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한위탁

2. p.27-31 제 1편 제 1장 최고의 규범으로서의 천주의 의지 ②

은가루리나 2017. 9. 22. 11:47


옴니아 등급변경▼ 조회 104  추천 0  2014.05.29. 19:33


제1편, 거룩한 위탁의 본질


제1장 최고의 규범으로서의 천주의 의지

제2장 천주의 명시의지와 임의의지

제3장 천주의 명시의지에 대한 순명

제4장 임의의지에 대한 적합

제5장 거룩한 의탁의 개념

제6장 위탁과 현덕

제7장 위탁에 있어서의 願望과 기도

제8장 위탁에 있어서의 노력

제9장 위탁에 있어서의 고통감

제10장 위탁과 희생의 서원



p.27


제 1편 거룩한 위탁의 본질


제 1장 최고의 규범(規範)으로서의 천주의 의지(意志) 




만일 그대가 완덕의 절정에 이르기를 바란다면,

주의 성지(聖旨)를 완수해야 한다.


항상  보다 널리  보다 완전하게 행하라.

그대의 순명이 

그 대상(對象)에 있어 보다 보편적으로,

그 실천(實踐)에 있어 보다 정확하게,

그 동기(動機)에 있어 보다 초자연적으로 되는 만큼,

그대는 그대 자신을 높여갈 것이다.


성경을 펴서 성주(聖主)의 거룩한 말씀과 생애를 살펴봄이 좋을 것이다.

성주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바는 

행위(行爲)에 의하여 확증(確證)되는 신앙(갈라타서5.6, 야고버서2.14이하),

천주의 말씀을 충실히 지키는 사랑(요왕14.15, 21.23, 24-요안 제1서 2.5등)

이외에는 없다는 것을 알리라.

우리는 천주의 뜻을 행하는 정도에 따라 완전한 자가 되는 것이다.



이 점은 매우 중요하므로,

나는 이것을 몇 사람의 권위자의 말을 빌어 확인하려 한다. 



「아빌라」의 성녀「데레사」는 말한다.


사람은 이 위대한 진리를 결코 잊어서는 안된다.

즉 전심(專心)으로 묵상을 시작하려는 이가 오직 열망해야 할 것은

전력을 다하고  모든 수난을 사용하여 

단호히  자신의 의지를 천주의 의지에 일치시키는 것이다.


영적생활에 있어 사람이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완덕이 거기에 있다는 것을

확신하여야 한다.

우리의 진보가,

미지(未知)의 다른 특이한 방법으로 이루어진다고 믿어서는 안된다.


아니, 도리어 우리의 모든 선은 자기의 의지를 천주의 의지에 적합시키는 데 있다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저 「영혼의 성(城)」 제2주거(住居)1 ) 라고.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적합(適合)이란, 가장 광의(廣義)로 해석되어야 할 것이다.



성「프란치스꼬.살레시오역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사람은 모두 자기본위(自己本位)로 완덕을 해석하고 있다.


어떤 이는 완덕이 고복(苦服)에 있다고 하며,

다른 이는 

소식(疎食)이나 시사(施捨)함에, 

빈번히 성사를 받음과 묵상함에,

혹은 일종의 수동적(受動的)인 관상(觀想)에 있다고 하며,

또 어떤 이는,

소위 무상(無償)의 은혜라고 불리는 이상한 은총 안에다 완덕을 두고 있는데,

그들은 모두 잘못 생각하고 있다.


원인과 결과를 본(本)과 말(末)을 뒤바꾸고,

가끔 그림자를 잡아서 실체(實體)로 여기고 있음에 불과하다.


나로서는 진심으로 천주를 사랑하고 

또한 자기에게 가까운 이를 자기와 같이 사랑하는 것 외에 

완덕이 있다는 것은 전연 모른다」라고.


p.28

또한 같은 그 성인은 

다른 곳에서 그 의견을 한층 전개시켜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신심(혹, 완덕)은 사랑의 불에 불꽃을 더하게 하는데 불과하다.

이 불꽃은 계명의 준봉에서 뿐 아니라,

복음의 권고와 하늘로부터의 영시(靈示)를 실천할 경우에도,

사랑에 신속(迅速)과  활발(活潑)과  근면(勤勉)을 부여하는 것이다.」

(「신심생활 입문」제1편 제1장)



또한 로드리게스」신부에 듣는다면, 신부는


덕의 가장 숭고한 가장 완전한 모습은 천주께 대한 사랑인 것과 같이,

천주의 의지에 대한 완전한 복종은, 

사랑의 가장 고귀한, 가장 순수한 표현이며,

말하자면  이 사랑에서 꽃핀 다시 없는 아름다운 꽃이다.


..... 그리고 또한  

천주의 의지처럼 선(善)이시고 또한 완전한 것은 없으므로,

사람은 보다 완전히 이에 자기를 일치시키는데 따라서 성화(聖化)되고, 

동시에 선덕(善德)에 진보한다는 것은 

명약관화(明若觀火)한 일이 아니겠는가

라고 말하고 있다.(「그리스도교적 완덕」제8부 제1장)


p.29


성「알퐁소」의 한 제자인 성「오메르는 성인의 교훈을 요약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완덕을 고행(苦行), 영성체, 염경기도 등의 다수에 있다고 하는 이는 분명히

오류에 빠지고 있다.

이러한 업(業)이 선업(善業)이 되는 것은,

천주께서 이런 것을 바라실 경우에 한 한다는 것이며,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천주께서 그것을 기꺼이 여기시는커녕 

도리어 이를 싫어하시고 또한 벌하신다.


따라서, 

이러한 업은 천주의 의지에 자신을 일치시키는 수단으로서만 소용되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거듭 말하지만, 

모든 완덕, 모든 거룩한 일은, 

천주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을 수행하는데 있다고.


이것을 한마디로 말하면,

천주의 의지는 일체의 선과 성덕과의 규범이시다.

천주의 의지는 거룩하시므로, 일체의 업, 

비록 그것이 자체로서는 선악(善惡)에 무관계한 업일지라도,

천주께서 가납(嘉納)하시기를 바라는 목적으로 행해진다면,

이를 모두 성화(聖化) 하신다.


..... 만일 우리가 자신의 성화를 바란다면, 결코 자기의 뜻을 따라서는 안된다.

항상 천주의 의지에 복종하는 것만에 전념 노력하여야 한다.


왜냐 하면, 천주의 계명도 권고도 모두 

천주께서 바라시는 것을 바라고,

그 행하시는 대로 행하며,

또한 이것을 참아간다는 한 점에 귀착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완덕은,

『천주께서 바라시는 것은 모두 이를 행하며,

천주께서 행하시는 것은 모두 이를 바란다』는 몇 마디로 요약할 수 있다.」

(성「오메르」지음「그리스도교 완덕의 실천」제1장 제2절)



그런데 성「알퐁소자신에게서 듣는다면, 성인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우리의 완덕의 모두는, 

무한히 사랑하여야 할 우리의 천주를 사랑하는데 있다.

그리고 천주에의 완전한 사랑의 일체는,

우리의 의지와 천주의 의지와의 일치에 있다.


..... 그러므로, 

만일 우리가 천주의 마음에 완전히 적응하기를 바란다면,

만사에 있어, 오직 우리를 천주의 의지에 적합시킬 뿐 아니라,

그것에 온전히 일치시켜, 

달리 표현한다면,

마치 두 의지는 이미 하나 뿐이라고 말할 수 있는 점에까지 도달하여야한다.


.....성인들에게는,

천주의 의지를 행한다는 것 이외에 아무런 목적도 없었다.

이는 그들이 그 안에만 영혼의 완덕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주께서는 『다윗』왕을 당신의 마음에 적합한 자라고 부르셨는데,

그것은 

이 위대한 왕이 일마다 주의 의지에 따르겠다는 결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천주의 성모 마리아께서,

모든 성인 가운데서 가장 완전한 분이셨던 것은,

언제나 가장 완전하게 천주의 뜻에 일치하고 계셨기 때문이다.

(성「알퐁소 적합에 관하여」1절)



p.30


모든 성인 중에서 가장 거룩하신 분, 그들의 마음의 천주님,

모든 완전성(完全性)의 모범이신 분 예수.그리스도 은 

사랑과 순명 그 자체이신 것 외에 또 무엇이 있으셨는가.


그 이는 성부와 인류에 대한 뜨거운 사랑 때문에,

무력(無力)한 봉헌물(奉獻物)을 대신하여 

당신 자신을 만민의 희생으로서 바치셨다.


그 이에 대한 성부의 뜻은,

모든 고난과 굴욕에 있어서의 죽으심,

더우기 십자가상의 죽으심에까지 이끄시는데 있었는데,

그 이는 그것을 모두 알고 계셨다.


그 이가 하늘로부터 내려오신 것도,

이 고난에 충만한 더구나 생명이 충만한 성지(聖旨)를 성취하기 위해서였다.

(요왕 6.38)


그 이가 세상에 들어오시자 마자, 성부를 향하여,

나의 천주시여, 당신의 뜻을 이룸이 나의 기쁨이로소이다.

또 당신의 법이 나의 가슴 속에 있도소이다.」(성영 39.7-8) 라고 말씀하셨다.


이 사랑에 넘치는 순명은 「그의 음식」(요왕 4.34)이 되고.

그 사생활(私生活)의 요약이 되며 (루까 2. 51),

그 공생활(公生活)의 영감(靈感)이 되어,

「내가 그 즐겨하시는 바를 항상 행함이로라」(요왕 8.29) 고 

말씀하시기에 이르셨다.


그리고 운명하실 때에, 마쳤다(요왕 19.30) 라는

승리의 외침을 소리높이 발하시기에 이르렀다.


즉 그것은,

성부여, 나 당신을 극도로 사랑하였나이다.

나 속죄의 사업을 완성하였나이다.

그것은 

지극히 사소한 것까지도 남김없이 당신의 뜻을 온전히 성취하였기 때문입니다

라는 의미 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우리의 의지를 천주의 의지에 일치시키는 것, 

이것이야말로 완덕의 절정이다.


우리는 끊임 없이 그것을 동경하여야 한다.

그것이 우리의 일체의 업, 일체의 원망(願望),

일체의 묵상과 기도의 목적이어야 한다.」

(성「알퐁소」「적합에 관하여」1절)


그러므로, 우리는 가장 사랑하올 예수의 모범에 따라,

만사에 있어 성부의 뜻만을 보도록 하자.

우리의 유일한 노력은 온전히 초자연의 동기(動機)에 바탕을 둔,

더 한층의 충실과, 백절불굴의 용기로써, 주의 뜻을 완수하는데 있어야 한다.


이야말로 거보적(巨步的)으로, 성주의 뒤를 쫓아,

영광 안에 그 이의 바로 곁까지 오를 수있게 하는 길이다.


p.31


어느 날,

「도민고」회의 수녀인 복녀스테파니아.손지노는 

탈혼상태 중에 천국에 인도된 적이 있었다.

그는 거기에 세상에서 알고 있던 몇 사람이 

「세라핌」의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그때 성주께서는 ,

그들이 그렇게까지 탁월한 영광을 차지한 것은,

일생 동안 완전히 천주의 의지에 자신의 의지를 일치시켰기 때문이라는 것을

드러내신 것이다. (성 「알퐁소」의 동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