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한위탁

25 p.128-131 제 2편 제 2장 섭리에 대한 신앙 ③

은가루리나 2018. 4. 13. 20:57


제2편 거룩한 위탁과 기초


제1장 이탈

제2장 섭리에 대한 신앙 ①②

제3장 섭리에 대한 신뢰

제4장 신뢰 계속 - 難問에 대한 해답

제5장 천주께 대한 사랑

제6장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

제7장 聖主에 대한 모범



p.128



제二편 거룩한 위탁(委託)의 기초(基礎)


제二장 섭리에 대한 신앙




몸에 닥쳐 드는 각가지 불행에 있어、

우리는 천주를 찾아내야 한다。


천주께서는「이사야」의 말을 빌어、

나는 빛을 만드는 자요、어두움을 조성하는 자로라。

나는 평화시를 이룩하고 재앙을 조성하는 자로라。

나는 이 모든것을 이룩하는 야훼이로라」(이사야45.7) 고 말하게 하시고、


또한 일찌기 「모이세」에 의해서도、

나는 죽이기도 하고 다시 살리기도 하노라. 

나는 쳤다가도 고치노라」(신명기32.39) 고 말씀하셨다。


「사무엘」의 어머니 「안나」의 노래에도、

「야훼께서 죽이시고 살리시며、

지옥으로 내려보내시고 올라오게 하시는도다. 

야훼께서 빈궁하게 만드시고 가멸게 하시며、

낮추시고 높이는도다」(사무엘전서2 .6)라고 있으며、


「아모스」예언자도 또한 

「재앙으로서 주로부터 나오지 않는 것이 과연 있으리오」(아모스 3 .6)

라고 말하였으며、


「행도、불행도、죽음도、삶도、가난도 부귀도 모두 천주로부터 오느니라」

(집회서11.14) 고 현자는 주장하고 있다。



사람은 혹 이렇게 말하리라。


「물론、

병、죽음、추위、더위、

그 밖에 허다한 자유가 없는 원인에 의한 우발사(偶發事)에 관해서는 

나도 그것을 인정한다。

그러한 원인은 모두 항상 천주께 복종하기 때문이다


그와는 달리 인간은 천주께 반항(反抗)한다。


남이 나를 나쁘게 말할 때에 

내 재산을 빼앗을 때에 

나를 때리거나 박해할 때에、

어떻게 그러한 나쁜 행동 안에 천주의 손을 발견할 것인가。


왜냐 하면、

천주께서는 그러한 것을 바라지 않으실 뿐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금 하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는 그런 것을 

인간의 의지(意志)에 그 무지(無知)거나 

혹 그 악의(惡意)에 돌릴 수 밖에는 없다」라고. 



천주의 섭리에 자신을 맡기지 않으려고 

그러한 논법(論法)을 방패로 삼는다는 것은 헛된 짓이다. 


왜냐 하면、

천주 자신이 이것을 밝히 알려 주셨으며 

우리는 그 그르치실 수 없는 말씀을 바탕으로 하여、

위와 같은 사건에 있어서도 

다른 사건에 있어서와 마찬가지로、

천주께서 작용하신다는 것을 믿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이다。


과연 천주의 의지 없이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p.129


천주께서 죄인을 벌하실 때에는、

인간이거나 악마이거나、당신이 좋다고 여기시는 것을 

자유로이 택하신다。


「다위」왕이 죄를 범하였을 때에、

천주께서는 왕궁(王宮) 안에 

더구나 그 왕자 (王子)들 사이에 

당신의 정의(正義)의 연장(道具)이 되는 것을 택하셨다。


말씀하시기를、

보라! 내가 너의 집안에서 너를 거슬러 재난을 일으키겠노라.」

(사무엘후서12.11) 


「이스라엘」사람이 죄악에 타락하여 완고 (頑固)하게 되었을 때마다、

주께서는 그들을 의무(義務)의 길에 되돌아 가도록 

번갈아 이웃 민족을 택하여、무서운 벌을 내리실 것을 알리셨다。


특히「앗시리아」인은 「천주의 분노의 지팡이、

저들의 손은 천주의 책벌의 몽둥이었다。」(이사야1..5) 



오주께서도 또한 

천주를 죽인 대역죄(大逆罪)를 범하고도 회개하지 않는 

「예루살렘」의 멸망을 예언하셨다。


「띠또」는 분명히 천주의 팔이 되어、

돌이 돌 위에 남아 있지 않을 정도로 「예루살렘」을 송두리째 붕괴시켰다。

(루까19.41-44) 


「앗슈르」가 후세에 자기를 가르켜 천주의 재난이라고, 자칭한 것도 

의당한 짓이었다. 


「완고하게 죄에 머물러 움직이지 않은 사울에게서

 야훼의 신이 물러가고 나쁜 신이 야훼께로부터 그에게 덤벼들었다.」

(사무엘 전서16.14 참조)





의인(義人)이나 성인(聖人)을 시험하심에 있어、

천주께서는 가끔 

악마의 간계(奸計)、악인의 사심(邪心)을 사용하시는 적이 있다。  p.130



「욥」은 그 자식과 재산을 잃어、

부귀의 절정에서 비참의 구렁에로 전락(轉落)하였을 때、

그는 말하였다。


「주신 이도 야훼시요 취하신 이도 야훼시오니 

야훼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어다」(욥1.21)라고. 


성 「아우구스띠누스」가 훌륭하게 주의한 것처럼 

「욥은 

주께서 주시고 악마는 빼앗아 갔다고는 말하지 않고、

주께서 주시고 주께서 가져 가셨다고 말하고 있다。


만사는 주의 뜻에 맞갖도록 일어났던 것이며、

악마의 뜻에 맞도록 일어난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그대들을 엄습하는 모든 타격을 주께 돌릴지니라。


천주의 허락 없이는 악마까지라도 

그들의 몸에 손가락하나라도 댈 수없기때문이니라」(시편、32주석)고. 


「요셉」의 형제는、

「요셉」을 노예로 팔아 가장 흉악무도한 짓을 하였지만、

「요셉」은 무슨 일이거나 천주의 섭리에 돌리고、

몇번이나 그것을 말하였다。


「목숨을 살리시려고 

천주께서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신 까닭이로소이다。


당신들은 나에게 불행을 주려고 꾀하였으되、

천주께서는 그를 좋게 마련하셨다。」(창세기45. 5-9、5..19-20.)



「쉬뭉이」가 도망가는 「다위」왕에게 저주를 퍼부으면서 

추적(追跡)하여 돌을 던졌을 때、

거룩한 왕은 그들 안에 천주 섭리의 활동만을 보고、

신하들의 분노를 가라앉히면서、


「너희가 내게 무엇 그럴 것 있느뇨、

저가 저주할 때에는 

야훼께서 저에게 『다위를저주하라』 하셨기때문이니라」(사무엘 후서16.1.) 

고 타일렀다。


즉、천주께서 나를 벌하시기 위하여 그를 택하셨다는 뜻이다。



주께서 수난하실 때、

주를 고발한 「유데아」인、주를 배반한 「유다스」, 

주께 유죄선고 (有罪宣 告)한 「빌라도」、

주를 고문한 형리(刑吏)들、

이러한 저주받을 무리를 모두 충동한 악마는 

바로 이 극악무도한 대역죄(大逆罪)의 직접적인 원인이었다。 p.131


그러나、그들의 예상외로 

만사를 안배 하신 것은 천주시며、

그들은 다만 천주의 계획의 앞잡이에 불과하였다。



께서는 이것을 분명히 말씀하셨다。


「성부 내게 주신 바 잔을 나 어찌 마시지 아니 하겠느냐。

만일 위에로 조차 네게 주심이 없으면 

네가 나를 대하여 아무 권도 없으리라。

오직 지금은 너희 때요 또한 캄캄한 자들의 권세로다」

(요왕18.11、19.11、루까 22.53) 라고. 



또한 성「베드루」도 주께서 승천하신 후에 이것을 언명하고 있다。


「헤로데와 본시오·빌라도가 외교인과 및 이스라엘 백성들로 더불어 

과연 이 읍내에 모여 너 축성하신 성자 예수를 거스르고、

네 손과 네 의견으로 결정하신 것 을 시행하였도다」(사도 행전 4 .27) 라고。



그러므로 주의 수난은 천주의 사업이며、더구나 그 걸작이다。


「게」주교는 말한다。


천주의 의지가 거기에 있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이 온전히 광명 (光明)인 의지는 깊은 암야(暗夜)에 닫혀져 

이 불가항적 (不可抗的) 인 의지는 

이 전체에 걸쳐서의 실패의 중축 (中軸) 이며、

전연 무죄한 성자에게 측량할 수 없는 벌을 부과하시는 경우에도、

이 지정(至正)、지선(至善)、지애 (至 愛)의 의지에는 

조금도 동요함이 없으셨다。


결국 이 지극히 거룩하신 의지는 

이 악의(惡意)의 걸작의 근저(根抵)에 있는 것이다。


우리는 그러한 신앙 안에 살고 있다。


그러나 후에 성교희가 입을 재난과 일반사회의 재화(災禍)는 여하튼、

개인에게 생기는 손해、치욕(恥辱)、실망、

역경(逆境)、사소한 불쾌사(不快事) 

그 밖에 

우리가 십자가라고 부르고 있는 흔한 시련이나 하찮은 재난 안에도、

천주의 의지를 인정한다는 것은、

아무래도 극단적인 것처럼 생각되리라。」(위탁」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