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한위탁

제 1편 제 1장. 최고의 규범으로서의 하느님의 뜻

은가루리나 2017. 9. 29. 00:33


moowee 등급변경▼ 조회 554  추천 0  2012.06.09. 21:30




우리의 염원은 '영혼의 구원과 영적생활의 완성'에 있다.

달리 말하자면, 자신을 정화하여 모든 善德에 가까이 나아가 

사랑이신 하느님과 더욱 일치하는 일이 우리 일생의 최대 사업이다.


이 사업은 절대로 우리 인간의 노력만으로는 완성할 수 없는 사업이다.

인간은 하느님의 도우심 없이는 한 가지의 좋은 일조차 생각할 수 없는 존재이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성화와 구원에 반드시 우리의 협력을 필요로 하신다.

하느님의 활동과 우리의 협력, 하느님의 뜻과 우리의 뜻의 

끊임 없는 일치가 필요하다.



하느님께서 우리의 성화를 위하여 활동하실 때에는

당연히 최고의 스승이신 하느님이 이 사업을 지휘하고 이끌어 나가신다.


하느님과의 협동사업에 있어서 

우리가 그분의 협조자가 된다는 것보다 더 탁월한 행복이 또 어디 있겠는가?


더구나 이 협동사업의 결과가 모두 우리의 이익이 된다는 것을 알면,

더욱 그러하지 않겠는가?


이 협동사업에 있어서 하느님이 바라시는 것은 단 하나,

당신의 영광만을 바라시며 그 모든 이익은 온통 우리에게 양도하신다.


하느님께서는 이 협동사업으로 

우리의 人性을 완성시켜 주시고  보다 높은 영적생활로 이끌어 주시어, 

현세에서의 참된 행복과 내세에서의 영원한 복락을 얻게 해 주신다.     


우리가 그러한 하느님의 계획과 우리의 영적 이익을 깨닫는다면,

하느님의 뜻에 대한 완전한 순명 외에는 아무것도 바랄 수 없으며,

"제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십시오."(루카22,42)라고

기도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하느님의 뜻은 모든 선의 최고 규범이다.


하느님의 나라에 초대되기 위해서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을 실행"(마태7,21) 해야 한다.


만일 그대가 완덕의 절정에 이르기를 바란다면 하느님의 뜻을 완수해야 한다.




"사람은 이 위대한 진리를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즉, 전심으로 묵상을 시작하려는 이가 오직 열망해야 할 것은

모든 수단을 사용하여 단호히 자신의 뜻을 하느님의 뜻에 일치시키는 것이다.

영적생활에 있어서 사람이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완덕이 거기에 있다는 것을

확신하여야 한다."(아빌라의 성녀 데레사)


"사람은 모두 자기본위로 완덕을 해석하고 있다.

어떤 이는 고복(苦服, 고통스런 삶)에 있다고 하며,

다른 이는 소식(疎食, 음식을 멀리 함)이나 시사(施捨, 베풀고 버리는 삶)함에,

어떤 이는 빈번한 聖事(성체, 고해성사 등)와 묵상기도에,

혹은 일종의 수동적인 관상(觀想)에 있다고 하며,

또 어떤 이는 무상의 은혜라 불리는 이상한 은총에 완덕을 두고 있는데,

그들은 모두 잘못 생각하고 있다.


나로서는 진심으로 하느님을 사랑하고 또한 자기에게 가까운 이를

자기와 같이 사랑하는 것 외에 완덕이 있다는 것은 전연 모른다."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덕의 가장 숭고하고 가장 완전한 모습은 하느님께 대한 사랑인 것처럼,

하느님의 뜻에 대한 완전한 복종은 사랑의 가장 고귀하고 가장 순수한 표현이며,

하느님에 대한 사랑에서 꽃핀 다시 없는 아름다운 꽃이다.


하느님의 뜻처럼 선이시고 더 완전한 것은 없기에

사람은 하느님의 뜻에 보다 완전히 자신을 일치시키는데에 따라서 성화되고,

동시에 善德에 진보한다는 것은 너무 확실한 일이 아니겠는가?" 

(로드리게스 신부)



"완덕을 고행(苦行), 영성체, 염경기도 등의 다수에 있다고 하는 이는 분명히

오류에 빠지고 있다. 이러한 업(業)이 선업(善業)이 되는 것은,

하느님께서 그것들을 바라실 경우에 한 한다는 것이며,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하느님께서는 그것을 기꺼이 여기시기는 커녕

도리어 이를 싫어하신다.


나는 거듭 말하지만, 모든 완덕, 모든 거룩한 일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을 수행하는데 있다.


이것을 한마디로 말한다면, 하느님의 뜻은 일체의 선과 성덕의 규범이다.

만일 우리가 자신의 성화를 바란다면 결코 자기의 뜻을 따라서는 안 된다.

항상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것을 바라고, 행하시는 대로 행해야 한다.


따라서 완덕은,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것을 모두 행하며,

하느님께서 행하시는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다.""(성 오메르)



"우리의 완덕은 하느님을 무한히 사랑하는 데 있다.

하느님과의 완전한 사랑의 일체는 우리의 뜻과 하느님의 뜻과의 일치에 있다.

두 뜻이 하나가 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 경지에 까지 도달해야 한다.


성모 마리아께서 모든 성인들 가운데 가장 완전한 분이셨던 것은,

언제나 가장 완전하게 하느님의 뜻에 일치하고 계셨기 때문이다."( 성 알퐁소)



"모든 완전성의 모범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내려오신 것도

성부의 거룩한 뜻을 이루시기 위함이셨다.


우리의 뜻을 하느님의 뜻에 일치시키는 것,

이것이야말로 완덕의 절정이다."(성 알퐁소)







우리의 염원은 '영혼의 구원과 영적생활의 완성'에 있다.

달리 말하자면, 자신을 정화하여 모든 善德에 가까이 나아가 

사랑이신 하느님과 더욱 일치하는 일이 우리 일생의 최대 사업이다.


이 사업은 절대로 우리 인간의 노력만으로는 완성할 수 없는 사업이다.

인간은 하느님의 도우심 없이는 한 가지의 좋은 일조차 생각할 수 없는 존재이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성화와 구원에 반드시 우리의 협력을 필요로 하신다.

하느님의 활동과 우리의 협력, 하느님의 뜻과 우리의 뜻의 

끊임 없는 일치가 필요하다.



하느님께서 우리의 성화를 위하여 활동하실 때에는

당연히 최고의 스승이신 하느님이 이 사업을 지휘하고 이끌어 나가신다.


하느님과의 협동사업에 있어서 

우리가 그분의 협조자가 된다는 것보다 더 탁월한 행복이 또 어디 있겠는가?


더구나 이 협동사업의 결과가 모두 우리의 이익이 된다는 것을 알면,

더욱 그러하지 않겠는가?


이 협동사업에 있어서 하느님이 바라시는 것은 단 하나,

당신의 영광만을 바라시며 그 모든 이익은 온통 우리에게 양도하신다.


하느님께서는 이 협동사업으로 

우리의 人性을 완성시켜 주시고  보다 높은 영적생활로 이끌어 주시어, 

현세에서의 참된 행복과 내세에서의 영원한 복락을 얻게 해 주신다.     


우리가 그러한 하느님의 계획과 우리의 영적 이익을 깨닫는다면,

하느님의 뜻에 대한 완전한 순명 외에는 아무것도 바랄 수 없으며,

"제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십시오."(루카22,42)라고

기도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하느님의 뜻은 모든 선의 최고 규범이다.


하느님의 나라에 초대되기 위해서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을 실행"(마태7,21) 해야 한다.


만일 그대가 완덕의 절정에 이르기를 바란다면 하느님의 뜻을 완수해야 한다.


"사람은 이 위대한 진리를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즉, 전심으로 묵상을 시작하려는 이가 오직 열망해야 할 것은

모든 수단을 사용하여 단호히 자신의 뜻을 하느님의 뜻에 일치시키는 것이다.

영적생활에 있어서 사람이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완덕이 거기에 있다는 것을

확신하여야 한다."(아빌라의 성녀 데레사)

 

"사람은 모두 자기본위로 완덕을 해석하고 있다.

어떤 이는 고복(苦服, 고통스런 삶)에 있다고 하며,

다른 이는 소식(疎食, 음식을 멀리 함)이나 시사(施捨, 베풀고 버리는 삶)함에,

어떤 이는 빈번한 聖事(성체, 고해성사 등)와 묵상기도에,

혹은 일종의 수동적인 관상(觀想)에 있다고 하며,

또 어떤 이는 무상의 은혜라 불리는 이상한 은총에 완덕을 두고 있는데,

그들은 모두 잘못 생각하고 있다.


나로서는 진심으로 하느님을 사랑하고 또한 자기에게 가까운 이를

자기와 같이 사랑하는 것 외에 완덕이 있다는 것은 전연 모른다."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덕의 가장 숭고하고 가장 완전한 모습은 하느님께 대한 사랑인 것처럼,

하느님의 뜻에 대한 완전한 복종은 사랑의 가장 고귀하고 가장 순수한 표현이며,

하느님에 대한 사랑에서 꽃핀 다시 없는 아름다운 꽃이다.


하느님의 뜻처럼 선이시고 더 완전한 것은 없기에

사람은 하느님의 뜻에 보다 완전히 자신을 일치시키는데에 따라서 성화되고,

동시에 善德에 진보한다는 것은 너무 확실한 일이 아니겠는가?" 

(로드리게스 신부)



"완덕을 고행(苦行), 영성체, 염경기도 등의 다수에 있다고 하는 이는 분명히

오류에 빠지고 있다. 이러한 업(業)이 선업(善業)이 되는 것은,

하느님께서 그것들을 바라실 경우에 한 한다는 것이며,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하느님께서는 그것을 기꺼이 여기시기는 커녕

도리어 이를 싫어하신다.


나는 거듭 말하지만, 모든 완덕, 모든 거룩한 일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을 수행하는데 있다.


이것을 한마디로 말한다면, 하느님의 뜻은 일체의 선과 성덕의 규범이다.

만일 우리가 자신의 성화를 바란다면 결코 자기의 뜻을 따라서는 안 된다.

항상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것을 바라고, 행하시는 대로 행해야 한다.


따라서 완덕은,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것을 모두 행하며,

하느님께서 행하시는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다.""(성 오메르)



"우리의 완덕은 하느님을 무한히 사랑하는 데 있다.

하느님과의 완전한 사랑의 일체는 우리의 뜻과 하느님의 뜻과의 일치에 있다.

두 뜻이 하나가 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 경지에 까지 도달해야 한다.


성모 마리아께서 모든 성인들 가운데 가장 완전한 분이셨던 것은,

언제나 가장 완전하게 하느님의 뜻에 일치하고 계셨기 때문이다."( 성 알퐁소)



"모든 완전성의 모범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내려오신 것도

성부의 거룩한 뜻을 이루시기 위함이셨다.


우리의 뜻을 하느님의 뜻에 일치시키는 것,

이것이야말로 완덕의 절정이다."(성 알퐁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