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한위탁

3. p.32-35 제 1 편 제 2장 천주의 명시의지(明示意志)와 임의의지(任意意志) ①

은가루리나 2017. 10. 6. 13:10


옴니아  등급변경▼ 조회 86  추천 0  2014.06.05. 00:46


제1편, 거룩한 위탁의 본질


제1장 최고의 규범으로서의 천주의 의지

제2장 천주의 명시의지와 임의의지

제3장 천주의 명시의지에 대한 순명

제4장 임의의지에 대한 적합

제5장 거룩한 의탁의 개념

제6장 위탁과 현덕

제7장 위탁에 있어서의 願望과 기도

제8장 위탁에 있어서의 노력

제9장 위탁에 있어서의 고통감

제10장 위탁과 희생의 서원



p.32

제 1편 거룩한 위탁의 본질


제 2 장 천주의 명시의지(明示意志)와 임의의지(任意意志) 




천주의 의지가 우리에게 나타나는 것은 규범(規範) 및 원동(原動)으로서다.

규범으로서의 의지는 선(善)의 최고의 기준(基準)이며,

각가지 방법에 의해서 드러나 있다.


그리고 이미 말한바와 같이 

천주의 의지가 바라시는 것은 모두가 선이며,

바라지 않으시는 것은 아무 것도 선한 것이 없으므로,

우리는 당연히 그 의지에 따라야 한다.



다음에 원동(原動)으로서의 천주의 의지는 

만물의 존재와 생명과 활동과의 보편적인 본원(本源)이며,

천주께서 바라시는대로 모든 것이 이루어지고,

바라지 않으시는 것은 무엇 하나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 제일원인(第一原因)에 기인하지 않은 결과는 하나도 없고, 

어떠한 활동도,

이 최초의 원동자(原動子)에까지 거슬러 올라가지 않는 것이 없다.

그러므로 무릇 일은 그 대소(大小)를 불문하고,

천주의 무엇인가의 임의의지(任意意志)를 드러내지 않는 것은 없다.


따라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것에 자신을 따르게 하는 것이다

왜냐 하면, 

천주에게는 당신의 뜻대로 우리를 자유로이 처리할 절대적 권(絶對的權)이

있으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천주의 의지는, 

하나는 우리에게 정해진 계명에 의해서,

또 하나는 우리 위에 닥치는 일에 의해서 인식되는 것이므로,

거기에서 

천주의 명시의지(明示意志)와 천주의 임의의지(任意意志)의 구별이 생긴다.


역자 註, 여기에 말하는 명시의지는 신학상「라띤」어의 Voluntas signi,

임의의지는 Voluntas beneplaciti의 역이다.



p.33


전자는, 

「우리가 천주의 의지에 응하여 믿어야 할 진리 (眞理), 바라야 할 선익(善益),

두려워해야 할 고통스러운 벌, 사랑해야 할 일, 지킬 계명, 따라야 할 권고(勸告)등을 

명백하게(미리서) 우리에게 드러낸다.


이러한 것은 모두 천주의 명시의지(明示意志)라고 불린다.

왜냐 하면, 그러한 것은 천주께서 우리에게 

믿고, 바라고, 두려워하고, 실천할 것을 바라시는 것을 

모두 명백히 드러내시고 계시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의 마음을 이 천주의 명시의지에 적합시킨다는 점은,

성교회가 가르치는대로 믿고, 약속대로 바라며, 위압(威壓)하시는대로 두려워하고,

명하신 바에 복종하며, 권고하심에 따라 사랑하고, 생활하면서,

지선(至善)하신 천주의 의향으로서 제시 된 일체의 것을,

오직 천주의 뜻이라는 이유로 모두 바라는 것에 이루어지는 것이다.」

(성「프란치스꼬.살레시오」「神愛論」제8편 제3장)



천주의 명시의지는, 

이것을 천주십계성교회의 법규, 권고, 회칙(會則)과 회헌(會憲)의 

네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천주의 십계와 성교회의 법규에 관해서는 사람은 반드시 이것을 지켜야 한다.

왜냐 하면, 그런 것은 천주의 절대적 의지이며, 

만일 우리가 구령하기를 바란다면,

반드시 이것을 지킬 것을 천주께서는 바라시기 때문이다.



권고에 관해서는, 천주께서는 물론 우리가 이에 따르기를 바라시지만,

그러나 그것이 절대적인 의지에서가 아니라, 단지 그것을 권고하시는데 그친다.

그러므로 비록 권고에 따를 용기가 없어도,

만일 따르지 않는 것이 경멸하는 생각에서가 아니라면,

그것 때문에 사랑을 잃어 천주로부터 떠난다는 일은 없다.

아니, 모든 권고에 따르기를 시도해서는 안된다. 


오히려, 다만 자신의 소명(召命)에 보다 잘 알맞는 것에 따라야 한다.

대개 그러한 것 가운데는 

서로 상반(相反)하는 것 같은 것이 있기도 하기 때문이다.



..... 그러므로 천주께서 우리에게 따르기를 바라시는 권고에만 따라야 한다.

..... 모든 사람에게 있어 모든 권고를 실천하는 것은 알맞지 않다.

권고가 주어지는 것은 사랑의 완성 때문이므로 

사랑은 또한 권고의 규범도 척도(尺度)도 된다.

..... 수도자인 우리들이 실행하여야 할 권고는 회칙(會則)안에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동저「대화편」15장 및 「신애론」제8편, 5, 9장)



실제 우리에게 있어,

서원(誓願), 회칙(會則), 장상(長上)의 명령 및 권고등은 천주의 의지의 표시이며,

우리 신분상의 법규(法規)이다.


우리는 이런 것에 관하여 천주께 깊이 감사하여야 한다.

왜냐 하면, 

천주께서는 사랑에 넘치는 배려(配慮)에서,

수도회 및 그 회원에 대하여 매우 자세히 그 의지를 드러내시기 때문이다.



다음에 또한 천주께서는, 

우리 각자에게 영시(靈示)로써, 한층 개인적으로 그 의지를 드러내신다.


「에집트」의 성녀「마리아」는 한장의 성모의 성화(聖畵)를 보고 영시를 받았으며,

성「안또니오」는, 미사성제 중의 복음을 듣고,

성「아우구스띠누스」는 성「안또니오」의 생활을 듣고서,

「간디아」의 공작(公爵)은 여왕의 죽음을 보고,

성「빠고미오」는 애덕의 한 모범을 보고서,

「로욜라」의 성「이냐시오」는 성인전을 읽고서와 같이,

각기 다른 모양으로 영시를 받았다.


요컨대 영시는 매우 다양(多樣)한 방법으로 주어지는 것이며,

그러한 것 중의 어떤 것은,

일상생활을 보통이 아닌 열심으로 완수하도록 격려하는 점만으로

이상한 영시(靈示)라고 간주되지만,

다른 것은

「성교회의 법규, 규칙, 관례(慣例)등과는 다른 행위를 행하게 한다는 점에서 

이상한 영시라고 불리고 있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그런 것은 오히려 감탄스러운 것, 모방해야 할 것은 아니다.


p.35


「즈네브」의 성 주교「프란치스꼬.살레시오」는,

어떠한 표시로써 천주의 영시인지 어떤지를 식별하고,

또한 어떻게 이에 따라야 할 것임을 가르친 후에, 다음과 같이 맺고 있다.


「천주께서는 그 뜻을 영시에 의해서 우리에게 드러내시지만,

그러나 천주께서는 

우리가 받은 영시가 과연 당신의 의지인지 어떤지에 관해서는

우리들 자신의 판단에 의하여 정하기를 바라지 않으시고,

더구나 무분별하게 그것에 따라서 행동하는 것은 물론 바라지 않으신다.


우리는 천주 자신이 그 의지를 우리에게 알려주시는 것이나,

또는 천사를 파견하시어 그것을 알리시는 것을 기대해서는 안된다.


천주께서는 의심스러운 일이나 중대한 일에 관해서는 

우리를 위하여 정해 주신 지도자 밑에 가기를 바란신다.」

(동저 「신애론」제8편 제10장- 제13장 및 「대화편」15장)



끝으로 나는, 

오주 예수 및 모든 성인의 모범과, 성덕에 관하여서의 교시(敎示)와 실례(實例)등은 

천주의 명시의지에 속하고 있는 것이라는 점을 덧붙이고 싶다.


그러나 그러한 것은 

위에 말한 네가지 표시의 어느 것엔가 관련되고 있다는 것을

쉬이 이해할 수 있으리라.


그런데, 우리는 

천주께서 어떻게 하여 소위 그 명시의지를 우리에게 드러내신지를 고찰하였다.

더우기 또한 천주의 임의의지(任意意志)라고 불리는 것에 관해서는,

우리는 그것을 우리 위에 일어나는 일체의 일,

즉, 질병, 죽음, 고뇌, 위안, 역경, 행운 등,

말하자면 예견(豫見)할 수 없는 일체의 일 안에서 찾아내야 한다.

(동저「대화편」제15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