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의 뜻이 영혼을 다스리실 때

루이사 피카레타에 관한 더 상세한 소개

은가루리나 2017. 8. 18. 17:24


루이사 피카레타에 관한 더 상세한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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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사는 82세까지 이 땅에서 살았지만, 

그 중 64년을 “세상에서 가장 작은 수방(=독방)”인 그녀의 침상에서 지냈다. 

침대 둘레와 위쪽에 밝은 색의 쇠붙이 구조물이 있고  거기에 커튼이 달려 있어서 

이 커튼을 내리면 넓이가 2㎡될까 말까 한 독방이 되었던 것이다. 


이것이 루이사와 그녀의 사랑이신 예수님께는 넉넉한 공간이었으니, 

예수님께서 거의 매일 찾아오셔서 

그녀의 내적 인간 전체가 당신을 닮아가도록 가르치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은 예수님뿐만 아니라 

“엄마” – 루이사는 성모님을 그렇게 불렀다 – 를 위한 공간이기도 하였다. 

지극히 거룩하신 동정녀께서도 

루이사가 예수님의 내면과 당신 자신의 내면을 온전히 본받게 하시려고 

자주 방문하셨던 것이다.


루이사는 끊임없이 “귀부인 순명”의 지배하에 있었다. 

언제나 묵묵히 이 “귀부인”에게 순종했는데, 

그것은 그녀의 고해사제의 명령에 대한 순명이었지만, 

(고해사제는 주교에 의해 임명되었으므로) 

결국은 주교에게서 비롯되는 명령이었다.


   우리 주님께서 개입하셔서 의심할 여지가 없도록 결정적으로, 

루이사의 자리를 잡아 주셨으니, 

그것은 보속의 산 제물이라는 신분이었다. 


콜레라의 만연으로 코라토 지역의 많은 사람들이 죽은 1886년에, 

이 전염병이 루이사로 하여금 산 제물의 신분을 받아들이게 한 도구가 되었다. 


예수님께서 이 재난이 중단되도록 고통을 받아들일 것을 요구하셨는데, 

루이사가 이를 받아들여 사흘간 고통을 겪고 나자 

몇 달동안 계속되었던 콜레라가 사라졌던 것이다.



   루이사가 21세가 되었을 때, 

새로 임명된 고해사제인 미켈레 데 베네딕티스 신부는 

그녀의 영을 알고 시험하고 분별하기 위해서, 

만일 고통을 받고자 한다면 

반드시 (그의 명령에 대한) 순명의 행위로 그렇게 할 것을 

첫째 요건으로 정해 주었다.


   한 해가 지난 후, 

예수님께서 그녀에게 고통 중의 그녀 자신을 봉헌하라고 하셨다. 

그런데 이 고통은 이전처럼 때때로 중단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것이 될 터였다. 


그녀의 모든 고통은 진노하신 하느님의 정의에 보상을 바침으로써 

인간에게 떨어질 많은 징벌을 피하게 하려는 것이었다. 

이는 갈수록 사악해지는 인류가 받아 마땅한 징벌이요, 

그것도 임박한 징벌이었다.


   루이사는 고해사제에게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원하시는 바를 알리면서 

“당분간” 고통을 받을 수 있도록 명령을 내려 달라고 청하였다. 

그 당시 루이사는 그 고통의 기간을 40일로 여겼던 것이다. 


그러나 고해사제가 이를 허락하자, 

그 때부터 루이사는 줄곧 침대에서 지내게 되었는데, 

그래도 병에 걸리거나 욕창으로 고생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녀가 임상적인 병에 걸려 고통을 당한 것은 오직 임종 무렵뿐이었다. 

1947년 3월 4일, 페렴에 걸린 지 보름 만에 숨을 거두었던 것이다.



   어쨌든, 이(지속적인) 산 제물의 상태는 

일련의 독특한 은총들을 받게 되는 새로운 시작이었다. 

예수님께서 매우 자주 찾아오셔서 ‘신비적인 혼인’을 준비시키시면서 

그녀가 하느님의 뜻에 완전히 일치하도록 이끄신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또 십자가와의 결합과 같은 다른 신비적인 결합들을 위하여 

그녀를 끊임없이 준비시키셨다.


   그리고 어느 날 아침, 

그분께서는 당신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히신 구세주의 모습으로 나타내 보이시면서 

당신 수난의 가장 고통스러운 상처들을 그녀에게 박아 주셨다. 

그러나 그녀의 소망대로 겉으로는 그 성흔(聖痕)이 전연 보이지 않게 해 주셨다. 

그 때부터 

루이사는 예수님께서 그녀 안에 새롭게 재현하시는 십자가 고통을 받게 되었다.



고통에 대한 만족할 줄 모르는 열망에 시달린 루이사는 

몇 년이 지난 후에 

자신의 그 모든 바람까지 하느님의 뜻에 맡겨야 한다는 것을 배워 익혔다. 

고통을 받고자 하는 소망 외에도 

예수님을 눈으로 보고 싶은 소망도 있었던 것이다.



   1899년 고해사제가 세상을 떠난 후 

새 고해사제인 젠나로 디 젠나로 신부가 루이사를 돌보는 책임을 맡게 되었고, 

그것이 24년 동안 계속되었다. 

젠나로 신부는 루이사를 순명의 지배 아래 두면서 최초의 명령으로 

그녀와 예수님 사이에 일어난 일을 처음부터 전부 글로 옮기라고 하였다. 

그래서 루이사는 1899년 2월부터 글쓰기에 들어갔다.


   예수님께서는 루이사의 숭고한 사명을 위한 준비를 계속하셨는데, 

그것은 가장 큰 은총이며 탁월한 상태인 ‘하느님 뜻 안에서 사는 것’이었다. 


그분께서 이에 대해 처음 말씀하신 것은 1889년이었으며, 

은총 중의 은총인 이 은총을 루이사에게 주시면서 

“하느님 뜻의 작은 딸”이라는 이름도 지어 주셨던 것이다. 


이와 같이 우리 주님께서는 조용하고 은밀하게, 

루이사와 더불어, 새로운 ‘은총의 시대’를 열기 시작하셨다. 

이는 곧 세상에 하느님 뜻의 나라가 참으로 오심으로써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

(Fiat Voluntas Tua, Sicut In Coelo Et In Terra)라고 하신 

‘주님의 기도’ 가 실현될 시대이다.


루이사는 글쓰기를 계속하여 

하느님의 뜻 안에서 사는 것에 관한 가르침을 주제로 36권의 책을 썼고, 

뿐만 아니라 1915년에 초판을 내고 

1916년, 1917년, 1921년 및 1932년에 중간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의 시간들”과 

1932년에 출간하여 1933년과 1937년에 중간한 

“하느님 뜻의 나라의 동정 마리아”와 같은 다른 책들도 썼다. 


이는 모두 교회의 출판인가와 오류 없음의 판정을 받은 책들이었다. 

순명으로 그녀에게 글을 쓰게 한 명령이 마침내 거두어진 것은, 

제 36권의 마지막 장을 완료한 1938년 12월 28일의 일이었다.


젠나로 신부는 1922년에 세상을 떠났고, 

그 후임은 프란체스코 데 베네딕투스 신부였는데 

년 후인 1926년에 숨을 거두었다. 

그녀의 대주교가 임명한 마지막 고해사제인 베네뎃토 칼비 신부는 

그녀가 죽을 때까지 고해사제로 있었다.


  


끝으로, 

루이사는 짧지만 고통이 심한 폐렴을 앓다가 

1947년 3월 4일 새벽 여섯 시에 세상을 떠났다. 

그녀의 시신은 나흘 동안 공적인 공경을 받았다. 

그 후 루이사의 고향인 코라토가 소속된 트라니 대교구와 

다른 지역으로부터 많은 대표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성대한 장례식이 엄수되었으니, 

이것이 그녀가 받은 최초의 영예였다. 



그 당시에 찍힌 여러 사진들이 이 사실을 입증해 주거니와, 

루이사의 유해는 현재, 

교회의 인가에 따라, 코라토의 산타 마리아 그레카 성당에 안장되어 있다.



   그러면, 루이사는 어떻게 일상생활을 하며 지냈겠는가? 

이에 대해서 그녀의 마지막 고해사제인 베네뎃토 칼비 신부는 다음과 같은 증언을 남겼다.



p.23


1. 루이사 생애의 특별한 현상들   



   새벽 여섯 시경에 고해사제가 루이사에게 도착해 보면, 

루이사는 마치 대리석 덩어리처럼 굳어 있었다. 

얼마나 단단히 굳어 있는지, 게다가 얼마나 무거운지, 

루이사의 여동생이나 집안의 다른 사람이 고해사제나 주교의 명에 따라 

루이사를 평상시 자세대로 침대 위에 앉히려고 아무리 애를 써도 

도무지 움직일 수가 없었다. 

마치 큰 납덩어리 같이 딱딱하게 경직되어 있어서

팔다리를 펼 수도 없었던 것이다.


   다만 고해사제가(혹은 특별한 사정이 있을 경우, 다른 사제가) 강복하면서 

엄지손가락으로 그녀의 손 등에 십자성호를 그어 줄 때만 

비로소 생기가 돌아오며 몸의 동작도 회복되곤 했다. 

그렇게 해야 되살아나서 움직이기 시작하면서 

동생으로 하여금 

여느 때와 다름없는 자세로 자기를 앉히기 쉽게 해 주는 것이었다.


   다른 특별한 현상은 

(이미 지적한 대로) 64년 동안을 오직 침상에서만 지냈는데도 

욕창으로 고생한 적이 전연 없었다는 점이다. 


또 하나의 특별한 사실은 그녀의 식사였다. 

조금만 먹어도 고스란히 토하곤 했기 때문에 

침대에 붙박이게 된 때로부터 64년 후 세상을 떠날 때까지 

결국 아무 것도 먹지 않고 산 셈이니, 

그녀의 음식은 다만 하느님의 뜻과 성체 예수님뿐이었다.


   이러한 현상들과 다른 특별한 현상들이 목격되자  철저한 통제를 받았다. 

더군다나, 우리 교구의 장상들이 임명한 적지 않은 수의 박사와 교수들이, 

곧 교의와 윤리와 수덕신비신학 교수들이 판단을 내리기 위하여 

그녀를 철저히 검사하기도 하였다. 


그들 중 두 사람만 지적해 보면, 

한 사람은 로마 (성 안토니오) 국제대학교의 

생리학 및 의학교수인 도메니코 프란체, O.F.M. 박사였으며, 

또 한 사람은 

(같은 대학교의) 윤리와 수덕신비신학 등의 교수인 콘살보 발스 박사였다.



   이와 같이 루이사를 (그 죽음 같은 상태에서) 깨운 고해사제나 다른 사제는 

그 다음에 그녀의 조그만 방 침상 옆에서 거룩한 미사를 집전하였다. 


루이사는 영성체를 하고 나면 마치 잠자는 것처럼 황홀경에 잠겨 

주님과 두 세 시간 친밀한 대화를 나누곤 하였다. 


이때는 몸이 경직되거나 감각이 없는 상태는 아니었다. 

그렇지만, 복되신 주님께서 더욱 눈에 띠는 방식으로 

낮 동안 그녀와 함께 계시는 일이 잦았으므로 

주변인들도 그것을 목격하곤 하였다.


의식이 돌아오면 그녀는 침대에 앉은 채 일을 시작했다. 

그것은 레이스를 뜨거나 붙이면서 수예품을 만드는 일이었는데, 

주로 장식품이나 테이블보였고 성당에서 쓰이는 다른 품목들도 있었다.



   루이사는 날마다 그녀 주위에 모이는 몇몇 소녀들과 아이들에게 

그 수예품 만드는 법을 가르쳐 주곤 하였다. 

그러나 이 일보다 훨씬 더 그들을 끌어당긴 것은 

하느님의 현존에서 발산하는 루이사의 부드러우면서도 자연스러운 매력이었다. 

그들은 루이사가 늘 해 왔던 것처럼 

‘수난의 시간들’을 그녀와 함께 묵상하며 기도하는 것으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그래서 여기에 모이는 소녀들 가운데 다수는 

“수난의 시간들”을 외울 정도로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은 보속의 성시간을 가졌고 다른 신심업도 행하였다. 

루이사의 생활은 이처럼 겉보기에 언제나 같은 것이었으니, 

곧 일과 침묵과 기도의 생활이었다.


오후 두 시 반이나 세 시가 되면 그들은 루이사에게 약간의 음식을 주었지만, 

이미 언급한 대로 그녀는 잠시 후에 그것을 고스란히 토했으며, 

이 용도로 쓰이는 그릇이 따로 정해져 있었다. 


오후에 그녀는 보통 한 시간의 묵상기도를 바쳤다. 

그들은 커튼을 내려 침대를 둘러싸게 한 다음 그녀를 홀로 남겨두거나, 

때로는 그녀에게 찾아오신 천상 여왕님과 함께 있게 하고 방을 나갔다. 


   그런 다음 루이사는 저녁 열 시나 열한 시까지 일을 계속하였고, 

그 이후에 글을 쓰곤 하였다. 

주님께서 어떤 것을 나타내 보이시거나 말씀을 주신 것이 

낮 동안이었건 밤에 잠들어 있었을 때였건, 아니면 쓰라는 명을 받은 때였건 

이 시간에는 언제나 글을 쓴 것이다. 


마지막으로, 

자정이나 새벽 한 시경이 되면 침대에 누워 그 “죽음”의 상태에 들어갔고, 

그러면 감각 기능이 마비되는 것이었다. 

침대에 미처 드러눕기 전에 이 상태가 오면, 

앉아 있었던 자세대로 석상처럼 굳어 있는 것이었다.


   루이사의 나날은 그렇게 지나가곤 하였다.



p.23



   이제 안니발레 마리아 디 프란치아 신부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가자. 

그는 17년 남짓 루이사와 알고 지냈지만 

그녀의 특별 고해사제가 되어 가까이서 접촉한 지 2년이 채 안된 

1927년에 세상을 떠났다. 

프란치아 신부는 루이사의 삶과 저술 및 하느님의 뜻에 관한 가르침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게 되었으므로 

“수난의 시간들”을 출판하였다. 


그가 코라토에 온 것은 1910년이었고, 

이때부터 루이사를 방문하기 시작하면서 특별한 영적 관계를 맺게 되었다. 

루이사와의 만남이 그의 삶에 헤아릴 수 없는 변화를 일으켰으며, 

하느님의 뜻에 관한 지식이 그의 영성에 근본적인 바탕을 이루게 되었다. 

트라니 교구 대주교는 루이사의 저술들과 관련된 출판을 지도하도록 

프란치아 신부를 교구의 교회서적 검열관으로 임명하였다.


   그는 “수난의 시간들”을 출판하기 위하여 모든 힘을 쏟았고, 

그 책에 긴 해설문을 직접 붙이기도 했으며, 

넷째 판까지 모두 교회 인가와 오류 없음의 확인을 얻었다. 

교구 검열관인 그는 

또 루이사가 쓴 전반 열아홉 권의 책들에 대해서도 교회 인가를 얻어 내었다.


   디 프란치아 신부가 루이사에 대하여 남긴 다음의 증언을 주목해 보자.


  『…. 루이사는 홀로 숨어 지내며 세상에 알려지지 않고 살기를 원합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친히 의무를 지우지 않으셨다면,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 또 앞으로 언제까지 계속될지 모르지만 – 

흠숭하올 예수님과 사적으로 지속된 장기간의 통교 내용을 

결코 글로 옮기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 의무는 어떤 때는 주님께로부터 직접 부과되는 것이었고 

또 다른 때는 루이사의 영적 지도자들로부터 

거룩한 순명의 이름으로 오는 것이었습니다.


   루이사는 이 순명이 엄청난 고통을 불러일으킬 때에도 

굳건하고 아낌없는 마음으로 복종해 왔습니다. 

그녀의 순명은 절대적인 것이어서 

만일 그렇게 하라는 명령만 있다면 천국마저 거절할 정도입니다. 


이것은 고결하고 참되고 검증된 영의 가장 중요한 특징 중의 하나입니다. 

그녀는 지금까지 40년 동안 내적으로 투쟁하면서 

그 “귀부인 순명”의 지배를 받아 온 것입니다….


   이 고독한 영혼은 온전히 하느님께만 속한 극히 순결한 동정녀로서, 

우리의 거룩하신 구원자 예수님의 특별한 총애를 받고 있습니다. 

오랜 세월에 걸쳐 당신 사랑의 기적을 증가시켜 오신 주님께서 

이 동정녀를 도구로 쓰시고자 하신 것 같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보잘것없고 가장 배운 것이 없는 루이사를 부르셨으니 말입니다.


   더욱이, 주님께서는 

그녀를 숭고한 사명에 맞갖은 도구가 되도록 기르고자 하셨으니, 

다른 누구의 사명과도 비교할 수 없는 그 숭고한 사명은 바로,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 라고 하신 

‘주님의 기도’처럼 

하느님 뜻의 승리가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주님의 이 동정녀는 소녀 시절부터 지금껏 

하느님 사랑의 산 제물이 되어 40년 이상 침상에 붙박여 있었습니다. 


그 동안 예수 성심의 영원한 사랑 안에서 더없이 큰 기쁨에 잠겨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자연적이고 초자연적인 광범위한 고통을 체험했습니다. 

모든 한계를 뛰어넘는 그 고통은 예수님께로부터 오는 것이었고, 

때때로 중단되기도 했지만 지속적인 것이었습니다….



   그녀는 몸의 고통에다 영혼의 고통까지 겪었습니다. 

몸의 모든 고통은 손발과 옆구리, 

혹은 이마에 보이지 않는 성흔을 받은 신비스러운 상태에서 오는 것이었습니다. 

주님께로부터 십자가에 못 박히는 고통을 자주 받았으니 말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와 같은 고통을 허락하지 않으시면, 

그것이 월등 더 큰 영적 고통이 되곤 했던 것입니다. 

이는 그녀가 진실로 고결한 영혼임을 드러내는 또 하나의 표입니다….


   이처럼 장기간에 걸쳐 침상에서만 계속 생활하는 산 제물의 상태로 

영적이고 육체적인 수많은 고통에 참여해 온 루이사에 대해서 상세히 언급하면, 

이 이름 없는 동정녀를 보는 것이 괴롭고 혼란스러울지도 모릅니다. 

고통스러운 병증 때문에 

침대에 누워 있기만 하는 사람을 보는 것 같을 테니 말입니다. 


   그렇지만 루이사의 경우에는 또 다른 특징이 있습니다. 

십가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의 이 정배가 

낮 동안 침상에 앉아서 수예품을 만들고 있는 것을 보면,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온갖 극단적인 고통을 겪으면서 

밤을 지낸 사람이라는 것을 내비치는 단서가 조금도 없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특별하거나 초자연적인 어떤 표시도 도무지 없습니다. 


오히려 건강하고 기쁘고 행복한 사람의 모습입니다. 

이런 모습으로 

자기가 맞아들인 몇 사람의 벗들과 이야기를 하거나 생각에 잠기거나 

때로는 웃기도 하는 것입니다….



   끝으로, 한 가지만 더 지적해 보면, 

예수님의 이 정배는 현세적이라기 보다는 천상적인 삶을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녀의 소망은 알려지지 않은 무지한 사람으로서 

예수님과 그분의 복되신 어머니 

– 그녀를 특별히 보호해 오신 어머니 – 외에는 아무도 찾지 않으며 

이 세상을 통과하는 것이니 말입니다….』



필자는 이것이 근거가 확실한 증언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루이사를 매우 잘 알고 있었고 

큰 열성으로 “수난의 시간들” 거듭거듭 출판했던 디 프란치아 신부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하여 1990년 10월 7일에 시복되었고 

2004년 5월 16일에 시성되기도 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프란치아 신부는 

우리 시대의 사제들을 위한 모범으로 공표되고 칭송되었다.




p.28


2. 루이사의 저술들



   루이사를 알았던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하듯이, 

필자도 그녀의 생애에 관한 수없이 많고 놀랍고 특별한 일화들을 

자세히 소개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일화들을 서술하는 것은 

그녀의 생애를 신심 깊고 교훈적이며 기적적인 

일련의 삽화들로 만들어 버릴 위험이 있다. 

루이사에 대해서 가장 중요한 것, 그녀를 다른 모든 사람과 구별하게 하는 것, 

곧 그녀의 사명을 뒷전으로 밀어 둘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루이사는 어떤 사람이었으며, 삶을 통해 무엇을 성취했는가? 

그녀의 사명은 무엇이었는가?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놀라운 대답은 바로 그녀가 쓴 글들 속에 있다. 


루이사를 그녀의 저술과 별도로 떼어놓고 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니 말이다. 

그것은 그녀의 내적 삶이 어떤 것이었는지를 우리에게 알려 줄 뿐만 아니라 

우리를 그녀의 생명을 이룬 지식에 이르도록 한다. 

이 지식이 다름아닌 하느님 뜻의 생명에 관한 지식이다.


   그러나 우리가 루이사의 글을 읽으며 경탄하기 전에, 

앞에서 언급한 두 사제, 

도메니코 프란체 신부콘살보 발스 신부의 증언을 소개하는 것이 좋겠다. 

다음은 도메니코 프란체 신부의 증언이다:





   친애하는 신부님,

   일 년쯤 전인 지난해 9월에, 신부님께서 

어떤 신뢰할 만한 사람 편으로 저에게 [하느님 뜻의 나라 안에서] 

(한 영혼의 이야기, 1부, 밝아오는 새벽)이라는 제목의 책 두 부를 

보내 주시면서, 

저자가 익명으로 출간되기를 원한 이 책에 대해서 

판단을 내려 달라고 하셨습니다.


존경하는 신부님, 신부님께서 아시다시피, 

저는 단지 이 책을 읽는 것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어서 

저자를 작접 만나기를 원했는데, 

그것은 더 정확한 평가를 내리기 위해서였습니다.


또한 책을 읽고 저자를 만난 후에도  저 자신만의 판단에 그치지 않고

능력이 있는 동료 적임자 몇 사람의 의견을 구했습니다. 

그래서 그러한 증언 중의 하나를 동봉하려고 합니다. 


이는 저와 같이 성 안토니오 국제대학교에서 봉직하고 있는 

신학 교수 콘살보 발스 신부의 의견입니다. 

그는 현재 우리 책들의 교열(校閱) 책임을 맡고 있거니와 

이 편지 뒤에 그의 증언을 붙여 넣겠습니다.


   사실, 

이 책 전체를 읽을 시간이 없거나 그럴 뜻이 없는 사람들도 

내용 목차를 일별하면, 

완덕으로 나아가도록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은 이 영혼이 

(모든 집착으로부터의) 이탈자기 소멸의 길을 통하여, 

또 유혹과 시련들 

– 이 시련들 중 가장 혹독한 한 가지는 

현재까지 46년 이상이나 지속되고 있습니다. – 을 통하여, 

얼마나 점진적으로 향상했는지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우선 의사로서, 

그토록 오랜 기간 꼼짝없이 침상에서만 지내야 했던 환자에게서 

욕창이나 피부 염증을 보지 못했으니 단지 놀라울 따름입니다. 


또 저는 신앙 문제를 심사하는 조사자로서 매우 큰 위안을 느끼고 있습니다. 

의사들과 고해사제들과 대주교들이 여러 해에 걸쳐 철저한 조사를 했지만 

그 누구도 아무런 속임수를 찾아내지 못했는 확신을 얻었으니 말입니다.


끝으로 저는 사제로서 기쁨을 느끼고 있습니다. 

이 환자에게서 그리스도교적 덕행의 모든 고결함뿐만 아니라, 

특별한 은총의 비추임을 받아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영혼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이 영혼을 정화하시어 

다른 사람들을 위한 자비의 도구가 되게 하시려고 

그녀 안에서 행하고 계신 듯한 모든 것과 함께, 

저는 이 저술 안에서 그녀의 존재 의의라고 할 수 있는 중심 주체를 봅니다. 


그것은 바로 하느님의 뜻입니다. 

이 가련한 환자는 모든 사람에게 그들 자신의 뜻은 악이라는 것과, 

모든 인간의 뜻에 공통적인 악이 죄인 것처럼 

모든 죄인들에게 모든 보편적인 치유제가 

바로 하느님의 거룩한 뜻이 인간 뜻의 생명이 되는 것임을 깨닫도록 호소합니다.


   이 책이 독자에게 

하느님과 하느님의 거룩하신 뜻의 권리를 일깨우면서 

그분의 지고한 권능이 모든 인간의 뜻과

이 하찮은 세상의 권세나 나라들 위에 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준다면,

영혼들의 선익을 위해 이미 큰 공헌을 한 것이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존경하는 신부님, 사제이며 의사인 저의 판단으로는, 

오직 그런 고통을 감수한 영만이, 아직도 계속 감수하고 있는 영만이, 

그리고 하느님의 뜻 안에 녹아든 인간의 뜻만이, 

이 영혼이 드러내는 것과 같은 

중요하고 근본적인 개념에 도달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런데, 

학교 교육을 거의 받지 못한 채 홀로 그 숱한 고통을 겪으며 

침상에만 붙들려 있는 이 사람이,

따라서 

문학이나 신학, 또는 수덕에 관한 지식이 극도로 제한된 상태에 있는 사람이, 

이해하기에 극히 까다로운 주제에 관해서 참된 능력을 가지고 말하고 있고, 

극히 난해한 문제들에 대한 해답을 주고 있으며, 

그의 글을 읽는 독자들의 영혼을 

더없이 향기로운 덕행의 영역으로 데려가기도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제가 이 환자에게 실행한 

신체적, 정신물리학적, 윤리적 테스트에 대해 상술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저는 내심으로 확신을 가지고 있는데, 

이는 

세속적인 쾌락이나 무절제와 절연하고 65년을 살아온 끝에 

이글을 쓰고 있는 제가 재천명하는 확신입니다. 


그것은 신부님께서 저에게 주신 이 책이 사람들에게 보급되기만 하면 

크나큰 선을 이룰 수 있으리라는 확신입니다. 

올곧고 유덕한 영이 (주님의 말씀을) 받아쓴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에게 잊지 못할 기회를 주신 신부님께 감사드리며 

신부님의 힘 있는 기도를 간청합니다.



1931년 7월 20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 안토니오 국제대학교 생리학 및 선교 의학교수

교황청 선교 협회 명예 회원, 외과 의사

도메니코 프란체 신부




p.31


   다음은 프란체 신부가 위의 편지에서 언급한 발스 신부의 의견서다. 

(그는 프란체 신부와 같은 대학의 교의신학 등의 교수로서) 

1931년 7월 18일에 이 글을 프란체 신부에게 보냈고, 

프란체 신부는 이를 자기의 편지와 동봉하여 팔마 신부에게 부친 것이다. 

여기서는 지면 관계로 그 긴 증언의 요지만 옮기기로 한다.)





   존경하는 신부님,

저는 [하느님 뜻의 나라 안에서] 라는 책을 읽고 연구했습니다.

그 중 다음 몇 가지 점에 대하여 깊이 생각한 끝에 말씀드립니다.


1) 교의에 관하여


저는 이 책이 

성교회의 가르침과 계시의 출처에 나타나 있는 가르침과

완전히 일치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를테면 어떤 교의 문제에 대해 지나가는 말로 언급할 때도 그렇습니다. 

(그 다음에는 일련의 분석과 주석이 이어지는데, 

이를테면 “숭고하고 놀라운 신학적 정확성…”

“결코 반복되지 않으면서도 새롭고 훌륭한 관점들이 

한 순간도 신앙의 진리에서 벗어나지 않고 제시되어 있습니다.” 등이다. – 필자 주) 


때때로 설명이 필요한 특수한 개념들과 불분명한 표현들이 

여기저기에 보이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러한 것들에 대하여 더 깊이 숙고해 보면 

첫눈에 느껴지던 부조화가 사라지는 것도 사실입니다. 

더욱이, 예수님께서 친히 이 영혼에게 말씀을 주십니다. 

터무니없는 글을 쓰게 될까 두f려워하는 그녀를 안심시켜 주시면서 말입니다.



2) 수덕에 관하여


이 책은 특히 성화에 이르는 적극적인 수단들, 

곧 기도, 노동, 본분 완수, 성사들, 독서, 고통 등을 제시할 때나, 

특히 덕행들 자체에 대한 광범위한 가르침을 줄 때나, 

내용 전체에 걸쳐 그 판단들이 매우 정확합니다… 

주의해 보십시오. 

저자의 모든 관점의 정당성을 입증하려면 

책 전체를 인용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3) 신비들에 관하여


이 책은 참으로 영감을 받아 쓴 것 같습니다. 

(제시된 여러 점들 중에서 이 한 가지 예를 봅시다.) 


“하느님에 대한 추상적이고 직관적인 인식과  영혼 자신의 인식에는 

차이가 있다. 

직관적인 지식으로 이루어지는 설명은, 

성령의 선물들이 인간 안에서 활동하는 신적 방식에 대한 교의 신학을 

심리학적, 경험적으로 증명하는 것이다. 

이는 덕행들의 활동이라는 인간적인 방식과 대립된다.”



4) 이 영혼의 자화상에 관하여


이것은 

이 영혼이 얼마나 열렬히 은총 안의 삶을 살고 있는지를 드러냅니다. 

은총에 대하여 매우 아름답고 정확한 글을 써 내고 있으니, 

성령의 선물들만이 그녀에게 그러한 지식을 줄 수 있으며, 

더군다나 그 선물들을 설명하는 지혜도 줄 수 있을 것입니다. 


완전히 활동적인 이 선물들로부터 

하느님을 그분의 속성과 삼위일체적인 생명 안에서 관상하는 것과 

그리스도와 복되신 어머니를 그분들의 신비 안에서 관상하는 것이 나오며, 

세상을 다스리시는 하느님의 뜻에 대한 

매우 고무적이고도 놀라운 통찰이 나옵니다.


이 영혼을 몰입시키는 하느님의 은총으로부터, 

다른 무엇이 아니라  바로 이 은총으로부터, 

그녀가 사랑하는 분께서 요구하시는 가장 크고 깊은 희생을 감수할 수 있는 

저 굳건함과 관대함이 나오고, 저 예민하고 신선한 감수성이 나옵니다. 


또한 예수님에 대한 사랑에 근거하여 쏟아지는 한없는 이웃 사랑도 

거기에서 나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특히, 

자신의 인간적인 뜻을 주님의 뜻으로 바꾸는 대치 행위야말로 

오직 은총에서만 나올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주님의 뜻이 

더없이 큰 시련과 고통과 메마름 한가운데서도 

그녀를 평화롭고 안전하고 기쁘게 할 수 있도록 지켜주고, 

그녀의 특별한 사명을 계속하게 하는 것입니다….



   검토와 비교 작업을 거친 이 모든 관찰에 비추어 볼 때, 

저는 여기에서 다루고 있는 사람이 하느님의 사람이라는 것과 

이 영혼 안에 이루어지고 있는 일은 하느님의 일이라는 

깊은 확신을 품게 되었습니다.  


비록 그녀의 삶이나 내력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이 책에 대한 검토와 이를 읽으며 저 자신이 체험한 효과가 

제 이해의 정당성을 충분히 입증하는 것입니다. 


이 책이 

제 영혼 안에 영적 진보에 대한  새로운 갈망을 불어넣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직 하느님께서만 인간 마음의 열쇠를 쥐고 계시며 

성화를 향해 고동치게 하실 따름입니다…



신부님의 친애하는 형제,

콘살보 발스, O.F.M 신부




p.33


   그렇다면, 

루이사를 다른 모든 사람들과 구분시키는 점은 과연 무엇인가? 


단적으로 말해서 루이사는

“내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것이 나의 음식”(요한 4,34 참조 – 역주)이라고 말씀하신 

주님 인성의 완전한 모상과 

”….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가 1,38 – 역주)라고 하신 

지극히 거룩한 동정녀의 완전한 모상으로서 

하느님의 뜻 안에서 산 첫 사람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하기야, 이제까지 성인들과 교회도 

하느님의 뜻을 준행함과 완전한 자아 포기, 

하느님의 뜻 및 그 뜻의 작용과의 결합을 모르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우리는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나 성 빈첸시오 데 바오로 같은 성인들에게서 

이렇게 표현된 예를 볼 수 있다.


   즉 “자기 자신을 비우고 오직 하나의 뜻만이 있도록 

자신의 뜻을 하느님의 뜻에 온전히 일치시키는 것”이라는 표현이다. 

(그리고 이 점에 대해서라면 수백 명의 다른 성인들도 손꼽을 수 있고,) 

이것이야말로 지고한 목표점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두 뜻의 결합과 루이사의 가르침에는 어떤 차이가 있겠는가?


   이에 대한 해답을 그녀의 책에서 찾아보면, 

1922년 10월 6일자 (제14권)의 글 속에서 루이사가 예수님께, 

오랜 세기에 걸쳐 교회안에 수많은 성인들이 있었는데 

어째서 그녀가 하느님 뜻 안에서 사는 첫 사람이 될 수 있느냐고 

질문하는 대목이 나온다. 


주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 그것도 

다른 (모든) 사람을 넘어 틀림없이 내가 너를 처음으로 불렀다. 

왜냐하면, 다른 이들을 얼마나 사랑하건, 

그들에게는 나의 뜻 안에서 사는 방법 및 

이 지고한 뜻 안에서 사는 사람이 받게 될 효과와 

기묘한 일들과 부요함에 대해서 가르쳐 준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성인들의 전기나 교훈서들 중에서 네가 한껏 찾아본다고 하더라도 

사람 안에 작용하는 나의 뜻과  나의 뜻 안에서 활동하는 사람이라는 

이 놀라운 일은 찾아내지 못할 것이다. 

기껏해야 포기와 맡김과 두 뜻의 결합만을 볼 뿐, 

사람 안에 작용하는 하느님의 뜻과 내 뜻 안에 있는 사람이라는 것은 

어느 누구에게서도 볼 수 없을 것이다. 


이는 (너 이전에는) 

그처럼 숭고한 상태로 살아갈 사람을 나의 인자로 부를 때가 되지 않았음을 

뜻한다. 

게다가, 내가 너에게 간청하라고 요구한 그 방법마저 

다른 누구에게서도 볼 수 없을 것이다…”



   이것은 

곧 루이사가 이미 체험한 두 뜻의 결합으로부터 

그 두 뜻의 하나 됨과 그 하나 됨의 활동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의미한다. 

하느님의 뜻 안에 있는 사람의 활동과 생명 안으로 

그 효과 등과 함께 들어가는 것이다.


   독자도 “진리의 빛을 향해 열린 마음으로” 편견 없이 이 글을 읽는다면, 

이 주장을 확증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런 마음으로 읽지 않는다면, 

“아무 것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제12권, 1919년 1월 29일).”



호세 루이스 아쿠냐 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