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한위탁

5. p.41-44 제 1편 제 3장 천주의 명시의지(明示意志)에 대한 순명 ①

은가루리나 2017. 10. 15. 02:06


옴니아 등급변경▼ 조회 58  추천 0  2014.06.18. 23:14


제1편, 거룩한 위탁의 본질


제1장 최고의 규범으로서의 천주의 의지

제2장 천주의 명시의지와 임의의지

제3장 천주의 명시의지에 대한 순명

제4장 임의의지에 대한 적합

제5장 거룩한 의탁의 개념

제6장 위탁과 현덕

제7장 위탁에 있어서의 願望과 기도

제8장 위탁에 있어서의 노력

제9장 위탁에 있어서의 고통감

제10장 위탁과 희생의 서원



p..41


제 1편 거룩한 위탁의 본질


제 3장 천주의 명시의지(明示意志)에 대한 순명 




나는 이미 천주의 의지는 일반적으로 유일, 최고의 규범이며,

사람이 그것에 적합하면 할수록 점점 완덕에 나아가는 이유를 명백히 하였다.


비록 어느 방법에 의해서 우리에게 온다 할찌라도,

그것이 천주의 명시의지(明示意志)이건, 또는 임의의지라 해도,

어느 것이나 항상 천주의 의지, 거룩하고, 흠숭하여야 할 천주의 의지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성성사업(成聖事業)은 실로 이 양자에의 충실성에 달려 있다.


그러나 천주의 임의의지(任意意志)에 관해서는 잠시 멈추고

우선 천주의 명시의지에 대하여 전심(全心)으로 자신을 이에 애착시키고,

또한 우리의 전생애(全生涯)에 걸쳐,

이를 완덕에의 노력의 근본으로 하여야 할 것의 중대성과 긴요성을 

더욱 명백히 하여 보자.


그리고 이처럼 명백한 진리를 거듭 역설하는 이유에 관해서는

본장(本章)의 끝에 말하겠다.



천주의 명시의지는 우선 

천주의 십계와 성교회의 법규 및 우리의 신분상의 의무를 포함하고 있다.


우리는 첫째로, 

부단하고 주도(周到)한 충실성으로써 이러한 것에 따라야 한다.

이것은 영적생활(靈的生活)의 기본이다.

가령 이것을 제거해 보라.

영적생활의 온 건축은 즉각 무너지고 말것이다.



현자(賢者)는 말한다.

「천주를 두려워하고 그 계명을 지키는 것은 바로 이것이 사람의 모든 것이니라」

(집회서 12.13 )고.

사람은 아마도 여분의 일이 의무적인 것보다도 우리를 더욱 거룩케 한다고

상상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확실히 그릇된 견해이다.

성「토마스」는 

무엇보다도 먼저 완덕은 계명을 충실히 실천하는데 있다고

설파하고 있다. (성「토마스」의 「신학대전」2.2. 184문 3항)


더우기 천주께서는 우리가 의무를 소홀히 해서까지 여분의 일을 하는 것을 

기꺼이 여기신다는 점은 결코 없다.

왜냐 하면, 그렇게 하는 것은 천주의 의지 대신에,

인간 자신의 의지로써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천주의 명시의지(明示意志)는, 다음에 권고를 포함하고 있다.

우리가 자신의 소명(召命)과 신분(身分)에 응하여 권고에 따르면 따를수록

그 권고는 

우리를 천주이신 스승, 

즉 지금은 우리의 벗, 영혼의 정배(淨配)이며, 

다음 날 우리의 최고의 심판자도 되실 분에게 

보다 잘 닮도록 하시리라.


p.42


권고는 또한 가장 천주의 마음에 맞갖는 덕인 

유화(柔和)와 겸손(謙遜), 정신과 의지와의 순명, 

동정적 순결(童貞的純潔), 유의적 청빈(有意的淸貧), 완전한 이탈(離脫), 

희생(犧牲)과 자아포기(自我抛棄)와 무아(無我)에 이르기까지

헌신(獻身)등을 우리에게 행하게 한다.


따라서 우리는 거기에 공로와 성덕과의 풍부한 보물을 발견할 것이다.

더우기 또한, 권고를 충실히 지킨다면, 

우리는 애덕의 열심을 냉각시키는 것같은 중대한 장애(障碍), 

애덕 그 자체의 존재까지도 위태롭게 하는 것과 같은

위험도 제거될 것이다.


요약한다면, 권고는 계명을 옹호(擁護)하는 성벽(城壁)이다.

「요셉.드.매스뜨르」의 말에 의하면,

「족하다는 것은 부족하다는 것이다. 

허용된 것을 모두 하려고 바라는 이는,

미구에 허용되지 않은 일에도 손을 대게 될 것이다.

다만 해야 할 것만을 행하는 이는 미구에 그것을 이미 완전히 하지 않을 것이다.」


p.43


끝으로 명시의지(明示意志)는 은총의 영시를 포함하고 있다.

「도스다」신부는 말한다.

「이러한 영시는 영혼에게 선을 드러내고 

또한 그 실행을 고무하는 빛과 열을 투사하는 거룩한 광선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영시(靈示)는 실로 특히 어느 영혼에 대한 천주의 총애의 보증이며,

이것은 각가지 모양으로 주어진다.


그것은 때에 따라 매력(魅力), 자극(刺戟), 견책(譴責), 양심(良心)의 가책,

유익한 두려움, 천상적 감미(天上的甘味), 마음의 비약(飛躍)

어떤 선덕(善德)의 실천에의 감미로운 

더구나 강한 부르심이 되어 교대로 주어진다.


순진한 내적인 영혼은 가끔 이 영시를 느낀다.

그런 경우, 그들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감사와 충실로써 이에 따른 것이다.」

(「천주와의 일치」제4편 제6장)


과연 영시는 우리에게 그렇게도 귀중한 도우심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실로 사도 성「바오로」가 

「너희는 성신을 끄지 말지니라.」(뎃살로니카전서5.19)


즉, 은총이 우리 마음을 움직이는 경건한 감동을 물리치지 말라고 말한 것은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천주의 명시의지가 우리를 지배하고 우리에게 권고와 영시를 주는 것이,

우리의 전생애(全生涯)에 미친다는 것은 재언할 필요가 없으리라.


우리는 어디까지나 천주의 권위를 존중하여야 한다.

천주의 뜻에 의해서 주어지는 은혜를 업신 여길 정도로,

우리는 결코 부유하지 않다.


천주의 명시의지(明示意志)를 충실히 지키는것,

이것이야말로 우리의 본성을 억제하고,선덕을 함양(涵養)하는 보통의 수단이다.

그런데 본성은 죽지 않고서도, 우리의 덕은 끊임 없이진보할 수 있다.


만일 우리가 1천년을 살게되어 

그 1천년 동안 꾸준히 덕의 길에 정진(精進)하였다해도

주께 더욱 닮기 위하여는 

또한 하늘에 계신 성부와 같이 완전하게 되기 위해서는

아직도 무한히 해야할 일이 항상 남아있으리라.


p..44


나는, 수도자에게 있어, 

서원(誓願)과 회칙(會則)과 장상(長上)의 지도가

천주의 명시의지의 주요한 표현이며, 일생동안 지켜야 할 의무이고

또한 완덕에의 길이라는 점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