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섭리에내맡김

봉헌 ㅣ제4장 -06 하느님은 내맡김의 상태로 부른 영혼에게서 당신 은총에 완전히 복종하기를 요구하신다.

은가루리나 2017. 3. 2. 15:57




《하섭내 제4장 하느님의 뜻을 완전히 따르는 것이 영성의 본질이다
-06 하느님은 내맡김의 상태로 부른 영혼에게서 당신 은총에 완전히 복종하기를 요구하신다.




제 4 장


하느님의 뜻을 완전히 따르는 것이 영성의 본질이다




 06 


하느님은 내맡김의 상태로 부른 영혼에게서 

당신 은총에 완전히 복종하기를 요구하신다.





   우리가 하느님의 길을 따라 하느님만을 위한 의무 중에 살려고 한다면, 

지금 느끼고 행하는 모든 것으로부터 이탈해야만 합니다.


다른 계획을 세우는 것은 허락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미래에 대한 온갖 상상력을 멈추고 

지금 해야 할 본분에 집중하면 됩니다.


지난 일이나 혹은 앞으로 있을 일에 대해 걱정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의 뜻은 언제나 여러분을 다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저는 지금 이 사람에게 혹은 책에 끌리고 있습니다. 

저는 어떤 사람에게 충고해 주고 싶고 무언가를 좀 청하고 싶습니다.

저는 불평을 호소하고 어떤 사람에게 제 마음을 털어놓으며 

또 그에게서 고백을 듣고 싶고  

무슨 무슨 선물을 하고 싶으며

아니면 어떤 행동을 하고 싶습니다" 

라고 말하게 하는 어떤 내적인 움직임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이성에 의존하거나 문제를 사려 깊게 생각하지도 말 것이며 

이런 은총의 이르심에 즉시 순종해야 합니다.


한순간이라도 

자신의 생각, 자신의 이론, 자신의 노력에 의존해서는 안 됩니다.


하느님께서 여러분으로 하여금 그런 것을 행하기를 원하실 때에는 

그것을 하면 좋겠지만 

자기 생각대로 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의 뜻은 

내맡김의 상태에 있는 우리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저러한 무언가를 하고 있는 우리 안에 살아계시는 분은  

하느님이시기 때문에, 

통상적으로 우리를 지탱시켜주고 있는 모든 것은  

하느님의 뜻으로 대체되어야 합니다. 



매순간 우리는 어떤 덕을 실천해야 합니다.

내맡김의 상태에 있는 영혼은 덕행을 실천하는 데에 충실히 힘씁니다.


무엇을 읽고 듣던 간에 적당히 해치우지 않고  

의무를 충실히 수행함으로써 

가장 잘 순종하는 수련자들도 더 잘할 수 없을 만큼 

그렇게 해야만 합니다.


이렇게 해서 영혼은 독서에 또는 다른 일에 부지런히 힘쓰게 되고, 

또 어떤 때에는 아무것도 아닌 보잘것 없는 작은 일에 대해서도 

누군가로 하여금 주의를 기울이게끔 합니다.



어느 순간에 하느님께서는 나중에 무엇인가 덕을 행할 수 있도록 

지금 그것에 관해 배워두고자 하는 마음을 일으켜 주시는 일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행하고자 하는 것에 대해 이유도 모르면서 

그토록 특별한 행동에 이끌리고 있는 까닭에  

그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말할 수 있는 모든 것은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습니다.


"저는 쓰고, 읽고, 듣고, 관찰하는 일에 이끌리고 있습니다. 

저는 그것을 따를 뿐입니다.

그 일에 응답해 주실 수 있는 하느님은  

내 안에 일종의 영적인 창고를 지으시고 

미래에 

제 자신을 위해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위해 무엇인가 선익이 되도록 

힘을 주실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영혼으로 하여금 

단순한 마음, 온유함, 양순함을 본질적인 것으로 살게 하며 

거의 감지할 수 없는 은총의 움직임을 느낄 수 있게 해 줍니다.




   만일 우리가 하느님께 자신을 내맡긴다면 

우리에게는 현 순간의 의무라는 단 한가지의 규칙만이있을 뿐입니다.


이때 영혼은 모든 은총의 작용에 응답하는데, 

그것은 깃털처럼 가볍고 흐르는 물과 같으며 

어린이들처럼 단순하고 공같이 활기찹니다.


이러한 영혼은 녹여진 금속처럼 조금도 딱딱하게 굳어진 데가 없어 

주물 안에 부어 넣으면 그 모양대로 만들어집니다.


이같은 영혼은 하느님이 주시는 모양대로 쉽사리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


그들의 마음가짐은 끊임없이 움직이는 공기(空氣)와도 같고, 

그릇의 모양이 어떻든지 간에 모든 그릇을 채워 주는 물과도 같습니다.



   우리는 하느님 앞에 놓인 깨끗하고 윤기 나는 화판처럼 

그분께 봉헌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거기에 "하느님이 도대체 무엇을 그리실까"라고 생각한다거나 

염려하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그분께 완전한 신뢰심을 두고 자신을 내맡겼고 

리의 의무를 다하는 데에 크나큰 심혈을 기울이기 때문이며, 

자신뿐 아니라 자신이 필요로 하는 것을 모두 잊기 때문입니다.


우리 자신이 하는 사소한 일이 아무리 평범하고 단순하며 

눈에 띄지 않고 감추어진 것이며 초라한 것일지라도, 

그것을 열심히 하면 할수록 

하느님은 그만큼 그 일을 더 풍성하고 아름답게 가꾸어 주십니다. 

"주님께서는 당신께 충실한 이에게 기적을 베푸심을 알아라" (시편 4,3)



   붓 앞에 단순히 맹목적으로 자신을 내맡기고 있는 화판은 

붓의 움직임만을 순간순간 감지합니다.


이것은 돌덩어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조각가의 끌로 깎여질 때마다 

돌은 망가 뜨지고 있는 것같이 느낍니다. 

돌은 자신을 깎고 자르고 하는 끌의 움직임만을 감지합니다. 

십자가나 어떤 상이 새겨지게 될 돌을 한 예로 들어봅시다.


돌에게 

"그대는 무엇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나?"라고 우리가 묻는다면 

돌은 이렇게 대답할 것입니다.


"제게 묻질 마셔요.

제가 알고 있는 것은 

선생님의 손아래 가만히 머물러 있어야만 한다는 겁니다.


저는 그분을 경애하며, 

그분이 생각하고 계시는 모양을 만들어 내도록 참아 받아야 합니다. 

그분이 무엇을 하는지, 

저에게서 무엇을 만들어내려고 하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습니다.


그러나 제가 알고 있는 것은 

선생님이 만들려 것이 가장 좋은 것이고 가장 완벽한 것이라는,

오로지 그것뿐입니다. 


저는 쇠망치가 내려칠 때마다 

나 자신에게 가장 유익한 것을 내려 받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을 말하자면 쇠망치가 내려칠 때마다 

저는 제 자신이 파괴되고 부서지며 헝클어져 가는 것밖에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합니다.


그러나 저는 걱정하지 않고 지금에 만족하며 

제 의무에 대해서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선생님의 의도도 모르고 또 그것에 대한 조바심도 없이 

저에게 가해지는 선생님의 모든 작업을 참아 견디어 냅니다."





   솔직하고도 신심 어린 영혼들이여!

하느님이 하시는 일은 하느님께 맡기고, 

여러분의 일일랑 평화 중에 꾸준하게 해나도록 하십시오.


여러분의 영성생활과 

세상 안에서의 여러분의 활동에서 생겨나고 있는 것이

언제나 최상의 것임을 확신하십시오.


하느님이 하시는 대로 내맡겨 드리십시오.

선생님이 화판에다 그림 대신 붓으로 여러 생각을 써서 

엉망으로 칠해 놓았다고밖에 생각되지 않을 때에도 

붓과 조각칼이 대어지는 대로 그냥 놔두십시오.


흔들리지 말고 단순하게 복종하며 

완전한 자아 망각과 의무에 전념함으로써

하느님의 뜻과 함께 일하며 똑바로 나아가도록 하십시오.


지도가 없다고 걱정하지 말고  

지명도 무시하며

자기가 어디에서 어디로 가는지도 생각하지 말고 

계속 전진하도록 하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이 바라는 모든 것을 얻게 될 것입니다.


사랑과 순종으로 하느님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면  

여러분에게 모든 것이 주어질 것입니다.


항상 불안한 마음으로 이런 질문을 되풀이하는 영혼이 많습니다.

"누가 나에게 완덕에로 이끄는 자아포기에 대해 가르쳐 줄 수 있을까?".


이런 말을 하는 그들을 돕기 위해서는 정식(定式)을 발견하게끔

그들로 하여금 책을 샅샅이 찾아보도록 내버려 두십시오.



우리는 하느님과 사랑으로 일치하도록 합시다.

그리고 분명하고도 올바른 의무의 길을 무조건 걸어가도록 합시다.

하느님의 천사들이 여러분을 보호해 줄 것입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 여러분한테서 이 이상의 것을 청하신다면,

그분은 그것을 여러분에게 알려 주실 것입니다.






한순간이라도 자신의 생각, 자신의 이론, 자신의 노력에 의존해서는 안 된다.




moowee 17.02.15. 10:07



<한순간이라도 

자신의 생각, 자신의 이론, 자신의 노력에 의존해서는 안 된다.


하느님이 당신으로 하여금 그러한 것을 하기를 원하실 때에는

그것을 하면 좋겠지만,

자신의 생각대로 하여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하느님의 뜻이 

내맡김의 상태에 있는 우리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 이다.>




<자신의 생각, 자신의 이론>은 어디에서 생겨나게 된 것입니까?


자신이 세상에 태어나

'보고' '듣고' '배우고' '익히고' 경험한 ' 환경 ' 에서 오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각자는 어디서 태어났습니까?

한국에서? 경상도에서? 전라도에서? 이북에서?

미국에서? 중국에서? 일본에서? 러시아에서? 북유럽에서? 아프리카에서?



어떤 부모로부터 태어났습니까?

훌륭한 부모? 사랑많은 부모? 배운 부모? 

부모같지 않은 부모? 사람같지 않은 부모?

가톨릭 가정에서? 개신교 가정에서? 이슬람교 가정에서? 

불교 가정에서? 무교 가정에서? 무당 집안에서?



여러분 각자는 태어나 무엇을 보고 듣고 배우고 익혀왔습니까?

여러분이 태어나 보고 듣고 배우고 익힌 것만이 

진실되고 보편적인 가치입니까?


일부일처제 사회에서 자라나 보고 듣고 배우고 익힌 것만이 

진실되고 보편적인 가치입니까?

일부다처제 사회에서 자라나 보고 듣고 배우고 익힌 것만이 

진실되고 보편적인 가치입니까?




이슬람 사회에서 태어나고 자라난 사람들은 

자신들의 생각과 이론이 참되고 보편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스도교 사회에서 ,,,,,,,,,,,,,,,,,,,,,, // .


자본주의 사회에서 ,,,,,,,,,,,,,,, // .

공산사회주의 사회에서 ,,,,,,,,,,,,,,, // .




<한순간이라도 

자신의 생각, 자신의 이론, 자신의 노력에 의존해서는 안 된다.>



하느님께 내맡긴 삶을 사는 사람들은 

이 세상의 모~든 생각(사고)과 이론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인간의 모든 고정된 사고와 이론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은,


"8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같지 않고 너희 길은 내 길과 같지 않다. 

주님의 말씀이다.

9 하늘이 땅 위에 드높이 있듯이 내 길은 너희 길 위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 위에 드높이 있다." (이사 55)




1920년 12월 인도에서 고아원을 운영하던 자알 신그 씨는 

밤새 자신의 가축을 잡아먹은 호랑이를 찾아 사냥꾼과 함께 숲속을 탐색하다 

맹수가 살고있는 동굴을 찾아내게 됩니다.


동굴속에서 기이한 동물의 울음소리를 듣게된 그는 

분명 문제의 울음소리가 호랑이 새끼의 울음소리인줄 알고 

이를 잡아 어미를 유인하기 위해 동굴속으로 깊숙히 들어갔습니다.


갖고있던 횃불로 소리가 나는 지점을 밝힌 신그씨의 일행은 

문제의 지점에 호랑이가 아닌 늑대 새끼의 무리가 있는것을 확인하고 

동굴 밖으로 나가려 했으나 

그들은 동굴의 구석에서 늑대 울음소리가 아닌 

정체 불명의 짐승 소리가 나는것을 듣고 

다시한번 불을 밝히게 됩니다.


신그씨의 일행은 자신들이 태어나서 한번도 보지못한 정체불명의 괴물들이 

일행에게 이빨을 내보이며 살기를 내뿜는 것을 보았고, 

순간적으로 놀라 총을 겨눈 그들은 좀 더 자세히 괴물들을 살펴보다가 

그들이 네발로 기어 다니던 어린 여자 아이들인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동굴밖에서 늑대의 큰 울음소리를 듣게된 신그씨는 

자신들이 여러마리의 늑대들과 싸우기에는 역부족임을 깨닫고 

일단 동굴에서 철수한 뒤, 마을에서 총을 가진 장정들을 더 데려와 

다시 동굴에 들어갔고, 

늑대들은 그들을 기다렸던양 동굴주위에 숨어있다 

그들에게 달려든뒤 모두 사살 되었습니다.



어미를 잃은 늑대 새끼들을 동굴에 놔두고 

그물로 여자아이 두명을 잡은 신그씨는 

그들을 자신의 고아원으로 데리고 왔습니다.


7살에서 8살정도로 보인 여자아이들은 

서로 원숭이 같은 소리를 내며 네발로 기어다녔고, 

아이들은 계속 하여 신그씨와 일행을 물으려 하였습니다.


아말라와 카말라라는 이름이 지어진 아이들은 

밤마다 늑대와 똑같은 울음소리를 내고 날고기만 먹었고, 

그날부터 일기장에 두 아이에 관한 기록을 남긴 신그씨는 

아이들을 다시 인간과 같이 생활하게 하기위해 훈련을 시켰습니다.



다른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보여주며 교육을 시키려 했던 신그씨는 

늑대 아이들에게 옷을 입히려다 실패 하였으며 

정상적인 아이들을 데려와 늑대 아이 들과 함께 놀게한 신그씨는 

늑대 아이들이 이빨을 내보이며 보통 아이들을 해치려 들자 

그들을 격리 시키게 됩니다.


몇개월뒤 

새 환경에 적응을 못한탓인지 몹시 아프던 늑대아이 아말라는 곧 사망하였고, 

자신의 동생이 죽은것을 보게된 카말라는 

동생의 시신에서 떨어 지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쳐, 

어른들에 의해 강제로 다른 집에 옮겨졌습니다.



그후 몇년간 무슨 이유에선가 사람들을 무서워하며 

보통 사람들 같이 옷을 입고 두발로 걷는 연습을 한 카말라는 

1929년 17살로 추정된 나이에 원인을 알수없는 병에 걸려 사망을 하게 됩니다.


소설 정글북이 나오고 약 25년뒤에 발생한 위의 사건은 

세계인들을 놀라게 하였고, 

두 아이가 어떻게 늑대들에 의해 키워졌는가를 조사한 인도의 경찰국은 

아무런 단서조차 발견못하고 조사를 끝냈습니다.


고아원에 잡혀온뒤 식음을 전폐하고 울기만 했던 아이들은 

늑대들을 사살한 포수가 그들의 근처에 올때마다 그를 해치려 들었으며 

후에 동굴에서 잡힌 늑대들의 털가죽이 건조되는 광경을 본 아이들은 

몹시 두려워하며 떨었습니다.



과연 인간생활에 적응을 하지못해 숨을 거둔 아이들은 

어떻게 늑대들과 함께 유년시절을 보낼수 있었을까요?




최근 러시아에서는 

생활이 어렵고 알코올 중독 등 

갖가지 어려움에 시달리는 부모들로부터 버림받은 아이들이 

개 또는 고양이에 의해 길러지는 일이 심심찮게 일어나고 있다.


최근 한 무리의 개에 의해 양육되고 있는 6살짜리 러시아 소녀가 또 발견돼 

큰 충격을 안겨주고 있다. 


러시아의 하바롭스크 지역에서 발견된 베로니카 티치첸코라는 이 어린 소녀는 

개들과 함께 생활을 하다가 사람들에게 발견되었고 경찰로 넘겨졌다.


발견 후 실시한 전문의의 진단 결과 건강한 몸상태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지적인 능력은 1살 반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고 한다.



1988년 3월 러시아에서 새집 안에 새와 갇힌 소년 반야 라딘이 발견됐다. 

경찰이 소년을 구출하려고 하자 새처럼 손을 쪼고 날개짓을 하듯 행동했다. 

소년의 어머니는 미혼모로 

아이를 낳고 세상에 알릴 수 없어 새장에 가둬 키웠던 것.






moowee 17.02.15. 10:59


┗ 연중 제21주일(2011,8,21), 나에게 있어서의 하느님은? ▣ 주일강론


moowee  등급변경 조회 228  추천 0  2011.08.20. 13:28



기원 전 6세기의 그리스 철학자 '크세노파세스'는

만일, 인간이 소나 말이었다면 

신의 모습을 소나 말로 그렸을 것이라 말했다 한다.


소는 신의 모습을 소로 그렸을 것이고 

말은 신의 모습을 말로 그렸을 것이라 한다.


이 말은 인간이 생각하는 자신의 속성을 신의 모습에 투영시키서

신을 생각하게 된다는 말일 것이다.






moowee 17.02.15. 11:06



<한순간이라도 

자신의 생각, 자신의 이론, 자신의 노력에 의존해서는 안 된다.


하느님이 당신으로 하여금 그러한 것을 하기를 원하실 때에는 

그것을 하면 좋겠지만,

자신의 생각대로 하여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하느님의 뜻이 

내맡김의 상태에 있는 우리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느님께 자신의 모~~~든 것을 완죤~~~히 100% 내맡긴 영혼은,

★ 머시기 거시기 하느님께서 주신 생각대로 생각하고 행해야 합니다. ★





moowee 17.05.12. 10:37 


┗  moowee 10.08.09. 18:04



아멘~~~


어리석은 이가 되기 위하여

그동안 인간의 지혜로만 살아오던 습관을 멈춰야 하는 것입니다.


"지혜롭다는 자"는 진정 지혜로운 자가 아닙니다.

하느님이 주신 지혜를 받은 사람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성령 안에서 즐거워하며 말씀하셨다.


아버지, 하늘과 땅의 주님,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아버지의 선하신 뜻이 이렇게 이루어졌습니다."

(루카10,21)



"아버지의 선하신 뜻"이란 "거룩하게 사는 것'(1테살4,1)입니다.

거룩히 살기 위해 내 뜻대로 살아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내 뜻대로 살지 않기 위해 내 뜻을 내맡겨 내 지식을 비우면

하느님이 내맡긴 이의 영을 열어 당신의 지혜로 채워주십니다.


하느님이 내려 주신 지혜만이 참 지혜이며,

참 지혜로 하느님의 뜻을 따라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참 지혜를 받기 위해

과거의 지식과 경험에 의한 습관을 멈추어야 하는 것입니다.


멈추면 그때부터 새로운 이끄심이 시작됩니다.

저는 그 새로운 이끄심을 처음에 눈치채지 못했었습니다.


한참 후 2년 후에나 그 이끄심을 알아 들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멈추어야 하는 것도 늦게야 알게 되었습니다.






moowee 17.05.12. 10:43 


┗ 강의록(5)


moowee 등급변경▼ 조회 521 추천 0 2010.09.07. 11:55



둘째로, 하느님께 자신의 모든 것을 내맡기게 되면,

다가오지도 않은 자신의 내일이나 미래에 대해 미리 계획을 세우지 않게 된다.


내맡긴 이후에 우리가 할 일은 우리의 생각과 경험과 지식을 

자꾸 우리의 머리 속에서 없애버리는 연습을 해야 한다,


"무뇌인간"이 되어야 한다.


제가 내맡긴 이후에 계속하는 일이라곤

저에게 남아 있는 저의 지식과 경험을

저의 머릿속에서 지속적으로 빼내버리는 일뿐이다.


그것을 빼낼 수록 

하느님의 뜻이 제 안에서 당신 마음껏 활동하실 수 있으시기 때문이다.






moowee 17.05.13. 22:54


{19-38,19

★ 내 뜻의 나라는 그 경계가 없을 만큼 무한하지만 ★


피조물은 유한해서 이 나라 전체를 소유할 능력이 없으므로,


★ 피조물이 소유하는 정도에 따라 

나라가 확장되도록 정해져 있기 때문이었다. ★}






사람들 가운데 이루어질 하느님 뜻의 나라


천상의 책


사람들로 하여금

질서와 그 본연의 위치

창조된 목적에로 돌아오게 하시는 부르심





{오, 저의 선이신 예수님,
당신께서 제 팔에 안겨 계시니 저도 당신과 하나 되기를 원합니다.

제가 언제나 당신의 지극히 거룩하신 뜻을 실행하게 해 주시기를 빕니다.

당신의 뜻이
저의 숨과 마실 공기가 되고,
저의 심장 고동, 저의 마음과 생각, 저의 삶과 죽음이 되게 해 주십시오.

언제나 당신과 함께 있게 해 주십시오!
단 한순간도 당신에게서 떨어져 나가는 일이 없게 해 주십시오!





2-2-6, 하느님은 내맡김의 상태로 초대된 영혼에게 

당신의 활동하심에 대하여 완전한 복종을 원하신다.



6, 하느님은 내맡김의 상태로 초대된 영혼에게 

당신의 활동하심에 대하여 완전한 복종을 원하신다.

 

하느님과 지금의 의무감 가운데에서 살아간다고 하는 길을 걷을 때에는, 

느끼고 행하는 그 모든 것에서 이탈해야만 합니다. 

다른 것을 계획하는 것은 허락되지 않습니다. 

지나간 의무, 앞으로 주어질 의무와 같은 모든 생각들을 떨쳐버리고, 

지금 주어진 의무에만 마음을 집중하여야만 합니다.

 

항상 계명을 지키고 

하느님이 활동하심을 온순하게 따르려고 하는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을

전제로 하면서도, 

당신은 확실하게 알 수는 없었겠지만

 다음과 같은 마음의 움직임을 느꼈던 일이 있었을 겁니다. 

[나는 지금 이 사람에게, 또 이 책에 이끌린다. 

또한 나는 지금 꼭 이것에 대해서 알고 싶다. 

어떤 사람에게 충고 해주고 싶다. 이 고통을 호소하고 싶다. 

저 사람에게 속 마음을 이야기 하고 싶다. 

또 저 사람이 나에게 솔직해지기를 원한다. 

이것을 보내고 싶다. 저것을 하고 싶다.]

이라고 말입니다.

 

이러한 마음의 움직임에는 은총이 이끄시는 대로 따라야만 합니다. 

한 순간 이라도 자신의 생각이나 논리 또 노력에 의지해서는 안됩니다. 

하느님이 당신에게 그러한 일들을 이루려 하신다면 그것을 따르면 됩니다. 

그러나 자신의 분별이나 판단에 의해서는 안됩니다. 

하느님의 뜻이 우리들 가운데에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 가지 잡다한 일을 하고 있는 우리들 안에 살아계신 분은 하느님 이시고, 

하느님의 뜻은,

우리들의 일상 가운데에서 우리들이 의지하고 있는 모든 것들을, 

하느님께 내맡기는 삶으로 바뀌어져야만 합니다. 

매 순간 우리는 어떤 德을 실천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내맡김의 상태에 있는 영혼은 그것을 충실하게 노력합니다. 

무엇을 읽는다던가 또 듣는 것에 있어서도 적당히 하지는 않습니다

 

이토록 충실하게 의무를 다 한다는 것은, 

가장 양심적으로 잘 순종하는 수도자들도 더 잘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영혼은, 

어떤 독서나 또는 다른 일에도 부지런히 힘쓸 수 있게 되고 

또 어떤 때에는 아무것도 아닌 작은 일에 관해서 

떤 주의를 누군가에게 어떤 주의를 주도록 재촉 받게 됩니다.

 

하느님은 하느님이 허락하시는 그 날에, 

그 德을 행동할 수 있도록 

지금 그것에 대해서 배워 놓으려고 하는 마음을 가지게 하여 주십니다. 

이러한 영혼은 자신이 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에 대해서

어떤 권유를 마음속으로 느끼게 됩니다. 

그러나 왜 그런지 이유는 잘 모릅니다.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다음과 같습니다.

 

[나는 쓰는 것, 읽는 것, 듣는 것, 그러한 것을 바라볼 때마다 이끌리고 있습니다. 

나는 그것을 따르고 있을 뿐 입니다. 

이러한 무엇인가를 하도록 하느님은 내적으로 나를 움직이십니다. 

그리고 내 뒤에서 나를 위하여, 

또는 다른 사람을 위하여 무엇인가 도움이 되게 하려고 

모든 것에 있어서 나를 도와주고 계십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영혼은 

단순함, 온유함, 솔직함(순진함), 순종에 따르도록 이끌어 주고 계십니다.

 

내맡긴다는 것은 지금 이순간이라고 하는 것을 하나의 기준으로 하면 됩니다. 

영혼은 그 때, 깃털처럼 가볍고, 흘러 내려가는 물과 같고 또 어린아이처럼 단순하게 됩니다. 

은총의 이끄심을 받아들이고 따르기 위해서는 공처럼 순수하여 지는 것입니다.

 

이러한 영혼은 녹여진 금속처럼 조금도 딱딱하게 굳어진 곳이 없습니다. 

그리고 주물 속으로 흘러 들어가면 그 모양 그대로 만들어 집니다. 

이렇게 영혼은 하느님이 만드시려고 하는 모양으로 만들어 집니다. 

한마디로 말한다면, 그들의 마음가짐은 공기나 물 같습니다. 

공기는 불어오는 바람에도 흔들리고, 물은 그 그릇의 크기에 따라서 담을 수 있게 됩니다.

 

이러한 영혼은, 하느님 앞에 놓여진 깔끔하고 통일 된 단순한 도화지와 같습니다. 

거기에 하느님이 도대체 무엇을 그리실까? 하고 생각하거나 

이것 저것에 대하여서 탐색하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열심히 자신의 의무는 다하면서도 

자신에 대해서, 또 자신이 필요한 것에 대해서도 

또 필요한 것을 어떻게 하여 손에 넣을 것인가에 대해서 생각을 갖지도 않습니다.

 

영혼 자신이 해야 하는 소박한 일

[그것이 너무 평범하여 사람 눈에 뛰지 않는 감추어진 모습이며

초라하고 볼품이 없어도]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면 다 할수록 

하느님은 그 일을 아름답게 수놓아진 자수와 같이 

다양한 색체로서 풍성하게 치장하여 주십니다. 

사랑과 순종으로 만드신 평범한 피륙에 

하느님의 손길은 

이세상 어느 것보다도 아름다운 화선과 지극히 섬세한 그림을 완벽하게 묘사하여 주십니다.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모습으로 완성시켜 주십니다.

"Mirificavit Dominus tum suum"

 “하느님은 당신이 사랑하시는 자들을 위해 놀라운 일을 행하신다. 시편4,3”

하느님의 섭리에, 단순하고 맹목적으로 자신을 내맡기고 있은 피륙은, 

붓의 움직임을 단 한 순간만 느낄 뿐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눈이 보이지 않는 돌은, 끌로 깎여질 때마다 날카로운 칼날밖에 느끼지 못하겠지요.

조각가의 끌에 깎여지는 돌은 자신에게 새겨 넣어 지는 것이 무엇인지 전혀 알지 못합니다. 

돌은 자신이 깎여지고 깨어져서 자신의 모습이 변하여져 가는 것만을 느낍니다.

 

비참한 돌은 자신에게 십자가가 새겨지는지, 또는 어떤 조각상으로 완성되는지 

전혀 알 수가 없습니다. 

그 때에 누군가가[당신은 무엇으로 만들어져 가고 있습니까]하고 물어도 

[저에게 물어도 저는 모릅니다. 

저는 오로지 선생님의 손 아래에서 꼼짝하지 않고 있을 뿐입니다. 

저는 선생님을 경애하고 선생님께 저를 내맡기고 

그 분이 만들어 내시는 대로 있을 뿐입니다. 

다른 것은 알려고 하지도 않고 알고 싶지도 않습니다. 

선생님이 어떤 모양으로 저를 당신의 작품으로 완성시켜 나가시는지는 

오로지 선생님 자신만이 알고 계실 것입니다. 

선생님이 무엇을 만들려고 하시는지, 

또 나를 통하여 무엇을 완성하려 하시는지 저는 전혀 알지 못합니다.

 

제가 알고 있는 것은 선생님이 만드시는 것은 가장 좋은 것이고 가장 완전한 것이라는 것 

오로지 그것뿐 입니다. 

나는 끌에 깎여질 때 마다, 이것은 나에게 이익이 되는 것이라는 것 

오로지 그것만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솔직히 이야기하면 정으로 내려쳐질 때마다 

나는 나 자신이 부서지고 엉망으로 되어가고 있다는 것 밖에는 느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감각적인 것을 전부 뛰어 넘어서 

지금 이 순간에 만족하면서 자신의 의무에 최선을 다하는 것만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훌륭하신 장인(巧人)인 선생님이 원하시는 대로 내맡기고 

그것에 대해서 생각하거나 참견하는 것 같은 것은 하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영혼들이여!! 단순한 영혼들이여!!

하느님 당신께서 직접 하시는 일은 하느님께 내맡기고 

하느님께서 손수 만들어 주시는 것을 사랑으로서 받아 들입시다. 

가장 좋은 것이 자신 안에서 또 주변에서 이루어지고 있다고 믿읍시다.

하느님께서 하시고자 하시는 대로 모든 것을 내맡겨 드립시다.


끌 끝이 자신에게 파고들어 들어오는 그대로 받아들입시다. 

하느님께서 붓으로 도화지에 여러 가지색으로 엉망으로 칠해졌다고 

밖에 생각되지 않을 때에도 내맡깁시다. 

전부 다 내맡기고 단순하고 언제나 변하지 않는 마음가짐으로 

주님께서 해주시는 모든 것에 응답합시다. 

당신은 당신 자신을 잊어 나가면서도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에 최선을 다하고 당신의 길을 걸어나가세요.

 

지도를 본다거나 어디에서 어디로 갈 것인가를 생각 한다거나 

이곳이 어딘지, 이곳이 어떤 곳인지, 그 장소까지도 알려고 하지 말고 

자신의 길을 나아가세요. 앞으로 나아가면 됩니다. 

당신은 수동적인 자세로서 하느님께서 이끌어주시는 그 길을 사랑과 순종으로서 

하느님아버지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세요. 

그때, 다른 모든 것도 함께 주어집니다.

 

항상 불안해 하면서 이런 질문을 반복하는 영혼이 많이 있습니다.

[누가 나에게 성덕과 완덕과 이탈을 가르쳐 주시는지요] 

이러한 사람들은 책 속에서 이러한 훌륭한 명칭이라던가 특징, 본질, 

또 그 외의 여러 가지 모습들에 대해서 찾으면 됩니다. 

그러나 당신은 평화안에서 주님의 사랑과 일치하고 있으면 됩니다. 

그리고 당신의 의무인 좁은 길을 한눈 팔지 말고 똑바로 걸어가세요.

 

하느님은 어두움 가운데서 당신 옆에 계십니다. 

천사들의 손이 당신을 지켜주고 있습니다. 

만약 하느님이 당신에게 더 큰일을 원하실 때는 

하느님께서 당신에게 직접 알려 주실 것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