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섭리에내맡김

제5장 -05 이러한 시련의 결과와 이를 견디어내는 영혼의 행동

은가루리나 2017. 5. 11. 15:32




《하섭내 제5장 완전하고 참된 신앙만 있으면, 
영혼에 일어나는 모든 일을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다.

-05 이러한 시련의 결과와 이를 견디어내는 영혼의 행동》


제 5 장


완전하고 참된 신앙만 있으면, 

영혼에 일어나는 모든 일을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다.




 05 


이러한 시련의 결과와 이를 견디어내는 영혼의 행동  





   자신을 내맡기는 상태, 단순한 믿음의 길, 

우리의 영혼과 육체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 

그리고 삶의 일거리들 안에서 발생하는 일체의 사건은  

죽음의 모습을 띠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두고서도 놀라지 않습니다.


우리가 기대하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가 무엇인가를 기대한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하느님은 영혼들에 대한 계획을 세우시고 

영혼들이 자신들의 모습을 제아무리 잘 변장(變裝)한다 해도

매우 성공적으로 영혼들을 이끄십니다.



"변장"의 명분하에서는 

불운과 병고와 영적인 쇠약함 같은 것들이 사용됩니다. 

그렇지만 하느님의 손안에서 모든 것은 번성하고 선으로 향하게 됩니다.


하느님은 우리의 자연적인 감정들이 깊은 상처를 입게 함으로써 

당신의 지극히 숭엄한 계획들을 완성으로 이끄십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이들, 그분의 계획에 따라 부르심을 받은 이들에게는 

모든 것이 함께 작용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로마 8,28).



하느님은 죽음의 그늘에서 생명을 불러일으키시고 

우리가 인간적인 약함으로 두려워 떨 때, 

신앙모든 것 안에서 선을 바라보게 하고  

모든 것이 최선의 길임을 알게끔 하며 꿋꿋한 용기로 충만케 해 줍니다.


하느님의 활동이 모든 것을 포하고 모든 것을 인도하며 

- 죄를 빼놓고는- 모든 것을 행하신다는 것을 우리가 알게될 때, 

신앙의 의무는 그러한 모든 활동을 예찬하고 사랑하며 기쁘게 받아들입니다.


우리가 기쁨과 신뢰심으로 가득 차  

외양으로 드러나는 속임수를 무시해 버린다면 

틀림없이 신앙의 승리를 누리게 됩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여러분은 하느님께 영예를 드리고 

하느님을 하느님으로서 대하게 될 것임을 나는 확신합니다.




   신앙으로 산다는 것은  

기쁘게 생활하는 것이고 확신을 가지고 사는 것이며, 

의심으로 마음을 어지럽히지 않고 

우리가 해야 하는 모든 것과  

하느님의 뜻에 따라 매순간 고통을 겪게 되는 모든 에 대해 

완전한 신뢰심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신앙을 자극하고 참아 견디기 위해 

하느님이 영혼으로 하여금 

그토록 많은 고통과 괴로움, 당혹감과 허약함, 

수많은 절감이라는 사나운 급류를 거슬러 싸우게 하셨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 모든 것 뒤에 숨어 계시는 하느님을 찾기 위해서는 

필히 신앙을 가져야만 합니다. 

거룩한 삶은 보여지는 것도, 느껴지는 것도 아니며 

결코 알 수 있는 가운데서 행해지지도 않지만  

매우 확실하게 행해지는 것입니다.


그것은 육체의 죽음, 영혼의 고통 

그리고 모든 세속적인 사건들의 혼란과도 같은 것들 안에  

숨겨져 있습니다. 


신앙은 이러한 사건들을 통해  자라나고 강화됩니다. 

신앙은 만사를 헤쳐 나가게 하고 

죄를 제외한 모든 것을 통해 

우리 자신을 살리고 지켜 주시는 하느님의 손 안에 내맡기는 것입니다.


충실한 영혼은 하느님이 꾸며 주시는 변장술과 같은 것에 대해 

자신을 가지고 꾸준히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의 직접적인 현존은 우리에게 경이로움을 불러일으켜주시기 

때문입니다.


겸손한 이들의 위로자이신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지니고 있는 고독함의 느낌이 제아무리 크다 할지라도 

늘 우리를 감싸주시며, 

우리가 그분의 활동하심을 받아들이며  우리 자신을 맡겨드리는 한, 

아무 것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내적 확신을 허락해 주십니다.


우리가 사랑이신 주님을 잃고 슬퍼할지라도  

우리는 여전히 그분의 소유를 느끼며, 

우리가 지닌 모든 괴로움과 장애물에도 불구하고 

우리 안에 뿌리를 깊이 내린 어떤 것이 

우리로 하여금  하느님께 대한 확고한 애정을 갖게끔 해줍니다.


"진정 주님께서 이곳에 계시는데도 나는 그것을 모르고 있었구나" 

(창세 28, 16). 라고 야곱은 말했습니다.




   사랑하는 영혼들이여, 

여러분은 하느님을 찾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분 어디에나 계시고 

모든 은 그분의 현존을 말해 주고 있으며 

모든 것여러분에게 주님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바로 여러분을 동반해 주시고  

여러분 옆에 계시며 여러분 안에 계십니다.


그분은 여러분과 함께 살고계시는 데도  

여러분은 그분을 애써 찾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그분의 실재(實在) 안에서 그분을 소유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하느님에 대한 자신의 관념(觀念)을 찾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완덕을 찾아다니고 있지만 

그것은 여러분에게서 일어나는 모든 것 안에서 만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당하는 모든 고통과  행하는 모든 것 

그리고 여러분의 성향들 모두는

여러분이 지나친 상상들에 헛되이 열중해 있는 동안 

하느님께서 여러분에게 당신 자신을 내어 주시는 신비들인 것입니다.


하느님은 이러한 상상들에 파묻힌 여러분에게 오셔서 

결코 함께 하려 하지는 않으실 것입니다.




   마르타는 좋은 음식을 요리해서 예수님을 기쁘게 해드리려 했지만, 

마리아는 그분을 맞이하여 그분의 말씀을 듣는 것으로 만족해했습니다.


주님이 그녀를 속였다 해도 

부활하신 후 

마리아는 그분이 계실 것이라고 상상하면서 그분을 찾았을 때, 

주님께서는 정원지기로 그녀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사도들도 예수님을 보았을 때 그들은 그분이 유령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느님은 자신을 위장하심으로써 

리로 하여금 어떤 형상에서도 그분을 알아볼 수 있도록 하는  

순수한 믿음에 도달하게 해주십니다.


우리가 그분의 이런 비밀을 알게 될 때는  

어떤 위장을 하고 나타나셔도 소용이 없습니다. 


"보셔요, 

그이가 우리 집 담장 앞에 서서 창틈으로 기웃거리고 

창살 틈으로 들여다본답니다."(아가 2,9)라고 우리는 말합니다. 


오! 거룩한 사랑이여, 

당신 모습을 숨기시고 우리를 시험하시며 

우리의 모든 생각과 체제를 실처럼 뒤섞어 혼란시키시어 끊어주소서.



   비틀거리며 가더라도  

어둠 속에서 길이나 작은 오솔길도 찾지 말도록 합시다.


전에는 우리가 고독한 평화 중에, 기도 안에서, 여러 신심 수업에서, 

고통 중에서, 우리의 이웃을 돕는 데서, 

사교적이고 사업적인 일들에서 벗어남으로써 그분을 발견했습니다. 


리는 그분을 기쁘게 해드리고자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 왔으나, 

지금은 우리가 했던 이런 일들 안에서  

더 이상 그분을 발견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의 잘못과 실패를 통해 

하느님 안에서, 모든 것 안에서 그리고 어디에서든지  

그분을 발견할 수 있도록 합시다. 



우리는 선한 모든 것에서, 모든 피조물 안에서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는 잘못을 범하고 있습니다.


왜 우리는 

하느님이 당신 자신을 내어 주기를 원하는 방법이 아닌 또 다른 길에서,

그분의 성사를 위해 선택했던 것들과는 다른 형상 아래서  

그분을 찾으려 했을까요? 


러한 점들이 납득되지 않으면 않을수록  

믿음과 순명의 가치는 더 클 것입니다.





   주님은 땅 아래 묻혀 있는 뿌리를 잘 뻗게 해주시고, 

나를 지켜 준 어둠 속에서 풍부한 결실을 맺도록 해주십니다.


그래서 작은 뿌리와도 같은 나의 영혼은 주님 안에 깊숙이 숨어 지내며 

주님의 신비한 힘에 의해 가지와 잎을 내고 꽃을 피우며 열매를 맺는데,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을 수 있지만

다른 사람의 영혼을 기쁘게 하고 기름지게 할 것입니다.


그들이 주님의 그늘 아래서 휴식하고 원기를 회복하기 위해 모여들 때면, 

주님은 그들이 가지고 있지 않다고 생각되는 열매와 

그들이 원하는 열매를 내어 주십니다. 


그 모든 것이 은총으로 여러분에게 접목되고 받아들여져 

결국에는 각자 자신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여러분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여러분에게 다가오는 모든 사람들에게 내어주도록 하십시오.


그러나 여러분 자신만큼은 

내맡김과 무관심의 상태 속에 계속 머물러 있도록 하십시오.



작은 누에여, 

은총의 온기가 그대를 자라게 하여 부화시킬 때까지 

그대의 어둡고 좁은 쓸쓸한 고치 속에 머물러 있도록 하십시오. 


은총으로 그대에게 주어지는 모든 잎을 먹고 활동하는 동안에는 

잃어버렸던 평화를 회고하지 말 것입니다.


하느님의 뜻이 그대에게 멈추라고 말씀하실 때  

비로 멈추도록 하십시오. 


그대는 휴식과 활동 그리고 자신이 이해할 수 없었던 변화가 

한동안 계속 번갈아 교체됨을 체험하게 될 것이며 

지금까지 해 오던 영성 수업에는 완전히 흥미를 잃고 말 것입니다. 


그리고 죽은 다음 부활할 것이며 

그대를 위해 하느님이 지어 놓으신 옷을 입고 

그대가 볼 수도 느낄 수도 없는 곳에서 꾸준히 일하면서 

남모르게 쉴 새없이 실을 뽑아 낼 것입니다.


그대의 전 존재는 혼란스러워 짜증나는 듯 보일 것이며, 

그들이 있는 곳에 도달하지 못했다는 것 때문에 

마치 죽은 것처럼 누워 있는 그대의 동료들을 은근히 

부러워하게 될 것입니다.


그대는 그들을 뒤에 남겨 두고 떠났으면서도  

그들에 대한 찬양을 멈추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대는 세상과 교회의 권위자들과 

수많은 사람들이 자랑스럽게 봄에 차려 입고 다니게 될 주실을  

계속해서 뽑아내도록 할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참으로 수많은 영혼들은 영광을 차려 입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는 그대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겠습니까? 


작은 누에여! 

그대는 거기서 어떻게 빠져 나올 수 있겠습니까?


영혼들이 그렇게 서로 다른 모습을 지니게 되는 것은 

얼마만한 은총의 기적인지요!


은총이 영혼들을 인도해 줄 곳이 어디인지를 

누가 알 수나 있겠습니까? 


만일 그대가 본 적이 없다면 

자연이 누에와 함께 해낸 이 일을 누가 감히 짐작이나 할 수 있겠습니까?


그것이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은 나뭇잎들이고  

그 나머지는 자연이 행합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영혼들이여! 

여러분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고 있는지에 대해 알지 못합니다.


여러분을 만드신 하느님의 생각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또 어떤 결말로 여러분을 인도하실지에 대해서도 알지 못합니다.


여러분에게는 

생각도 없고 표본이나 실례나 영성의 어떤 독특한 방법과도 관련이 없는 

그저 수동적으로 자신을 내맡기는 일만 남아 있습니다.


여러분은 활동을 위한 시간에는 활동을 해야 하고  

멈추는 시간에는 중지해야 합니다.


그렇게 자신을 내맡김으로써 

여러분은 책을 읽거나 그것을 옆에 접어두거나, 

사람들과 이야기하거나 침묵을 지키거나, 글을 쓰거나 펜을 멈추겠지만, 

여러분은 결코 그 다음에 올 일을 알지 못할 것입니다. 


결국 몇 번의 변화를 겪은 후에야 형성되고 완성된 영혼은 

마침내 날개를 달고 하늘나라로 오르겠지만, 

잎들은 다른 영혼들 안에서 일하기 위해  

지상에 풍성한 씨앗을 남겨 놓을 것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이들, 그분의 계획에 따라 부르심을 받은 이들에게는 
모든 것이 함께 작용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로마8,28)

"진정 주님께서 이곳에 계시는데도 나는 그것을 모르고 있었구나." (창세 28,16)

"보셔요, 그 이가 우리 집 담장 앞에 서서 창틈으로 기웃거리고 창살틈으로 들여다본답니다."  (아가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