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영성이란 무엇인가? ★영 성
moowee 등급변경▼ 조회 234 추천 0 2013.08.31. 09:18
영성적 삶으로의 초대Ⅱ (7) 영성이란 무엇인가 (7)
특수한 영성은 근본·개인적 영성 잇는 다리
가장 중요한 것은 나와 하느님간의 직거래
공동체는 개개인의 영적 성화 위해 존재
발행일 : 2011-07-24 [제2756호, 10면]
교회는 왜 존재할까. 본당 사목은 왜 생겨났을까. 수도회는 왜 필요할까.
하느님은 왜 레지오 마리애와 ME, 꾸르실료와 같은
신심 단체들을 섭리하셨을까.
간단하다.
바로 ‘나’ 때문이다.
정확히 표현하면 ‘나’를 통해 하느님 나라를 완성하기 위해서다.
특수한 영성은 근본적 영성과 개인적 영성의 다리 역할을 한다.
수도회 자체가, 신심 단체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근본적 영성과 개인적 영성의 징검다리가 되기 위해 특수한 영성이 필요한 것이다.
따라서 특수한 영성의 지도자들은
개인적 영성이 잘 구현될 수 있도록 신자 개개인을 인도해야 한다.
본당 신부도 마찬가지다.
본당 사목을 하는 이유는 신자 개개인을 위해서다.
신자 개개인을 근본적 영성으로 인도하기 위해서다.
물론 이를 위해 본당 특성에 맞는 특수한 영성을 구현할 필요가 있다.
본당마다 환경과 여건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본당은 사회복지에 힘쓰고,
어떤 본당은 성경 읽기 운동을 도입하는 것이다.
주교좌 본당과 농촌 본당의 사목 방향은 그래서 다를 수밖에 없다.
성전 건축을 시작하는 본당과 이미 성전을 가진 본당의 사목 방향이
다를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해서 본당이 가진 본질적 역할을 잊어선 안 된다.
신자 개개인의 영적인 성장에 관한 문제를 간과해선 안 된다는 말이다.
본당이든 수도회든 평신도들의 영적 성화를 구현하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그렇다고 해서 개인만 중요하고 공동체는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다.
공동체가 존재하는 이유가 개인에게 있다는 말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나’와 ‘하느님’간의 직거래다.
공동체 지도자와, 본당 사목자와 신자의 직거래가 아니다.
그런데 주위를 보면, 이 직거래를 가로막는 지도자를 간혹 보게 된다.
자신도 직거래하지 못하면서, 신자들의 직거래마저 가로막는 이들이 많다.
본당 신부와 수도회 장상, 신심단체 회장은 모두 봉사자다.
물론 봉사자는 영예로운 자리다.
하느님의 도구가 되었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영광스러운가.
하지만 하느님의 도구가 도구의 역할을 못할 때는 그만큼 책임도 크다.
공동체를 이끌 때는 ‘내 뜻대로’가 없다.
오직 ‘하느님 뜻대로’ 해야 한다.
하느님은 신자 각자에게 독특한 능력을 주셨다.
모든 신자들에게 영적인 성향을 미리 형성시켜 놓으셨다.
이 영적인 성향을 발견하고 구체화하는 것이 바로 영성생활이다.
이렇게 본당과 수도회, 신심단체 등 특수한 영성들은
신자 개인의 영성생활을 풍요롭게 해야 할 책임이 있다.
하지만 공동체 지도자들은 인간 개개인에 대한 배려보다
공동체를 더 중요시하는 유혹에 빠질 수 있다.
그러기에 지도자들은 공동체를 중요시하는 목적 자체가
개개인의 영적 성화를 위한 것임을 잊어선 안 된다.
예수님의 예를 들어 보면 이는 명확해 진다.
예수님께선 손가락 하나로, 한 번에 인류 전체를 다 변화시킬 수 있었다.
그런데 왜 그러지 않고 직접 십자가 위에 못박혀 돌아가셨을까.
인간 개개인의 자유의지가 더 의미 있었기 때문이다.
인간은 스스로도 상상하지 못하는 어마어마한 영적 능력을 가지고 있다.
공동체는
개개인이 이 능력을 발견하고 하느님 대전에 나아갈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개인적 영성만큼 중요한 건 없다.
근본적 영성과 특수한 영성은
늘 개인을 존중하면서 개인을 살리는 쪽으로 작용해야 한다.
화살표는 개인적 영성을 향하고 있다.
만약 이렇게 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공동체 지도자의 역량이 잘못된 것이다.
실제로 교회 역사 안에서 그동안 잘못된 지도자들에 의해서
수많은 영혼들이 잘못된 길을 걸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중요한 것은 ‘나’다.
이 글을 쓰는 이유도 이 글을 읽을 모든 ‘나’를 위한 것이다.
교회 조직이나 신심 단체가 필요한 것은
이 시간에도 영적인 고통을 받고 있을 수많은 ‘나’ 때문이다.
개인이 하느님과 일치될 수 있다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이다.
개인이 공동체로 인해 고통 받는다면 이는 뭔가 잘못된 것이다.
본당과 수도회, 신심 단체 등 특수한 영성은
신자 개인에게 스트레스(stress)의 ‘S’를 주어선 안 된다.
영적인(spiritual) ‘S’를 주어야 한다.
개인적 영성에 대해 더 깊이 들어가 보자.
정영식 신부 (효명고등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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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wee 2017.10.12. 21.26
<교회는 왜 존재할까.
본당 사목은 왜 생겨났을까. 수도회는 왜 필요할까.
하느님은 왜
레지오 마리애와 ME, 꾸르실료와 같은 신심 단체들을 섭리하셨을까.
간단하다.
바로 ‘나’ 때문이다.
정확히 표현하면
‘나’를 통해 하느님 나라를 완성하기 위해서다.
특수한 영성은 근본적 영성과 개인적 영성의 다리 역할을 한다.
수도회 자체가, 신심 단체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근본적 영성과 개인적 영성의 징검다리가 되기 위해
특수한 영성이 필요한 것이다.
따라서 특수한 영성의 지도자들은
개인적 영성이 잘 구현될 수 있도록 신자 개개인을 인도해야 한다.>
제가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 희망기도 >는 靈性(영성)이 아닙니다!
<희망기도>는 기도의 一種(일종)입니다.
영성은 영성과 비교해야지
<기도의 종류(방식)의 하나>와 비교하는 것은 비교가 적절하지 않습니다.
< 하느님 뜻 영성 >과
< 거룩한 내맡김 영성 >의 비교는 적절합니다, 靈性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지금까지 <희망기도>를 폄하하지 않았습니다.
< 단순히, 기도의 수준 >에 대해서 언급했을 뿐입니다.
분명히, 기도에는 차원이 있고 서로 그 수준이 다릅니다.
즉, <올바른 기도>가 있고 <그렇지 못한 기도>가 있습니다.
저는 <희망기도>를 올바르지 못한 기도라 말하지 않았습니다.
올바른 기도
5 “너희는 기도할 때에 위선자들처럼 해서는 안 된다.
그들은 사람들에게 드러내 보이려고
회당과 한길 모퉁이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한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그들은 자기들이 받을 상을 이미 받았다.
6 너는 기도할 때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은 다음,
숨어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여라.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
7 너희는 기도할 때에 다른 민족 사람들처럼 빈말을 되풀이하지 마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해야 들어 주시는 줄로 생각한다.
8 그러니 그들을 닮지 마라.
너희 아버지께서는 너희가 청하기도 전에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계신다.”
<희망하기 전에>
주님의 기도(루카 11,2-4)
9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여라.
‘하늘에 계신 저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히 드러내시며
10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11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12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도 용서하였듯이
저희 잘못을 용서하시고
13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저희를 악에서 구하소서.’
14 너희가 다른 사람들의 허물을 용서하면,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를 용서하실 것이다.
15 그러나 너희가 다른 사람들을 용서하지 않으면,
아버지께서도 너희의 허물을 용서하지 않으실 것이다.”
저는 다른 이들에게 특히,
<희망기도>를 기도를 좋아하는 이들에게
희망기도를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거룩한 내맡김 영성 >을 받아들이고 따르는 이들에게
거내영의 끊임없는 화살기도와 비교하여
<희망기도>에 대해 언급했을 뿐입니다.
그리고 더나아가
< 하느님 뜻 영성 >에 대하여 왜곡 또는 폄하한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하느님 뜻 영성>은
<거룩한 내맡김 영성( = 하느님 뜻 안의 삶)의 최후 목표>라고 까지
언급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나’와 ‘하느님’간의 직거래다. >
가장 중요한 것은 <기도든 영성이든 하느님과의 일치>입니다.
자신의 영적수준에 <땡깡기도>가 맞는 사람은 땡깡기도를 바치십시오!
자신의 영적수준에 <희망기도>가 맞는 사람은 희망기도를 바치십시오!
자신의 영적수준에 <청원기도>가 맞는 사람은 청원기도를 바치십시오!
자신의 수준에 자신의 모든 뜻을 포기(Abandonment)하고,
오로지
하느님의 뜻에 맡겨 드리는 <끊임없는 거룩한 내맡김의 화살기도>가
맞는 사람은
끊임없는 거룩한 내맡김의 화살기도를 바치십시오!
그것이 지금까지 저의 생각이며 지론이었을 뿐입니다.
사랑하는 아버지,
아버지께 자신의 모가지를 내맡긴,
저희 철부지 똥싸개 앵앵이들을 통하여 보다 더 뛰어난 영광 받으소서!
자신의 뜻도 정확히 표현하지 못하면서,
<겸손>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이 바라는 그 무엇을 얻어내고자,
에둘러 표현하는 방식은
겸손을 옷입은 <겸손치 못한> 방식이라는 생각까지 드는군요.
저는 저의 뜻(원의)가 있는 경우,
저의 뜻을 감추고(겸손?)
에둘러 저의 원의(뜻, 요구, 욕구)를 표하지 못합니다.
그것이 제가 타고난,
아니 아버지께서 저에게 부여해 주신 제 성격입니다.
누구나 자신의 수준에 맞는 기도(방식)을 좋아하고 따릅니다.
<희망기도>는 저의 천성에 맞지 않는 기도입니다.
차라리 <땡깡기도>가 더 맞습니다!
이 댓글을,
<그 타 카페>라는 곳에 전해 주실 분이 계시면
얼마든 적극 합니
<특수한 영성은 근본적 영성과 개인적 영성의 다리 역할을 한다.
수도회 자체가, 신심 단체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근본적 영성과 개인적 영성의 징검다리가 되기 위해
특수한 영성이 필요한 것이다.
따라서 특수한 영성의 지도자들은
개인적 영성이 잘 구현될 수 있도록 신자 개개인을 인도해야 한다.>
< 거내영 >은 분명 <특수영성입니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특수영성이 아닙니다>
하느님 신앙의 <근본영성인 동시에 개인영성>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을 신앙하는 이들이
<개인적>으로, 하느님에 대한 <근본영성>에 기초해서
나름대로의 영적수준에 맞는 삶(영성)을 살아가면 될 것입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나’와 ‘하느님’간의 직거래다.>
<어느 기도>가,
<어느 영성>이,
하느님과의 <직거래가 가장 잘 되는가?>도
자신의 영적수준에 달려있는 것입니다.
자신의 영적수준에 맞지 않는 기도나 영성을 따라가다가
가랭이가 찢어질 위험이 있으니,
지금까지 그 사실을 모르고 거내영을 따른 이들은
크게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거기(자신)에 맞는 <기도와 영성>을 찾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본당과 수도회, 신심 단체 등 특수한 영성은
신자 개인에게 스트레스(stress)의 ‘S’를 주어선 안 된다.
영적인(spiritual) ‘S’를 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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