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한위탁

6. p.44-47 제 1편 제 3장 천주의 명시의지(明示意志)에 대한 순명 ②

은가루리나 2017. 11. 1. 13:07


옴니아 등급변경▼ 조회 96  추천 0  2014.06.25. 19:28


제1편, 거룩한 위탁의 본질


제1장 최고의 규범으로서의 천주의 의지

제2장 천주의 명시의지와 임의의지

제3장 천주의 명시의지에 대한 순명

제4장 임의의지에 대한 적합

제5장 거룩한 의탁의 개념

제6장 위탁과 현덕

제7장 위탁에 있어서의 願望과 기도

제8장 위탁에 있어서의 노력

제9장 위탁에 있어서의 고통감

제10장 위탁과 희생의 서원



p.44


제 1편 거룩한 위탁의 본질


제 3장 천주의 명시의지(明示意志)에 대한 순명 




우리의 회칙(會則)은 하나의 절대적으로 확실한 지도자다.

수도생활은 「주께 봉사하는 학교」(성「분도」「계율」서언)이며,

이 비할 바 없는 학교에 있어,

천주 자신이 우리의 스승이 되시어 우리를 가르치시고 양성하시며,

순간마다 우리에게 그 뜻을 드러내시어, 

그 봉사의 길을 자세히 드러내신다.


우리가 해야 할 고행(苦行)과 관상(觀想)의 업,

그리고 각가지 수업(修業)을 각자에게 드러내시는 이는 천주 자신이며,

이로써 천주께서는 신심(信心), 겸손(謙遜), 형제적 사랑,

그 밖의 덕을 우리에게 행하게 하도록 하신다.


그리고 또한, 천주께서는 우리의 순명으로, 

당신에게 있어서는 감미로운 것,

우리에게 있어서는 

결실을 풍성케 하시는 내적태도(內的態度)에까지 지시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프란치스꼬.살레시오」가 말한 것처럼,

「천주께서 우리에게 비밀의 영시와 시현(示現)과 탈혼(脫魂)에 의해서,

그 뜻을 드러내실 필요가 어디에 있겠는가.

우리에게는 훨씬 확실한 광명, 

회칙 및 장상의 지도에 대한 거룩한 순명이라는

가장 바람직한 길이 있지 않은가.」(「대화편」3)


다른 곳에서 성인은 또한 말하고 있다.


나의 딸들이여,

그대들은 세속에 있는 우리에게 비하면 얼마나 행복한가.

우리가 길을 물었을 때,

어떤 이는 바른쪽이라고 말하며, 어떤 이는 왼쪽이라고 대답한다.

그래서 결국 우리는 자주 그릇된 길에 인도되어 버린다.


그대들은 그와는 반대로 견고한 배에 타고 있다는 마음으로,

가는대로 맡기고 있으면 된다.

그대들이 걷고 있는 길은 안전한 길이다.

걱정할 필요 없이 나아감이 좋다.


그대들의 거룩한 나침반(羅針盤)은 주 자신이시며, 

그대들의 배는 회칙(會則)이다.

그리고 그것을 인도하는 것은 장상(長上)이다.

그들은 그대들을 향하여 이렇게 말하는 것이 보통일 것이다.

「끊임 없이 회칙이 명하는 대로 걸어가라.

그러면 그대들은 행복하게  천주께 이를 것이다.」라고.


이에 대하여 그대들은

「회칙에 따라서 걷는 것은 좋은 일임에 틀림없다.

그렇지만 그것은 일반적인 길이며,

천주께서는 우리를 각기 특별한 매력으로써 이끄시므로,

모두가 동일한 길에 의해서 인도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할지 모르겠다.

물론 일리가 있으리라.

그러나 그 매력이 천주로부터 온 것이라면 

그것은 의심할 여지없이 그대들을 순명으로 이끄실 것이다.(동서 110)


p.45


우리의 회칙은 정화(淨化)의 커다란 통상수단(通常手段)이다.

실로 순명은 우리에게 

무수한 극기(克己)와 더우기 자기의 판단(判斷)과

자기 의사(意思)와의 포기의 기회를 부여하여,

우리를 지상의 것으로부터 이탈(離脫)시켜, 

점차로 정화(淨化)시키는 것이다.


왜냐 하면,

성 「알퐁소」가 말한 것처럼, 자기 의사(意思)는

「선덕을 멸하는 것, 모든 악의 근원, 

죄와 불완전성(不完全性)과의 유일한 문, 최대의 악마, 

수도자에 대한 유혹자의 의기양양한 무기, 그 노예의 사형집행자,

현세에서의 지옥」이기 때문이다.(「수도자의 성화」제7장 1절)



성「보나벤뚜라에 의하면,

「수도자의 모든 완전성은 자기 의사의 포기 안에 있는 것이며,

이 포기에는 순교(殉敎)와도 같은 가치가 있다.

형리(刑吏)의 도끼가 희생자의 목을 베어 떨어뜨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순명의 칼은 영혼의 목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 의지를 죽여 

천주께 바치는 것이다.」(동서 제7장 2절)


p.46


우리의 회칙은 또한 천국을 위한 무진장(無盡藏)한 광산(鑛山)이며,

수도생활의 참된 재보(財寶)이다.

실제, 순명에 거스른다면, 

거기에는 이미 죄와 불완전함이 있을 뿐 이다.

순명이 없이는 최량(最良)의 것도 그 가치를 상실하고,

순명에 의해서는 금해지지 않는 것은 모두 덕이 되며, 

좋은 것은 보다 좋은 것이 된다.

「순명은 영혼 안에 모든 선덕을 끌어넣어, 그것을 거기에 간직케 한다.」

(성「알퐁소」의 동서)


이렇게 하여 순명은 더욱 선덕의 행위를 증대(增大)시켜,

우리의 순간을 모두 거룩케 하며, 우리의 본성에 아무 것도 남기지 않고,

모든 것을 천주께 돌리는 것이다.



성「벨라도」 아름다운 말을 인용한다면,

「주께서는 죽으심에 이르기까지 순명하셨을 정도로 이 덕을 존중하시고,

순명을 잃는 것보다는 오히려 생명을 잃으실 것을 택하신 정도이다.」

(「성전의 기사회 수사에 대하여」13)


모든 성인들 역시 

그처럼 주의 마음에 맞갖은 이 귀중한 덕을 다투어 찬양하고,

가장 유의하여 그 함양(涵養)에 노력하였다.


「요왕」영부(靈父)는 천주의 어전에 나아가기 전에,

「자신은 나의 의지에 의하여 행동한 것은 결코 없었다」

라고 말할 수 있었다.


성「도시테오」는 황야(荒野)의 가혹한 고행(苦行)을 행할 수는 없었지만,

5년 동안의 완전한 순명의 생활 후에, 

영광스러운 높은 지위에까지 올려졌다.


성「요셉.갈라상시오」

「순명하는 한사람의 수녀는 그 수녀원의 보석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바찌」의 성「마리아.막달레나」에 있어서는,

회칙에 순명한다는 것이, 영원한 구령과 완덕의 가장 올바른 길이었다.


성「알퐁소」는 또한 말을 이어,

순명은 수도생활에 있어서의 구령 및 완덕에의 유일한 길이며,

이는 다른 것으로 바꿀 수는 없다.

..... 완전한 수도자인지 아닌지의 구별은 각별히 순명에 있다.」

라고 말하였다. (「수도자의 성화」제7장 2절 및 4절)


또한 「누가 만일, 한사람의 은둔자(隱遁者)가 

그 신분을 떠나 커다란 죄악에 떨어지는 것을 본다면,

이 불행은 그가 스스로 자기를 지도하려는데 기인하고 있었음을 알아야 한다.

실제, 자기의 정신에 따르며,

자신의 빛으로 걸으려는 것보다 위험한 그리고 유해(有害)한 것은 없다

(「사막의 성부의 생활」제3부) 라는 것은 성「도로테오」의 교훈이다.


p.47


「아빌라」의 성녀「데레사」는 말한다.

「최고의 완덕은, 결코 

내심(內心)의 위안, 뛰어난 탈혼상태(脫魂狀態), 

시현(示現)예언(豫言)등의 은혜 가운데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천주께서 바라시는 모든 것을 진심으로 받아 간직하고,

또한 천주의 뜻이라고 깨달았을 때에는,

단 것도 쓴 것도 모두 기꺼이 받아들일 정도로, 

우리의 의지를,

친밀하게 천주의 의지에 일치 복종시키는 가운데 있는 것이다」라고.


이어 성녀는 각가지 이유를 말하고 나서 덧붙여 말하고 있다.

「악마가 그렇게도 우리에게 순명의 덕을 증오케 하는 것은,

이 덕이 완덕의 결정에 가장 신속하게 우리를 이끄는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나는 확신하고 있다.」


성녀는, 

순명에 의해서 몸에 지나칠 정도의 임무가 부과되어 있는 몇 사람을 

알고 있었는데, 

몇년 동안의 부재후(不在後), 다시 그들을 만났을 때,

그들이 영적생활의 길에 놀랄만큼 진보하고 있음을 보고 외쳤다.


「참으로 복되도다, 순명의 덕이여!

순명이 방심(放心)을 부득이 하게 하는 경우에도 역시 복되도다!

그것은 영혼을 그렇게도 높은 완덕의 영역(領域)에 이르게 하기 때문이다.」

(성「데레사」저「창립」제5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