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한위탁

24 p.125-127 제 2편 제 2장 섭리에 대한 신앙 ②

은가루리나 2018. 4. 8. 01:41


제2편 거룩한 위탁과 기초


제1장 이탈

제2장 섭리에 대한 신앙 ③④

제3장 섭리에 대한 신뢰

제4장 신뢰 계속 - 難問에 대한 해답

제5장 천주께 대한 사랑

제6장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

제7장 聖主에 대한 모범



p.125



제二편 거룩한 위탁(委託)의 기초(基礎)


제二장 섭리에 대한 신앙 




우리의 성부께서는 참으로 숨어 계신 천주시다。


성경의 글자 안에 그 성언 (聖言)을 덮으시며、 

예수께서도 또한、성체의 형색 (形色) 안에 그 현존을 감추고 계신 것처럼、

천주께서는 우리에게 신덕의 공로를 주시려고、

보이지 않은채 머무르시기를 바라시어、 


그 활동을 피조물의 활동의 그늘에 잠기게 하신다。 p.126



「이제、우리가 어떤 질병에 엄습되었다고 하자。

무엇이 그 원인이었는가。


외관상 그것은 대기(八氣)의 변덕이든가、

또는 몹시 세찬 기후의 탓이리라。


그렇지만 실제로는 

이러한 요소(要素)가 질병의 원인이 된 것은 

천주의 뜻에 기인한 것이다。


다만 천주께서는 항상 그늘에 감추어 계시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그 행동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여하튼 

병세는 혹은 더하게도 되고、흑은 쾌유에로 향할 것이다。



이 악화(惡化) 또는 희복(恢復)은 누구에 의한 것일까。


의사와 그 의술에、혹은 그의 부주의의 탓이라고 우리는 말한다. 

아마 그럴지도 모른다。


그러나 실은 

천주께서 이러한 제二의 모든 원인 위에 군림(君臨}하고 계시며、

사람이 완쾌되느냐 죽느냐를 결정하시는 것은 

오직 천주 한분 뿐이시다。


사실상 그러한데、

그러나 우리는 천주를 볼 수 없으며、

또한 이 위대하신 천주께서는 어디까지나 모습을 드러내시는 적은 없다。


그래서 흔히 

제二의 여러 원인이 명백히 드러나면 드러날수록 

최고의 원동자(原動者) 가 되시는 천주를 발견한다는 것이 

우리에게는 더욱 더 곤란하게 된다。(동서 一 편 一 장) 



생활한 신앙의 관점으로는、

사람은 피조물을 피조물 그 자체로서가 아니라、

그것이 활동을 받는 바 제 一 원인에 있어 바라보고、

어떻게 하여、

「천주께서 그런 것을 움직이시고、둬섞으시며 모으시고、대립시켜 

상반(相反)하는 길에 의해서 동일한 목적에 이끄시는지」

를 살펴 알아낸다。 


또한 성신께서 어떻게 사람이나 물건을 사용하시어、

사람들의 영혼 안에 개개의 생활한 복음서를 엮으시는지 엿보아 안다。


이 복음서는 위대한 영원의 날에 있어서는 완전히 이해될 것이다. 


우리 눈에 그렇게도 혼돈(混池)하여 불가해(不可解)한 것으로 비친 것도、

그 날에는 마음을 빼앗길 정도로 석연(釋然)하게 될 것이다。


「모든 사물의 이유와 범위와 관련이、이 천주의 사업 안에 있음을 

사람은 지금부터 이미 온전히 납득하여、

성경에 향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경건하게 머리를 숙여감추인 천주를 흠숭하고、

그 섭리에 자기를 맡긴다.」 

(「드·고싸드」신부「덕으로서의 위탁」二장 一절 - 五절)



이에 반하여 약한 신앙으로는 

우리를 엄습하는 불행 재난 안에、또한 특히 인간의 악의(惡意)의 배후(背後)에 

어떻게 천주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인가。


이 때 사람은 

모든 것을 우연(偶然) 위에 또는 악운(惡運) 위에 내던져 

마구 거스르는 것이 고작이다。 


p.127


본디、우연(偶然)이란 하나의 무의미한 말에 불과하다。


또는 신앙이 있는 이에게 있어서는 오히려 

「섭리의 미행(微行)」(요셉·드·메스똘)이다。


그러나、그것은 

복종과 기도와 감사의 책임을 면하려는 나쁜 마음의 사람들이 늘 쓰는 

섭리의 세속화(世俗化)와 같은 것이다。


「인생에 있어서는 

아무것도 우연의 움직임에 의하여 일어나는 것은 없다。


우리 의지에 반하여 일어나는 것도 모두 천주의 의지대로만 일어나고、

그 섭리와 정해진 질서와、그 주어진 승낙과、

세워진 법칙에 따라서 밖에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히 알기 바란다」

라고、성 「아우구스띠누스」는 말하고 있다。

(「게」주교「위탁」一、 및 「성 아우구스띠누스의 시편 一 四八의 강의、三」)



「물론、

세상에는 소위 우발사건 (偶發事件)、의외 (意外) 의 사건이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그러한 것은 

우리에게 있어서만 우연(偶然)이고、의외(意外)인 것이며、

실은、일체의 사물을 

당신께 대한 봉사를 위하여 배합(配合)하시고 귀착(歸着)시키시는 

최상의 섭리의 계획인 것이다。」(「신애론」 二편 三장)



「천주께서는 그 피조물을 처리하심에 있어、

당신의 계획을 이것에 알리지 않으신다。


피조물은 각기 자기 자신의 길을 왕래한다。


운명은、그 도중에 있어 

어떤 이에게는 행운(幸運)의 기회를、

다른 이에게는 손해와 파멸의 기희를 준다。


운명! 그렇다、

그것은 전체의 짜임새를 보지 않는 이에게 있어서는 운명이지만、

그러나 

각가지 사정을  적기 (適機)에 따라서 야기시키시는 천주께 있어서는 

일체란 그 섭리에 의한 것이다.」(「드·슈르몽」신부「섭리」 一편 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