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섭리에내맡김

봉헌ㅣ 예수님이 하느님이시면서 동시에 인간 ㅣ제5장 -03 내적인 시련들

은가루리나 2017. 4. 6. 14:05

 

 

《하섭내 제5장 완전하고 참된 신앙만 있으면, 영혼에 일어나는 모든 일을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다.
- 03 내적인 시련들》

 

 

제 5 장

 

 

완전하고 참된 신앙만 있으면, 영혼에 일어나는 모든 일을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다.

 

 

 

 03 

 

내적인 시련들

 

 

 

 

   다른 이들로부터 경멸을 당하는 이런 불쌍한 영혼들은 

그들 스스로도 그만큼 자신들을 멸시합니다.

 

그들이 하는 모든 일과 고통스러워하는 모든 것은 

다른 이들에게도 그렇듯이, 

그들에게도 하찮고 비열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인상적인 것이란 아무것도 없고  

모든 것은 지극히 평범합니다.

 

 

그들은 정신적 육체적으로도 곤궁에 처해 있어  

일상생활은 좌절감으로 팽배해 있습니다.

 

그들은 종종 몸도 병약하여 

성인들 안에서 그토록 찬양되어진 엄격한 가난과는 전적으로 반대되는 

많은 관심과 위로를 필요로 합니다.

 

우리는 그들에게서 

불타는 열정도, 위대한 계획의 성취도, 애덕을 크게 베푸는 자비도, 

아무런 영웅적인 엄격성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믿음과 사랑으로 하느님과 일치되어 있지만 

그들은 자신들 안에서 혼란 밖에는 그 어떤 것도 발견하지 못합니다.

 

그들을 더욱 더 자기경멸로 몰아가는 것은 

그들 자신을 성인으로 통하는 사람들과 서로 비교할 때이고, 

그들의 영성 생활에서 규율과 방법을 따르는 데  

아무런 어려움이 없었음을 보여 줄 때입니다.

 

그들은 부끄러움으로 가득 차게 되고, 

그때 그들의 슬픔과 고통은 한숨과 눈물의 원인이 됩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하느님이시면서 동시에 인간이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인간으로서 예수님은 멸망을 당하셨지만 

하느님으로서는 모든 영광이 그의 차지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영혼들은 영광의 몫을 전혀 차지하지 못하고 

그저 자신들의 비참한 상태로 보이는 

온갖 전멸의 고통을 느낄 따름입니다.

 

사람들은 

마치 헤로데와 그의 궁중 사람들 앞에 서 계신 예수님을 바라보듯이 

그들을 그렇게 평가합니다.

 

그들의 감성과 마음이 관련되는 한, 

사람들은 이들 불쌍한 영혼들을 혐오하게 됩니다. 

 

 

그들을 기쁘게 하는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들은 철저하게 다른 어떤 것을 갈망하지만, 

그들이 열망하고 있는 성덕에로의 모든 길은 꽉 막혀 있습니다.

 

그들은 쓰디쓴 고통의 빵으로 살아야하고  

가혹한 압박을 받으며 생존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의지는 그것을 갈망하지만 성취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왜 그럴까요?

 

분명히 그것은 그들을 영적으로 억제하게 하는 것이어서 

그들은 그 어떤 것에서도 기쁨이나 만족을 찾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모든 애정을 하느님께만 되돌려 드려야만 합니다.

 

하느님은 신중하게 이 좁은길로 그들을 이끄시어 

홀로 그들을 기쁘게 해 주십니다.

 

 

 

 

   저에게는 이 모든 것이 명백한 것으로 보입니다.

 

즉 하느님께 자신을 내맡겼던 이러한 영혼들은

다른 사람들처럼 사람들에게 애정을 갖거나  

일반적인 야심과 연구와 활동에 관여할 수가 없습니다.

 

그들은 계획을 세울 수도, 앞일을 생각할 수도 없고, 

활동이나 심지어 그들의 독서를 위한 어떤 정연한 체계도 

세울 수 없습니다.

 

만일 그들이 그렇게 한다면, 그것은 

그들이 원했던 삶을 벗어날 자유가 아직도 여전히 남아 있는 것이고 

또 자신의 내맡김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내맡김을 열심히 이행하는 이들

자기 자신과 생각과 말과 행동에 대해

그들이 행사할 수 있는 모든 권한과 순간 이루게 되는 유용함을 

온전히 하느님께 내맡깁니다.

 

그들은 오직 한 가지 의무를 지니는데, 

그것은 그들의 시선을 스승께 고정시킨 채 

그분이 무엇을 원하시는지를 열심히 아로새겨 

그것을 즉시 따르는 일입니다.

 

그러기에 그들은 

자신의 일을 위해서는 결코 일분일초도 할애하지 않는 하인과도 

같습니다.

 

그래서 이 하인은 

 어떤 순간이라도 주인에게 봉사할 채비를 갖추고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에 드러난 데서 생기게 되는 굴욕감으로 말미암아 

당황해 하거나 걱정을 해서는 안 됩니다.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는 곳에 피신하여 

우리에게 모든 것 안에서 모든 것이 되어주시는 하느님을 향유하도록 

합시다.

 

우리의 함과 실패와 두려움과 걱정들이  

리에게 선익(善益)이 되도록 합시다.

 

특별한 음식과 배려를 필요로 하는 우리의 허약함과 외적인 경멸로부터 

선을 이끌어 내도록 합시다.

 

오직 선으로서 자신을 우리에게 내어 주시는 하느님 안에서 

우리의 모든 행복을 발견하도록 합시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철저히 가난한 자가 되어 당신께 봉헌되기를 원하시고, 

어떤 거룩함을 밝히 드러내는 일이 없이 

다른 영혼들을 통해 놀라운 찬양을 얻어 내십니다.

 

하느님은 

우리의 유일한 양식이시길 바라시고 

우리가 원하는 유일한 존재이시길 원하십니다. 

 

 

우리가 애긍과 열성과 엄격함과 가난의 덕을 지니고 있다면, 

우리는 너무 미약한 까닭에  

그것들에 대해 자랑스러워할 것입니다.

 

그 대신 모든 것은 마음에 들지 않기에 

하느님은 우리의 유일한 버팀목이 되시고 

룩함을 이루 는유일한 수단이 되어 주십니다.

 

세상은 우리를 경멸하면서도  

평화스럽게 우리가 풍요로움을 누리도록 방치해 둡니다. 

 

 

하느님은  

우리 안에서 거룩한 모든 것의 유일한 원천이 되기를 열망하시기에 

우리에게서 나오는 것은 매우 빈약합니다.

 

하느님의 면전에서는  

우리가 그분의 뜻을 전적으로 받아들이는 일 외에는 

우리에게 있어서 위대한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있을 수 없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거룩하게 하는 방법을 알고 계시기에, 

우리는 그분의 역사하심에 우리를 맡겨드리고 

거기에 대해서는 더 이상 생각하지 않도록 합시다. 

 

 

든 것은 섭리의 주의 깊은 돌보심과 역사하심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는 대체로 이러한 것들을 깨닫지 못하고 있기에, 

흔히 섭리의 돌보심과 역사하심은  

전혀 예상치 못한 불쾌한 방식으로 발생하게 됩니다.

 

잠잠히 우리의 보잘것없는 모든 의무들을 수행하고  

위대한 것들은 찾지 않도록 합시다.

 

하느님은 우리 자신의 노력에 부응하여  

당신 자신을 우리에게 내어 주시는 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분의 은총과 그분의 특별한 섭리에 의해 성인이 될 것입니다.

 

그분은 

우리를 들어 높이기 위해 그분이 바라시는 탁월성이 어떤 것인지를 

아십니다.

 

리는 그것을 그분께 맡겨 드리도록 합시다.

영성의 무의미한 체계를 동경하는 일은 단념하도록 합시다. 

 

 

끊임없이 그분을 사랑하고 

우리와 세상의 모든 것이 그토록 하찮게 보이는 곳에  

우리를 위해 하느님이 흔적으로 남겨 두신 그 길을 

고분고분하게 따라나서는 데에 만족스러워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