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owee 11.09.08. 09:00
거룩한 내맡김의 봉헌 서약을 한 영혼들이야말로,
'예수님이 머무는 처소' 입니다. 안 그렇습니까?
굉장히 중요한 부분인데
우리가 현재는 부족하고 죄스러움이 남아 있더라도
분명 예수님의 처소입니다.
왜? 그분께 온전한 결심(100%)을 내맡겼기 때문입니다.
내맡기기 전에는 우리의 부족함과 죄스러움이 내 것이었는데,
내맡긴 후에는 그것이 전능하신 하느님의 것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아마, 인간의 기본 논리로 따져 보아도 이 말은 잘못됨이 없을 것입니다.
또 왜냐하면, 다시 강조해,
나의 모든 것을 하느님이 다 받아주셨기 때문입니다.
만일, 하느님이 인간의 부족함과 죄스러움을 받아들이지 않으신다면
이 세상에서 그 어떤 인간도 내맡길 인간은 전혀 없을 겁니다.
또, 그렇지 않다면 예수님께서 루이사 피카레타에게
'내맡김은 하느님 뜻 안에 사는 첫 걸음'이라고 하지도 않으셨을 겁니다.
사랑하는 자기 아기가 똥이 묻었다고 품어주지 않을 어미는 없겠지요.
하느님은 인간의 어미보다 더 부족하고 죄스러운 인간을 사랑하십니다.
여러분이 거룩한 내맡김의 삶을 살면
여러분이 사는 지역과 주변 사람들이 저절로 하느님께 나아갑니다.
여러분 안에 계시는 하느님이 그렇게 해 주시는 겁니다.
그냥 여러분은 내맡김을 기쁘게 살면 그만 입니다.
moowee 12.08.01. 09:35
어린 시절부터 성인 신부가 되는 것이 삶의 목표였고,
30년이 넘도록 아주 오랜 세월을 성령쇄신 운동에 전념해오시던
어느 신부님이
'루이사 피카레타'의 책을 만난 후 첫느낌이
"뭍혀 있는 보물을 발견"한 느낌이었다고 고백하셨습니다.
루이사 피카레타의 책의 주제는 "하느님의 뜻" 이며,
내용은
하느님의 뜻을 벗어나지 말고 하느님 뜻안에서만 살라는 내용입니다.
하느님의 뜻을 벗어나지 않고 하느님의 뜻 안에서만 살기 위해서는
반드시,
"자신의 모든 것을 하느님께 내맡겨 드려야 하는 것" 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루이사를 통하여
"내맡김" 은 하느님 뜻 안에 사는 삶을 살기 위한 "첫걸음" 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내맡김의 영성은 "뭍혀 있는 보물" 을 발견하여 "캐내는 일" 입니다.
뭍혀 있는 보물을 발견하고도 캐낼 수 없다면 소용이 없습니다.
보물을 캐내는 매우 탁월한 도구가 "내맡김의 삶(영성)" 인 것입니다.
제가 지금까지 저의 경험을 통해서 발견한 점이 한가지 있습니다.
그것은 내맡김의 영성에 깊이 빠져드신 분들은
한결같이 "두뇌(IQ, EQ)가 높으신 분" 이라는 점입니다.
IQ(지능지수)와 EQ(감성지수) 모두 높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입니다.
사람은 아무리 "지능" 이 뛰어나도
"감성" 이 떨어지는 사람은 매력이 없는 사람입니다.
오히려 지능은 조금 떨어져도 감성이 있는 사람이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습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IQ와 EQ 모두 높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사실은,
IQ와 EQ 모두 떨어져도
하느님을 사랑하여 하느님에 대한 사랑에 빠져들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내맡김의 화살기도" 를 열심히 부르며
이 카페(마리아처럼)에 자주 놀러오는 것입니다.
이 카페에 오래 머물러 있는 사람들은 하느님께서 지혜(IQ)를 내려주시고
당신을 사랑할 애정(EQ)을 주십니다.
우리의 IQ와 EQ 모두를 드높입시다!
[[이해욱프란치스코61 2016.12.13.
하느님께 내맡긴 영혼의 하느님에 대한 앎의 지식을 얻을 수 있는 최고의 寶物倉庫가
바로 이곳 무형의 기도원 마처예함이며 이곳의 쌓여진 글들입니다.
이곳에 들어오신 지 얼마되지 않으신 하내영이나 오랜 하내영 모두,
이곳의 지난 글들을 다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A.Q는 저절로 높아질 것입니다.
이곳의 거룩한 글들이, 글들 속에 숨어계신 그분께서 여러분의 A.Q를 높여주실 것입니다.]
moowee 12.12.06. 15:11
근데요, 안나님!
루이사 피카레타의 <하느님 뜻(안의) 영성>은
<하느님의 뜻>을 벗어나서는 안 되는 영성입니다.
루이사 피카레타처럼 완죤히 죄없이 살아야 하는 영성입니다.
이범주 신부님께 한 번 여쭈어 보세요.
그러나,
루이사 피카레타에게 하신 예수님의 말씀처럼,
<내맡김>은 하느님 뜻 안의 삶(영성)으로 드러가는 <첫 걸음>입니다.
안나님의 신앙은 왠만한 신앙인들 보다 훨씬 높은 단계에 계십니다.
신앙생활이 뭔지도 모르고 수십 년을 신앙생활해 나가는 신자들이 많답니다.
안나님이 다른 댓글에서도 말씀하셨지만,
내맡김을 전해도 말 귀를 몬 알아듣는 영적 소경들이 즐비한 것이 현실입니다.
거룩한 내맡김의 영성은
우리처럼 부족하고 죄많은 사람들이 살아가기에 맞는 영성이고,
<하느님 뜻 안의 영성은
영적으로 아주 높은 단계에 계신 분들이 살아가는 영성>입니다.
그것이 큰 차이입니다.
그러나, 일단 하느님께 내맡기면
죄를 통해서도 점점 주님께로 나아갈 수 있으며,
마침내는 <하느님 뜻 안에 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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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 뜻 안에서 ~~ ~~을 합니다."에 대하여
이해욱프란치스코 2015.05.16. 14:31
제가 가끔 말씀드리지만
"하느님께 자신의 모든 것을 내맡겼다."는 것은,
그리하여 비천하고 보잘것없는 한 영혼이 하느님의 것이 되고
하느님을 소유하게 되었다는 것은
"완전한 사람이 되었다."는 뜻이 아닙니다.
완전한 사람이란 곧 "거룩한 사람"을 말합니다.
완전한 사람이란 곧 "하느님과 같은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느님께 자신의 모든 것을 '한 번 내맡겼다' 해서
하느님과 같은 사람이 될 수 있겠습니까?
따라서,
하느님께 자신의 모든 것을 내맡겼다는 것은
"거룩한 내맡김을 통하여"
완전(거룩)한 사람이 되기 위한 <첫 걸음>을 내딛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하느님께 자신의 모든 것을 내맡김으로
"완전 거룩한 사람이 되었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러면
완전(거룩)한 사람이 되지 못하였다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완전(거룩)한 사람이 되지 못하였다는 말은
사람이 아직까지도 "죄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뜻이 아닐까요?
그래서
"죄를 벗어나기 위한 걸음"을 계속해서 걸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고요.
죄에서 완전히 벗어나야 하느님과 같은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천상의 책 6-142 하느님이 뜻 안으로 들어가는 첫걸음은 맡김이다.>
천상의 책에 쓰여진 예수님의 말씀처럼
첫걸음을 통하여 계속해서 하느님 앞으로 걸음을 걸어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걸음을 멈추어서는 아니 되는 것입니다.
날개를 계속 저어야 하는 것입니다.
반드시 지속적인 내맡김이 필요합니다.
내맡김이 생활화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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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하느님 뜻 안에 사는 삶(영성)"이란 도대체 어떤 삶을 말하는 것입니까?>
저는 다음과 같이 생각합니다.
"거룩한 내맡김의 삶(영성)"이
죄 속에서도 '지속적인(끊임없는) 내맡김'에 의한 '하느님의 이끄심'으로
"점점 죄에서 벗어나 마침내는 완전히 죄를 벗어난 삶"으로
변화되어 가는 삶이라면
"하느님 뜻 안의 삶"은
루이사 피카레타가 오랜 세월에 걸쳐 마침내 도달한 삶,
"죄에서 완전히 벗어난 삶을 살아가는 삶(영성)"이라고 생각됩니다.
<하느님 뜻 안>으로는 "도무지" 죄가 들어올 수 없기 때문입니다.
죄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은
아직 "하느님 뜻밖에 있다"는 뜻이 아닌지요?
죄를 짓는(하느님의 뜻밖에 있는) 인간이 어떤 행위들을 행하면서
"하느님 뜻 안에서 ~~ ~~을 합니다."라고 하는 기도가
그 사람에게 참 어울리는 기도라고 생각하시는지요?
아닙니다, 저는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하느님 뜻 안에서 ~~ ~~을 합니다."라는 기도가
참 잘 어울리는 사람은 루이사 피카레타와 같이
죄 에서 벗어난 삶을 사는 사람들입니다.
루이사 피카레타의 삶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분은 "보통인간의 삶"을 살지 못하셨습니다.
긴 수십 년의 세월을 병자로서 "집 안에서만 생활"하셨습니다.
하루의 많은 시간을,
아니 거의 모든 시간을 기도만 하는 삶을 사실 수 있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러한 특별한 사람을
특별하게 聖別하셔서 당신의 작은 종으로 사용하셨던 것입니다.
아마도 세상에는
루이사 피카레타가 살아간 삶(루이사가 바친 여러 기도문 포함)을
거의 그대로 살아가려 노력하는 사람들도 없지는 않겠지요.
그러나 분명, 많지는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루이사 피카레타처럼 "준비가 된 사람"이 많지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느님 뜻 안에서 살아갈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이
"하느님 뜻 안에서 ~~ ~~을 합니다."라고 기도하는 것이
참으로 그 사람에게 참 잘 어울리는 기도일 것이라는 게
저의 생각입니다.
<이 기도의 가치와 효과 및 예수님의 약속 - 카를로스 신부님 강의록에서 >
(2010.9.8)
"수난의 시간들을 30년 묵상한 후에야
주님께서 하느님 뜻의 선물에 대해 이야기하시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니까 그때 루이사는 준비가 다 되어 있었습니다.
루이사는 수난의 시간을 하면서 예수님을 닮아서
주님의 설명을 알아들을 수 있는 준비가 다 되어 있었습니다.
그때서야, 그렇게 늦게 서야
주님께서 루이사에게 하느님 뜻에 대한 설명을 하기 시작하셨습니다.
루이사는 희생 제물로서 그렇게 준비되고 나서야
비로소 하느님 뜻의 궁전으로 인도되었습니다.
루이사도 그전에는 안 되었습니다."(이상이 카를로스 신부님의 글입니다.)
준비가 안 된 사람이 "하느님 뜻 안에서"라는 문구를 넣어 기도하면
"무엇이 어떻게 좋아지더라(하느님의 선물)."라고 말 하는 것은
하느님 뜻 영성의 올바른 목적을 모르고 말하는 것입니다.
하느님 뜻 영성의 목적은 <천상의 책> 머리에 잘 언급되어 있습니다.
"사람들로 하여금
질서와 그 본연의 위치와 창조된 목적에로 돌아오게 하시는 부르심"이
바로 그 목적입니다,
이 세상의 그 무엇(좋은 것)을 얻기 위함이 절대 아닙니다.
"사람이 창조된 목적"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사람이 자신을 창조하신 하느님을 주님(주인)으로 섬기며
오직 그분만을 진실로 사랑하는 것뿐입니다.
그렇게 할 때
이 세상의 그 무엇은 저절로 주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올바른 순서(질서)입니다.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마태6,33)
사람이 올바른 질서(순서) 속에서 살아갈 때
그때 비로서 사람들 가운데 하느님 뜻의 나라가 이루어질 수 있으며,
사람들이 하느님 뜻의 나라에 살아가는 상태가
바로 사람의 본연의 위치입니다.
하느님의 뜻을 소유하여 하느님의 뜻 안에서 살아가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 세상(피조물)의 모든 애착에서 벗어나
"하느님만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진실로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느님의 영광만을 위해 모든 일을 행하며
하느님만을 기쁘시게 해 드리기 위해 살아갑니다.
이 세상의 무엇을 얻기 위해 기도하지 않습니다.
이 세상의 그 무엇이 잘못되고 그 무엇을 다 빼앗겨도
오직 하느님만을 사랑합니다.
============================================
moowee 2017.06.12.22:38
<아버지 뜻대로 이끌어주시고 치유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이것이야 말로 짬뽕 + 비빔밥 기도 입니다.
<아버지 뜻대로 이끌어주시고(거내영 기도) + 치유해주시면 좋겠습니다
(희망기도).>
이 자리에서 제가 가르쳐 드리겠습니다.
왜,
희망기도, 하느님 뜻 영성 기도 하시던 분들이
이곳으로 모여오시는 줄 아시나요?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는 <주님의 기도>뿐이십니다, 아닙니까?
다른 기도를 가르쳐주신 적이 계십니까?
없습니다, 주님의 기도외에는!
그리고 < 기도에 대해 강조하신 사항 >이 있으시다면,
그것은 < 루카복음 18장 1절 이하 >의 말씀입니다.
1 예수님께서는 낙심하지 말고 끊임없이 기도해야 한다는 뜻으로
제자들에게 비유를 말씀하셨다.
2 “어떤 고을에 하느님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한 재판관이 있었다.
3 또 그 고을에는 과부가 한 사람 있었는데 그는 줄곧 그 재판관에게 가서,
‘저와 저의 적대자 사이에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십시오.’ 하고 졸랐다.
4 재판관은 한동안 들어주려고 하지 않다가 마침내 속으로 말하였다.
‘나는 하느님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지만,
5 저 과부가 나를 이토록 귀찮게 하니
그에게는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어야겠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끝까지 찾아와서 나를 괴롭힐 것이다.’”
6 주님께서 다시 이르셨다.
“이 불의한 재판관이 하는 말을 새겨들어라.
7 하느님께서 당신께 선택된 이들이 밤낮으로 부르짖는데
그들에게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지 않으신 채,
그들을 두고 미적거리시겠느냐?
8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하느님께서는 그들에게 지체 없이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실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아들이 올 때에 이 세상에서 믿음을 찾아볼 수 있겠느냐?”
(루카 18)
그리고,
소위 제 표현으로 < 청.찾.두 >기도인 <루카 11, 9 이하>의 말씀입니다.
청하여라, 찾아라, 문을 두드려라(마태 7,7-11)
9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
10 누구든지
청하는 이는 받고, 찾는 이는 얻고, 문을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다.
11 너희 가운데 어느 아버지가 아들이 생선을 청하는데,
생선 대신에 뱀을 주겠느냐?
12 달걀을 청하는데 전갈을 주겠느냐?
13 너희가 악해도 자녀들에게는 좋은 것을 줄 줄 알거든,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야
당신께 청하는 이들에게 성령을 얼마나 더 잘 주시겠느냐?” (루카 11)
그리고 이 말씀(루카 11, 9-13 ) 바로 전의 말씀이,
끊임없이 간청하여라
5 예수님께서 다시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 가운데 누가 벗이 있는데,
한밤중에 그 벗을 찾아가 이렇게 말하였다고 하자.
‘여보게, 빵 세 개만 꾸어 주게.
6 내 벗이 길을 가다가 나에게 들렀는데 내놓을 것이 없네.’
7 그러면 그 사람이 안에서,
‘나를 괴롭히지 말게. 벌써 문을 닫아걸고 아이들과 함께 잠자리에 들었네.
그러니 지금 일어나서 건네줄 수가 없네.’ 하고 대답할 것이다.
8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 사람이 벗이라는 이유 때문에 일어나서 빵을 주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그가 줄곧 졸라 대면
마침내 일어나서 그에게 필요한 만큼 다 줄 것이다.”(루카 11) 입니다.
그런디~~~
잘 모르는 사람덜이 예수님의 이 말씀을 청원기도,
소위 다른 표현으로 땡강기도 라고도 말씸하시는디~~~ ?
사실 이 예수님의 이 말씀은
<이 세상의 것들>을 청하라는 청원기도가 아닙니다.
<13 너희가 악해도 자녀들에게는 좋은 것을 줄 줄 알거든,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야 당신께 청하는 이들에게
성령 을 얼마나 더 잘 주시겠느냐? >
청원기도의 목적을 가르쳐 주시는 무지~~~ 중요한 말씀입니다.
청원기도의 목적은,
오직 하느님을 청하고 찾고 구하는 것 입니다.
<희망기도>를 잘 아시는 분들께,
오랜 기간 희망기도를 열심히 바쳐오셨던 경험이 있으신 분들께
< 질문 >드립니다.
예수님께서,
< ~~~ 했으면 참 좋겠습니다. > 라고 가르쳐주신 말씀이
성경의 어느 곳에 나오는지요?
moowee 2017.06.03.09:29
<1코린 13>
12 우리가 지금은 거울에 비친 모습처럼 어렴풋이 보지만
그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마주 볼 것입니다.
내가 지금은 부분적으로 알지만
그때에는 하느님께서 나를 온전히 아시듯
나도 온전히 알게 될 것입니다.
13 그러므로 이제 < 믿음 >과 < 희망 >과 < 사랑 >
이 세 가지는 계속됩니다.
그 가운데에서 으뜸은 사랑 입니다.
믿음도,
희망도,
사랑도
다 하느님만 믿고, 하느님만 희망하고, 하느님만 사랑하기 위함입니다.
<11 내가 아이였을 때에는
아이처럼 말하고
아이처럼 생각하고
아이처럼 헤아렸습니다.
그러나 어른이 되어서는
아이 적의 것들을 그만두었습니다. >
아이들에게 있어서 중요한 생각은
먹는 것(세상의 것)과 노는 것(기는 것)뿐입니다.
그래서 늘 어린이들의 입에서는 라는 말(청원)만 나옵니다.
어른이 되어서는 그리해서는 아니 되는 것입니다.
<10 그러나 온전한 것이 오면 부분적인 것은 없어집니다. >
부족한 자신을 하느님께 내맡겨
온전한 것(하느님)을 얻게 된 어른들에게 있어서의 중요한 생각은 늘
어떻게 하면 하느님을 더욱 기쁘시게 해 드리나,
어떻게 하면 더 죽도록 뜨겁게 사랑할 수 있나를 생각합니다.
그래서 어른들의 입에서는 늘
사랑하는 주님 제가 당신을 사랑하게 하소서,
사랑하는 주님께 저의 모든 것을 맡깁니다,
사랑하는 주님 감사합니다,
사랑하는 주님 부족한 저를 통하여 당신 마음껏 찬미와 영광 받으소서가
떠나지 않습니다.
어른들의 입에서는
이제 먹을 것을 라는, 또 놀겠다는 소리가 사라져버렸습니다.
먹는 일이라곤 <하느님의 뜻>을 먹고
노는 일이라곤 <한 영혼을 구원하는 일>일 뿐입니다.
그것이 바로 사랑하는 하느님께서
하느님께 내맡긴 삶을 살아가는 영혼들에게
가장~ 바라시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마태 6>
세상 걱정과 하느님의 나라(루카 12,22-32)
25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목숨을 부지하려고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또 몸을 보호하려고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지 마라.
목숨이 음식보다 소중하고 몸이 옷보다 소중하지 않으냐
26 하늘의 새들을 눈여겨보아라.
그것들은 씨를 뿌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곳간에 모아들이지도 않는다.
그러나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는 그것들을 먹여 주신다.
너희는 그것들보다 더 귀하지 않으냐
27 너희 가운데 누가 걱정한다고 해서
자기 수명을 조금이라도 늘릴 수 있느냐
28 그리고 너희는 왜 옷 걱정을 하느냐
들에 핀 나리들이 어떻게 자라는지 지켜보아라.
그것들은 애쓰지도 않고 길쌈도 하지 않는다.
29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솔로몬도 그 온갖 영화 속에서 이 하나만큼 차려입지 못하였다.
30 오늘 서 있다가도 내일이면 아궁이에 던져질 들풀까지
하느님께서 이처럼 입히시거든,
너희야 훨씬 더 잘 입히시지 않겠느냐
이 믿음이 약한 자들아!
31 그러므로 너희는 ‘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차려입을까’ 하며
걱정하지 마라.
32 이런 것들은 모두 다른 민족들이 애써 찾는 것이다.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는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필요함을 아신다.
33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
34 그러므로 내일을 걱정하지 마라.
내일 걱정은 내일이 할 것이다. 그날 고생은 그날로 충분하다.”
하느님께 내맡긴 영혼들은 늘~
스승 예수님의 말씀만 <믿고> 하느님아버지만 <희망>하며
아버지하느님만 죽도록 뜨겁게 <사랑>해야 합니다.
그래야 이 세상에 아버지하느님의 영광 이
참으로 부족한 하느님의 젖먹이 똥싸개 하내영들을 통하여
크게 드러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
moowee 13.04.13. 22:23
거룩한 내맡김의 영성은
부족한 인간을
<하느님의 이끄심>에 의하여 하느님 뜻 영성으로 인도해 주십니다.
부족함과 죄를 통해서도 가르쳐 주시고
나날이 거룩히 정화시켜주시면서 말입니다.
moowee 13.12.20. 07:09
30년이 넘는 아주 긴 세월을 <성령 쇄신 운동>에 전념해 오시던 신부님께서
그 운동을 떠나 <하느님의 뜻 영성>을 만나 하신 말씀이
"밭에 숨겨진 보물(마태13,44)"을 발견한 느낌이었다 하셨습니다.
하느님께 모든 것을 내맡긴 여러분은 밭에 뭍혀진 보물을 발견한 것이 아니라,
"보물을 찾아 얻은" 사람들입니다,
정말 땡 잡은 사람들입니다, 정말입니다.^-^
moowee 16.01.14. 11:05
<<하느님 뜻 안에 살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하느님 뜻 안에서 기도합니다>라고 말하면
기도가 잘 이루어진다고 생각하여
앵무새처럼 <하느님 뜻 안에서>를 덧붙여 기도하는 것도
다를 바가 없는 행위입니다. >>
↓
<하느님께 100% 내맡긴 영혼들>은
세상의 어떤 무엇을 바라는 청원기도 없이,
앵무새처럼 <하느님 뜻 안에서>를 덧붙여 기도해도 좋습니다.
하느님께 내맡긴 영혼들은
"아무것도 원하지 않고, 아무것도 구하지 않고, 아무것도 거절하지 않는다."
(성 프란치스코 살레지오)
moowee 16.10.30. 06:25
구약의 유대인들이 <율법의 노예>가 되어 하느님을 잃어버렸듯이,
여러분은 <기도의 노예>가 되어서는 아니 되는 것입니다.
<루이사 피카레타의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그저 < 단순히 > 아버지를 죽도록 뜨겁게 사랑하면
그 것이 < 참기도 >입니다.
아버지를 즉도록 뜨겁게 사랑하는마음 없이 바치는 모든 기도는
< 죽은 기도 >입니다.
그저 아버지를 죽도록 사랑하는 마음으로 < 아버지 >만 부르십시오.
그러면,
아버지께 모든 것을 맡기게 해 주십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말입니다.
moowee 16.12.27. 23:55
<천상의 책>이 없었다면,,,,,,,,,,,,,
<거내영>은 앙꼬 없는 찐빵과 같았을 겁니다.
moowee 16.12.31. 09:21
제가 아는 한,
하느님 신앙에 대한 영성 중에서 최고최상의 영성은 뭐니뭐니 해도
루이사 피카레타의 ★ 하느님 뜻 영성 ★ 입니다.
=============================
「수난의 시간들」소개의 말 ① (1-17) 초판 머리말에서 뽑은
저자의 면모에 대한 성 안니발레의 증언 댓글
moowee 17.01.19.08:28
루이사는 참으로
<하느님뜻 안의 삶의 도구>로 철저하고도 완벽히 준비된 사람이었습니다.
우리와같은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루이사와 같은 사람이 아닌 우리를 위해 그녀를 수십년 준비시켜주셨습니다,
철저히!
< 9 이 고독한 영혼은 온전히 하느님께만 속한 극히 순결한 동정녀로서,
우리의 거룩하신 구원자 예수님의 특별한 총애를 받고 있습니다.
오랜 세월에 걸쳐 당신 사랑의 기적을 증가시켜 오신 주님께서
이 동정녀를 도구로 쓰시고자 하신 것 같습니다.>
< 11 주님의 이 동정녀는
소녀 시절부터 지금껏 하느님 사랑의 산 제물이 되어
40년 이상 침상에 붙박여 있었습니다.
(실제로 루이사는
1887년 22세 때부터 1947년 82세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계속 침상 위에서만 생활했다고 한다)
그 동안 예수 성심의 영원한 사랑 안에서
더없이 큰 기쁨에 잠겨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자연적이고 초자연적인 광범위한 고통을 체험했습니다.
모든 한계를 뛰어넘는 그 고통은 예수님께로부터 오는 것이었고,
때때로 중단되기도 했지만 지속적인 것이었습니다..... >
루이사는 <전혀 우리와같은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전혀 우리와같지 않은 사람 루이사를 우리에게 알려주신 것은
분명 <하느님뜻>이며,
거룩한내맡김의 삶을 살아가려는 우리를
마침내 <하느님뜻 안의 삶>으로 초대하기 위함일 것입니다.
루이사와같은 사람이 아닌 우리가 그녀가 살아간 삶,
<하느님뜻 안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가장 탁월한 방법이 바로,
★ 거룩한 내맡김의 봉헌 ★ 입니다.
거룩한내맡김의 봉헌 없이는
<그 어떤 누구도, 그 어떤 지향과 기도>도 도저히,
★ 하느님뜻 안의 삶 ★을 살아갈 수 없을 것입니다,
<지극히 소수의 사람>은 있겠지만 말입니다.
하느님께 내맡긴 우리 영혼들,
참으로 부족하고 죄스럽고 죄짓는 영혼들은 참으로 복된 사람들입니다.
거룩한 내맡김의 영성은 참으로 탁월한 영성,
이 시대에 참으로 걸맞는 ★ 죄인들의 영성 ★ 이 아닐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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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거룩한 내맡김의 영성이란? (2009.12.17)
하느님의 뜻대로만 살기 위해서는?
인간이 하느님의 뜻을 벗어나지 않고 하느님의 뜻대로만 사는 것이
정말 가능한 것인가?
참으로 가능하다.
그것이 바로 '하느님께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 맡기는 삶' 즉,
'거룩한 내맡김의 영성'이다.
하느님께 자신의 모든 것 - 자신의 소중한 사람들, 재산, 명예, 일, 취미,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의 뜻(의지)까지도 '하느님께 내맡기는 것!',
이것 밖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
이것이 가장 탁월하고, 가장 빠르고, 가장 안전하고, 가장 완전하고,
가장 확실하고, 가장 쉽고, 가장 단순하고,
가장 재미있고 즐거운 방법이다.
다른 탁월한 방법이 더 있다면 저에게 가르쳐 주길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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