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1편 거룩한 위탁의 본질 ㅡ 21
제1장 최고의 규범으로서의 천주의 의지 - 23
제2장 천주의 명시의지와 임의의지 _ 32
제3장 천주의 명시의지에 대한 순명 _ 41
제4장 임의의지에 대한 적합 _ 53
제5장 거룩한 의탁의 개념 _ 58
제6장 위탁과 현덕 - 69
제7장 위탁에 있어서의 원망(願望)과 기도 _ 74
제8장 위탁에 있어서의 노력 _ 84
제9장 위탁에 있어서의 고통감 _ 92
제10장 위탁과 희생의 서원 _ 101
pp32-40
p.32
제1편
거룩한 위탁의 본질
제2장
천주의 명시의지(明示意志)와 임의의지(任意意志)
①
천주의 의지가 우리에게 나타나는 것은
규범(規範) 및 원동(原動)으로서다.
규범으로서의 의지는
선(善)의 최고의 기준(基準)이며,
각가지 방법에 의해서 드러나 있다.
그리고 이미 말한바와 같이
천주의 의지가 바라시는 것은 모두가 선이며,
바라지 않으시는 것은 아무 것도 선한 것이 없으므로,
우리는 당연히 그 의지에 따라야 한다.
다음에
원동(原動)으로서의 천주의 의지는
만물의 존재와 생명과 활동과의 보편적인 본원(本源)이며,
천주께서 바라시는대로 모든 것이 이루어지고,
바라지 않으시는 것은 무엇 하나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 제일원인(第一原因)에 기인하지 않은 결과는 하나도 없고,
어떠한 활동도, 이 최초의 원동자(原動子)에까지
거슬러 올라가지 않는 것이 없다.
그러므로 무릇 일은 그 대소(大小)를 불문하고,
천주의 무엇인가의 임의의지(任意意志)를 드러내지 않는 것은 없다.
따라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것에 자신을 따르게 하는 것이다
왜냐 하면, 천주에게는
당신의 뜻대로 우리를 자유로이 처리할
절대적권(絶對的權)이 있으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천주의 의지는,
하나는 우리에게 정해진 계명에 의해서,
또 하나는 우리 위에 닥치는 일에 의해서
인식되는 것이므로,
거기에서
천주의 명시의지(明示意志)와 천주의 임의의지(任意意志)의
구별이 생긴다.
역자 註,
여기에 말하는
명시의지는 신학상「라띤」어의 Voluntas signi,
임의의지는 Voluntas beneplaciti의 역이다.
p.33
전자는,
「우리가 천주의 의지에 응하여 믿어야 할 진리 (眞理),
바라야 할 선익(善益), 두려워해야 할 고통스러운 벌,
사랑해야 할 일, 지킬 계명, 따라야 할 권고(勸告)등을
명백하게(미리서) 우리에게 드러낸다.
이러한 것은 모두
천주의 명시의지(明示意志)라고 불린다.
왜냐 하면,
그러한 것은 천주께서 우리에게
믿고, 바라고, 두려워하고, 실천할 것을 바라시는 것을
모두 명백히 드러내시고 계시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의 마음을 이 천주의 명시의지에 적합시킨다는 점은,
성교회가 가르치는대로 믿고,
약속대로 바라며,
위압(威壓)하시는대로 두려워하고,
명하신 바에 복종하며,
권고하심에 따라 사랑하고, 생활하면서,
지선(至善)하신 천주의 의향으로서 제시 된 일체의 것을,
오직 천주의 뜻이라는 이유로 모두 바라는 것에
이루어지는 것이다.」
(성「프란치스꼬.살레시오」「神愛論」제8편 제3장)
「천주의 명시의지는, 이것을
천주십계와 성교회의 법규, 권고, 회칙(會則)과 회헌(會憲)의
네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천주의 십계와 성교회의 법규에 관해서는
사람은 반드시 이것을 지켜야 한다.
왜냐 하면,
그런 것은 천주의 절대적 의지이며,
만일 우리가 구령하기를 바란다면,
반드시 이것을 지킬 것을 천주께서는 바라시기 때문이다.」
「권고에 관해서는,
천주께서는 물론 우리가 이에 따르기를 바라시지만,
그러나 그것이 절대적인 의지에서가 아니라,
단지 그것을 권고하시는데 그친다.
그러므로 비록 권고에 따를 용기가 없어도,
만일 따르지 않는 것이 경멸하는 생각에서가 아니라면,
그것 때문에 사랑을 잃어 천주로부터 떠난다는 일은 없다.
아니, 모든 권고에 따르기를 시도해서는 안된다.
오히려, 다만 자신의 소명(召命)에 보다 잘 알맞는 것에
따라야 한다.
대개 그러한 것 가운데는
서로 상반(相反)하는 것 같은 것이 있기도 하기 때문이다.
..... 그러므로
천주께서 우리에게 따르기를 바라시는 권고에만 따라야 한다.
..... 모든 사람에게 있어
모든 권고를 실천하는 것은 알맞지 않다.
권고가 주어지는 것은 사랑의 완성 때문이므로
사랑은 또한 권고의 규범도 척도(尺度)도 된다.
..... 수도자인 우리들이 실행하여야 할 권고는
회칙(會則)안에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동저「대화편」15장 및 「신애론」제8편, 5, 9장)
실제 우리에게 있어,
서원(誓願), 회칙(會則), 장상(長上)의 명령 및 권고등은
천주의 의지의 표시이며,
우리 신분상의 법규(法規)이다.
우리는 이런 것에 관하여 천주께 깊이 감사하여야 한다.
왜냐 하면, 천주께서는 사랑에 넘치는 배려(配慮)에서,
수도회 및 그 회원에 대하여 매우 자세히
그 의지를 드러내시기 때문이다.
다음에 또한 천주께서는,
우리 각자에게 영시(靈示)로써,
한층 개인적으로 그 의지를 드러내신다.
「에집트」의 성녀「마리아」는
한장의 성모의 성화(聖畵)를 보고 영시를 받았으며,
성「안또니오」는, 미사성제 중의 복음을 듣고,
성「아우구스띠누스」는 성「안또니오」의 생활을 듣고서,
「간디아」의 공작(公爵)은 여왕의 죽음을 보고,
성「빠고미오」는 애덕의 한 모범을 보고서,
「로욜라」의 성「이냐시오」는 성인전을 읽고서와 같이,
각기 다른 모양으로 영시를 받았다.
요컨대
영시는 매우 다양(多樣)한 방법으로 주어지는 것이며,
일상생활을 보통이 아닌 열심으로 완수하도록 격려하는 점만으로
이상한 영시(靈示)라고 간주되지만,
다른 것은
「성교회의 법규, 규칙, 관례(慣例)등과는 다른 행위를
행하게 한다는 점에서 이상한 영시라고 불리고 있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그런 것은 오히려 감탄스러운 것, 모방해야 할 것은 아니다.」
p.35
「즈네브」의 성 주교「프란치스꼬.살레시오」는,
어떠한 표시로써 천주의 영시인지 어떤지를 식별하고,
또한 어떻게 이에 따라야 할 것임을 가르친 후에,
다음과 같이 맺고 있다.
「천주께서는
그 뜻을 영시에 의해서 우리에게 드러내시지만,
그러나 천주께서는
우리가 받은 영시가 과연 당신의 의지인지 어떤지에 관해서는
우리들 자신의 판단에 의하여 정하기를 바라지 않으시고,
더구나 무분별하게 그것에 따라서 행동하는 것은
물론 바라지 않으신다.
우리는 천주 자신이 그 의지를 우리에게 알려주시는 것이나,
또는 천사를 파견하시어 그것을 알리시는 것을
기대해서는 안된다.
천주께서는 의심스러운 일이나 중대한 일에 관해서는
우리를 위하여 정해 주신 지도자 밑에 가기를 바란신다.」
(동저 「신애론」제8편 제10장- 제13장 및 「대화편」15장)
끝으로 나는,
오주 예수 및 모든 성인의 모범과,
성덕에 관하여서의 교시(敎示)와 실례(實例)등은
천주의 명시의지에 속하고 있는 것이라는 점을
덧붙이고 싶다.
그러나 그러한 것은
위에 말한 네가지 표시의 어느 것엔가 관련되고 있다는 것을
쉬이 이해할 수 있으리라.
「그런데, 우리는 천주께서 어떻게 하여
소위 그 명시의지를 우리에게 드러내신지를 고찰하였다.
더우기 또한
천주의 임의의지(任意意志)라고 불리는 것에 관해서는,
우리는 그것을 우리 위에 일어나는 일체의 일,
즉, 질병, 죽음, 고뇌, 위안, 역경, 행운 등, 말하자면
예견(豫見)할 수 없는 일체의 일 안에서 찾아내야 한다.」
(동저「대화편」제15장)
②
p.36
「천주의 의지는
천주께서 직접 그 원동자(原動子)라는 사건 안에서도
이것을 발견하기 어렵지 않다.
왜냐 하면, 그러한 피조물의 활동은,
천주로부터 주어지는 한에 있어서만 생기고,
더구나 저항(抵抗)함이 없이 이에 복종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특히 천주의 의지를 인식하여야 하는 것은,
간난(艱難)에 부딪쳤을 때다.」
(동서 제9편 제2장)
즉 천주께서는,
고난(苦難) 그 자체를 즐기지 않으시지만,
질서(秩序)를 회복시키고, 우리에게 결정을 교정하며
영혼의 질병을 고치고 성화(聖化)하기 위한
훌륭한 수단으로서만 이를 사용하신다.
또한
우리 자신 및 남의 죄 안에도, 천주의 뜻을 찾아내야 한다.
이 경우, 천주께서는
단지 우리가 죄를 범하는 것을 그대로 두시지만,
물론, 그것도 천주의 뜻이라고 간주하여야 한다.
천주께서는 죄의 악성(惡性)을 이루게 하는
죄의 형상적 요소(形想的要素 )에는 협력하시지는 않는다.
아니, 죄를 무한히 증오하시고,
우리에게 그것을 피하게 하시기 위해서는,
당신으로서 하실 수 있는 모든 것을 행하시며,
또한 죄를 비난하시고 징벌하신다.
그러나, 천주께서는
우리에게 부여하신 자유를 사실상 빼앗지 않으시기 위하여
그리고, 우리는 천주의 협력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으므로
우리의 능력의 자연적인 작용에 불과한 바,
행위의 질료적 요소(質料的要素)에 협력하신다.
그 위에
천주께서는 악(惡)에서 선(善)을 이끌어내실 의향으로
우리와 남의 결점을
고행(苦行), 인내(忍耐), 겸양(謙讓), 상호용서(相互容恕)등에 의해서
영혼의 성화(聖化)에 유익하게 되기를 바라신다.
또한 천주께서는,
우리가 형제적 교정(兄弟的矯正)의 의무를 수행하면서,
형제의 까다로운 성격이나, 과실까지도
우리에게 덕을 닦게 하시기 위하여 사용하시는 연장으로 간주하여,
형제를 참아주고,
또한 회칙(會則)이 명하는 대로 형제에게 따르기를 바라신다.
그러므로,
성「프란치스꼬.살레시오」는,
「천주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은,
각별히 우리의 형제에 의해서 이를 드러내신다」 (「대화편」제15 )고,
서슴없이 말하고 있다.
이제
천주의 명시의지(明示意志)와 임의의지(任意意志)와의 사이에 있는
현저한 차이점을 말하겠다.
p.37
1,
천주의 명시의지(明示意志)란,
미리서 우리에게 알려주시는 천주의 의지이며,
이것은 사상(思想)의 통상기호(通常記號)인
언어(言語), 문자(文字)등에 의해서
일반적으로 명료히 알려진다.
우리가 복음서, 성교회의 법규, 거룩한 회칙(會則)을 가지고,
틈 있는대로 그런 것을 펴서 천주의 의지를 읽고,
이것을 명심하며, 또한 이것을 묵상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천주의 영시와 장상의 명령이 예외적(例外的)으로 보이는 것은
표면상(表面上)의 것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실제에 있어, 그러한 것들이 목표로 하는 것은 결국
그리스도교 및 수도회의 성문률(成文律)의 범위에 포함
되어 있기 때문이다.
..... 이에 반하여
「사람은 된 일에 의하지 않으면,
천주의 임의의지(任意意志)를 거의 알 수 없다.」
(「신애론」제9편제6장)
나는 여기에서 거의라고 말하였다.
거기에는 다소의 예외가 있기 때문이다.
즉 천주께서 훗날 행하실 일을, 미리 알리시는 경우에는
사람은 미리서 이를 알 수 있다.
그리고 또한, 사건의 현재의 진행 방법에 의해서 혹은
현명한 처리 또는 부주의에서 초래한 실패 등에 의해서도
천주의 의지를 예감하고, 추측(推測)하며, 예지(豫知)
할 수가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는
천주의 임의의지(任意意志)는
사건의 진전(進展)에 따라 나타나 오는 것인데,
이것은 보통 예견(豫見)하기 어려우며,
더구나 사건이 일어나고 있는 동안에도
천주의 뜻이 명백하지 않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이를테면
천주께서 우리에게 질병, 마음의 건조(乾燥),
혹은 허다한 시련(試鍊)을 부여하실 경우에는,
그러한 것은 천주의 현재의 뜻이다.
그러나 얼마만큼이나 오래 계속되는가,
어떠한 결과에 그칠 것인가 하는 것은,
우리에게는 전연 알 수 없는 일이다.
p.38
2.
우리는 순명으로 천주의 명시의지(明示意志)에 적합할 수도,
또는 불순명으로 회피할 수도 항상 있다.
즉 천주께서는 생사(生死)를 우리의 수중에 두시고,
당신의 계명에 따르는가,
또는 이에 거스르는가의 어느 것이라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심판하실 날까지 우리에게 맡겨 주신다.
이에 반하여
천주께서는 그 임의의지(任意意志)에 의해서는,
우리를 절대로 당신의 지배 밑에 복종시키신다.
즉, 천주께서는 우리의 의견을 구할 필요 없이
때로는 자주 우리의 뜻에 반해서까지
우리를 위하여 선택하신 처지에 우리를 두시고
거기에서 생기는 의무를 수행하도록 촉구하신다.
이 경우,
그러한 의무를 수행하는가 수행하지 않는가,
천주의 임의의지(任意意志)에 따르는가, 거스르는가는
역시 우리에게 가능하지만
천주의 뜻에 의해서 일어나는 일에는,
원하거나 원하지 않거나를 막론하고 복종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세상에는
사건의 진행을 저지(沮止)할 수 있는 어떠한 권능(權能)도 없다.
그로써
천주는 최고의 통치자(統治者), 심판자(審判者)로서
사물의 질서를 회복시키고, 죄를 벌하시며,
또한
성부.구세주로서의 당신에게 우리가 예속해야 할 것임을 기억케 하고,
또한
우리가 의무의 길에서 빗나가 미궁(迷宮)에 빠져 있을 것 같은 경우에는,
우리를 올바른 길에 되돌아서게 하신다.
p.39
3.
그러므로, 천주께서는 명시의지(明示意志)에 대하여
우리 자신의 선택과 결정의 결과로서의 복종을 우리에게 요구하신다.
하나의 계명, 또는 회칙(會則)의 하나를 지키기 위해서도,
또는 대신(對神), 윤리(倫理), 어떠한 덕에 기인하는 일을 하는데도,
우리에게 앞서 우리를 도우시는 은밀한 은총이 필요할 것이다.
이 은총은 항상 기도와 충실에 의해서 얻어진다.
그러나,
천주의 의지가 우리에게 명백히 드러나 있는 이상,
그것을 수행하여야 할 시기가 도달한다면
즉시 자신의 결정에 의해서 이를 행할 것이며
그 밖에 무슨 은총의 감각적(感覺的)인 활동,
즉 고대(古代) 및 근대(近代)의 반정관파(反静觀派)의 사람들이
이에 관하여 말하고 있는 것과 같은,
성신의 특별한 감동을 추호라도 기대할 필요는 없다.
이에 반하여,
천주의 임의의지(任意意志)의 경우에는
천주께서 사건에 의하여 그것을 드러내시는 것을 기다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천주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바를 알 여지는 없는데,
사건에 의하여 천주께서 바라시는 것이 알려지는 것이다.
즉 이로써
첫째는,
그 임의의지(任意意志)에 복종하는 것,
둘째는,
천주께서 우리에게 간택된 각기 경우에 상응한 의무를 완수할 것을
알게 된다.
성「프란치스꼬.살레시오」는
이에 관하여 매우 적절한 주의를 주며,
「많은 일에 있어
천주의 명시의지(明示意志)를 그 임의의지(任意意志)에 합쳐야 한다.」
라고 말하고 있다.
(「신애론」제9편 6장 및「대화편」제2 및 제15, 기타)
그리고 그는, 보기로서 질병의 경우를 들고 있다.
병자는 천주의 섭리에 대한 복종외에,
착한 병자로서의 인내(忍耐), 자아포기(自我抛棄)등과 같은,
의무를 완수하고,
질병을 위하여 당연히 허용되는 예외나 면제(免除)를 제외하고는.
천주의 명시의지(明示意志)가 명하는
모든 계명에 어디까지나 충실하여야 한다.
p.40
거룩한 박사는 위에 말한 점을 특별히 역설하여,
이런 종류의 일에 있어,
「천주의 의지가 아직 명백하지 않을 경우에는,
가능한 한, 힘을 다하여 천주의 명시의지에 자기를 일치시켜,
그에 속하는 모든 일을 주의 깊이 행하여야 한다.
그렇지만,
천주의 임의의지(任意意志)가, 그것과 더불어 나타날 때에는,
즉시 사랑으로 이에 따르며,
일의 유쾌함과 불유쾌함을 불문하고,
또한 생(生)에 있어서도 사(死)에 있어서도,
말하자면 천주의 명시의지(明示意志)에 분명히 거스르지 않는
모든 일에 있어서는,
항상 이에 따를 각오가 있어야 한다.
왜냐 하면, 앞서야 할 것은 천주의 명시의지이기 때문이다.」
라고 말하고 있다.
(「신애론」9편 6장 및 대화편 11 및 15)
위에 말한 것은 다소 무미건조(無味乾燥)하게 생각될 것이다.
그러나 다음의, 여러 문제를 명백히 하기 위하여는
이러한 것을 충분히 이해하고,
이를 깊이 마음에 명심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 * *
■ 내맡긴 영혼은 ■ The abandoned soul
"거룩함"만이 모든 것의 잣대입니다!
지도사제 10.07.05 08:33
하느님의 임의의지는
모든 시대, 모든 사람에 따라 다른 모습으로 드러날 수 있지만
그 결과는 오직 한 가지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善"입니다,
지도사제 12.06.14. 09:42
( 거룩한 위탁 p34,12 ~ p35,11 )
마리아처럼을 거쳐갔던 아주 욜~심한 아줌마 중에
"환시" 를 자주 보며, 환시로 가끔 저의 모습도 본다는
어떤 아줌마에게
너무 그런 환시에 매달리지 말라고
강하게 야그해 드렸던 기억이 납니다.
이 아줌마도 성령의 은사를 받았고,
성령기도회에 매주 도장을 찍는 분이셨는데,
그 아줌마의 글이나 말이나 행동 속에서
가끔 가끔 "교만" 이 튀어나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어떤 사건을 통하여 저에게 야단을 한 번 딥다 맞더니
이곳에서 자퇴를 하시더군요.
"야단과 질책은 하내영들에겐 영약" 임을
잊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지도사제 3.07.20. 15:05
일어나는 모든 일을,
죄까지도 하느님의 이끄심으로 받아들이시기 바랍니다.
하느님은 정말 놀라우신 분이십니다,
당신이 가장 싫어하시는 죄를 통해서도
내맡긴 영혼을 이끌어 주시니 말입니다.
이제 나날이 점점 거룩해져가는 자신의 모습을
확인하게 되실 겁니다, 분명히
지도사제 13.04.13. 22:23
<거룩한 위탁, 내맡김> 없이는
저얼~때로 <하느님 뜻 영성(삶)>을 살 수가 없습니다.
하느님 뜻 영성을 산다는 사람은
<저얼~때로 죄를 지어서는 아니 되옵니다, 절대로!>.
죄를 지으면 하느님 뜻을 벗어나게 되니까요.
오로지 <하느님 뜻대로만 살아야 합니다>.
제가 부족한 저를 내어 맡겨 드리니
어느날 호박이 덩굴째 굴러 들어오더군요.
<하느님 뜻 영성>이 말입니다.
거룩한 내맡김의 영성은 부족한 인간을
<하느님의 이끄심>에 의하여
하느님 뜻 영성으로 인도해 주십니다.
부족함과 죄를 통해서도 가르쳐 주시고
나날이 거룩히 정화시켜주시면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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