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섭리에내맡김

제6장 -01 우리가 하느님의 도우심을 잃었다는 식의 느낌을 수없이 갖는 경우라 할지라도 그분은 우리를 돕고 계신다.

은가루리나 2017. 5. 18. 15:53



《하섭내 제6장 하느님께 우리 자신을 내맡기면 모든 게 다 잘 될 것이다 

-01 우리가 하느님의 도우심을 잃었다는 식의 느낌을 수없이 갖는 경우라 할지라도 
그분은 우리를 돕고 계신다.》





제 6 장


하느님께 우리 자신을 내맡기면 모든 게 다 잘 될 것이다 




 01 


우리가 하느님의 도우심을 잃었다는 식의 느낌을 수없이 갖는 경우라 할지라도 

그분은 우리를 돕고 계신다.





   하느님께서 보내 주시는 모든 메시지는 

투명하고 명료한 일종의 신성함 같다 하겠습니다.


그 대신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내리시는 모든 말씀은 당신 옥좌를 가리우는, 

다시 말해 불가해한 어둠으로 감싸인 아주 고요한 믿음의 상태와도 같아 

우리의 감성을 온통 혼돈스럽고 어리둥절하게 만듭니다.


이러한 상태에서 우리는 어둠 속을 걸어가는 예언자와도 같이  

잇단 암초와의 충돌을 겁내게 됩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그 어떤 두려움도 가져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리는 올바른 길에 들어서서 하느님의 인도를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신앙의 어둠 안전한 까닭에  

우리를 그릇된 길로 이끌어 갈 위험은 조금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러한 어둠 속을 뚫고 어느 길로 가야 하는지를 

알고 싶지 않습니까?


우리는 그 어느 곳에서든 그 길을 원하기 때문에  

이것은 문제가 되지 않을 겁니다.


도무지 우리는 아무것도 볼 수 없으니, 

보이는 길이 없을 때는 길을 잃을 수도 고  

어떤 특정한 목적지를 향해 나갈 수도 없습니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말을 되뇝니다. 


"모든 것이 무서워. 

지금 당장이라도 벼랑에서 곧바로 굴러 떨어질 것만 같아.


나는 자아포기의 요구를 따른다는 것에 대한 완전한 깨달음을 갖고 있지만, 

내가 하는 그 모든 일은 덕과는 거리가 먼 것 같아.


내가 모든 덕행을 내팽개쳐 버리고 있다는 푸념소리가 들리는데, 

이 불평으로 인해 마음이 동요되면 될수록 

나를 지배하는 숨겨진 힘이 더욱 나를 멀리 잡아끌어 내는 듯해.


나는 덕행을 사랑해도 이 힘에는 짓눌리 말아. 

나는 그 힘이 믿을 만한 안내자라고 파악할 수는 없을지정 

내 자신은 그것이 그렇다고 믿지 않을 수가 어."




   (spirit)은 빛을 추구하지만, 마음은 어둠을 그리워합니다.


모든 지성인들의 이야기가 내 정신(mind)을 미하고 있지만, 

마음은 오로지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와 강의만을 듣고자 합니다.


나의 전 존재는 너무 신앙에 몰두해 있기에, 

나는 아무런 요점도 찾아 볼 수 없는 

그런 원리들과 진리들 그리고 방법들을 좋아하고 음미하고 있는데, 

그것을 관상할 때면 내 정신은 혼란을 일으키고 머뭇거리게 됩니다.


그러나 이유는 몰라도 

어떤 증거를 통해서가 아닌 신앙이 나를 확신시켜 주기 때문에 

모든 것이 옳다는 것을 나는 아직도 여전히 확신하고 있습니다.



느님이 영혼을 인도하실 때 

영혼 스스로가 느끼는 감지력이 적으면 적을수록 

그만큼 더 큰 확신으로  영혼이 올바른 길에 서 있음을 확신시켜 주시는데, 

이 확신은 정신의 모든 두려움과 추론(推論)을 정복하게끔 합니다.


지성이 보다 나은 길을 발견하기 위해 항변하고 투쟁하는 일은 무익합니다.


신부가 신랑을 붙잡으려 하면 신랑은 사려져버리므로, 

신부는 감각에 개의치 않고  신랑의 현존을 감지합니다.


"그이의 오른팔은 나를 껴안는 답니다"(아가 2,6). 


신부(영혼)는 다져온 덕행의 길을 따라 분투노력해 감으로써 

재차 스스로 확신하기 보다는, 

비록 리듬이나 이성이 없는 듯이 보일지라도 

히려 그녀는 신랑의 안내에 자신을 내맡기는 걸 더 좋아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영혼은 어서 빨리 스스로를 내맡김으로써  

하느님께 나아가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의 노력으로는 거룩해질 수 없음을 깨닫고 

그분께 온전한 신뢰심을 가져야만 하는 것이지요.


하느님이 당신 품으로 우리를 데려가려 하시지 않다면, 

그분은 우리에게서 걸을 수 있는 힘을 빼앗아 가지는 않을 것입니다.


"주님, 우리가 걸어서 여행하지 못하고 당신의 팔에 안기어 가고 있으니, 

보고 느끼며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  

도대체 우리에게 무슨 소용이 있단 말입니까?"



어둠이 짙으면 짙을수록 우리의 신뢰와 믿음은 깊어질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깊은 골짜기와 가파른 산봉우리들을 지나 광활한 사막을 거쳐 

박해와 굶주림, 가뭄과 지옥과 연옥의 환시로 인해 공포에 질려 있을 때, 

우리가 가장 큰 위험 속에서도 안전함을 느끼기 위해서는 

그분을 바라보고 있기만 하면 됩니다.



우리는 길들과 그 길들이 어떻다는 것을 잊어버리고 리 자신을 망각하며 

자신을 온전히 우리 안내자의 지혜와 성과 권능에 맡겨 드리고 

오로지 그분을 사랑하는 일에만 염두에 두고 

미소한 죄라도하며 

우리의 모든 의무를 이행해갈 것입니다.




   나의 사랑하올 임이시여! 

이것이 당신의 모든 자녀들이 해야 할 일입니다. 

그 밖의 다른 모든 일은 당신께서 책임져 주시니까요.


그리고 이 모든 것이 두려움의 대상이 되면 될수록 

영혼들은 당신의 현존을 더욱 분명하게 체험하게 됩니다.


그들은 당신을 사랑하는 것에 대해서만 생각하고 

이 세상에는 자기의 어머니와 장난감 밖에는 

다른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는 양, 

어머니의 무릎 위에서 뛰놀고 있는 어린아이처럼  

자신들의 작은 의무를 이행합니다.



영혼은 이러한 그림자를 뛰어넘어 움직여야 합니다. 

밤은 작업 시간이 아니고 휴식을 취하는 시간입니다.


이성의 빛은 신앙의 어둠을 짙게 할 뿐입니다. 

어둠을 꿰뚫고 지나갈 수 있는 유일한 광선들은 - 위로부터 - 

어둠과 마찬가지로 깊은 샘에서 흘러나온다는 것이 틀림없습니다.


이러한 어둠 속에서 

하느님이 영혼과 친교를 나누실 때에는 생명으로 다가오시지만, 

그분은 길이요, 진리와 같이 더 이상 눈으로는 뵐 수 없으신 분이십니다. 

(요한 14,5).


이 어둠 속에서 신부는 신랑을 찾지만(아가 3,1), 

신랑은 신부의 뒤편에 서서 그녀를 붙잡아 앞으로 나아가게끔 해 줍니다. 


이젠 더 이상 그는 우리의 개념 안에 머무는 대상이 아니고  

모든 것의 원리이며 원천입니다.


비록 고통과 근심, 혼란, 의혹과 빈곤이 

자신들의 힘에 온전히 신뢰를 두지 못하는 영혼들을 괴롭힐지라도, 

영혼들은 가려져 있고 알려지지 않은 놀라운 신적 활동으로 

그 모든 것을 극복해낼 수 있습니다.



상황이 복잡해질수록 우리는 더욱더 행복한 결론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마음속에서는 이런 말을 합니다.


 "하느님이 손수 관할해 주시니 모든 것이 잘 될 것이다 .

우리가 겁낼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다." 


외로움에 대해 우리가 지니고 있는 공포감과 감각은  

이 어둠을 찬미하는 노래의 가사들입니다.


우리는 모든 것이 "성부께 영광이 있을지다" 는 말로 

끝맺음을 하고 있음을 알고 있으면서도 

둠의 찬미가의 구절들을 하나하나 노래하는 것을 

기쁨으로 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이상한 듯한 길을 따라나서고 있는데, 

바로 그 어둠은 우리의 안내자로 행동하고 

의구심은 우리로 하여금 다시 확신을 갖게끔 하는 데에 도움이 됩니다.


이사악이 희생 제물로 바칠 어린양을 발견하지 못하고  

어리둥절해 하고 있으면 있을수록, 

아브라함은 더욱 커다란 신뢰심을 가지고  

모든 것을 섭리께 내맡겨 드렸습니다(창세 22, 7-8).





그러자 토마스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주님, 저희는 주님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알지도 못하는데, 

어떻게 그 길을 알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너희가 나를 알게 되었으니 내 아버지도 알게 될 것이다.

이제부터 너희는 그분을 아는 것이고, 또 그분울 이미 뵌 것이다." (요한 14,5-6)


나는 잠자리에서 밤새도록 내가 사랑하는 이를 찾아다녔네.

그이를 찾으려 하였건만 찾아내지 못하였다네(아가 3,1)


이사악이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아버지!" 하고 부르자, 

그가 "얘야, 왜그러느냐? 하고 대답했다.

이사악이 "불과 장작은 여기 있는데, 번제물로 바칠 양은 어디 있습니까?" 

하고 묻자,

아브라함이 "얘야, 번제물로 바칠 양은 하느님께서 손수 마련하실 거란다." 

하고 대답하였다.

둘은 함께 걸어갔다. (창세 22,7-8)




하섭내6장1번 G의도우심을잃었다는어둠속에서도.m4a.av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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