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의 뜻이 영혼을 다스리실 때

루이사 피카레타에 관한 더 상세한 소개 (5) [출처] 루이사 피카레타에 관한 더 상세한 소개 (5)|

은가루리나 2017. 8. 16. 22:09

루이사 피카레타에 관한 더 상세한 소개 (5)

 

                                                                                         10/ 11 / 2011

그렇다면, 루이사를 다른 모든 사람들과 구분시키는 점은 과연 무엇인가? 단적으로 말해서 루이사는“내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것이 나의 음식”(요한 4,34 참조 – 역주)이라고 말씀하신 주님 인성의 완전한 모상과 “ ”….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가 1,38 – 역주)라고 하신 지극히 거룩한 동정녀의 완전한 모상으로서 하느님의 뜻 안에서 산 첫 사람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하기야, 이제까지 성인들과 교회도 하느님의 뜻을 준행함과 완전한 자아 포기, 하느님의 뜻 및 그 뜻의 작용과의 결합을 모르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우리는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나 성 빈첸시오 데 바오로 같은 성인들에게서 이렇게 표현된 예를 볼 수 있다.

즉 “자기 자신을 비우고 오직 하나의 뜻만이 있도록 자신의 뜻을 하느님의 뜻에 온전히 일치시키는 것”이라는 표현이다. (그리고 이 점에 대해서라면 수백 명의 다른 성인들도 손꼽을 수 있고,) 이것이야말로 지고한 목표점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두 뜻의 결합과 루이사의 가르침에는 어떤 차이가 있겠는가?

 

이에 대한 해답을 그녀의 책에서 찾아보면, 1922년 10월 6일자 (제14권)의 글 속에서 루이사가 예수님께, 오랜 세기에 걸쳐 교회안에 수많은 성인들이 있었는데 어째서 그녀가 하느님 뜻 안에서 사는 첫 사람이 될 수 있느냐고 질문하는 대목이 나온다. 주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 그것도 다른 (모든) 사람을 넘어 틀림없이 내가 너를 처음으로 불렀다. 왜냐하면, 다른 이들을 얼마나 사랑하건, 그들에게는 나의 뜻 안에서 사는 방법 및 이 지고한 뜻 안에서 사는 사람이 받게 될 효과와 기묘한 일들과 부요함에 대해서 가르쳐 준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성인들의 전기나 교훈서들 중에서 네가 한껏 찾아본다고 하더라도 사람 안에 작용하는 나의 뜻과 나의 뜻 안에서 활동하는 사람이라는 이 놀라운 일은 찾아내지 못할 것이다. 기껏해야 포기와 맡김과 두 뜻의 결합만을 볼 뿐, 사람 안에 작용하는 하느님의 뜻과 내 뜻 안에 있는 사람이라는 것은 어느 누구에게서도 볼 수 없을 것이다. 이는 (너 이전에는) 그처럼 숭고한 상태로 살아갈 사람을 나의 인자로 부를 때가 되지 않았음을 뜻한다. 게다가, 내가 너에게 간청하라고 요구한 그 방법마저 다른 누구에게서도 볼 수 없을 것이다…”

 

이것은 곧 루이사가 이미 체험한 두 뜻의 결합으로부터 그 두 뜻의 하나 됨과 그 하나 됨의 활동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의미한다. 하느님의 뜻 안에 있는 사람의 활동과 생명 안으로 그 효과 등과 함께 들어가는 것이다.

독자도 “진리의 빛을 향해 열린 마음으로” 편견 없이 이 글을 읽는다면, 이 주장을 확증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런 마음으로 읽지 않는다면, “아무 것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제12권, 1919년 1월 29일).”

                                                                                호세 루이스 아쿠냐 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