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상의 책 4권

{천상의 책 4권92장} 예수님의 침묵, 평화는 필수적인 양식이다.

은가루리나 2018. 4. 18. 22:08

 




사람들 가운데 이루어질 하느님 뜻의 나라


천상의 책


사람들로 하여금 질서와 그 본연의 위치와 창조된 목적에로 돌아오게 하시는 부르심



4-92



1901년 10월 11일



예수님의 침묵, 

평화는 필수적인 양식이다.




1 예수님의 부재와 침묵이 며칠 계속되었다.


오늘 아침에도 오시긴 했으나  여전히 입을 다물고 계셨다.

아무리 애써 보아도  나로서는 그 침묵을 깰 재간이 없었다. 


아마도 그분의 마음속에 내게 알리고 싶지 않은 어떤 것이 있는데 

이것이 그분을 몹시 괴롭히는 통에  입을 여실 수 없는 모양이었다.



2 예수님께서 그렇게 나와 함께 계실 때에  여왕이신 엄마도 뵈었는데, 

그분께서 나와 같이 계심을 보시고  내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네가 그분과 함께 있느냐? 

마침 잘되었구나. 


그분께서는 의노를 터뜨리셔야 하겠지만, 

네가 함께 있으니  그렇게 하시지 못하게 하여라.



3 딸아, 징벌을 거두어달라고 그분께 빌어라. 


악인들은 활동할 준비를 완료했음에도 

그들을 가로막는 지고한 힘에 의해 손발이 묶여져 있음을 보고 있다. 


그러니 하느님의 정의가 허락해도 

자기네가 활동하고 싶을 때 하지 못하니까 

이런 이점(利點)이 있을 것이다. 


즉, 하느님의 권능에 의해 지배를 받는다는 것을 인정하면서 

'우리가 그렇게 하지 못한 것은 위로부터 오는 힘 때문이었다.' 

하고 말할 것이니 말이다.



4 그렇다. 딸아, 기도하여라. 

윤리적인 영역속에 보기에도  소름끼치는 가공할 전쟁이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평화야말로 사회와 가정과 각 개인이 추구해야 할 첫째 양식이다.


이것이 없는 모든 양식은, 

설사 덕행이라고 하더라도  불건전한 것이 되고 만다.  


평화가 없으면 

사랑과 보속도 건강이나 참된 거룩함을 낳지 못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오늘날의 세상은 

그토록 건전하고 필수적인 양식인 평화를 내버리고 있다. 


그리고 단지 무질서와 전쟁만을 원한다. 

기도하여라. 내 딸아, 기도하여라."



4권92장 J의침묵 평화는필수적인양식이다.m4a.avi

 





신앙의해,연중 제20주일(평화에 대하여) 2013, 08, 18  ▣ 주일강론


moowee 등급변경▼ 조회 157 추천 0 2013.08.15. 17:00



<신앙의해, 연중 제20주일> 2013, 08, 18



< 평화(平和)에 대하여 > 


'평화'에 대한 짧은 강의를 해 달라는 朝禱會의 野村晋一(노무라신이치) 

바오로 부대표님의 부탁을 받고 평화에 대한 저의 생각을 정리해 보았다.

오늘 통역을 해 주실 분은 동경한인성당의 전 사목회장이셨던

권용대 프란치스코님을 소개해 드리겠다.


지난 주간은 일본교회에서 정한 평화주간이었고 지난 주 토요일에는

오카다 대주교님을 비롯한 신자들이 홍고성당에서부터 성마리아 대성당까지의

'평화행진'과 그에 이은 '평화기원미사'가 봉헌되었다.



'평화'라는 말을 생각할 때 제일 먼저 떠오르는 단어는 무엇인가?

"팍스 로마나(Pax Romana)" 와 톨스토이의 명작 "전쟁과 평화" 일 것이다.


우선, "平和" 라는 한자를 옥편에서 찾아보았다.


"平" 자는 평평할 평, 고를 평, 다스릴 평, 쉬울 평, 나눌 평 자인데, 

이 글자는 물에 뜬 부평초의 모양을 본 떠서 만들게 되었다 하며 


수면이 고르고 평평함을 뜻하는 글자라 한다.



"和" 자는 일본인이 가장 중요시하는 글자이다. 

화목할 화, 답할 화, 합칠 화 자이며 '벼 禾'에 '입 口'를 합친 글자로 

"곡식을 함께 경작하여 함께 나누어 먹으니 화목하다" 는 뜻의 글자라 한다.


평화라는 단어를 한국의 국어 사전에서 찾아보니,

"1) 평온하고 화목함, 2) 전쟁이 없이 세상이 잘 다스려짐" 이라고 적혀 있다.



인류 역사이래 인류가 그토록 오랜 세월을 평화를 추구하고 외쳐 왔지만

진정한 평화가 이땅에 펼쳐졌던 시대가 그 얼마나 있어 왔는가?


로마인들이 기원을 전후로 200년(BC27~AD180)의 긴 세월을 체험했던 

'팍스 로마나' 시대도 로마인들에게는 평화의 시대였지만 

로마로부터 지배를 받아오던 식민지 국가의 국민들에게는 

로마의 폭력과 착취에 고통을 받던 매우 불행한 시대였고 

그 중의 한 나라가 예수님이 태어나신 이스라엘이었다.


팍스 로마나 시대는 평화라는 단어가 뜻하는 그대로 

모든 사람들의 입에 골고루 식량이 분배된 시대가 아니었고 

강대국 로마인들의 입만 즐겁게 해 주던, 약소국 국민들에게는 

그야말로 평온과 화목이 깨어진 참으로 불행한 시대였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인류 역사이래 인간들은 입으로는 곧잘 평화를 외치곤 하였는데 

그것은 자신들이 불리한 입장에 처하게 될 때가 대부분이었다, 


'평화조약'이니 '평화화친조약'이니 하면서 말이다.



인간이 말하고 추구하는 평화란 

참으로 인간의 욕심이 사라지지 않는한 

이 세상 그 어느 곳에서도 진정한 평화를 이룩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인간의 욕심의 결과가 무엇인가?

평화라는 개념과 가장 잘 대비되는 '전쟁'이 아닌가?

내 나라만, 내 가족만 더 잘 먹고 잘 살기 위한 욕심의 결과가 

바로 전쟁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던가?


우리가 잘 먹고 잘 사는 이 시대에 

지금도 아프리카에서는 

엄청난 숫자의 사람들이 굶주리고 기아로 죽어가고 있다.

전세계 인구의 절반 가량이 굶주리고 있는 현실이다.



진정한 '참 평화'란 모든 인간이 함께 잘먹고 잘사는 것이다.

그것이 참 평화인 것이다.


인간이 아무리 평화를 외치고 평화 운동을 벌이고 집회를 가져도

인간의 힘으로는 참 평화를 이룩할 수 없는 것이다.




진정한 참 평화란 오직 하느님을 통해서만 주어질 수 있는 것이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이유도 이 세상에 참 평화를 주시기 위함이었다. 



<루카2,14>의 말씀대로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실 때 하늘에서는 천사와 하늘의 군대들이 

"지극히 높은 데서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그분 마음에 드는 사람들에게 평화!" 라고 찬미한 것이다.


신,구약성경 전체를 통해서 평화라는 단어가 264회 등장하는데

그중에 평화에 대한 대표적인 말씀이 

<요한14, 27절과 20,19>의 말씀이다.


<요한14,27>의 말씀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 

"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남기고 간다.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 는 말씀이며,


<요한20,19>의 말씀은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첫 말씀인 "평화가 너희와 함께!" 이다.


이 성경말씀들은 

참 평화란 하느님만이 주실 수 있다는 사실의 증명이다.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우리 신앙인은 참 평화를 구현해야 하는 사람들이다.

이 세상에 참 평화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인류가 복음화되어야 한다.


인류의 복음화가 하느님의 뜻이며 

하느님의 그 뜻을 실현시켜드려야 할 의무가 주어진 사람들이 

바로 우리들인 것이다. 


우리가 사는 이 일본 땅에서 평화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일본이 어서 빨리 복음화되어야 한다.


저는 아직 미약하지만 일본의 복음화를 위해서 저의 여생을 바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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