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상의 책 4권

주님 승천 대축일 (2011,6,5) ▣ 주일강론

은가루리나 2018. 1. 10. 02:13


moowee 등급변경▼ 조회 245 추천 0 2011.06.03. 08:14



< 주님 승천 대축일 > 2011,6,5



주님, 찬미영광 받으소서!

문정산 식구 여러분 한주간 동안 안녕하셨습니까?


오늘은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떠나 

하늘에 오르신 것을 기념하는 '주님 승천 대축일'이다.


자신들이 그토록 믿고 따르던 스승이 죄인으로 몰려 아무런 힘도 쓰지 못하고

십자가에서 처참하게 죽어간 현실에 큰 실망으로 흩어졌던 제자들에게,

뜻밖에 나타나셨던 '부활하신 예수님'은 참으로 큰 위로와 희망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잠시뿐, 

40일이 지나 다시 제자들의 곁을 떠나시게 된 것이다. 

곁에 있던 무엇이, 그것이 중요한 것이든 그렇지 않은 것이든,

내 주변에서 무엇이 떠나가고 또 무엇을 떠내보낸다는 것은 

하나의 '변화'이고,

변화는 거기에 따르는 '아픔'이 동반되며, 

그것이 소중한 것일 수록 아픔은 더욱 커지는 것이다.



제자들에게 있어서의 예수님의 승천은 커다란 아픔이었다.

그러나 그 아픔은 '더 좋은 변화를 위한 아픔'이었던 것이다.

'보다 큰 성장을 위한 아픔'이었던 것이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그 어떤 무엇'이 더 좋게 변화되기를 원하셨기에,

제자들의 '어떤 무엇'의 큰 성장을 바라셨기에

제자들에게 '이별의 아픔'을 선사하며 그들의 곁을 떠나셔야만 하셨던가?


그 어떤 무엇은 다름아닌 '믿음'이었다.

제자들에겐 무엇보다 '믿음'이라는 것이 필요했던 것이다.

제자들의 '믿음'을 더 좋게 하고 더욱 성장시키시기를 원하셨던 것이다.


"믿음은 우리가 바라는 것들의 보증이며 보이지 않는 실체들의 확증이다."라는  

< 히브리서 11장 1절 >의 바오로 사도의 말씀대로,

이제 제자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그동안 그들 곁에서 그들과 함께 이야기하고 먹고 마시고 잠자고 동고동락 했던,

그야말로 그들의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던 神人 양성의 예수님이 아니라,

앞으로는 그들의 눈에 보이지 않게 될,

더나아가 그 제자들의 뒤를 따르게 될 제자들의 제자들,

또 그 제자들의 제자들인 우리들의 눈에 보이지 않게 될 

'믿음의 실체인 예수님',

아니 보이지 않는 실체인 '하느님'에 대한 믿음을 

더욱 좋게 변화시키며 성장시켜 주시기를 원하셨기 때문이다.



당신의 부활을 믿지 못하던 '토마스'에게

"너는 나를 보고서야 믿느냐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요한20,29)

하신 말씀대로 

예수님은 앞으로 태어 날 토마스와 같은 모든 사람들에게

'믿음이 무엇인지'를 미리 가르쳐 주시기 위해서 

그들을 떠나셔야 했던 것이다.

하늘로 오르셔야 했던 것이다. 



보이지 않는 실체를 믿는 믿음은

'육적인 인간'에서 '영적인 인간'으로의 변화를 요구하는 것이다.

영적인 인간이 되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도저히 믿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하느님이신 예수님이 왜 인간으로 이 세상에 내려오시었는가?

여러분은 예수님이 왜 이 세상에 내려오셨다고 생각하시는가?

인간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인간을 구원하시러?


맞는 말이다.

인간을 너무나 사랑하시기에 인간을 죄에서 구원하시려고

하느님이 직접 인간의 역사 안으로 들어오시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먼저 선행되는 이유는,

즉 그 이유의 이유는 '눈에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말씀'을

아무리 많은 사건과 기적과 예언자들을 보내어 가르쳐 주었어도

그것을 인간이 도무지 알아듣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답답한 사람이 먼저 땅을 판다'고 

하느님이 너무 답답하셔서

이번에는 '눈에 보이는 하느님'의 모습인 예수님이 이 세상에 내려오셨었고,

이제는 그 사명을 다 마치셔서 세상을 떠나셔야 했던 것이 

바로 '승천'인 것이다.


인간의 '눈에 보이지 않는 하느님'과 인간의 '눈에 보이는 하느님'은

정말 하늘과 땅 차이였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가시적인 인간이었기에!



이제, 하느님을 믿는 기준이 

눈에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말씀'이 아니라,

눈에 보이는 '말씀 자체이신 예수님'이 그 기준이 되어,

누구든지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보여주신 그 모습대로 살아가는 사람은

영원히 멸망치 않고 예수님과 함께 영원한 세상을 살아갈 수 있다고

가르쳐 주시기 위하여 

이 세상에 직접 내려오셨던 것이다.


눈에 보이는 하느님이신 예수님이 이 세상에 내려오셔서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시고 보여주신 가장 중요한 모습은 어떤 모습인가?

그것은 '하느님 아버지의 뜻대로 살아가는 모습'이다.



오천명을 먹이신 빵의 기적 후 예수님은 당신의 말씀을 믿지 못하는 군중들에게

< 요한복음 6장 37절 >이하에서 당신이 세상에 오신 목적을 분명하게 밝히셨다.


"내가 이미 말한 대로, 너희는 나를 믿지 않는다."(요한6,37)


"나는 내 뜻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실천하려고 하늘에서 내려왔기 때문이다."(요한6,38)


"내 아버지의 뜻은 또, 아들을 보고 믿는 사람은

 누구나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이다."(요한6,40)라고 말이다.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다 실천하신,

즉 사명을 완수하신 예수님의 그다음의 하실 일은 무엇이겠는가?

하느님 아버지의 오른편으로 올라가시는 일뿐이다.

그것이 오늘 우리가 기념하는 '주님 승천 대축일'의 의미인 것이다.


과거 눈에 보이던 예수님이 

승천으로 이제 우리 눈에 보이지 않게 되셨다.

그러나 이제는 

예수님의 이름을 입에 올리고 예수님을 따른다는 사람들은

누구나 그분처럼 '하느님의 뜻대로' 살아야 하는 것이다.


하느님의 뜻대로 살아야 한다는 것은 무슨 말인가?

< 테살로니카 1서 4장 3절 >의 바오로 사도의 말씀대로,

하느님의 뜻은 우리가 거룩한 사람이 되는 것, 그것뿐이다.


우리가 거룩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것은 '하느님의 뜻대로 살아야 한다는 것' 그것뿐이다.


하느님의 뜻대로 살기 위해서 가장 좋은 방법이 무엇인가?

우리는 너무나 그 답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갈릴래아 사람들아, 문정산 식구들아, 왜 하늘을 쳐다보며 서 있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