 자선을 많이 베푸시면 그 대가가, 그 돈을 재물을 가지고요 남을 도와주세요! 내 영이 밝아지는 식으로 보물이 쌓입니다.


그래서 어, 거기에는 절대로 좀과 녹이 망가뜨릴수 없고, 도둑이 못 훔쳐가죠. 영에다 쌓는 보물은, 이게 최고의 영적 제테크입니다. 불변의 보물이란 사실 우리의 밝아진 영혼이다. 우리가 대가를 바라지 않는 자선을 베풀수록 하나님께 받을 보상이 쌓여가며 우리 안에서 성령의 은총이 더욱 밝게 드러나서 여러분 스스로가 영광스러워지게 될 겁니다. 이것이야말로 최고의 보물이다.


그래서 21절에요 사실 그대들의 보물이 있는 곳에 그대들의 마음도 있다. 여러분 마음이 보물이예요, 마음이 밝아집니다. 예, 불교의 3가지 회향, 아까 회향 얘기 했죠! 보리회향, 중생회향, 실제회향, 이거도 똑같습니다. 영적으로요 아주 이 재물을 베풀어가지고 보시를 엄청해 놓구요 회향을 해버려요! 누구한테 회향을 합니까? 보리회향은요 깨달음에다 회향이예요!


자, 여러분이 이렇게 재물을 남한테 다 베풀고 여러분이 이 재물만이 아니라 여러분이 쌓은 영적인 공덕, 포인트! 공덕까지도 마찬가지. 여러분이 받을, 지금 예수님이 말한 보상까지도요 여러분이 받기를 거부해버리세요! 여러분이 올바른 일을 해서 하나님이 보상을 주기로 했죠, 영적인 포인트가 이렇게 쌓였어요. 여러분을 위해서 안써요! 누구한테 돌려버릴까요? 그 좋은거를요 우리 모든 사람들한테 가게 하십시오. 이게 중생회향입니다.


모든 사람한테 쓰세요, 저한테 쓰지 마세요 하나님! 이거 불교를 기독교로 바꾸면요! 보리회향은요

이렇게 영적으로 쌓은 이 포상을 가지고 뭘 씁니까? 보리는 깨달음입니다. 제가 더 영적이 되게 해주세요, 그걸로 저한테 뭐 물질적인 대가를 주진 마시고 영성이 더 깊어지게 해주세요! 당연히 깊어지죠!


그 다음요 실재회향이 실재가 열반을 말합니다. 기독교에서 하나님이예요. 하나님한테 회향해버려요. 그거 사실 하나님이 하신거쟎아요 저를 통해서! 하나님 덕입니다 하고 돌려버리면요 덕을 돌려버리는 겁니다. 여러분 스포츠 선수가 우승한다면 아버지 덕입니다 이게 불교로 회향이라고 그래요.


자기가 공덕을 쌓아놓고 아버지 덕입니다. 불교에서는요 부처님 덕입니다 하고 돌려버리고 그러면요 영적인 포인트가 몇배로 또 불어요! 그 마음이 기특하쟎아요! 이렇게 계속 불리면서도 자기를 위해서 안써요. 모두를 위해서 제가 포인트 쌓아놓구요 오늘 한턱냅니다. 이거죠! 모두를 위해서만 그 포인트를 써요! 이런 분이 진짜 보살이고, 하나님의 자녀죠, 그쵸? 다 이해하실 수 있는 내용입니다.


늘 깨어있어라. 눈은 몸의 등불이다. 이것도 별얘기 아닙니다. 눈은 여러분 몸의 등불이죠, 눈이 왜 등불일까요? 눈이 감으면 캄캄해져요! 눈을 뜨면 환해져요! 자, 눈이 온전하면 온 몸이 환할 것이고, 온 세상이 환하죠, 눈이 어두우면요 온 몸이 아니라 온 세상이 다 사실 어두워져 버려요. 그러니 그대들 내면에 있는 빛이 어둠이라면 얼마나 어둠이 짙겠는가! 내면의 빛은 뭡니까? 성령, 양심요!


여러분이 양심이 없다면 얼마나 어둡겠습니까? 여러분이 양심 없는게요 눈을 못뜨는거 정도로 캄캄한거라는걸 얘기해 주시는 겁니다. 눈 못뜨면 얼마나 갑갑하겠습니까? 여러분이 양심 없다는건요 그 정도로 갑갑한거라는 겁니다. 어두움이라는 겁니다.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아무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한 쪽을 미워하고 한 쪽을 더 사랑하게 된다. 한 쪽을 더 떠받들고, 한 쪽을 더 무시하게 된다. 그대들은 하나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수가 없다.

자, 여러분이 에고죠! 에고가 재물을 섬길겁니까? 성령을 섬길겁니까? 양심을 따르실겁니까? 재물을 섬길겁니까? 돈이 생겼는데요,  이거는 절대 나를 위해 쓰겠다고 묶어두시면 재물을 섬기는 거구요 재물이 생겼을 때 양심의 뜻에 따라 남들에게 베풀고 살면은 하나님을 섬기는 겁니다. 둘 중에 한명을 더 섬기게 되있다면요!


우리 동양 서경에 뭐라고 되어 있을까요? 욕심은 위태롭고 양심은 미미하다. 욕심은 늘 위태롭고, 이기적이고 평화롭지 않고 불안하고 위태롭쟎아요! 이 자체가 악은 아니지만, 악으로 그냥 뛰어들 준비가 다 되어있습니다. 욕심은 위태롭고 양심은 늘 미미하다. 우리 마음에서 세력이 약해요 양심이!

자, 그러니까 누구를 섬기라는 겁니까? 답은 뭘까요? 오직 양심을 정밀하고 한결같이 섬기면 진실로 중심을 잡을 수가 있다. 욕심에 휘둘리지 않을 수가 있다. 동양도 결론이 똑같습니다.


그러니까 서양은 또 어떨까요? 그 뭐, 서양도 아니죠! 중동에서 로마까지 기독교에서 가르치는게 뭡니까? 성령에 따라 살아가십시오. 그리고 육체의 욕망을 채우지 마십시오. 똑같죠! 양심대로 사십시오. 욕망대로 살지 마십시오. 욕망은 성령에 반대하고 성령은 육체에 반대하기 때문입니다.


둘 다 섬길 수 없다면 누구를 섬기라구요? 성령을요! 갈라디아서에서요 성령의 열매는 사랑, 기쁨, 평화, 인내, 관대, 선량, 성실, 온순, 절제!  인의예지가 다 나옵니다. 그쵸?

사랑과 정의와 성실과 이런 절제가 다 나오죠! 자, 이 얘기는 뭡니까? 여러분은요 사랑과 정의를 하실려고 노력하시면 안되요! 여러분은 성령과 하나되실려고 노력하시면 되요, 성령의 열매예요! 여러분이요 여러분 마음에 불쌍한 사람봤는데 아이구 사랑해야지~하면 가짜입니다. 벌써!


불쌍한 사람 봤을 때 에고를 내려놓으세요! 아버지~하고 내려놓으시면요 사랑의 마음이 안에서 터져나와요! 이게 진짜예요! 불가에서 이거를요 '보시바라밀'그래요! 아이고 베풀어야지 하고 베푸는거를 '보시'라고 하구요 참나에서 터져나와서 보시하는걸 '보시바라밀'이라고 그래요. 이해되십니까? 인욕, 참자하면 인욕이구요, 인간이 하는겁니다. 인욕은 에고가 하는거예요, 아이 참자, 귀찮다.


성령에서 터져나오는 인욕은 인욕바라밀, 참는 흔적도 없어요. 그냥 이해가 되서 넘어가버리는 겁니다. 상대방이 나 같애서 그냥 넘어가 버려요. 기분이 평화롭고 만족스러워지면서 그냥 넘어가버려야

진짜 인욕바라밀입니다.


마찬가지로 사랑, 기쁨, 평화, 인내 이거는요 아버지 마음, 성령의 마음에서 터져나오는 겁니다. 그래서 성령의 열매라고 하는겁니다. 어떠한 것도 이것들에 저항하지 못한다. 이게 터져나오면요 다 끝이예요! 제가 아무리 이기적이어도요 안에서 사랑이 터져나와 버리면 끝이예요! 제가 아무리 이기적인 사람이라도, 평소에 한번도 선행을 안했어요! 그런데 지하철에 떨어져 있는  사람을 보고 그냥 뛰어들었어요. 정의가 터져나와 버린 겁니다. 그냥 정의로워야지 할 생각도 없었어요. 이해되시죠?


이게 성령의 열매입니다.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들은 자신의 욕망이나 육체를 그것들의 욕정과 욕망을 함께 십자가에 못박으라 그랬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령으로 살아가니, 성령을 따라갑시다 라고 지금 얘기하는 겁니다. 제자분들에게!


자, 먼저 그분의 왕국과 정의로움을 구하라. 그러므로 내가 그대들에게 이르노니 그대들의 목숨을 위하여 뭘 먹을까. 뭘 마실까 걱정하지 마라 또 몸을 위해서 뭘 입을까 걱정하지 마라. 의식주죠!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우리 에고가 가장 기본적으로 바라는 의식주에 대해서요 걱정하지 마라고 하십니다. 걱정 안하실 수 있겠어요? 안되요, 성령의 힘이 아니고는 안되요! 인간은 안되요!


그러니까 이 얘기는요 아! 나는 안돼 이것이 아니고 나도 인간이구나 하고 자연스럽게 너무 오버하지 마시고 인간적인 감정들은 그대로 존중해 주시고 성령만 여기다 하나 얹으시면 되요! 이런 인간적인 감정하고 싸우지 마시라는 겁니다. 다 똑같으니까 그쵸?


배고프면 성인도 다 똑같이 배고파요, 그러니까 잘 드시쟎아요! 근데 이런 욕망하고 싸우면 안되요.

부족한건 성령이지 욕망이 아니예요! 의식주 걱정하지 말고 오직 성령과 양심을 구하려면 어떻게 해야될까요? 아주 절실한 비유를 해주십니다. 하늘을 나는 새들을 봐라. 씨 안뿌리고 농사 안짓는데두요 잘먹고 잘살아요 그리구요 다 먹여줘요! 그대들 가운데 누가 걱정한다고 수명을 조금이라도 늘릴 사람이 있느냐? 수명은 하늘한테 있다라고 하는 사상입니다. 그리고 그대들은 왜 옷을 걱정하는가?

들에 핀 백합화가 훨씬 더 이쁘게 잘 살아요. 이거는 옷 입을 걱정도 안하는데 잘입고 살아요.


보십시오. 솔로몬의, 위대한 왕 솔로몬의 온갖 영광으로도 이 꽃 하나만큼 차려입지 못했다. 꽃 하나가 그렇게 화려하게 하느님이 입혀줘요. 근데 왜 걱정하냐는 겁니까? 왜 의식주에 대해서 걱정하십니까? 오늘 여기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질 들풀도요 다 하나님이 이쁘게 다 입혀줘요!


하물며 가장 사랑하는 자녀들인데 얼마나 잘해 주겠냐는 겁니다. 하느님이!

이 믿음이 적은 자들아라고 하시면서 무얼 먹을까, 마실까, 입을까 걱정하지 마라.

왜냐하면 이런것들은요

이방인들도 다 찾는다. 아버지 자녀라면 더 고차원적인걸 찾아라. 뭘 찾으라고요? 뭐가 더 그분의 뜻에 맞나? 그분은 어디 계시나를 찾아야죠. 그러니까 그대들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모든 걸 다 알고 계시니까 따로 그런거 얘기안해도 아버진 다 알고 있어, 여러분이 지금 배고프다는거, 옷이 없다는거, 집이 없다는거 다 아시니까 그런거 아버지한테 따로 얘기하지 말고 먼저 그분의 왕국, 하느님.

이 성령자리입니다. 그분의 왕국과 그분의 정의로움을 구하라. 예, 이 자리는 얼마나 정의롭습니까!


남한테 피해주지 않아요. 여러분은요 이 말은 뭡니까! 우리가 항상 주장하는 것이 있습니다. 학당에서. 여러분 이것만 지키시면 아버지의 사도고 보살이고 군자입니다.


여러분 깨어계십니까? 여러분 안에 있는 신성을 느끼십니까 지금?

신성은 한시도 쉰 적이 없는데, 지금 못느끼시면 가짜입니다. 지금 느끼십니까?

그리고 그 신성의 뜻에 비추어서 여러분은 지금 당당하십니까? 정의로우십니까?

그분의 왕국과 정의로움을  찾으라는게 이겁니다. 여러분 지금 하나님 왕국과 하나로 연결되어 있습니까?


두번째 그분은 정의로우신 분이신데 여러분은 지금 정의로우십니까? 양심에 떳떳하십니까?

정의는 별거 아닙니다. 남한테 내가 당해서 싫은거 남한테 안해주는 겁니다. 상대방이 나라면 절대 싫겠다 하는걸 안 가하는 겁니다. 그리고 사랑은 뭡니까? 상대방이 받고 싶은걸 해주는게 사랑입니다. 사랑은 적극적이예요, 정의는 소극적이예요. 내가 상대방이라면 싫겠다 하는거 안해주는게 정의구요, 내가 상대방이라면 이런걸 받고싶겠다 하는걸 해주는게 사랑입니다.


황금률 안에 다 들어있는 거예요! 깨어서 황금률 지키시면 그분이 보살이고, 군자고 이 사도죠!

로마서에 아까 얘기했죠? 하나님의 왕국은 먹고 마시는 일이 아니라 성령안에서 정의로움과 평화와 기쁨을 누리는거다. 예, 같은 얘깁니다. 그러므로 내일을 걱정하지 마라. 내일 걱정하지 마시구요 내일은 내일 걱정하도록 하고 그날의 괴로움은 그날로 충분하다. 예, 오늘 괴로움을 내일로 또 가져가지 마시구요 그럼 뭐하라는 얘깁니까? 매순간 순간 아버지 뜻대로만 사는가만 체크하라는 거예요.


지금 아버지 그분의 왕국과 하나로 되어 있습니까? 그분의 정의로움을 지금 여러분의 온 몸을 통해서 구현하고 계십니까? 이거만 신경쓰시면요 아버지가 뭐라고 했습니까 아까! 정의로움만 구하라 그러면 모든 것들도 다 함께 받게 될 것이다. 여러분 다 먹고 살고 다하게 해주실거예요. 왜? 아버지를 따르고 양심을 지키는 사람을 아버지가 왜 홀대하겠습니까! 그쵸!


욕심이 더 많아서 그렇지 아버지는요 적합하게 다 보상을 해주십니다. 그러니까 이런거에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 나는 지금 양심적인가에 더 신경을 쓰시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입니다. 예수님이 보장한 거니까 믿고 해보세요! 저한테 뭐라고 하지 마시고. ㅎㅎㅎ 예수님이 하신겁니다.


7장. 남을 심판하지 마라.

남을 심판하지 마라 그래야 그대들이 심판받지 않을 것이다. 그대들이 남을 심판하는 잣대, 심판하는 그대로 남들도 당신을 심판할 겁니다. 그대들이 남을 헤아리는 잣대, 남을 재고 다니는 그 잣대! 우리가 사단노트 강조하니까 이 사단노트로 남을 재고 다녀요. 그 잣대대로 여러분, 남들도 여러분을 다 재고 있을겁니다. 사단노트란게 무서워요. 인의예지 잘하자는 노트쟎아요. 자녀한테 쓰라고 하면요 자녀가 그걸로 부모님을 보고 있습니다. 무섭죠! 그러니까 서로 조심하는게 답입니다. 양심은.


그대들은 어찌하여 형제의 눈에 있는 티는 보면서 남들 눈에 있는, 남에게 있는 작은 잘못은 잘 보는데, 그대들의 눈에 들어있는 들보, 대들보가 들어있는데 몰라요, 자기 잘못은 모르고 꼭 남을 지적할려고 합니다. 그대들 눈속에 있는 들보를 빼야지 남의 눈에 있는 티도 빼주겠죠. 내 눈이 어두운데 누가 누구를 인도합니까. 그대들 눈속엔 들보가 있는데 어떻게 내가 네 눈에서 티눈 빼주겠다라고 형제들한테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위선자들아, 먼저 그대들 눈에서 들보를 빼라, 그래야 그대들이 뚜렷이 보고 형제들의 눈에서 티를 빼낼 수 있을 것이다.


명심보감에 아주 멋진 말이 있습니다. 이 얘기가 있어요. 예, 책인지심으로 남을 질책하는 마음으로 책기, 나를 꾸짖고, 자신을 용서하는 마음으로 남을 용서하라. 자신이 남을 꾸짖을 때 얼마나 사단,

평소에 양심적이지 않던 분도요 남 지적할때는요 정밀합니다. 사단을0.0001mm까지 재서 그때 아! 라고 했어야지 왜 어! 라고 했어라고 비판합니다.

그걸 가지고 나를 비판하구요 자신이 한 잘못은 그렇게 관대해요! 그때 사정이 다 있었겠지, 사정이 그럴수 밖에 없었지 라고 하는거 그걸 가지고 남을 가지고 남을 봐주면 얼마나 사단 적용이 잘 되겠습니까!


이걸 줄여서 이렇게 말합니다. 책인여기(責人如己) 책기여인(責己如人)

남을 꾸짖을 땐 나처럼 하고, 책기여인, 나를 꾸짖을 땐 남처럼 하라!

예전 어른들이 주로 쓰던 말들이예요. 그러니까 우리나라 예전 어른들도 다 양심적으로 사셨어요!

이거 알아두셔야 되요. 아유 교회 안다니셨다고 무시하고 그러시면 안되요. 양심없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원시시대부터 지금까지, 그 양심에 충실히 응한 사람들이 성자구요 어느시대  어느 사회나 양심 무시하시고 자기 욕심만 아는 사람들이 어느 시대나 소인배들이고 바리새파고 욕먹는 겁니다.


법구경(法句經)에 똑같은 말합니다. 남의 잘못을 질책하지 말고 남이 행한 일과 행하지 않은 일을 심판하지도 마라. 오직 자신이 행한 일과 행하지 않은 일을 스스로 반성하여 살펴보라. 성인들 말씀이 다르지 않죠!


거룩한 것을 욕되게 하지 마라. 거룩한 것을 개한테 주지 마라. 진주를 돼지앞에 던지지 마라. 먹을거 아니니까 돼지는 싫어하겠죠! 그것들이 열받아서요 짓밟고 돌아서서 그대를 해칠것이다. 밥은 안주고 진주를 던지니까 욕심에 충만한 소인은요 양심을 추구하는 군자를 해치려고 덤빕니다. 맘에 안들어해요! 양심적인 얘기, 그래서 조금 해보시구요 눈치 이상하면 하지마세요. 더했다가는 해로운, 제자들이 해당하고 이런말씀 하시는거 아닙니까. 들을 사람한테 해야지요, 노자가 뭐라고 했냐면요

진정한 도는요 소인배들이 듣고 화를 내지 않으면 진정한 도가 아니다. 비웃지 않으면.


여러분이 누군가에게 이렇게 살자고 했을 때 양심적으로 비웃으면 '도' 맞아요! 소인들이 비웃고 화내지 않으면요 '도'가 되기 부족해요. 왜냐하면요 그 사람들 욕심에 부합하는 얘기만 하신거쟎아요.

그러니까 누구한테든 좋은 소리만 듣고 다니는 분이 꼭 성자가 아닙니다. 그 사람은요 대개 남의 욕심만 맞춰주고 있어요. 맞춰줄 땐 맞춰주지만, 단호할 땐 단호할 수 있어야 군자입니다.


청하라, 그대들에게 주실것이다. 찾아라.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열릴 것이다.

희망찬 얘기입니다. 누구든지 청하는 이는 받고, 찾는 이는 얻고, 문을 두드리는 이는 열릴 것이다.

여러분이요 얻을려고 하면 반드시 얻게 되어 있다 이 얘기입니다. 그대들 가운데 아버지가 어느 아버지가 아들이 빵 청하는데 돌을 주고 생선 청하는데 뱀을 주겠느냐? 그대들이 악해도 자녀들에겐 좋은거 주는데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는 청하는 것을 얼마나 더 잘 주겠느냐?


자, 요 말씀 들으시구요, 오! 그래! 그러면 로또 1등도 청해보고, 막 여러가지 하시겠죠, 하시면서도 찜찜하시죠, 욕심으로 하니까! 양심으로 청하세요!


자, 그래서 누가복음을 같이 실었는데 앞에 얘기는 다 똑같애요 누가복음이. 누가복음에 있는 평지설교 같은 사건을 기록해놓은건데요 마태복음에 짤린 말이 있어요, 뭡니까! 마지막에,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당신께 청하는 이들에게 성령을 얼마나 더 잘 주시겠냐, 성령을 청하라고 되어 있어요. 아까 얘기했쟎아요. 지금 또 앞에서 잊어버리신거 아닙니까. 먹을거 입을거 신경쓰지 마라고 하던 얘기! 또 그새 먹을거, 입을 거 청하신 거 혹시 아닙니까. 이해되십니까, 성령을 청하라고 되어있고, 성령을 청하면 반드시 주신다고 되어 있어요.


예수님이 이렇게 단호하게 얘기할 수 있는 이유가요 성령은 여러분한테 이미 있기 때문에 그래요.

원하면 반드시 얻을 수 있습니다. 아까 뭐라고 하셨나요! 수명을 너희들이 늘일 수 있느냐 라고 하셨죠, 우리가 수명 가지고 뭐 이런거 가지고 신경쓰지 마란 얘기죠. 성령만 신경써라, 먹을거 입을거 필요한만큼 다 주신다.


솔로몬 왕도 뭐 다 한계가 있쟎아요 갖는데. 우주의 모든 걸 한 사람이 가질순 없어요. 성령은요 아버지랑 똑같이 가질수가 있어요. 자, 맹자! 이 재밌는게 동양의 성자 맹자가 한 말 들어보세요.


구하면 얻을 수 있고, 내버려 두면 잃어버린다. 이러한 구함은 얻는데 도움이 되니 구하면 누구나 얻을수 있다는 얘깁니다. 구하는 것이 이미 나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이미 있는걸 구하는건요 누구나 구하면 무조건 얻을 수 있다는 얘기를 합니다. 맹자도!


또 재밌는 얘기가 있어서 실었는데요 마가복음에요 씨를 뿌리는 자의 비유를 해주는데 어떤 사람의

씨는요 길 위에 떨어져서 새들이 와서 먹어버렸고, 어떤 씨는 돌 위에 떨어져가지고 싹이 났으나 금방 죽어버리고, 어떤 씨는 가시덤불에 떨어져 가지고  열매를 못맺고, 하지만 좋은 땅에 떨어진 씨는요 싹이 나서 자라서 열매를 맺는데, 30배, 60배, 100배의 열매를 맺는다. 이게 성령이 여러분 안에서 일으키는 변화를 말합니다. 여러분이 성령을 무시하면요 에고, 척박한 에고에 떨어진 씨앗은 뭡니까! 싸이코 패스의 에고에 들어있는 성령은요 전혀 열매를 거두지 못합니다. 양심적인 사람안에 뿌려진 성령은요 엄청난 일을 합니다. 맹자가 똑같이 이야기해요. 사랑과 정의, 예절, 지혜의 이 양심은 바깥에서 들어온 게 아니고 원래부터 내가 가지고 있던 것이나, 다만 찾지 않았을 뿐이다. 아까 구하면 얻으리라는게 이 양심을 말합니다.


구하면 얻고 내버려두면 잃어버린다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혹은 서로 배가 되기도 하고 다섯배가 되기도 하고 혹은 헤아릴 수도 없는 것은, 어떤 사람은요 이 양심이 두배고, 두배로 꺼내쓰고, 어떤 사람은 다섯배로 꺼내 쓰고, 어떤 사람은 헤아릴 수 없게 꺼내 쓰는 거는 모두 그 재능을 모두 발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즉, 우리 안에는 원래 퍼펙트한 사랑, 정의, 예절, 지혜가 들어있는데 다 못 꺼내쓴다는거! 누구는 사랑을 더 잘하고 덜하고 차이는요 여러분이 재능이 없어서가 아니라는 겁니다. 여러분 안에 성령은 누구가 다 똑같으니까요. 꺼내 쓰냐, 못꺼내 쓰냐 차이라는거!


맹자랑 지금 예수님 얘기랑 똑같은 얘기 하는거 아시겠습니까! 자, 이제 결론입니다. 무엇보다 중요한거는 '황금률'입니다. 그러니까 절대 남이 그들에게 해주길 바라는대로 그대들이 먼저 남에게 해 주어라. 먼저 해야 되요, 뭐라고 이렇게 되어 있지 않죠, 남이 해주거든 꼭 해주어라 라고 되어있지 않죠, 여러분 에고가 이 얘기 들으시면 약간 섭섭할 수 있지만 에고는 섭섭해도 괜찮아요. 원래 좀 섭섭한 자리기 때문에, 성령과 하나가 되면요 섭섭함이 사라져요. 진심으로 그게 옳다는걸 아시게 되면 성령 상태고요, 마음이 별로 안내키면 에고상태라는 것만 아시면 되요.


그러니까 에고를 탓하지 마시고 빨리 성령으로 돌아가세요. 에고는 원래 차가운 공이 쇠공이라 원래

차가워요, 원래 본질이! 뜨거운 불이 가까이 가면 될거를 차가운 쇠공을 탓하지 마시라는 거예요. 에고는 원래 그래요, 이게 맛이예요. 삶의 적당한 긴장감을 주는 자리가 에고입니다. 불안과 걱정과 성령 가까이 있으면 이 불안이 사라져요! 성령에서, 불에서 멀어지면 다시 불안해져요!  이게 에고입니다. 그래서 이걸 잘 관리하시려면 늘 불 가까이 계시는 수밖에 없어요. 아버지, 아버지 하는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게 뭡니까! 모든 자녀를 공평하게 사랑해 주는거요! 논어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공자님도 똑같은 걸 얻으신 거예요. 공자님이 성자가 아니라면은 다른 말 하셨겠지만, 성자인 이상에는 같은 말을 하십니다. 사랑하는 자는 자기가 서고 싶으면 남을 세워주고, 남도 세워주고, 자기가 어떤 걸 갖고 싶었으면 남도 그런 마음이겠구나 해서 남도 그걸 이루게 해줘요! 자기를 살펴서 남의 입장을 헤아리는 겁니다. 내가 참 원하는거 보면 남도 원하겠구나 이렇게 헤아리는하 것이 사랑의 올바른 인애방법이다. 이 말 똑같죠 예수님이랑! 같은 얘기를 하십니다.

 

로마서에두요 결국은 뭡니까. 간음하지 마라, 살인하지 마라, 도둑질 하지 마라, 탐내지 마라, 모든 말이 한마디로 뭡니까! 네 이웃을 네 자신처럼 사랑해라 라는 그 하나의 계명일 뿐이다. 사랑은 절대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입니다. 도둑질하지 마라해서 도둑질만 안하고만 있지 속으로 도둑질하고 있으면 가짜라는 겁니다. 사랑에서 나올 때만 모든 율법이 완성되기 때문에 이 성령의 마음, 사랑의 마음이 들어갈 때만 율법이 완성된다.

 

그러니까 살인자를 처벌하더라도 사랑의 마음으로 해야 완성이 되고, 그쵸! 눈에는 눈, 이에는 이 하더라도 사랑의 마음으로 그걸 할 때 완성이 되는거지 율법자체로는 완성되지는 않는다 요게 결론입니다.

 

요한복음, 포인트는 이겁니다. 내가 그대들에게 새로운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라. 이거밖에 할말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서로 사랑하라. 내가 그대들을 사랑하듯이 그대들도 서로 사랑하라. 그래야 모든 사람들이 그대들이나의 제자라는 것을 알 것이다. 자, 예수님의 제자고 하나님의 사도는 뭘 하는 존재예요? 사랑하는 존재예요. 남을 사랑해주는 존재고, 남을 사랑하기 때문에 바로잡아 주는 존재요, 사랑에 베이스를 두지 않는 정의는 가짜입니다.

 

여러분 어떻게 사셔야겠습니까? 저를 포함해서. 이 순간부터요 양심대로 사시면 되요. 그러면 뿌린대로 거두리라 하고 하나님이 얘기하셨기 때문에 예수님이 아버지의 뜻은 뿌린대로 거두리라거든요. 뿌린대로 갚아줘요, 아버지는! 우리가 날마다 양심에 바른, 양심에 맞는 그런 좋은 씨를 계속 뿌리는데 아버지가 나쁜 걸 줄리가 없죠. 나라가 힘들다, 정치가 어떻다 하는 거는요 우리가 씨를 덜 뿌려서 그렇습니다. 더 양심적으로 사세요, 반드시 좋은 지도자가 나오게 되어 있고, 반드시 우리나라가 더 더 살만한 나라, 행복한 나라로 바뀌게 되어 있습니다.

 

내 양심, 뿌리지는 않으면서 거둘려고 그 심보는 욕심일 뿐입니다. 행동지침을 분명히 하세요, 예, 마가복음도요 별얘기 아니고 예수님이 십계명이 많은데 두 가지 계명 뭐 그 중에 어떤 계명이 제일중요합니까 하니까 예수님이 두 가지만 얘기해 주세요. 여러분 똑같이 하십시오. 이스라엘아 들어라! 우리는 뭐 이스라엘은 아니지만 듣습니다. 양심은 있기 때문에, 우리의 주이신 하나님은 유일한 주이시니 너희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과 힘을 다해 주이신 너희 하나님을 사랑해야 된다. 경천!그럽니다. 동양에서는. 하나님을 공경하고 사랑하시구요 이게 여러분 깨어나라는 겁니다. 깨어나십시오. 아버지랑 하나가 되십시오.

 

두번째, 뭘해야 되나요?이웃을 사랑하십시오. 양심에 떳떳하게 사십시오.

두번째로,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하라. 애인(愛人)! 이거 두가지입니다. 이것보다 더 큰 계명은 없다. 예수님이 말한 계명을 종합하면요 뭡니까, 지금 여러분,하나님을 하나로 경천(敬天)하고 계십니까? 안에 아버지 품고 계십니까? 애인(愛人), 아버지의 뜻이 사람을 사랑하라는건데 홍익인간 하라는건데 하고 계십니까? 양심대로 살고 계십니까? 이거말고 뭐 더 있겠습니까, 이거 하면 예수님 제자입니다. 교회에다 공들인다고 예수님 제자가 되는게 아닙니다. 아버지 뜻을 해야 예수님 제자고, 하느님 자녀죠!


모든 율법은 한 가지 계명으로 요약된다. 바울도 똑같은 결론에 도달합니다. 그냥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해라. 이거밖에 할 말이 없다. 왜그럴까요? 하나님은 부모예요, 경천한 사람은 반드시 애인하게

되어있습니다. 진짜 경천한 사람은요  한 아버지를 사랑하는 분은 자녀도 사랑하게 되어 있어요. 형제간에 잘 지내게 되어있어요. 부모를 공경한다면서 형제간에 막하는 그러신 분은 진짜 효자 아니죠!

가짜죠, 혹시 경천만 하고 애인을 안할까봐요 결론은 애인이 중요하다는 겁니다. 경천이 중요치 않다는게 아니라. 진짜 경천한 사람은 반드시 애인하게 되어 있으니까요.


애인을 보면 알 수 있어요. 이웃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보면 가짜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이예요, 가짜 효자예요, 가짜 효자는 알 수 있어요. 아버지한테만 잘해요, 형제들 막 삥 뜯어가지고 막 아버지한테 잘해요, 부모 마음이 그건가요, 말이아니죠, 싸이코패스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직장에서 동료들 다 짓밟아서 위에다만 잘 보이는 사람들, 그래서 이런 말 하는 겁니다. 요게 제일 핵심이다 라고

하는 겁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왜 좁을까요? 아까 말씀드렸죠? 양심은 위태위태한데, 아니 양심은 미미한데

욕심은 위태위태해요, 넓은 문이고, 좁은 문이예요. 양심 따라가기가 어려워요! 미미해서 우리 마음에서...

그래서 좁은 문입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의 문은 넓어요. 아니 먹고 싸다 하다보면 그냥 멸망의 문으로 가요. 여러분 좋아하시는거 그대로 하시면 그대로 멸망의 문으로 가요. 욕심들을 따라가시면요, 하지만 미미하게 내 안에서 정의감, 어떤 사랑, 뭔가가 싹튼다면 미미하지만 거기다가 물을 주고 관심을 주시면 좁은 문입니다. 그게! 예, 생명으로 이끄는 문은 얼마나 길이 작고 좁은지 찾는이가 적다. 양심이 그렇게 우리 마음안에서 힘을 못갖고 있다는 얘기를 하는겁니다.


열매를 보면 나무를 안다. 그대들은 거짓선지자를 조심하라. 여러분 특히나 요즘 시대가요 거짓선지자들이 전세계에 판을 치고 있습니다. 어제 재앙의 날이라고 선포한 선지자들도 있죠, 오늘 뭐하시는지 모르겠는데 갑갑하지 않습니까, 뭐, 더 할말이 없습니다. 거짓 선지자들을 조심하세요. 양의 옷을 입고 그대들에게 다가오지만요 속은 노략질하는 이리다. 예수님 얘기입니다. 제 얘기가 아니고.


그대들은 열매를 보고 그들을 판단하십시오. 열매는 뭘까요? 언행이예요. 나무가 열매를 맺죠. 나무는 속마음을 말하고 열매는 언행을 말해요. 예수님이 이런 비유를 많이 드십니다. 그들이 하는짓 보고 판단을 내리셔야 돼요, 하는 짓보고 여러분도 속아서 갔다면 여러분도 할 말이 없어요 그쵸?

여러분도 욕망땜에 가신거예요. 똑같은 사람들끼리 만난겁니다. 나 뭐 필요해, 그래, 내가 주까? 다 사기치고 있는 거예요. 한 쪽이 사기치고, 한 쪽은 거기에 호응하고.

성령은 그렇게 보장해주지 않아요. 여러분의 욕망을!



가시나무에서 어떻게 포도를 거둬들이고, 엉겅퀴에서 무슨 무화과를 거둬들이겠는가. 좋은 나무에는 속마음, 속이 좋으면 겉도 좋다고 그랬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