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상의 책_맡김

제5일 나의 뜻을 봉헌함(맡김)

은가루리나 2017. 10. 18. 22:40


16-37 맡김은 거룩하신 뜻과 함께 날기 위한 날개를 이룬다.


2 "딸아, 내 뜻은 만물의 생명이며 활동이다.

한데 너는 알고 있느냐?

누가 내 뜻의 활동에 따라 내 영원한 의지 안을 날아다니는지. 

곧 내 뜻이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지 간에 

영원의 영역 안에서  이 뜻이 행하는 대로 행하며 돌아다니는지를?

그것은 내 거룩한 뜻 안에 자신을 완전히 맡긴 사람이다.

맡김은 내 뜻과 함께 날기 위한 날개다.

이 맡김을 그치면 못 날게 되고 날개는 망가진다.



20-25 하느님께서 피조물에게 주신 최초의 유산.


2 "딸아, 네가 지극히 높으신 의지 안에 너를 맡기면 맡길수록 

이 의지의 길에서 그만큼 더 진보하고, 더 많은 지식을 얻으며,

하느님의 뜻 안에 있는 재산을 그만큼 더 많이 소유하게 된다.

하느님의 뜻 안에는 알아야 할 것과 취해야 할 것이 언제나 있는 까닭이다.



17-6 창조주의 거룩함의 표징과 모습을 지닌 성덕.

13 그러니 주의를 기울여라. 

네가 모든 권리를 지고한 뜻에 맡기면, 

내가 내 뜻 안에서 사는 성덕을 네 안에서 계속 길러 주겠다.(이상은 천상의 책에서)




위의 천상의 책에 쓰여진 예수님의 말씀처럼

첫걸음을 통하여 계속해서 하느님 앞으로 걸음을 걸어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걸음을 멈추어서는 아니 되는 것입니다.

날개를 계속 저어야 하는 것입니다.


반드시 지속적인 내맡김이 필요합니다.

내맡김이 생활화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느님 뜻 안에 사는 삶(영성)"이란 도대체 어떤 삶을 말하는 것입니까?


저는 다음과 같이 생각합니다.


"거룩한 내맡김의 삶(영성)"이

죄 속에서도 '지속적인(끊임없는) 내맡김'에 의한 '하느님의 이끄심'으로

"점점 죄에서 벗어나 마침내는 완전히 죄를 벗어난 삶"으로 변화되어 가는 삶







17-14,6 그러면 

하느님의 뜻 안에서 사는 것의 첫걸음은 무엇을 하는 것이겠느냐? 

그것은 영혼 깊은 곳에 신적 질서를 확립하면서 

나쁜 경향이나 격정이나 기호 따위 인간적인 것을 비우는 것이다. 


17 그러니 그들이 알아듣지 못하는 것을 보더라도 너는 이상하게 여길 것 없다. 

이를 알아들으려면,

거룩한 일에서조차 자기의 뜻에는 생기를 불어넣지 않으려고 하는 

최대의 희생을 치를 각오가 서 있어야 한다. 

그러면 그들도 내 뜻의 소유를 실감할 것이고, 

내 뜻 안에서 사는 것의 의미를 손으로 직접 만져 보는 느낌이 들 것이다. 



15-22,16 이런 이유로 너에게, 

끊임없이 나의 뜻 안으로 날아올라라.’ 하고 늘 말하곤 하는 것이다. 

인간의 뜻 안에는 나약과 격정과 비참이 들어 있어서 

나의 영원한 의지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방해하는 장막이 되기 때문이다. 

더욱이 대죄들도 있다면, 

이것이 하느님과 인간의 뜻 사이를 가로막는 장벽이 되는 것이다. 


17 그리고 나의 ‘피앗’(Fiat)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다스릴 수 없는 것은 

바로 이것이 (곧 인간의 뜻이) 그것을 가로막기 때문이다. 



23-11,12 단, 사람들이 이(하느님 뜻의 나라)를 알고 

그 선들에 대해서도 알기를 바라고 있다. 

앎으로써 

거룩함과 빛과 행복의 이 나라를 열망하며 소유하고 싶어 하게 하려는 것이다. 

이 나라를 배척한 것이 하나의 뜻이었던 것과 같이, 

이 나라를 부르고 갈망하면서 

사람들 가운데로 다시 와서 다스리시기를 촉구하는 것도 

또 다른 하나의 뜻일 수 있는 것이다. 


13 여기에 내 뜻의 나라에 대한 지식의 필요성이 있다. 

어떤 선이라도 그것을 알지 못하면 원할 수도 좋아할 수도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식이 바로 내 나라를 알릴 전달자요 선구자인 셈이다. 


14 이제 나의 ‘피앗’에 대한 지식이 

때로는 태양같이, 때로는 천둥같이, 

때로는 번갯불같이, 때로는 드센 바람같이 나타나서, 

배운 사람이나 무지한 사람이나 선한 사람이나 악한 사람까지도 주목하게 되리니, 

그것이 벼락같이 그들의 마음을 치고, 

저항할 수 없는 힘으로 그들을 때려눕힐 것이다. 

그들로 하여금 지식을 얻게 된 은혜 안에서 다시 일어서게 하기 위함이다. 


15 이는 세상의 참된 쇄신을 이룰 지식이니, 

사람들의 마음을 끌어당기고 정복하기 위해서 온갖 태도를 취하게 될 것이다. 

때로는 화해의 중재자 같은 태도로, 

사람들이 과거를 다 잊고 

서로 사랑하며 서로를 행복하게 하는 것만을 기억하도록 

입맞춤을 주고받게 하고, 때로는 승리를 확신하는 전사와 같이, 

이 지식을 알려고 오는 이들을 확실히 정복할 것이다. 


16 그런가 하면 끊임없이 기도하는 사람의 태도를 취하기도 할 것이다. 

사람들이 내 거룩한 뜻에 대한 지식에 굴복하면서, 

당신이 이겼습니다. 우리는 이제 당신 나라의 전리품이 되었습니다.’ 

할 때가 되어야 비로소 간구하기를 그치는 사람 말이다. 

때로는 왕으로서 다스리며 사랑을 고취하여 

사람들이 이마를 숙이고 그 지배하에 들어오게 할 것이다. 




14-37,5 내 뜻은 스스로 소유한 것을 내어 주기를 원한다. 

그러나 그럴 기회를 줄 사람을 계속 찾고 있다. 

이는 받을 채비가 되어 있는 사람, 

즉, 자기 영혼 안에 

나의 이 새로운 기쁨을 넣어 둘 작은 자리를 마련하는 사람을 말한다. 


6 사람은 내 뜻을 실행함에 의해 내 의지의 문을 열고, 

자기 자신의 의지를 비움에 의해 

내 선들을 넣어 둘 작은 자리를 내게 마련해 주게 된다. 

그리고 내 뜻 안으로 들어와 활동함에 따라 새로운 지복을 쏟아낼 기회를 내게 준다. 


7 따라서 나는 내 영원한 의지 안에 들어와 활동할 영혼을 고대하고 있다. 

나 자신으로부터 새로운 기쁨을 쏟아내기 위함이요, 

내 뜻을 실행하는 이에게 언제나 무엇인가를 주는 하느님인 나를 

― 아무리 퍼 주어도 말라 없어지지 않는, 

있는 그대로의 하느님인 나를 알리기 위함이다.





제5일 나의 뜻을 봉헌함(맡김)




“너의 아들, 네가 사랑하는 외아들 이사악을 데리고 모리야 땅으로 가거라. 

그곳, 내가 너에게 일러 주는 산에서 그를 나에게 번제물로 바쳐라.” (창세 22,2)


“내가 이 사람들을 위하여 이 몸을 아버지께 바치는 것은 

이 사람들도 참으로

아버지께 자기 몸을 바치게 하려는 것입니다."(요한 17, 19-공동번역) 


"주님, 저를 받으소서. 

저의 모든 자유와 저의 기억과 지력과 모든 의지와 

제게 있는 것과 제가 소유한 모든 것을 받아들이소서. 

당신이 제게 이 모든 것을 주셨나이다. 

주님, 그 모든 것을 당신께 도로 드리나이다. 

모든 것이 다 당신의 것이오니 온전히 당신의 의향대로 그것들을 처리하소서. 

제게는 당신의 사랑과 은총을 주소서. 이것이 제게 족하나이다.?(성 이냐시오)


자신의 뜻을 버리고 하느님의 뜻을 소유하려면 자신의 뜻을 봉헌해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우리의 뜻을 당신께 봉헌하는 것을 원하십니다. 

우리가 주님을 신뢰하면서 

우리의 뜻, 마음, 자신을 봉헌하면 

주님께서는 우리를 격정에서 해방시켜 주시고 점점 정화시켜 주시며 

당신의 것으로 채워주십니다. 




1. 봉헌을 원하시는 주님 



1-5,4 너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네 말은 맞다. 

그러나 걱정하지 말아라. 

내가 너를 위해서 무엇이든지 할 테니까, 

너는 그저 네 뜻(의지)을 내게 주기만 하면 된다. 

내게 필요한 것은 그것뿐이다.


1-20,18 죽은 사람처럼 잠자코 너 자신을 내 팔에 맡겨 보아라.


1-69,5 얘야, 너의 마음을 내게 다오. 그것은 나의 소유이다. 

네 마음을 내게 주고자 한다면, 설사 사랑이 없는 냉정한 마음이라 하더라도, 

나는 그 보답으로 네가 원하는 모든 것을, 그리고 나 자신도 주겠다. 

그 마음을 내 마음의 열기로 뜨겁게 타오르게 하여 

네 안에 있는 세속적인 애착을 모조리 살라버리게 해 주겠다. 


3-28,3 딸아, 작은 자들만이 내가 원하는 대로 다루도록 그들 자신을 맡긴다

인간적인 기준에서 작은 자들이 아니라 신적인 기준에서 작은 자들 말이다. 


4-128,1 딸아, 하느님을 온전히 소유하고자 하는 사람은 

그분께 자기 자신을 온전히 바쳐야 한다. 


8 예수 그리스도의 모든 것을 소유하고자 하는 사람은 언제나, 

자기의 모든 것을 예수 그리스도에게 바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8-1,3 딸아, 

가장 아름답고 내 마음에 드는 행위는 내 뜻 안에 자신을 내맡기는 행위이다. 

그것도 자신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오로지 하느님의 뜻만을 기억할 정도로 맡기는 행위 말이다. 

자신의 죄에 대한 통회도 훌륭하고 기특한 행위이긴 하지만 

그것이 그 자신의 존재(에 대한 기억을) 없애지는 못한다.


8-42,2 딸아, 나는 붓을 찾고 있다. 

이 붓은 곧 너의 의지인데 이것으로 

내가 네 마음 안에 나의 모습을 그려 넣으려는 것이다.

사실, 네가 네 의지를 나에게 주지 않으면 

나는 붓이 없어서 네 안에 나 자신을 마음대로 그려 넣을 수 없다. 


11-12,2 딸아, 사람들은, 

중요한 것은 

오직 자기를 온전히 나에게 주고 

모든 것 속에서 늘 내 뜻을 행하는 데에 있다는 사실을 알아들으려고 하지 않는다. 


11-36,8 그러기에 나는 내 뜻 안에서 너의 전부를 원한다. 

네가 나의 모든 선에 참여하고자 한다면 말이다. 


11-48,7 네가 더 이상 너 자신을 느끼지 않도록 내 안에 맡기기 바란다. 

나도 너를 너로 알아보지 않고 다만 네 안에 있는 나 자신만을 보게 되도록 말이다. 


16-23,37 그러니 나의 뜻 안에 자기를 온전히 맡기고 이 뜻을 너의 것으로 삼아라. 




2. 내 뜻, 내 마음을 봉헌함 



1-26,7 주님께서 안식과 기쁨을 찾아내실 수 있도록 제 마음을 온전히 봉헌합니다. 

불행히도 제 마음은 아직 악의 소굴 같지만, 

주님의 은총이 효과적으로 이를 정화시켜 주시면 

주님께서 원하시는 마음이 될 태세로 있습니다. 


1-69,13 예, 주님, 당신께 제 마음과 온 존재를 다 드리겠습니다. 

망설임 없이 드리겠습니다. 

단, 더 좋은 선물로 드리고 싶사오니, 

먼저 저의 냉랭한 마음에서 당신 것이 아닌 것은 모조리 없애게 해 주십시오. 

그러니 이 마음을 당신 마음과 닮게 하는 데 효과적인 은총을 주시고, 

당신의 안전하고 영구적인 거처로 삼아 주십시오. 


4-34,3 어지신 제 사랑이시여, 저의 뜻은 이제 제 것이 아니라 당신 것입니다. 

당신께서 원하시는 대로 하시면 저는 더욱 기쁘겠습니다. 


11-89,7 오! 하느님의 거룩한 뜻이시여, 저는 당신 안에 저를 집어넣습니다. 

당신 안에 저를 맡기오며, 당신 안에서 쉽니다. 


12-132,1 미사성제 중에 예수님과 함께 나 자신을 봉헌하였다. 

나 역시 그분과 같이 축성을 받기 위해서였다. 




3. 봉헌(맡김)을 통해 맺어지는 열매 



1-23,3 나에 대한 신뢰와 맡김은 영혼을 빛나게 하고 다른 모든 격정들을 바로잡아 준다. 

그러면 나는 내가 나누어 준 빛살에 이끌려 그 영혼을 차지하고, 

그에게 나 자신의 형상을 부여한다. 

나 자신의 생명으로 살아가게 하려는 것이다.


4-26,6 (절망에 빠진 영혼에게) 

인생에서 마주치는 그지없이 큰 슬픔에 가장 유익하고 효과적으로 듣는 약은 

(하느님께 대한) 맡김입니다. 

그대는 자포자기하여 이 약을 먹는 대신에 영혼을 죽일 독약을 먹고 있습니다. 

그대는 모릅니까? 

맡김이야말로 모든 병에 대한 최선의 치료제라는 것을? 

또한, 그것이 우리를 고상하고 신성하게 만들며 

우리 주님을 닮게 하는 중요한 것이라는 점과 

쓰디쓴 것을 감미로운 것으로 바꾸는 능력이라는 점을? 

하늘에 계신 아버지와 일치해서 사셨던 예수님의 지상 생애는 

바로 아버지 뜻의 연속이 아니었겠습니까? 

맡김의 정신으로 지상 생활을 하는 사람도 이와 같습니다. 

그의 영혼과 의지가 하늘에 계신 아버지와 일치해 있는 것입니다. 

이보다 더 소중하고 더 바람직한 것이 달리 있을 수 있겠습니까? 


7-5,2 내 딸아, 인간이 하느님께 드릴 수 있는 가장 큰 영예는 

매사를 그분의 거룩하신 뜻에 의지하는 것이다. 

그러면 창조주께서 

조물이 조물주께 대한 본분을 이행하는 것을 보시고 

그에게 당신 은총을 건네주신다. 


8-1,4 나의 뜻 안에 자신을 온전히 내맡기는 행위는 

그 자신의 존재를 없애고 신적 존재를 되찾게 한다. 

그러므로 그 영혼은 자신을 내게 맡기는 행위에 의하여 

내가 피조물에게 요구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주면서 

내게서 나갔던 것을 나 자신 안에서 되찾게 하는 셈이기에 

내게 그만큼 더 큰 영예를 안겨 주는 것이다. 


5 그리고 그로서는 영혼이 되찾아야 할 유일한 실재를, 

다시 말해서 하느님을 되찾게 되고, 

하느님을 되찾음으로써 하느님께서 소유하신 모든 선을 되찾게 된다. 


6 하지만, 영혼이 완전히 하느님의 뜻 안에 머물러 있을 때에만 

비로소 하느님을 되찾게 된다. 

나의 뜻 밖으로 나가 버리면 

그 자신의 존재와 타락한 본성의 모든 악을 되찾을 따름이다.


11-67,16 딸아, 근심하지 마라. 

그저 나의 뜻 안에 너 자신을 맡기고 머물러 있는 것에나 마음을 써라. 

그러면 내가 너를 위하여 모든 일을 다 하겠다. 


12-18,5 딸아, 너도 마찬가지다. 

네가 내 뜻에 너 자신을 온전히 맡긴다면 

그 무엇에 대해서나 더는 걱정할 일이 없을 것이다. 


12-42,3 게다가, 네가 내 안에서 나를 의지할수록 

내가 더욱더 나 자신을 네 안에 쏟아 부을 것이다. 


12-146,3 너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너의 의지를 내 뜻의 처분에 맡기기만 하면 내가 무엇이든지 다 하겠다. 




4. 점점 커지는 하느님 뜻의 바다 



13-27,2 내 뜻의 딸아, 너의 내면을 들여다보아라. 

내 뜻의 끝없는 바다가 얼마나 고요하게 흘러들고 있느냐! 

그러나 네가 나에게서 내 뜻에 대한 말을 자주 듣게 된 얼마 안 되는 기간에 걸쳐 

이 바다가 네 안에 흘러들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마라. 


3 그렇게 짧은 기간이 아니라 오랫동안, 오래 전부터 흘러들고 있었으니 말이다.  

행동부터 먼저 하고 말은 그 다음에 하는 것이 

나의 통상적인 방식인 까닭이다. 


4 사실 너의 시작은 내 수난의 바다였다. 

내 인성이라는 항만(港灣)을 통과하지 않는 성덕이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 인성의 항만에 머물러 있는 성인들이 있는 반면, 

여기를 지나 더 멀리 나아가는 이들도 있다. 

그때 나는 재빨리 내 뜻의 바다를 이입(移入)시킨다. 


5 그러므로 네가 기꺼이 너의 뜻을 내게 맡길 마음이 되어 있음을 보자 

나의 뜻이 네 안에서 살기 시작했으니 

그 바다가 끊임없이 흘러들며 커지고 있었다. 

네가 내 뜻 안에서 하나의 행위를 더할 때마다 그만큼 더 커진 것이다. 


6 내가 이 점에 대해서는 너에게 별로 말하지 않았지만, 

우리의 뜻은 연결되어 있어서 말을 주고받지 않아도 서로 통하고 있었으므로, 

그저 바라보기만 해도 서로의 마음속을 알 수 있었다. 


7 그러니 나는 네 안에서 

성인들이 내게 주는 기쁨과 조금도 다르지 않는 천상적 기쁨을 느끼며 즐거워하였다.

내가 성인들의 행복이 되는 한편 성인들도 나를 행복하게 하는데, 

그들은 내 의지 안에 잠겨 있기에 내게 기쁨과 즐거움을 주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8 하지만 나의 행복은 완전하지 않았다. 

더 많은 내 자녀들이 이토록 큰 선을 공유하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나의 뜻에 관하여 놀라운 방법으로 말하기 시작하였다. 

네게 이야기한 그 많은 진실과 효과와 가치들의 수만큼 많은 물길을 바다로부터 열어 

다른 이들에게도 유익이 되게 함으로써, 

이 물길들이 온 땅에 풍부한 물을 공급하게 하려는 것이다. 



문: 한 영혼이 예수님께 드릴 수 있는 가장 큰 기쁨은 무엇입니까?


답: 예수님께서 1928년 4월 30일에 복녀 디나 벨랑제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아버지와 나 자신 안에 소유하고 있는 영원하고 완전한 행복을 제 외하고, 

나의 기쁨, 나의 행복을 이루는 것은, 

내가 사랑으로 창조한 영혼들 안에 나 자신을 다시 낳는 것이다. 

영혼이 나로 하여금 그 자신 안에 나를 재현하게 하면 할수록 

나는 그 영혼 안에서 더욱더 행복과 안식을 느낀다. 

한 영혼이 내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기쁨은 

내가 그를 신성에까지 들어올리게 묵묵히 맡겨 주는 것이다

그렇다, 내 작은 정배야, 

나는 영혼을 나 자신으로 변화시키고 신화(神化)하며 

신성 안에 온전히 흡수하는 것에서 엄청난 기쁨을 느낀다.” 

[주: 복녀 디나 벨랑제는 새로운 성덕의 시대의 선구자 중 한 사람입니다. 

그녀는 1993년 3월 20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시복되었습니다.

예수 마리아 수녀원(RJM)에 입회한 그녀의 수도명은 ‘로마의 마더 체칠리아’였습니다.]    



< 묵상과 실천 >


봉헌을 통한 변화를 묵상하고 제5강의 앞에 나오는 ‘자신의 영적 비참을 하느님의 뜻 안에 맡기는 기도’를 바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