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한위탁

Re:1-2장 하느님의 명시의지(明示意志)와 임의의지(任意意志) ★거룩한위탁

은가루리나 2017. 10. 6. 16:22


moowee 등급변경▼ 조회 475  추천 0  2012.06.12. 18:48



다시 밝혀드리지만, 거룩한 위탁이 번역된 시기는 1960년 대이고

그 당시에 사용되던 용어 중에는 이미 사용되지 않는 용어들이 많기에,

저의 미소한 언어 실력으로 쉽게 풀어 쓰려하니 

분명히 한계가 드러날 수밖에 없으며,

또한 이 책은 수도자까지 염두에 두고 쓰여진 책이기에 

가능한한 평신도들의 수준에 맞는 글들만을 요약하여 

다시 풀어 쓰게 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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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 새국어 사전 :

 명시 - 분명하게 가르킴, 밝힘.  임의 - 자기 뜻대로 하는 일)



하느님의 뜻은 

우리에게 이미 다 명확하게 밝혀진 하느님의 뜻과

아직은 명확하게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 속에는

반드시 이 세상의 주인이신 하느님의 뜻이 숨겨져 있는 것이다.


전자의 명확히 드러난 하느님의 뜻을 '명시의지'라 하고,

후자의 아직 밝히 드러나지 않은 하느님의 뜻을 '임의의지'라 한다.



하느님의 명시의지는 

언어나 문자등에 의해서 일반적으로 명확히 알려졌다.

성경이나 성교회의 법규가 바로 그것이다.


이에 비하여 

하느님의 임의의지는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체의 일,

즉 질병, 죽음, 고뇌, 위안, 역경, 행운 등 예견할 수 없는 모든 일 속에서

더나아가 

우리 자신이나 다른 이의 죄 속에서도 하느님의 뜻을 찾아내야 한다.   


따라서 하느님의 임의의지는 사건의 진전에 따라 나타나게 되는데,

그것은 보통 예견하기 어려우며 사건이 일어나는 동안에도

하느님의 뜻이 명백히 드러나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하느님의 뜻(임의의지)이 명백하지 않을 때에는 가능한 한

하느님의 명시의지에 자신을 일치시키도록 최선을 다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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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장에서는 이 정도만 이해하고 넘어가셔도 충분하리라 생각됩니다.


우리가 보통 '하느님 뜻, 하느님 뜻'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이 '임의의지'를 말하는 것입니다.


누가 "하느님의 뜻은 알다가도 모르겠어!" 라고 말한다면

바로 그것이 하느님의 임의의지를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소위, 엿장수가 엿을 끊어 주는데,

때로는 기분에 따라 많이 끊어주기도 하고 

때론 적게 끊어주기도 하는데

엿장수에게 왜 엿을 이 번엔 적게 끊어 주었냐고 따진다면 

엿장수가 뭐라고 하겠습니까?

"왜! 엿장수 마음이다, 왜!"


엿장수의 마음, 뜻이 엿장수의 '임의의지' 입니다.

엿장수가 엿의 주인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하느님께 자신의 모든 것을 내맡겨 사는 사람은

자신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을 '하느님의 뜻'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사실, 그렇게 할 수 있는 단계에 들어서면,

하느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찾아나서지 않아도 된다고 봅니다.

그다음부터 우리의 신앙생활은 청산유수입니다.

큰 폭포를 만나게 되어도 물은 흘러갑니다, 저 바다로 말입니다.



이해욱프란치스코 13.03.25. 23:26


사랑하는 하내영 여러분!
제가 지금 드리는 말씀을 저엉~말 자~알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하느님의 뜻에 친밀히 '순종'는 것>이 무슨 뜻인지 아십니까?
<하느님의 뜻에 친밀히 순종하기 위해서 어떻게 하는 것>이 제일 탁월한 것인지 아십니까?


<이 것>만 아시면 모든 것이 < 땡 ! >입니다, 적어도 지금까지의 저의 경험으로는 말입니다.


어렵게 생각하지 마시고 떠오르는 생각(느낌)대로 한번 댓글을 달아보시기 바랍니다.

저의 경우에, 제가 생각하기에 
제가 영적성장을 가장 크게 이룬? 가장 큰 이유를 알려드리겠습니다.

오케이축하참잘했어요1등

다른 분들의 답도 다 맞는 답입니다.

그러나, <일어나는 모든 일을 하느님의 뜻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제가 생각하는 가장 정확한 답입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저의 경험으로는,
드 코싸드 신부님이 말씀하시는 <매 순간의 의무>보다 
더 높은 차원의 <순명>이라고 생각합니다.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성인의 <무관심>보다 
훠~얼씬 더 높은 차원의 영성이라고 생각합니다.

일어나는 모든 일을 하느님의 뜻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은
이미 벌써 하느님을 뜨겁게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마음과 목숨과 정신과 힘을 다하여 하느님을 사람하는 사람만이
일어나는 모든 일을 하느님의 뜻으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일어나는 모든 일>이라는 말이 무지 중요한 말입니다.
<모든 일>이란 <제외시키거나 제외됨이 없는 것>을 전제로 하는 말입니다.
즉, 일어나는 모든 일 안에은 <죄까지도 포함되어 있다>는 말입니다.

<굉장히 조심스런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제가 카페 <예수그리스도님처럼>을 설립하여
굉장히 조심스런 이야기와 체험을 나누고자 한 것인데 
그 의도와는 다르게 흘러가고
남의 집 불난 것 구경하기만 하는 구경꾼이 많기에 
예수그리스도님처럼을 폐쇄, 전원강퇴시킨 것입니다.

여기서는 여기까지만 말씀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하여튼,

일어나는 모든 일을 하느님의 뜻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엄청난 영적성장>을 경험하실 수 있습니다.
일어나는 모든 일을 하느님의 뜻으로 받아들이면 
<하느님께서 너무너무 기뻐하십니다>.

다른 사람이 불행으로 여기는 일을 당해도
그 사람 입에서는 그 즉시,

<주님, 참으로 감사합니다, 이 일을 통하여 마음껏 찬미영광 받으소서!>가 
저절로 흘러나옵니다.

생각으로는 누구나 쉽게 이해해도, 
나도 그렇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해도
막상 그런 일이 벌어지면 아무나 할 수 없는 말(기도)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정도(수준)를 판단할 수 있는 좋은 예가 바로,
<일어나는 모든 일을, 하느님의 뜻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죄까지도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