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섭리에내맡김

온유/ 새로운 복음★★★제4장 -07 만일 우리가 정말로 온유하다면, 하느님께서 우리를 데려가시는 길에 대해서 아무런 질문도 하지 않을 것이다.

은가루리나 2017. 3. 8. 15:35



《제 4 장 하느님의 뜻을 완전히 따르는 것이 영성의 본질이다

-07 만일 우리가 정말로 온유하다면, 
하느님께서 우리를 데려가시는 길에 대해서 아무런 질문도 하지 않을 것이다.》



제 4 장


하느님의 뜻을 완전히 따르는 것이 영성의 본질이다




 07 


만일 우리가 정말로 온유하다면, 

하느님께서 우리를 데려가시는 길에 대해서 

아무런 질문도 하지 않을 것이다.




   하느님께서 우리의 안내자가 되실 때는  

우리가 아무것도 남겨 놓지 않고 그분께 신뢰하며 

그 안내에 관해 일체 신경을 쓰지 않기를 그분은 바라고 계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선택해 주신 길로 우리를 보내주셨는데, 

우리는 그 길을 알 수 없으며

지금까지 해왔던 독서도 우리에게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만일 우리가 생각대로 행동하고자 한다면, 

다른 일을 하기에는 너무나 위험스런 까닭에  

우리는 자기 경험에만 의존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일하실 때는 사정이 아주 다릅니다.

하느님의 행위는 언제나 새롭고 생기가 있으며 

이전에 왔던 길로 다시 되돌아가 반복하는 일도 결코 없고 

언제나 새로운 길을 모색합니다.



이러한 역사하심에 따라 우리가 인도될 때는 

우리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안중에도 없게 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가는 길은 

책이나 우리의 어떤 사고(思考)들로써는 찾아 낼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늘 우리 앞에는 이러한 길들이 널려 있어 그 길로 우리를 몰아냅니다.



우리가 밤중에 어느 낯선 지역에서 

길하나 보이지 않는 들판을 걷고 있다고 상상해 봅시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안내자가 있습니다.

그분은 우리한테 조언을 청한다든지 

당신의 계획은 이런 것이라든에 관해 아무런 말도 해주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그분께 신뢰하는 일 밖에  

달리 무엇을 기대해 볼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알아보려고 지도를 찾아보고 

또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물어보려 해도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우리가 당신께 신뢰심을 갖길 바라는 안내자는 

그것을 참지 못할 것입니다.


그분은 우리가 지니고 있는 두려움과 의구심을 이겨내는 데에 

만족할 것이며, 

우리가 당신께 온전한 신뢰심을 갖기를 바랄 것입니다.




   하느님의 활동은 선(善) 외에 그 어떤 것도 아니기에 

수정되거나 통제될 필요가 없습니다.


그 활동은 세상 창조 때에 시작되어 오늘에 이르기까지 

똑같은 힘으로 계속되고 있으며 끝이 없습니다.


그 활동의 풍성함이란 무궁무진합니다.

오늘은 이 일을 하시고 내일은 저 일을 하시지만 

매순간 끊임없이 새로운 결과를 내주는 길은 하느님의 활동이며 

그 활동은 영원히 지속될 것입니다.



하느님의 활동은  

아벨과 노아와 아브라함을 모두 다른 모습으로 만들어주셨습니다.


이사악 역시 독창적입니다.


야곱은 이사악의 모습을 본뜬 꼴이 아니며, 

요셉도 야곱의 모조품이 아닙니다.


모세는 그의 조상들과 다르고, 

다윗과 예언자들은 이스라엘의 성조들을 닮지 않았으며, 

세례자 요한은 별도의 인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맏형이시고, 

사도들은 예수님의 업적을 모방하기 보다는 

주님의 성령의 인도를 받아 더 많은 활약을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당신의 모든 가르침을 문자대로 따르시지 않았기에 

자신에게 한계성을 두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의 지극히 거룩한 영혼은 성령께 인도되어 

성령의 지극히 작은 숨결에도 항상 응답하셨습니다.


그분의 모든 순간은 

불가견적이고 불가해한 성삼의 지혜안에 간직된 그 영원한 진리에 따라 

은총의 호흡에 좌우되었기에, 

앞으로 닥쳐올 일에 있어서 어떻게 할 것인가를 알아보고자 

이미 지나간 순간에 대해 결코 물어보실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분의 영은 

끊임없이 명을 받아 매일의 생활 안에서 완성되어 갔습니다.


우리는 복음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에서 일어난 이 같은 진리의 결과를 

바라보도록 해야 합니다.


계속 생활하시면서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이 영혼들 안에 

끊임없이 새로운 기적을 일으키시는 분은 

항상 살아 계시고 활동하시는 같은 주님이십니다.




   우리가 복음을 따라 살고자 한다면 

단순하고 완전하게 하느님의 활동에 우리 자신을 내맡겨 드려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활동의 샘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도 오늘도 또 영원히 같은 분이십니다"(히브 13,8).


그분의 일은 끝마쳐졌지만, 

되어지기로 남아 있는 일은 매순간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모든 성인은 이 신적 생명에 참여하고 있고 

예수 그리스도는 늘 같은 분이시지만 

각 영혼 안에서는 다르게 나타나십니다.


각 성인의 삶은 곧 예수 그리스도의 삶이기에 

그것은 하나의 새로운 복음입니다.


신랑의 두 볼은 "향내를 내는 발삼 꽃밭"(아가 5,13)과도 같고 

신적 행위는 그 밭을 손질하는 정원사와도 같습니다.


이것은 그 어떤 정원과도 다른 정원입니다.


왜냐하면 정원의 꽃들은 

모두가 정원사의 작업에 자신을 열성적으로 내맡기고

정원사가 원하는 대로 일하게끔 하는 꽃들의 열망 때문에 

다른 것입니다.


정원사들로서는 자기들 신분에 맞는 일을 하게 되어 기쁩니다.


하느님께서 일하시게 해 드리고 

우리에게 대한 그분의 원하심에 순종하는 것,

이것이 복음이고 성경 전체이며 또한 율법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도 오늘도 또 영원히 같은 분이십니다.(히브 13,8)


*그이의 뺨은 발삼 꽃밭 같아 향기로운 풀들이 탑을 이루고 

그이의 입술은 몰약이 흘러 떨어지는 나리꽃이랍니다. (아가 5,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